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마을 언어학교 - 영화보다 재미있는 언어학 강의
강범모 지음 / 동아시아 / 2003년 4월
평점 :
절판


여러 추천들과는 다르게 다소 실망스럽다

언어학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를 얻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너무나 평이하고 뻔한 내용들이라 굳이
"언어"라는 타이틀을 붙이지 않아도 될 듯 싶다

차라리 언어학자의 영화 읽기 정도라고 명칭하는 게 나을 것 같다

"명화와 의학의 만남"이 단지 의사가 감상하는 그림 이야기였듯, 이 책 역시 언어학자가 영화를 보고 느낀 점을 서술했을 뿐이다

진정한 언어학과 영화의 접목은 보이지 않는다

다만 영화라는 쉬운 소재를 택한 덕에 어렵지 않게 읽을 수는 있다

 

저자가 지적하는 여러 문제들 중 번역의 어려움은 낯설지 않다

"마이 페어 레이다"는 하층민 여자에게 대학 교수가 상류층의 언어를 가르치는 내용인데,  하층민과 상류층의 언어가 어떻게 다른지 알 수 없는 외국인 관객에게는 이해하기 어려운 노릇이다

우리말 번역에서는 충청도 방언을 하층민 언어로 사용했다는데, 번역의 어려움은 있겠지만 명백한 잘못이다

저자도 밝힌바 대로, 방언은 표준어에 비해 품위가 떨어지는 언어가 아니고 속어도 아니다

차라리 사투리 대신 속어를 썼으면 어땠을까?

하긴 유명한 번역가라는 안정효도 "뿌리"의 흑인 노예 언어를 번역할 때 충청도 방언을 차용했다고 바람직한 번역의 예로 밝히는 걸 보면, 우리 사회에 "사투리=품위가 떨어지는 말"이라는 공식이 널리 퍼진 모양이다

"풀 몬티"에서도 영국 방언들이 많이 등장하는데, 번역을 통해 관객들이 진짜 의미를 전달받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 같다

 

"스타워즈"나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외계어를 실제로 공부하는 모임이 있다는 얘기는 무척 새로웠다

단순히 영화에 삽입하려고 꾸며낸 언어인 줄 알았는데,  실제 그 언어로 문장을 만들 수 있을만큼 정교한 문법을 가지고 있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두 영화 모두 많은 매니아를 거느리기로 유명한데, 저자가 새로운 외계어를 창조할 정도의 노력이 있기 때문에 높은 수준의 소설이 탄생할 수 있었음을 새삼 확인했다

 

외계어의 생성을 이야기하다 보면, 한글의 위대함을 다시금 떠올리게 된다

저자 역시 언어학자로서 한글에 대한 자부심을 갖고 있는데, 4천개가 넘는 언어에 비해 문자는 얼마 되지 않는다는 사실만으로도 문자가 얼마나 어려운 발명품인가를 느낄 수 있다

한글의 위대함은 우리의 문맹률이 거의 0에 가깝다는데서도 충분히 알게 된다

세계 문맹 인구가 10억에 이르는데, 이 중 50%가 인도와 중국에 분포한다고 한다

한자가 얼마나 어려운 언어인지, 새삼스레 알게 된다

마오쩌둥은 위대한 서예가였음에도 불구하고, 한자 대신 알파벳을 쓰자는 주장을 했을 정도로 중국의 문맹은 심각한 일이다

한글이 발명됐다는 건 나라 발전에도 중요한 일이고, 계급 평등을 위해서도 획기적인 사건이라 할 만 하다

"중앙역"이라는 브라질의 한 영화에서 보여주듯, 글자를 몰라 글을 아는 타인에게 자신의 내밀한 얘기를 불러 줘야 하는 가엾은 여인의 모습을,  한국에서는 쉽게 만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 참 다행스럽다

저자는 우리말의 조어 구조를 밝히기 위한 한문 공부는 찬성하나, 한자 병용 표기는 반대한다고 했다

나 역시 그 주장에 동의한다

신문에서 한자가 사라졌기 때문에 보다 많은 사람들이 쉽게 새소식을 접할 수 있게 됐으며,  인터넷 시대에 한자는 불필요하고 복잡한 과정을 의미한다

일본과 중국 여행을 위한 외국어로서의 한자 역시 큰 의미를 못 갖는다고 한다

이미 중국에서는 쉽게 쓰기 위해 간자체가 개발되어 우리가 쓰는 한자와 상당히 다르다고 한다

일본 역시 이자체가 많아 우리가 알고 있는 한자어로 짐작하기 어려운 단어가 많은 실정이다

한자는 국어 단어의 의미를 정확히 밝히는 수준에서 공부해야 하고, 한글 전용화는 거스를 수 없는 대세라고 믿는다

 

영화를 소재로 해서 쉽게 읽을 수는 있지만, 전체적으로 언어학적인 지식이 빈약하다

저자가 대중에게 쉽게 다가가기 위해 일부러 수준을 떨어뜨린 건지 모르겠으나, 언어학이라는 타이틀을 내세우기엔 부족한 점이 많아 보인다

다시 한 번 영화를 소재로, 언어학 지식들을 쉽게 풀어 쓴 (그리고 어설픈 영화 감상 등은 가능하면 삼가한) 좋은 언어학 책을 발표하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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