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마을 언어학교 - 영화보다 재미있는 언어학 강의
강범모 지음 / 동아시아 / 2003년 4월
평점 :
절판


여러 추천들과는 다르게 다소 실망스럽다

언어학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를 얻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너무나 평이하고 뻔한 내용들이라 굳이
"언어"라는 타이틀을 붙이지 않아도 될 듯 싶다

차라리 언어학자의 영화 읽기 정도라고 명칭하는 게 나을 것 같다

"명화와 의학의 만남"이 단지 의사가 감상하는 그림 이야기였듯, 이 책 역시 언어학자가 영화를 보고 느낀 점을 서술했을 뿐이다

진정한 언어학과 영화의 접목은 보이지 않는다

다만 영화라는 쉬운 소재를 택한 덕에 어렵지 않게 읽을 수는 있다

 

저자가 지적하는 여러 문제들 중 번역의 어려움은 낯설지 않다

"마이 페어 레이다"는 하층민 여자에게 대학 교수가 상류층의 언어를 가르치는 내용인데,  하층민과 상류층의 언어가 어떻게 다른지 알 수 없는 외국인 관객에게는 이해하기 어려운 노릇이다

우리말 번역에서는 충청도 방언을 하층민 언어로 사용했다는데, 번역의 어려움은 있겠지만 명백한 잘못이다

저자도 밝힌바 대로, 방언은 표준어에 비해 품위가 떨어지는 언어가 아니고 속어도 아니다

차라리 사투리 대신 속어를 썼으면 어땠을까?

하긴 유명한 번역가라는 안정효도 "뿌리"의 흑인 노예 언어를 번역할 때 충청도 방언을 차용했다고 바람직한 번역의 예로 밝히는 걸 보면, 우리 사회에 "사투리=품위가 떨어지는 말"이라는 공식이 널리 퍼진 모양이다

"풀 몬티"에서도 영국 방언들이 많이 등장하는데, 번역을 통해 관객들이 진짜 의미를 전달받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 같다

 

"스타워즈"나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외계어를 실제로 공부하는 모임이 있다는 얘기는 무척 새로웠다

단순히 영화에 삽입하려고 꾸며낸 언어인 줄 알았는데,  실제 그 언어로 문장을 만들 수 있을만큼 정교한 문법을 가지고 있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두 영화 모두 많은 매니아를 거느리기로 유명한데, 저자가 새로운 외계어를 창조할 정도의 노력이 있기 때문에 높은 수준의 소설이 탄생할 수 있었음을 새삼 확인했다

 

외계어의 생성을 이야기하다 보면, 한글의 위대함을 다시금 떠올리게 된다

저자 역시 언어학자로서 한글에 대한 자부심을 갖고 있는데, 4천개가 넘는 언어에 비해 문자는 얼마 되지 않는다는 사실만으로도 문자가 얼마나 어려운 발명품인가를 느낄 수 있다

한글의 위대함은 우리의 문맹률이 거의 0에 가깝다는데서도 충분히 알게 된다

세계 문맹 인구가 10억에 이르는데, 이 중 50%가 인도와 중국에 분포한다고 한다

한자가 얼마나 어려운 언어인지, 새삼스레 알게 된다

마오쩌둥은 위대한 서예가였음에도 불구하고, 한자 대신 알파벳을 쓰자는 주장을 했을 정도로 중국의 문맹은 심각한 일이다

한글이 발명됐다는 건 나라 발전에도 중요한 일이고, 계급 평등을 위해서도 획기적인 사건이라 할 만 하다

"중앙역"이라는 브라질의 한 영화에서 보여주듯, 글자를 몰라 글을 아는 타인에게 자신의 내밀한 얘기를 불러 줘야 하는 가엾은 여인의 모습을,  한국에서는 쉽게 만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 참 다행스럽다

저자는 우리말의 조어 구조를 밝히기 위한 한문 공부는 찬성하나, 한자 병용 표기는 반대한다고 했다

나 역시 그 주장에 동의한다

신문에서 한자가 사라졌기 때문에 보다 많은 사람들이 쉽게 새소식을 접할 수 있게 됐으며,  인터넷 시대에 한자는 불필요하고 복잡한 과정을 의미한다

