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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가 있는 책 읽기
최성일 지음 /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 2004년 1월
평점 :
그 동안 읽은 책 에세이 중 상당히 수준있는, 괜찮은 책이다
보통 책 에세이라면 개인의 취향이나 책에 얽힌 경험담을 위주로 하는데, 이 책은 좋은 책을 소개해 주는 서평 같은 느낌이다
"테마가 있는 책 읽기"라는 제목에 충실한 셈이다
여기 소개된 책 중 가장 인상깊었던 책은 신영복의 "엽서"다
이른바 옥중서신인데 기다림에 대한 부분을 읽으면서 눈물이 날 뻔 했다
아들을 하염없이 기다리는 늙은 어머니에게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 만으로도 삶의 희망이 될 수 있다"고 위로하는데, 그렇게 밖에 말하지 못하는 한 양심수의 애끓는 마음이 전해지는 기분이다
다음 번에 읽을 책은 당연히 "엽서"다
이 책은 저자가 언급한 옥중서신 중 가장 뛰어나고 또 제일 많이 팔렸다고 한다
80년대만 해도 자본론이나 사회과학 서적 등이 대학 신입생들에게 필수 교양 도서로 인식됐는데, 시대가 변한 탓일까?
대학 앞 사회과학 서점들은 거의 문을 닫았다고 한다
더 이상 대학생들이 책을 읽지 않고, 영상 매체나 미디어라는 새로운 문화 형식에 열광하는 것이 반드시 나쁘다고는 할 수 없으나, 왠지 쓸쓸해지는 건 사실이다
환경 문제나 의료 개혁, 인디언, 아나키즘 같은 다양한 분야에 걸쳐 여러 책들이 소개되는데 한 번쯤 읽어 볼만한 책들이 많다
특히 박홍규의 책을 꼭 읽고 싶다
그는 까뮈나 카프카 등에 관한 전기를 썼는데, 까뮈는 식민 치하 조선에 살면서도 조선에 대해서는 아무 관심이 없는 일본 지식인에 비유하거나, 카프카는 식민지 치하의 노동자로 일하면서 밤에만 글을 쓰는 가엾은 젊은이로 묘사한다
카프카는 자기와 출신이 비슷해서 쉽게 읽히는데, 카프카로 밥 먹고 사는 사람들 때문에 쓸데없이 어려워졌다고 논평한다
그 말을 들으니, "변신"이나 "성" 등이 읽고 싶어진다
또 "얼어 있는 강을 도끼로 내리치는 정도로 우리 머리를 강타하는 책이 아니라면, 대체 왜 우리가 책을 읽겠는가?"라는 카프카의 과격한 독서론을 인용한다
나도 이 부분이 아주 인상적이었는데, 다른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저자는 고종석의 전작주의자인데, 한 작가의 책을 모두 읽으면 그 작가와 비슷한 관점을 갖게 된다고 한다
조셉 켐벨은 한 수 위로, 그 작가가 읽는 책까지 다 읽는다고 한다
그렇게 되면, 작가와 같은 눈으로 세상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바람직한 가치관을 갖는 방법은 좋은 작가를 정한 뒤, 작가의 책은 물론, 작가가 읽는 책까지 다 읽어 버리라는데, 쉽게 실천하기 힘들 것 같다
그렇지만 정말 마음에 드는 작가라면 시도해 볼 만 하다
아나키즘이란 무정부주의자라기 보다는 무권력주의라는 저자의 해석도 마음에 들고, 환경 에세이를 내면서 정작 비환경적인 종이로 출판하는 위선을 꼬집는 것도 시원했다
또 산을 타는 사람들과, 바다를 소개하는 책도 무척 흥미로웠다
등산이란 예술과 과학과 스포츠의 절묘한 조합이라는 말을 들으니, 산 타는 사람들이 새롭게 보인다
사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것이 바로 등산이다
걷기나 오래 달리기 같은 건 잘 하고 좋아하는데, 계단 오르기나 등산은 정말 싫어하고 또 못한다
풍선 하나를 다 불지 못하는 작은 폐활량 때문일 것이다
대체 왜 위험을 무릅쓰고 산에 오를까, 그 심리가 궁금했는데 산악인들이 등산을 예술로 생각한다고 하니, 그제서야 고개가 끄덕여진다
예술을 하는데 무슨 이유가 필요하겠는가?
그저 그렇게 하는 것이 마음의 평화를 주고, 하고자 하는 뜨거운 열정을 불러 일으키며, 우리의 삶을 치열하게 만드는 힘이 되기 때문에 아무 이득 없이도 매달리는 게 바로 예술 아닌가?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는 과학서적이 베스트셀러에 오른 아주 드문 책이라고 한다
나는 "악령이 출몰하는 세상"을 읽었는데, 칼 세이건은 절대 재밌게 혹은 쉽게 읽히는 작가가 아니다
그 지루하고 반복적인 논증에 많은 인내심을 발휘해야 한다
그렇지만 진정한 과학의 정신을 밝히는 그의 노력은 존경받아 마땅하다
비록 지루하고 어렵게 읽은 책이지만, 기술로서의 과학이 아니라 우리 삶의 정신으로서의 과학을 얻게 된 좋은 책이다
그가 쓴 가장 유명한 "코스모스"를 읽어 보고 싶다
다른 출판사에서 새로 출판된다고 하니,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