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학 오디세이 2 미학 오디세이 20주년 기념판 3
진중권 지음 / 휴머니스트 / 2003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진중권은 정말 글을 잘 쓴다
너무 재밌게 잘 읽고 있다
세 권 모두 소장할 가치가 충분하다
강준만 보다 훨씬 잘 쓴다
아마 그는 미학에 대해 전공 이상의 열정과 흥미를 가지고 있는 것 같다
그를 통해 현대 미술이 추구하는 바를 비로소 이해하게 됐다

내가 르네상스나 바로크 그림에 열광하는 이유는 이해할 수 있게 그려졌기 때문이다
딱 보면 뭘 그렸는지 그 대상을 분명히 알 수 있다
반면에 현대 미술은 대체 뭘 나타냈는지 이해가 안 간다
그나마 구상화는 좀 나은데 완전히 비구상으로 그려진 것들은 저게 그림인가? 이런 생각마저 든다
솔직히 잭슨 폴록의 흩뿌리는 그림에서 무슨 감동을 할 수 있겠는가?
그런데 감동을 느끼느냐, 안 느끼느냐의 차이는 내가 어떻게 인식하느냐의 차이라는 걸 깨달았다
나는 그림에 드러나는 있는 그대로의 대상만을 인식하고 있다
현대 미술이 나타내고자 하는 주제에 대해 나는 전혀 인식하지 못한다
말하자면 인식의 틀이 갖춰지지 않은 것이다
화가가 표현하고자 하는 바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니, 무슨 감동이 오겠는가?
사실 르네상스 시대의 그림도 마찬가지다
각 사물들이 나타내는 알레고리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화가의 진정한 의도를 파악할 수 없다
그저 사진으로 찍은 것 같은 그 정교함에 감탄할 뿐이다

마그리트의 그림을 보면서 현대 미술에 대한 새로운 관심이 생겼다
에셔가 형식의 파괴를 추구한 반면, 마그리트는 내용의 파괴를 시도했다
대상을 고립시킨다거나, 확대해 보인다거나, 다른 대상과 섞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그렸다
사과처럼 평범한 사물도 방 안에 가득 차도록 확대시켜 놓으니까 느낌이 확 달라졌다
또 물고기 머리에 사람 다리의 인어 아가씨 역시 완전히 확 깨는 그림이었다
에셔는 뫼비우스의 띠나 악마의 고리처럼 공간을 비틀므로써 형식의 파괴를 추구했는데, 다른 방식으로 사물을 보는 마그리트의 그림에 더 끌린다
달리 역시 시계라는 사물이 주는 견고함 대신 시간이 흐른다는 유연성을 부여해 그 유명한 흐물흐물한 시계를 그렸다
어찌 보면 현대 예술가들은 과거보다 훨씬 더 상상력이 넘치는 것 같다
과거 화가들이 정형화된 틀에 맞춰 보다 정교하게 사물을 그려내려고 기술적 노력을 한 반면, 현대 화가들은 더 이상 그리는 기술에 집착할 필요가 없어졌다
사진기나 나오고 텔레비젼이 등장해서 똑같이 그릴 필요가 없다
똑같이 그리는 것은 기계들과 화가는 게임 자체가 안 되기 때문에 인간의 예술적 존재 의의는 다른 데서 찾아야 한다

바로 그게 상상력이다
기계는 아무리 애를 써도 똑같이 그리는 것 밖에 못한다
반면 사람은 다양한 방식으로 여러가지 시도를 할 수 있다
컴퓨터가 더욱 발전하면 손재주가 없는 사람도 상상력만 풍부하면 훌륭한 화가가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정말 그게 가능하다면 예술의 범위는 더욱 넓어질 것이고 누구나 예술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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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학 오디세이 1 미학 오디세이 20주년 기념판 3
진중권 지음 / 휴머니스트 / 2003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진중권은 참 대단하다
언젠가 이 책에 대한 감상문을 읽은 적이 있다
미학에 대해 눈뜨게 해 준 너무 고마운 책이라는 평이었다
사실 그것 때문에 읽게 됐는데 정말 괜찮다
지루하지도 않고 난해하지 않으면서도 중요한 핵심을 잘 짚어낸다
서울대 미학과 나왔다고 하더니 그냥 졸업한 건 아닌가 보다
사실 미학이라는 게 순 말장난이라고 생각했는데, 왠 걸, 미학은 철학이고 더 나아가 예술에 의미를 부여해 주는, 어찌 보면 예술보다 한 수 위의 학문 같다
평론이 있어야 문학을 제대로 평가해 주는 것처럼 말이다
미학은 예술에 가치를 부여하고 그 의미를 더욱 명확하게 해 주는 학문이다