일본과 중국 여행을 위한 외국어로서의 한자 역시 큰 의미를 못 갖는다고 한다

이미 중국에서는 쉽게 쓰기 위해 간자체가 개발되어 우리가 쓰는 한자와 상당히 다르다고 한다

일본 역시 이자체가 많아 우리가 알고 있는 한자어로 짐작하기 어려운 단어가 많은 실정이다

한자는 국어 단어의 의미를 정확히 밝히는 수준에서 공부해야 하고, 한글 전용화는 거스를 수 없는 대세라고 믿는다

 

영화를 소재로 해서 쉽게 읽을 수는 있지만, 전체적으로 언어학적인 지식이 빈약하다

저자가 대중에게 쉽게 다가가기 위해 일부러 수준을 떨어뜨린 건지 모르겠으나, 언어학이라는 타이틀을 내세우기엔 부족한 점이 많아 보인다

다시 한 번 영화를 소재로, 언어학 지식들을 쉽게 풀어 쓴 (그리고 어설픈 영화 감상 등은 가능하면 삼가한) 좋은 언어학 책을 발표하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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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학자는 영화에서 과학을 본다
정재승 지음 / 동아시아 / 199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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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과학 콘서트"를 읽은 적이 있다

쉬운 과학 교양 도서를 읽고 싶어 선택한 책인데, "느낌표 선정도서"라는 편견에도 불구하고 무척 재밌고 유익했다

그래서 저자의 또다른 책을 집어 들게 됐다

21세기는 과학의 시대인데, 그 시대 정신에 대해 무지하다는 게 한심해서 과학 에세이를 많이 읽어야겠다고 다짐하지만, 의외로 대중을 위해 쉽게 써진 책을 발견하기 힘들다

앞으로 이런 책들이 많이 나와서 기본적인 과학 지식을 쌓고, 더 나아가 과학의 정신을 충분히 이해하게 됐으면 좋겠다

 

솔직히 평하자면, "과학 콘서트"에 비해 좀 떨어진다

1999년에 쓴 책이니까 벌써 5년 전이고, 현재는 고려대 교수지만 당시는 박사 과정에 있었으니 약간의 수준 차이는 어쩔 수 없을 것 같다

그렇지만 무척 재밌고 흥미로운 책이다

특히 영화에서 소재를 얻었기 때문에 독자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다

 

"아마겟돈"의 비현실성은 다른 칼럼에서도 자주 지적되는데, 굴착기 기사를 우주로 보낸다는 설정 자체가 어이없다

굴착기 기사를 우주로 보내느니, 우주 비행사에게 굴착기 기술을 가르치는 게 낫다는 저자의 일갈이 통쾌하다

영화 속에는 수많은 오류가 보이는데, 근본적으로 감독이나 시나리오 작가들이 과학에 대해 무지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기본적인 과학 인식이 있으면 피할 수 있는 일인데, 과학의 원리에 대해 너무 모른 상태에서 상상력을 펴기 때문에 많은 오류가 생길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아웃 브레이크"는 과학적인 면에서 아주 훌륭하다고 한다

이 영화는 에볼라 바이러스를 대상으로 했는데 가히 에이즈에 걸맞는 무서운 바이러스다

다행히 공기 중으로 전파되지 않아 심하게 유행하지는 않는다고 한다

 

제인 구달과 다이언 포시, 비루테 갈디카스 등의 유인원 연구 이야기는 무척 감명 깊다

제인 구달은 침팬지 박사로 널리 알려졌는데, 그녀가 겨우 고등학교 졸업생이었다는 (나중에 캠브리지에서 박사 학위를 받지만) 사실은 미처 몰랐다

다이언 포시는 어린이 행동 치료사였는데 고릴라를 연구하러 아프리카로 떠난다

그러나 불행히도 밀렵꾼들과 싸우다가 살해당한다

비루테 갈디카스는 인도네시아 밀림에서 오랑우탄을 연구하는데, 그녀 역시 남편이 아들의 유모와 결혼하는 불행을 겪는다

이 세 학자들의 특징은 대학 교수 같은 지식인이 아니지만 직접 밀림에 들어가 수십년 동안 연구를 했고, 개인적으로는 불행했지만 그들이 연구하는 유인원들을 너무나 사랑하고 밀렵을 막기 위해 애썼다는 점이다

