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춘곡 고희동 - 격변기 근대 화단, 한 미술가의 초상
조은정 지음 / 컬처북스 / 2015년 11월
평점 :
꼼꼼하게 잘 써진 평전이면서도 읽는 내내 불편하기도 했다.
보통 평전을 쓰다 보면 주인공을 너무 미화시키고 (유홍준씨의 완당평전처럼) 호의적인 쪽으로 기술하는 게 문제인데 이 고희동이라는 화가는 미술계의 학자들에게 나쁜 쪽으로 찍힌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지나친 비판이 많아 의아했다.
일제 때 독립운동은 못했더라도 딱히 친일을 했던 전적도 없고, 책에 나온대로 화단에서 권력을 휘둘렀으면 부정부패로 돈이라도 모았을텐데 매우 청빈한 것으로 나온다.
일반적인 평전에서라면 이런 부분을 후하게 평가해 줄텐데 이런 부분도 당시 신문 기사를 인용해 약간 비꼬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집이 좁아 제대로 그림을 못 그리나? 이런 식의 간접적인 비판이 있어서 당혹스러웠다.
저자는 조선 최초의 서양화가라는 한 인물에 대해 객관적인 비평을 한다고 생각하겠지만 독자 입장에서는 자신이 기술하는 인물에 대한 큰 애정이 없는 것 같아 의아한 대목들이 많았다.
해방 이후 권력층과 어울려 화단의 권력을 잡고 특히 6.25 때 부역자들 심사한 것 때문에 미술계에서 극우 인사로 찍힌 것인가?
이승만 정권에 특별히 아부해서 높은 자리를 얻은 것도 아니고 오히려 민주당으로 가 선거로 국회의원이 됐지만. 5.16 으로 곧 쫓겨나고 만다.
대한제국의 관리로 이력을 시작한 긴 생애를 돌아봤을 때 딱히 정치적으로 비난받을 만한 행동을 취하지 않고 오히려 나름대로 처신을 잘 한 화단의 원로 같은데 박한 평가들이 아쉽다.
최초의 서양화가라는 타이틀에 걸맞지 않게 미학적으로 성취한 것이 부족한 탓일까?
일본의 제국전람회에서 특선을 했던 김관호 등도 귀국 후 특별한 화가 이력이 없었고 한국 최초 여류화가라는 나혜석의 그림도 미학적으로 얼마나 평가를 받는지 모르겠다.
최초라는 타이틀에 최고까지 요구하기는 좀 어려운게 아닐까 싶다.
본인도 구한말에 발을 걸치고 안중식에게 수묵화를 배운 만큼 서양화를 전공했으나 훗날 수묵화로 돌아섰다.
한마디로 그는 시대의 변환기에 구시대와 신시대의 양쪽에 발을 걸친 인물이었던 셈이다.
그의 회귀가 이해되는 대목이다.
사진에 항상 두루마기를 입고 나오는 모습도 서구적인 것보다는 전통적인 문화를 더 편하게 느끼는 것처럼 보인다.
고희동이라는 인물의 이력이 흥미롭다.
역관 집안이었고 작은 아버지는 일어 역관 경력을 시작으로 영친왕을 모시고 일본으로 건너가 훗날 자작 작위까지 받는 이른바 친일파가 됐다.
그러나 같은 역관이었던 아버지는 친일 행적과 선을 긋고 나름 청렴한 관리 생활을 한다.
당시로서는 특이하게 불어 학교에 입학해 5년 동안 불어를 배우고 우등상도 여러 번 탄 성실한 학생이었다.
민영익 등 보빙사 일행을 모시고 미국에 다녀온 아버지의 판단으로는 불어를 전공하는 게 유리하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그러나 곧 프랑스의 영향력은 사라지고 일본이 득세하게 된다.
고희동은 궁내부의 관리로 채용되는데 이 때도 일본어를 익히기 위해 따로 학교를 다녔다고 한다.
그림 연구를 위해 일본에 파견됐으나 그 사이에 대한제국이 망하자 졸지에 실업자가 되어 다니던 동경미술학교를 마저 다니고 졸업해 최초의 서양화가가 됐다.
처음부터 그림에 뜻이 있었던 것은 아니고 관리로써 파견나갔다가 화가가 된 이력이 흥미롭다.
그래서인지 훗날 조선에 돌아와서도 서화협회를 조직하고 해방 후에도 대한미술협회를 만드는 등 단체 일을 많이 맡는다.
연설을 아주 잘했다고 하는데 그 덕에 돈을 많이 안 쓰고도 참의원에 당선될 수 있었다고 한다.
매력적인 인물임이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