새벽에 일어나 책을 보는지라 앞부분은 좀 졸았지만 나중에는 메모하면서 적극적으로 읽었다
이런 책은 두 세 번 읽어도 시간 아깝지 않을 것 같다
2,3 권도 열심히 읽을 생각이다
솔직히 에셔의 그림은 잘 이해되는 건 아니다
다만 느낌은 독특했다
뫼비우스의 띠를 여러 개로 변형시킨 느낌이다
안과 밖을 구분할 수 없는 세계, 명확하게 나눌 수 없는 세계, 모든 가치관이 혼재되어 있으면서도 나름의 질서가 있는 세계, 말 그대로 포스트 모더니즘이 아닐 수 없다
미학 오디세이의 주제와 아주 잘 연결되는 화가다

미학은 일찌기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로부터 정의되었다
플라톤은 이데아, 즉 관념과 본질을 중시하여 예술이란 물체의 속성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반면 아리스토텔레스는 예술 자체의 미가 존재하고 그 주관성에 대해 얘기했다
사실 고전주의 시대에는 예술의 주관적 판단이 존재하지 않았다
절대적 가치와 기준이 있다고 믿은 것이다
예술이란 물체의 본질적 속성인 이데아를 드러내는 과정일 뿐이다
그러므로 르네상스 시대 때도 황금분할에 의해 정확히 인체를 표현하기 위해 애썼다
르네상스 대가들의 그 놀라운 그림들은 바로 그런 이유에서 정교하게 그려진 것이다

반면 바로크 시대로 넘어 오면서 그림에서 형태가 불분명해진다
배경과 형태의 모호함이 바로크 미술의 특징이다
바로크 미술은 17세기 루벤스로 대표된다
"플란더즈의 개" 에 나오는 가엾은 네로가 그렇게도 보고 싶어 하던 바로 그 루벤스 그림 말이다
사실 르네상스 그림에 비해 과장되고 정교미가 떨어진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다 이유가 있었다
화풍이 변한 것이다
바로크 미술은 보다 열린 구조이므로 등장 인물들의 시선은 바깥을 향해 있고 명료성도 떨어진다
대신 그림에 대한 주관적 판단이 들어가므로 보다 자유로워지고 인간적으로 변모한다

대상의 속성을 완벽하게 구현한다는 객관적 시각에서 벗어난 예술은 현대성을 확보하게 된다
사실 현대 미술을 보면 어처구니 없는 것도 예술이라고 등장하는데 다 주관적 판단 때문이다
남이 볼 때는 별 볼 일 없는 작품이라 해도 내가 의미를 부여하면 최고의 예술품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발소에 걸린 그림과 피카소의 그림은 분명 누구나 인정하는 수준차가 있다
칸트는 이것을 공통심이라고 불렀다
주관적 쾌감을 만족시키면서도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비슷한 쾌감을 줄 수 있는 것이 바로 "미" 라는 것이다

내가 알고 있는 예술의 속성은 바로 칸트의 생각임을 알게 됐다
칸트는 천재의 존재를 중요시 했다
고전주의가 대상에 내제되어 있는 규칙을 찾아 내는 과정인데 비해, 천재란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 내는 사람이다
일반인은 수없이 많은 그림을 그리고 음악을 만들어도 노력만으로 훌륭한 예술품을 얻을 수
없다
천재만이 새 규칙을 만들어 낸다
또 칸트는 예술이 형식미를 찬양했다
즉 순수예술 지상주의를 부르짖었다
예술은 도덕적 교화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예술 그 자체만으로 충분히 가치가 있다
칸트는 예술에 대한 개인적인 판단을 중시했다
그리고 누구나 감탄하는 공통심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과거 이집트 미술은 건축 양식으로 대표되고 이것은 구체적인 물체로서 이데아를 구현시킨다
그리스로 넘어 오면서 조각이 예술을 대표했다
다시 르네상스를 거친 후 이제는 음악, 미술, 시 등이 이념을 표상화 시킨다
즉 물질의 본질을 구현하기 위해 점점 비물질적이고 추상화 되는 쪽으로 나아갔다
예술이 발전하면 다음 단계는 종교이고, 더 나아가면 철학에 다다른다
종교가 제일 높고 예술과 철학은 같은 등급일 줄 알았는데 좀 의외다
한편 서양 예술에 이런 사상이 담겨 있는지 새삼스레 놀랬다