 

동물이 사람의 언어를 따라하지는 못해도 수화로 얘기할 수는 있다고 한다

"침팬지 폴리틱스"에서도 본 내용인데, 침팬지들도 수화를 배울 수 있다

그러나 가장 영리한 침팬지였던 "타잔"의 주인공 치타 역시 언어를 정말로 이해했다기 보다는 사람들이 반응을 보이기 때문에 흉내내는 것에 불과했다고 하니, 언어는 확실히 인간의 고유한 특성 중 하나인 모양이다

 

그 외에도 타임머신을 타고 절대 과거로 갈 수 없는 이유나, 사이버 보그가 인간의 똑같은 복제품이 될 수 없는 이유, 홍채 인식 시스템 등 다양하고 흥미있는 주제들이 쉽게 기술됐다

저자의 말처럼 과학자들이 눈높이를 낮춰 대중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과학 에세이들을 많이 썼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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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가 있는 책 읽기
최성일 지음 /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 200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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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동안 읽은 책 에세이 중 상당히 수준있는, 괜찮은 책이다

보통 책 에세이라면 개인의 취향이나 책에 얽힌 경험담을 위주로 하는데, 이 책은 좋은 책을 소개해 주는 서평 같은 느낌이다

"테마가 있는 책 읽기"라는 제목에 충실한 셈이다

 

여기 소개된 책 중 가장 인상깊었던 책은 신영복의 "엽서"다

이른바 옥중서신인데 기다림에 대한 부분을 읽으면서 눈물이 날 뻔 했다

아들을 하염없이 기다리는 늙은 어머니에게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 만으로도 삶의 희망이 될 수 있다"고 위로하는데, 그렇게 밖에 말하지 못하는 한 양심수의 애끓는 마음이 전해지는 기분이다

다음 번에 읽을 책은 당연히 "엽서"다

이 책은 저자가 언급한 옥중서신 중 가장 뛰어나고 또 제일 많이 팔렸다고 한다

 

80년대만 해도 자본론이나 사회과학 서적 등이 대학 신입생들에게 필수 교양 도서로 인식됐는데, 시대가 변한 탓일까?

대학 앞 사회과학 서점들은 거의 문을 닫았다고 한다

더 이상 대학생들이 책을 읽지 않고, 영상 매체나 미디어라는 새로운 문화 형식에 열광하는 것이 반드시 나쁘다고는 할 수 없으나, 왠지 쓸쓸해지는 건 사실이다

 

환경 문제나 의료 개혁, 인디언, 아나키즘 같은 다양한 분야에 걸쳐 여러 책들이 소개되는데 한 번쯤 읽어 볼만한 책들이 많다

특히 박홍규의 책을 꼭 읽고 싶다

그는 까뮈나 카프카 등에 관한 전기를 썼는데, 까뮈는 식민 치하 조선에 살면서도 조선에 대해서는 아무 관심이 없는 일본 지식인에 비유하거나, 카프카는 식민지 치하의 노동자로 일하면서 밤에만 글을 쓰는 가엾은 젊은이로 묘사한다

카프카는 자기와 출신이 비슷해서 쉽게 읽히는데, 카프카로 밥 먹고 사는 사람들 때문에 쓸데없이 어려워졌다고 논평한다

그 말을 들으니, "변신"이나 "성" 등이 읽고 싶어진다

또 "얼어 있는 강을 도끼로 내리치는 정도로 우리 머리를 강타하는 책이 아니라면, 대체 왜 우리가 책을 읽겠는가?"라는 카프카의 과격한 독서론을 인용한다

나도 이 부분이 아주 인상적이었는데, 다른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저자는 고종석의 전작주의자인데, 한 작가의 책을 모두 읽으면 그 작가와 비슷한 관점을 갖게 된다고 한다

