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팬지 폴리틱스 - 21세기 뉴 클래식, 권력 투쟁의 동물적 기원
프란스 드 발 지음, 황상익.장대익 옮김 / 바다출판사 / 2004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의 부제인 "권력 투쟁의 동물적 기원"이 시사하는 것처럼, 저자는 인간의 정치적 행동들이 사실은 먼 옛날 유인원들로부터 진화해 왔다고 본다


그런 의미에서 침팬지 연구는 단순히 흥미있는 동물의 관찰에 머물지 않고, 우리의 본성을 밝힐 수 있는 자성의 기회가 된다고 한다


책을 읽으면서 동물 행동학이 어떤 의의가 있는지 분명하게 알 수 있었다


 


이 책의 미덕은 오랜 시간에 걸친 (8년여) 끈질긴 관찰에 근거하여 이론을 정립했다는 데 있다


저자도 밝힌 바지만, 인간과 동물의 사색적 비교에 머무른 탁상 공론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에게 특별한 의미를 준다


저자는 관찰에 근거한 이론 수립이 네덜란드 연구의 전통이며, 그런 의미에서 동물원에 다수의 종을 수용하기 보다는 적은 종을 넓게 수용해 충분한 관찰의 기회를 주는 시스템이 훨씬 바람직한 것 같다


일본의 경우만 해도 원숭이들의 방목을 통한 행동 연구가 일반적인데, 우리나라도 협소한 우리를 벗어나 집단으로 거주할 수 있는 넓은 환경을 제공하므로써, 동물학자들이 그들의 사회성과 습성을 연구할 기회를 제공하면 좋겠다


 


네덜란드 아넴 동물원의 침팬지 집단에 네 마리의 성인 수컷이 산다


보통 적은 수컷과 많은 암컷, 그리고 그들의 자식들이 한 무리를 이루는데 이 무리의 지도자는 나이가 가장 많은 이에론이었다


한동안 권력을 휘두르던 이에론은 새로 등장한 루이트에 의해 지위가 흔들린다


그런데 재밌는 건 이에론이 암컷 무리의 지지를 받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권력 투쟁은 단순히 두 수컷만의 문제가 아니라, 훨씬 많은 수의 암컷들과도 연관된다


힘의 우위에서는 루이트가 앞서지만, 암컷들의 지지를 받는 건 이에론이다


그러므로 루이트는 함부로 이에론을 공격하지 못한다


 


한동안 무리의 지지를 바탕으로 불안하게 서열 1순위를 유지하던 이에론은, 새로운 수컷 니키가 나타나면서 권좌에서 ?겨나게 된다


놀랍게도 루이트와 니키가 연합 작전을 편 것이다!!


루이트는 니키와 손잡고 이에론을 공격하는 한편, 니키와 이에론이 함께 있으면 반드시 방해를 한다


또 암컷끼리 싸움이 벌어지면 열세한 쪽을 도우므로써 암컷 사이의 세력 균형을 유지하는 한편, 자신의 지지 기반도 넓힌다


(이것은 루이트의 독특한 전략으로써, 보통은 우세한 쪽을 돕는다고 한다)


 


그런데 니키가 성장하면서, 루이트의 권좌도 흔들리게 된다


그러자 루이트는 과거의 정적, 이에론과 연합해서 니키를 핍박한다


원래 암컷 무리는 이에론 편이었기 때문에, 니키는 무리로부터 공격당한다


한동안 루이트 지배 체제 유지되다가, 이에론이 니키 쪽으로 돌아서면서 급격한 변화를 맞는다


이에론과 니키가 연합해서 루이트를 공격하고, 니키가 1순위 이에론이 2순위로 서열을 정한다


니키는 성격이 거칠고 젊어서 암컷 무리의 존경을 받지 못하는데, 이 간극을 메우는 게 이에론이다


오랫동안 암컷 무리의 지지를 받았던 이에론은 자신의 추종자들을 데리고 니키 밑으로 들어감으로써, 겉으로는 주종 관계이나 실상은 연합 정권을 수립한다


 


아넴 동물원 침팬지 집단의 권력 갈등을 보면서, 그저 놀랍다는 말 밖에 안 나온다


서열 다툼은 단순히 육체적인 힘의 우위에 따라 결정된다고 믿었는데, 연합, 배신, 편가르기 등등 수많은 사회적 변수들이 존재한다


정치판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활동들과 다를 게 하나도 없다


나이가 많아 경륜이 있는 이에론은, 암컷 내 일정 세력이 있는 루이트 보다, 지지 기반이 전혀 없는 니키와 연합하는 게 유리하다는 판단을 할 줄 안다


그래서 처음에는 루이트와 연합하는 듯 하다가, 다시 니키에게 붙어 2인자로서의 지위를 공고히 한다


설마 동물들이 이런 정치적 행위를 할 줄 어떻게 알았겠는가?