구석기 시대의 벽화를 보면 놀라울 정도로 화려하고 정밀하게 묘사됐다
반면 이집트나 중세 시대의 그림은 평면적이다
왜 기술이 후퇴할까?
저자는 이 차이를 무엇을 인식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고 설명한다
즉 구석기 시대 사람들은 그저 눈에 보이는대로 그리는 반면, 이집트 시대 사람들은 원하는 것만 보게 된다
그러므로 그들이 생각하는 관념 세계를 표현하기 위해 실물을 있는 그대로 묘사하는 대신 자신들의 눈으로 왜곡시키고 변형시킨다
이집트 미술의 평면성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우리가 자신의 모습을 보기 위해 거울을 보듯, 신 역시 자신의 본질을 나타내기 위해 자연을 만들었다
즉 자연이란 우주의 질서나 원리를 의미하는 로고스의 투사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은 이 자연의 정점에 있는 존재로 영혼에 신의 본질을 담고 있다
그러므로 자연을 모방하는 것이야 말로 예술의 가장 중요한 행위다
인간의 주관적 판단 따위는 중요하지 않을 수 밖에 없다
대상을 정확히 모방하는 것에서 벗어나면서 비로소 예술은 인간 중심주의로 돌아선다
나에게 미적 쾌감을 주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의미를 지니게 된다

예술을 새롭게 보는 계기가 됐다
시원시원한 도판도 마음에 들고 어렵지 않지만 깊이 있는 설명도 책읽기를 쉽게 한다
현대 미술이 어렵다고만 생각했는데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조금은 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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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드 2004-12-13 22: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미학과'라는 것도 있었군요. -_-a

marine 2004-12-14 07: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그런 게 있대요 유명한 김지하 시인도 서울대 미학과를 나왔고,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를 쓴 유홍준도 여기 나왔다네요 미학은 예술작품으로 철학을 논하는 학문이 아닌가 싶어요

prongkiller 2005-04-01 10: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한민국에선 보기힘든 수준의 클래식 전범이라 생각합니다. 쉽고 자연스런 문체지만 동시에 예술철학 특유의 깊이감은 고스란히 살려낸 작가의 탁월한 능력에 박수를 보냅니다.
 
비블리오테라피 - 독서치료, 책속에서 만나는 마음치유법
조셉 골드 지음, 이종인 옮김 / 북키앙 / 200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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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했던 것 보다 더 유용했다
"독서의 역사" 는 결국 읽다 포기했지만 이 책은 열심히 읽었다
인터넷 시대에 문학이 갖는 의의에 대해 정의해 준다
그래서 마음의 위안을 얻었다
독서는 시간 낭비라는 생각부터 바꾸라고 한다
실제로 독서가 심리 치료에 이용되는 예를 제시하는데, 사실 그 효용성에 대해서는 의문의 여지가 있다
삶에 문제가 생길 경우 과연 책 한 권을 읽을 만큼 마음의 여유가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독서로 마음의 치료를 할 정도가 되려면 어느 정도 읽기 수준이 되야 한다고 본다
전혀 책을 가까이 하지 않는 사람이 심리적인 문제가 생겼다고 책을 읽을 수 있을까?
불가능 하다고 본다
이를테면 W같은 애가 과연 책 읽으면서 마음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책 읽으라고 권해 주면 오히려 화를 낼 거다
그렇지만 책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아주 유용할 것 같다

심리 치료이 핵심은 카타르시스에 있다
소설의 주인공에게 완전히 빠져 들어 마치 내가 직접 그 상황을 경험한 것처럼 감정을 분출시키는 것이다
소설에 빠져 들기는 쉽지만 완전히 동일시 되는 건 사실 어렵다
내가 직접 소설 속의 상황을 경험하지 않는 이상 카타르시스를 느낄 만큼 완벽하게 빠져 든다는 건 어려운 일이다
카타르시스라는 건 단순히 동일시 되는 것 외에도, 내면에 있는 감정을 완전히 밖으로 내다 버리므로써 일종의 쾌감을 느끼는 것인데 실제 경험이 아닌 가상 체험, 즉 독서를 통해 이 정도까지 느끼는 건 솔직히 어려운 거 아닌가?