조셉 켐벨은 한 수 위로, 그 작가가 읽는 책까지 다 읽는다고 한다

그렇게 되면, 작가와 같은 눈으로 세상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바람직한 가치관을 갖는 방법은 좋은 작가를 정한 뒤, 작가의 책은 물론, 작가가 읽는 책까지 다 읽어 버리라는데, 쉽게 실천하기 힘들 것 같다

그렇지만 정말 마음에 드는 작가라면 시도해 볼 만 하다

 

아나키즘이란 무정부주의자라기 보다는 무권력주의라는 저자의 해석도 마음에 들고, 환경 에세이를 내면서 정작 비환경적인 종이로 출판하는 위선을 꼬집는 것도 시원했다

또 산을 타는 사람들과, 바다를 소개하는 책도 무척 흥미로웠다

등산이란 예술과 과학과 스포츠의 절묘한 조합이라는 말을 들으니, 산 타는 사람들이 새롭게 보인다

사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것이 바로 등산이다

걷기나 오래 달리기 같은 건 잘 하고 좋아하는데, 계단 오르기나 등산은 정말 싫어하고 또 못한다

풍선 하나를 다 불지 못하는 작은 폐활량 때문일 것이다

대체 왜 위험을 무릅쓰고 산에 오를까, 그 심리가 궁금했는데 산악인들이 등산을 예술로 생각한다고 하니, 그제서야 고개가 끄덕여진다

예술을 하는데 무슨 이유가 필요하겠는가?

그저 그렇게 하는 것이 마음의 평화를 주고, 하고자 하는 뜨거운 열정을 불러 일으키며, 우리의 삶을 치열하게 만드는 힘이 되기 때문에 아무 이득 없이도 매달리는 게 바로 예술 아닌가?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는 과학서적이 베스트셀러에 오른 아주 드문 책이라고 한다

나는 "악령이 출몰하는 세상"을 읽었는데, 칼 세이건은 절대 재밌게 혹은 쉽게 읽히는 작가가 아니다

그 지루하고 반복적인 논증에 많은 인내심을 발휘해야 한다

그렇지만 진정한 과학의 정신을 밝히는 그의 노력은 존경받아 마땅하다

비록 지루하고 어렵게 읽은 책이지만, 기술로서의 과학이 아니라 우리 삶의 정신으로서의 과학을 얻게 된 좋은 책이다

그가 쓴 가장 유명한 "코스모스"를 읽어 보고 싶다

다른 출판사에서 새로 출판된다고 하니,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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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읽기를 권함 - 2004년 2월 이 달의 책 선정 (간행물윤리위원회)
야마무라 오사무 지음, 송태욱 옮김 / 샨티 / 200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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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사실 이 책은 도서관에 서서 후딱 읽어 버린 책이다

천천히 읽기를 권하는 저자의 충고를 완전히 무시해 버린 셈이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게, 200쪽도 안 되는 작은 분량에다 판본 크기도 작고 글씨도 띄엄띄엄 쓰여져 1시간 여 만에 다 읽어 버렸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생각하고 넘어 갈 어려운 내용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에 속독할 수 있었다

 

저자에 따라 책의 수준을 나누는 것은 잘못된 태도인지도 모른다

편견에 사로잡혀 저자의 약력만으로 미리 평가를 하면, 그 책의 진정한 가치를 놓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종종 발생하곤 한다

비전공자들의 역사학서를 볼 때마다, 혹은 유명인들의 에세이를 읽을 때, 통속 소설 작가들의 작품을 읽을 때마다 수준 차이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이 책 역시 이 쪽 전공자가 아닌 탓에 그저 그런 일반론적인 에세이에 불과하다는 평을 내리지 않을 수 없다

저자는 다치바나 다카시의 속독, 혹은 남독을 비판하지만 "나는 이런 책을 읽어 왔다"의 독서론과는 명백한 수준 차이가 보인다

 

어쩌면 내 독서 경향 탓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비교적 속독을 하는 편이다

아주 빠른 건 아니지만, 어쨌든 빨리 읽는 축에 낀다

가벼운 책은 한 시간에 100페이지, 어려운 책은 50페이지 (이를테면 "의료개혁과 의료권력", "빈 서판" 등등), 흥미있는 주제나 고전 등은 한 시간에 7-80 페이지를 읽는다

