동아시아 역사 속의 중국과 한국
최소자교수정년기념논총 간행위원회 엮음 / 서해문집 / 2005년 9월
평점 :
품절


출간된지 좀 된 책이라 보존서고에서 빌려 봤다.

500 페이지가 넘는 분량이지만 여러 필자들이 하나의 주제를 놓고 다양한 관점에서 기술한 책이라 아주 흥미롭게 잘 읽었다.

동아시아의 조공 체계가 핵심 주제인 것 같다.

서양인의 눈으로 보면 이 사대와 조공 외교가 이상하게 보일 수 있겠으나, 거대한 중앙집권국가를 무려 2천 년 전부터 지금까지 쭉 이어 온 중국이라는 제국과 외교 관계를 맺었어야 하는 동아시아 여러 나라들의 독특한 시스템이라는 생각이 든다.

실제 중국이 서양 열강에 의해 개항한 뒤 서양식 외교 관점에서 실제적으로 조선에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해서 문제가 된 이홍장의 경우가 나온다.

성리학이라는 철학적 바탕 위에서 요즘의 눈으로 보면 불공정한 관계이지만 실제로는 내정 간섭 등을 하지 않고 문화 교류, 특히 당시로서는 가장 선진적이었던 중국식 문화를 받아들이고 그 안보 울타리 안에서 변방을 안정시켰던 나름대로 순기능을 했던 체제였다.

오히려 송나라 때 소식 등은 고려가 가져오는 토산물은 보잘 것 없는데 중국으로부터 많은 재화를 얻어 간다고 고려 사신의 입국을 막자고 주장하기도 했다.

명나라 때 조선에 구원병을 보내 왜란을 막아 준 예를 봐도 사대외교의 실효성은 확실했던 듯하다.

성리학적 명분론에 빠져 현실을 너무 도외시 한 조선 위정자들의 지고지순한 숭명의리가 답답해 보이기는 하다.

일본처럼 한 발 떨어져 있는 환경이었다면 조선 시대처럼 자발적으로 완벽하게 중국 영향력 아래로 들어가지는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연행록을 통해 오랑캐라고 비웃었던 청나라의 발전된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은 조선 선비들의 이야기도 나온다.

그러나 여전히 전통적인 화이론을 깨기는 어려웠던 것 같고 오히려 소중화라는, 어찌 보면 본질에서 벗어난 우스꽝스러운 형태의 허울뿐인 자존감으로 변모했던 것 같아 안타깝다.

청나라가 중국의 한족 뿐 아니라 서역의 여러 민족들을 지배하는 거대한 제국이었음을 이해하기는 박지원 같은 깨어있는 지식인들에게도 어려웠을 것 같고, 아무리 천주교를 자발적으로 받아들인 남인들이라 해도 근대 시민사회로의 전환은 불가능했던 것 같다.

대동강 유역에 있던 한 무제의 낙랑군이 고구려의 공격으로 소멸된 후 대릉하 유역을 거쳐 난하 지역까지 교치됐던 과정도 흥미롭게 읽었다.

그들의 후손들이 낙랑왕씨, 낙랑한씨 등을 성씨로 삼아 기자의 후예임을 강조했기 때문에 중국은 낙랑을 수복해야 할 옛 땅으로 인식하고 있었고 오늘날 동북공정에도 영향을 끼친 듯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