 


서열이 높아서 얻게 되는 이득으로는 먹이와 섹스가 있다


먹이가 불충분한 야생 상태와 달리, 동물원은 충분한 먹이가 모두에게 제공되므로, 섹스 기회로써 권력을 드러낸다


즉 1인자는 가장 많은 섹스를 할 수 있고, 아랫 서열들은 1인자의 눈치를 보면서 몰래 섹스를 한다


(루이트가 1인자일 때는 이에론의 섹스 기회를 제한한 반면, 니키가 1인자가 된 후에는 이에론이 마음껏 섹스를 할 수 있었다 연합 정권의 파트너에 대한 배려인 셈이다)


섹스가 본능이란 것은 동물들의 세계에서 보다 확실하게 드러난다


인간 역시 단순화 시키면 먹이와 섹스를 위해 투쟁한다고 볼 수 있다


그 두 가지를 제공해 주는 것이 바로 권력이고, 권력을 얻기 위한 과정이 정치이므로, 정치란 단순히 사회적인 현상이 아니라, 보다 근원적이고 본능적인 특성일 것이다


 


저자는 권력에 대한 욕구가 침팬지나 인간에게 모두 존재하는, 본능이라고 본다


다만 인간은 그 의지를 숨기고 (이상, 도덕, 희생, 봉사 등의 단어로 포장하여) 침팬지는 적나라하게 드러낼 뿐이라고 한다


그런 의미로 본다면, 모든 인간 관계를 권력 관계로 정의한 푸코의 견해가 탁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미시 권력)


또한 도덕과 무관하게 (부도덕이 아니라 비도덕을 의미한다) 생존에 바람직한 방향으로 진화한다는 도킨스의 "이기적인 유전자" 이론도 얼핏 타당해 보인다


궁극적인 목표는 이득의 획득이지만, 사회 구조나 인간 관계는 변화무쌍 하고 복잡다단 하므로 침팬지 사회처럼 (심지어 그들의 사회에서도) 반드시 한 방향으로만 표현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본성이 이기적이라고 해서, 도덕이나 봉사, 희생 등 이타적인 부분이 무의미하다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정의한 "정치적 인간"이 인간만의 고유한 특성은 아니며, 사실은 훨씬 오래 전부터 진화해 온 본능이라는 사실을 새롭게 깨달았다


8년 동안 성실하게 침팬지를 관찰한 저자의 노력에 경의를 표하며,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장기적인 연구가 나와, 우리나라 필자가 쓴 책을 읽게 되길 바란다


 


뒷얘기를 하자면, 당시 연구로부터 20여년이 지난 현재 (이 연구는 1970년대에 행해졌다) 루이트는 새로운 권력 다툼에서 성기가 잘린 후 과다 출혈로 사망했고 (이 사건은 수컷 숙소에서 일어났다 즉 중재해 줄 암컷이 없는 상태였다), 새로운 강자 댄디가 등장하자 이에론은 니키를 버리고 댄디와 연합한다


그들의 공격에 ?기던 니키는 불행히도 도랑을 건너다 익사하고 만다


그 후 댄디가 1인자가 되고 몇 년 후, 예전에 찍은 필름을 상영했는데 니키의 얼굴을 보는 순간 댄디가 이에론 무릎에 앉아 으르렁 거리며 공격 자세를 취했다고 한다


침팬지들이 서로를 독립적인 개체로 인지하는다는 간접적인 증거다


이에론은 자연사 하고, 댄디는 심장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연구 당시 40세였던 암컷의 우두머리 마마는 20여년 후에도 여전히 장수하며 (보통 50세가 평균 수명) 무리의 존경심을 유지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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