그래서 한가하면 하루에 한 권 정도 읽게 된다

저자는 이렇게 속독을 하면, 문장 하나하나를 음미할 수 없고 줄거리에 치우치게 된다는데 물론 어느 정도 동의한다

빨리 읽다 보면 세심하게 문장 자체를 음미하며 볼 수는 없다

또 사회과학 서적의 경우, 내용이 어려우면 정리가 잘 안 되서 두 번 읽어야겠다 싶을 때도 있다

 

그렇지만 지독하는 것이 반드시 좋은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과거에는 책 한 권의 내용을 완전히 이해하고 싶어, 어려운 책은 두 번씩 읽기도 했는데 그렇게 한다고 해서 책의 내용이 다 내 것이 되지는 않는다

책 수준이 내가 받아 들이기 어려운 정도면 아무리 애를 써도 이해하는데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또 지루함이라는 피할 수 없는 문제에 맞닥뜨린다

결국 다양한 종류의 책을 읽음으로써 독자의 지적 수준을 높히는 것이 더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책의 내용을 100% 이해하려고 애쓰는 것 보다는 80% 정도로 만족하고, 또 다른 책에서 지식과 감동을 얻는 게 현명하다고 본다

 

여기 소개된 다치바나 다카시의 다독은 유명하다

저자는 남독이라고까지 비판하지만, 책을 읽는데 지나친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더구나 책 읽고 글 쓰는 게 직업인 사람인데, 많이 읽으면 읽을수록 좋은 거 아닌가?

다치바나는 인문과학서의 경우 10여 분 동안 가볍게 목차와 전반적인 내용을 훑어 본 후 필요한 부분만 발췌해서 읽으라고 한다

저자는 이것을 두고 읽은 책의 수를 늘리려는 과시욕이라고 하지만, 다치바나 정도의 수준이라면 반드시 1페이지부터 끝까지 꼼꼼하게 읽지 않아도 될 것 같다

본인 능력이 되면, 가볍게 발췌독 해도 충분히 전체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다치바나는 필요없는 책은 과감하게 읽기를 중단하라고 하지만, 아직까지 이것은 못하고 있다

책을 감별할 능력이 부족해서인지, 아니다 싶어도 일단 끝까지 읽으면 뭔가 건질 게 있을 것 같아 한 번 잡은 책은 꼼꼼하게 다 읽는 편이다

 

저자는 또 생활의 모든 시간을 독서로 바치는 것도 나쁘다고 말한다

저자가 예로 드는 사람들은 그야말로 책 중독 수준인데, 읽고 쓰기를 본업으로 삼는 사람들이라 비판할 것은 못 된다고 본다

그렇지만 독서가 본업이 아닌 경우, 어느 정도의 절제는 필요할 것이다

나 역시 지나치게 독서에 빠지지 않기 위해 읽는 시간을 따로 배정하고 있다

저자처럼 일주일에 한 권씩 읽는 것도 좋은 방법 같다

바쁠 때는 그 정도만 읽어도 아주 훌륭하다

1년이면 52권을 읽는 셈이니까

(나는 요즘 TV를 안 보는 대신 한 주에 세 권 정도 읽고 있다)

 

독서법의 정도가 있는 건 아니다

자기 취향에 맞게 원하는 방법대로 읽으면 된다

수준이 낮은 책이라도 본인에게 감동을 주면, 제일 훌륭한 책이 될 수 있다

중요한 건 독서의 생활화라고 본다

(그렇지만 솔직히 이것도 모든 사람에게 반드시 필요한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어떤 독서가의 고백처럼, 비록 나는 열심히 책을 읽지만 요즘 같은 미디어 시대에 반드시 독서만이 마음의 양식을 얻는 최고의 방법은 아니라는 생각에 동의하는 바다)

한 때 취미란에 독서라고 쓰면 무식하다는 소릴 들었지만, 이제는 당당히 독서가 취미라고 밝혀도 좋은 시대 같다

그만큼 독서가 당연시 되는 분위기가 아니라는 반증이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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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팬지 폴리틱스 - 21세기 뉴 클래식, 권력 투쟁의 동물적 기원
프란스 드 발 지음, 황상익.장대익 옮김 / 바다출판사 / 200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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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부제인 "권력 투쟁의 동물적 기원"이 시사하는 것처럼, 저자는 인간의 정치적 행동들이 사실은 먼 옛날 유인원들로부터 진화해 왔다고 본다


