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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읽기를 권함 - 2004년 2월 이 달의 책 선정 (간행물윤리위원회)
야마무라 오사무 지음, 송태욱 옮김 / 샨티 / 2003년 11월
평점 :
사실 이 책은 도서관에 서서 후딱 읽어 버린 책이다
천천히 읽기를 권하는 저자의 충고를 완전히 무시해 버린 셈이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게, 200쪽도 안 되는 작은 분량에다 판본 크기도 작고 글씨도 띄엄띄엄 쓰여져 1시간 여 만에 다 읽어 버렸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생각하고 넘어 갈 어려운 내용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에 속독할 수 있었다
저자에 따라 책의 수준을 나누는 것은 잘못된 태도인지도 모른다
편견에 사로잡혀 저자의 약력만으로 미리 평가를 하면, 그 책의 진정한 가치를 놓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종종 발생하곤 한다
비전공자들의 역사학서를 볼 때마다, 혹은 유명인들의 에세이를 읽을 때, 통속 소설 작가들의 작품을 읽을 때마다 수준 차이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이 책 역시 이 쪽 전공자가 아닌 탓에 그저 그런 일반론적인 에세이에 불과하다는 평을 내리지 않을 수 없다
저자는 다치바나 다카시의 속독, 혹은 남독을 비판하지만 "나는 이런 책을 읽어 왔다"의 독서론과는 명백한 수준 차이가 보인다
어쩌면 내 독서 경향 탓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비교적 속독을 하는 편이다
아주 빠른 건 아니지만, 어쨌든 빨리 읽는 축에 낀다
가벼운 책은 한 시간에 100페이지, 어려운 책은 50페이지 (이를테면 "의료개혁과 의료권력", "빈 서판" 등등), 흥미있는 주제나 고전 등은 한 시간에 7-80 페이지를 읽는다
그래서 한가하면 하루에 한 권 정도 읽게 된다
저자는 이렇게 속독을 하면, 문장 하나하나를 음미할 수 없고 줄거리에 치우치게 된다는데 물론 어느 정도 동의한다
빨리 읽다 보면 세심하게 문장 자체를 음미하며 볼 수는 없다
또 사회과학 서적의 경우, 내용이 어려우면 정리가 잘 안 되서 두 번 읽어야겠다 싶을 때도 있다
그렇지만 지독하는 것이 반드시 좋은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과거에는 책 한 권의 내용을 완전히 이해하고 싶어, 어려운 책은 두 번씩 읽기도 했는데 그렇게 한다고 해서 책의 내용이 다 내 것이 되지는 않는다
책 수준이 내가 받아 들이기 어려운 정도면 아무리 애를 써도 이해하는데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또 지루함이라는 피할 수 없는 문제에 맞닥뜨린다
결국 다양한 종류의 책을 읽음으로써 독자의 지적 수준을 높히는 것이 더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책의 내용을 100% 이해하려고 애쓰는 것 보다는 80% 정도로 만족하고, 또 다른 책에서 지식과 감동을 얻는 게 현명하다고 본다
여기 소개된 다치바나 다카시의 다독은 유명하다
저자는 남독이라고까지 비판하지만, 책을 읽는데 지나친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더구나 책 읽고 글 쓰는 게 직업인 사람인데, 많이 읽으면 읽을수록 좋은 거 아닌가?
다치바나는 인문과학서의 경우 10여 분 동안 가볍게 목차와 전반적인 내용을 훑어 본 후 필요한 부분만 발췌해서 읽으라고 한다
저자는 이것을 두고 읽은 책의 수를 늘리려는 과시욕이라고 하지만, 다치바나 정도의 수준이라면 반드시 1페이지부터 끝까지 꼼꼼하게 읽지 않아도 될 것 같다
본인 능력이 되면, 가볍게 발췌독 해도 충분히 전체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다치바나는 필요없는 책은 과감하게 읽기를 중단하라고 하지만, 아직까지 이것은 못하고 있다
책을 감별할 능력이 부족해서인지, 아니다 싶어도 일단 끝까지 읽으면 뭔가 건질 게 있을 것 같아 한 번 잡은 책은 꼼꼼하게 다 읽는 편이다
저자는 또 생활의 모든 시간을 독서로 바치는 것도 나쁘다고 말한다
저자가 예로 드는 사람들은 그야말로 책 중독 수준인데, 읽고 쓰기를 본업으로 삼는 사람들이라 비판할 것은 못 된다고 본다
그렇지만 독서가 본업이 아닌 경우, 어느 정도의 절제는 필요할 것이다
나 역시 지나치게 독서에 빠지지 않기 위해 읽는 시간을 따로 배정하고 있다
저자처럼 일주일에 한 권씩 읽는 것도 좋은 방법 같다
바쁠 때는 그 정도만 읽어도 아주 훌륭하다
1년이면 52권을 읽는 셈이니까
(나는 요즘 TV를 안 보는 대신 한 주에 세 권 정도 읽고 있다)
독서법의 정도가 있는 건 아니다
자기 취향에 맞게 원하는 방법대로 읽으면 된다
수준이 낮은 책이라도 본인에게 감동을 주면, 제일 훌륭한 책이 될 수 있다
중요한 건 독서의 생활화라고 본다
(그렇지만 솔직히 이것도 모든 사람에게 반드시 필요한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어떤 독서가의 고백처럼, 비록 나는 열심히 책을 읽지만 요즘 같은 미디어 시대에 반드시 독서만이 마음의 양식을 얻는 최고의 방법은 아니라는 생각에 동의하는 바다)
한 때 취미란에 독서라고 쓰면 무식하다는 소릴 들었지만, 이제는 당당히 독서가 취미라고 밝혀도 좋은 시대 같다
그만큼 독서가 당연시 되는 분위기가 아니라는 반증이겠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