그런 의미에서 침팬지 연구는 단순히 흥미있는 동물의 관찰에 머물지 않고, 우리의 본성을 밝힐 수 있는 자성의 기회가 된다고 한다


책을 읽으면서 동물 행동학이 어떤 의의가 있는지 분명하게 알 수 있었다


 


이 책의 미덕은 오랜 시간에 걸친 (8년여) 끈질긴 관찰에 근거하여 이론을 정립했다는 데 있다


저자도 밝힌 바지만, 인간과 동물의 사색적 비교에 머무른 탁상 공론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에게 특별한 의미를 준다


저자는 관찰에 근거한 이론 수립이 네덜란드 연구의 전통이며, 그런 의미에서 동물원에 다수의 종을 수용하기 보다는 적은 종을 넓게 수용해 충분한 관찰의 기회를 주는 시스템이 훨씬 바람직한 것 같다


일본의 경우만 해도 원숭이들의 방목을 통한 행동 연구가 일반적인데, 우리나라도 협소한 우리를 벗어나 집단으로 거주할 수 있는 넓은 환경을 제공하므로써, 동물학자들이 그들의 사회성과 습성을 연구할 기회를 제공하면 좋겠다


 


네덜란드 아넴 동물원의 침팬지 집단에 네 마리의 성인 수컷이 산다


보통 적은 수컷과 많은 암컷, 그리고 그들의 자식들이 한 무리를 이루는데 이 무리의 지도자는 나이가 가장 많은 이에론이었다


한동안 권력을 휘두르던 이에론은 새로 등장한 루이트에 의해 지위가 흔들린다


그런데 재밌는 건 이에론이 암컷 무리의 지지를 받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권력 투쟁은 단순히 두 수컷만의 문제가 아니라, 훨씬 많은 수의 암컷들과도 연관된다


힘의 우위에서는 루이트가 앞서지만, 암컷들의 지지를 받는 건 이에론이다


그러므로 루이트는 함부로 이에론을 공격하지 못한다


 


한동안 무리의 지지를 바탕으로 불안하게 서열 1순위를 유지하던 이에론은, 새로운 수컷 니키가 나타나면서 권좌에서 ?겨나게 된다


놀랍게도 루이트와 니키가 연합 작전을 편 것이다!!


루이트는 니키와 손잡고 이에론을 공격하는 한편, 니키와 이에론이 함께 있으면 반드시 방해를 한다


또 암컷끼리 싸움이 벌어지면 열세한 쪽을 도우므로써 암컷 사이의 세력 균형을 유지하는 한편, 자신의 지지 기반도 넓힌다


(이것은 루이트의 독특한 전략으로써, 보통은 우세한 쪽을 돕는다고 한다)


 


그런데 니키가 성장하면서, 루이트의 권좌도 흔들리게 된다


그러자 루이트는 과거의 정적, 이에론과 연합해서 니키를 핍박한다


원래 암컷 무리는 이에론 편이었기 때문에, 니키는 무리로부터 공격당한다


한동안 루이트 지배 체제 유지되다가, 이에론이 니키 쪽으로 돌아서면서 급격한 변화를 맞는다


이에론과 니키가 연합해서 루이트를 공격하고, 니키가 1순위 이에론이 2순위로 서열을 정한다


니키는 성격이 거칠고 젊어서 암컷 무리의 존경을 받지 못하는데, 이 간극을 메우는 게 이에론이다


오랫동안 암컷 무리의 지지를 받았던 이에론은 자신의 추종자들을 데리고 니키 밑으로 들어감으로써, 겉으로는 주종 관계이나 실상은 연합 정권을 수립한다


 


아넴 동물원 침팬지 집단의 권력 갈등을 보면서, 그저 놀랍다는 말 밖에 안 나온다


서열 다툼은 단순히 육체적인 힘의 우위에 따라 결정된다고 믿었는데, 연합, 배신, 편가르기 등등 수많은 사회적 변수들이 존재한다


정치판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활동들과 다를 게 하나도 없다


나이가 많아 경륜이 있는 이에론은, 암컷 내 일정 세력이 있는 루이트 보다, 지지 기반이 전혀 없는 니키와 연합하는 게 유리하다는 판단을 할 줄 안다


그래서 처음에는 루이트와 연합하는 듯 하다가, 다시 니키에게 붙어 2인자로서의 지위를 공고히 한다


설마 동물들이 이런 정치적 행위를 할 줄 어떻게 알았겠는가?


 


서열이 높아서 얻게 되는 이득으로는 먹이와 섹스가 있다


먹이가 불충분한 야생 상태와 달리, 동물원은 충분한 먹이가 모두에게 제공되므로, 섹스 기회로써 권력을 드러낸다


즉 1인자는 가장 많은 섹스를 할 수 있고, 아랫 서열들은 1인자의 눈치를 보면서 몰래 섹스를 한다


(루이트가 1인자일 때는 이에론의 섹스 기회를 제한한 반면, 니키가 1인자가 된 후에는 이에론이 마음껏 섹스를 할 수 있었다 연합 정권의 파트너에 대한 배려인 셈이다)


섹스가 본능이란 것은 동물들의 세계에서 보다 확실하게 드러난다


인간 역시 단순화 시키면 먹이와 섹스를 위해 투쟁한다고 볼 수 있다


그 두 가지를 제공해 주는 것이 바로 권력이고, 권력을 얻기 위한 과정이 정치이므로, 정치란 단순히 사회적인 현상이 아니라, 보다 근원적이고 본능적인 특성일 것이다


 


저자는 권력에 대한 욕구가 침팬지나 인간에게 모두 존재하는, 본능이라고 본다


다만 인간은 그 의지를 숨기고 (이상, 도덕, 희생, 봉사 등의 단어로 포장하여) 침팬지는 적나라하게 드러낼 뿐이라고 한다


그런 의미로 본다면, 모든 인간 관계를 권력 관계로 정의한 푸코의 견해가 탁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미시 권력)


또한 도덕과 무관하게 (부도덕이 아니라 비도덕을 의미한다) 생존에 바람직한 방향으로 진화한다는 도킨스의 "이기적인 유전자" 이론도 얼핏 타당해 보인다


궁극적인 목표는 이득의 획득이지만, 사회 구조나 인간 관계는 변화무쌍 하고 복잡다단 하므로 침팬지 사회처럼 (심지어 그들의 사회에서도) 반드시 한 방향으로만 표현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본성이 이기적이라고 해서, 도덕이나 봉사, 희생 등 이타적인 부분이 무의미하다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정의한 "정치적 인간"이 인간만의 고유한 특성은 아니며, 사실은 훨씬 오래 전부터 진화해 온 본능이라는 사실을 새롭게 깨달았다


8년 동안 성실하게 침팬지를 관찰한 저자의 노력에 경의를 표하며,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장기적인 연구가 나와, 우리나라 필자가 쓴 책을 읽게 되길 바란다


 


뒷얘기를 하자면, 당시 연구로부터 20여년이 지난 현재 (이 연구는 1970년대에 행해졌다) 루이트는 새로운 권력 다툼에서 성기가 잘린 후 과다 출혈로 사망했고 (이 사건은 수컷 숙소에서 일어났다 즉 중재해 줄 암컷이 없는 상태였다), 새로운 강자 댄디가 등장하자 이에론은 니키를 버리고 댄디와 연합한다


그들의 공격에 ?기던 니키는 불행히도 도랑을 건너다 익사하고 만다


그 후 댄디가 1인자가 되고 몇 년 후, 예전에 찍은 필름을 상영했는데 니키의 얼굴을 보는 순간 댄디가 이에론 무릎에 앉아 으르렁 거리며 공격 자세를 취했다고 한다


침팬지들이 서로를 독립적인 개체로 인지하는다는 간접적인 증거다


이에론은 자연사 하고, 댄디는 심장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연구 당시 40세였던 암컷의 우두머리 마마는 20여년 후에도 여전히 장수하며 (보통 50세가 평균 수명) 무리의 존경심을 유지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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