어느 정도의 동일시와 예방 효과는 있다고 본다
배수아의 소설을 (부주의한 사랑) 읽을 때 나는 불륜에 대해, 혹은 규격에 벗어난 삶에 대해 두려움을 갖게 됐다
주인공은 유부남을 사랑해서 양부모에게 버림받았고 직장도 그만둔다
결국 그 유부남이 집으로 돌아간 후 살기 위해 중국집 웨이스트리스로 취직한다
괜찮은 중산층에서 어느새 하층 노동 계층으로 떨어진 걸 보면서 나는 두려움에 떨었다
보통 불륜을 그릴 때는 경제적 상황은 제쳐 두거나 넉넉한 쪽으로 그리기 마련인데 (먹고 살기 힘든데 사랑이 가능하겠는가!) 이 책은 그런 면에서 좀 리얼하게 묘사했다
삶의 실체를 들여다 본다는 건 얼마나 무서운 일인가!
솔직히 그 유부남이 여자 주인공을 떠났다는 게 충격이 아니라 갑자기 바닥으로 떨어져 버린 그 상황에 놀랬다
인생 함부로 살아선 안 되겠다, 뭐 이런 다짐을 했다

전경린의 소설을 읽을 때도 상당히 몰입을 했다
일단 그녀의 섬세한 문체가 너무 마음에 들었고, 남자 주인공의 멋진 모습에 꽤 빠져 들었다
미흔이 규에게 반하는 그 과정에서 나 자신을 돌아 볼 수 있었다
영화로 만들어졌을 때 이종원이 규 역할을 맡았는데, 소설을 읽으면서 줄곧 이종원을 떠올렸다
나는 잘 생기고 쿨한 남자에게 빠져 드는 미흔의 감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왜냐면 나도 그런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K는 잘 생긴 건 아니었지만 내 눈에는 꽤 매력적으로 보였다
그 사람의 스타일이 마음에 들었다고 해야 하나?
규에게 집중하는 미흔의 그 심리 상태를 나도 겪어 봤기 때문에 꽤 많이 공감하고 마치 실제처럼 느낄 수 있었다
그렇지만 결혼을 아직 안 해서인지 미흔과 남편 효경의 관계는 별다른 감정이입을 할 수 없었다
결국 자기 경험을 바탕으로 상상을 하는 것이다
경험해 보지 못한 감정은 제대로 느끼기 힘들다
만약 전혀 겪어 보지 않은 일에 대해서도 생생히 느낄 수 있다면 작가가 아주 훌륭하게 글을 썼거나 (마치 폴 오스터처럼) 본인의 상상력이 대단한 경우일 거다

저자는 독서의 장점으로 이 상상력을 든다
매스 미디어는 아무 힘을 안 들이고도 눈 앞에 장면을 보여 주지만, 책은 본인의 경험을 바탕으로 머리를 써서 스스로 그 장면을 만들어 내야 한다
즉 사고의 과정을 거쳐야 제대로 읽을 수가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피곤하면 생각할 필요가 없는 텔레비젼을 보고 좀 더 여력이 남으면 생각해야 하는 독서를 택한다
독서는 대단히 능동적인 과정이다
물론 어느 정도 감정이입이 되고 집중할 때에만 그렇다
확실히 정보를 일방적으로 받아들이는 텔레비젼과는 많은 차이가 있다
그 차이점을 생각하면 아무리 영상 매체가 발달해도 여전히 책의 가치는 그대로 유지될 것 같다

나는 비교적 소설을 안 읽는 편이다
베스트셀러는 유치해서 안 보고 고전은 어려워서 쉽게 못 읽는다
수준있는 독서를 하자는 생각 때문에 인문 교양 서적 위주로 읽는다
그렇지만 이 책에 따르면 정보 획득의 목적을 떠나서 소설을 읽는 것은 우리 감정을 풍부하게 해 주고 많은 위안을 준다
사실 요즘은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 독서를 하라고 권한다
그래서 자기 계발서가 난무한다
그렇지만 진정한 독서의 효과는 정보 획득에 있지 않다
사실 뭔가를 얻으려면 요즘 같은 시대에는 시간 낭비일 수도 있다
책을 읽으므로써 자기 삶을 다시 돌아 보고 인간에 대한 이해를 넓히고 여러 감정에 대한 반응 기제를 배울 수 있다
자기 자신을 돌아 보는 것, 이것이야 말로 독서의 진정한 목적이 아닐까?

저자는 책을 통해 생활의 변화를 끌어내는 과정이 길고 느리지만, 분명히 가능하다고 단언한다
그렇기 때문에 심리 치료에 독서 기법을 이용하는 것이리라
요즘 나의 고민이 단순히 책만 읽고 생활 태도에 전혀 반영이 안 되는 것이었는데 이 말에 약간의 위로를 얻었다
계속 하다 보면 결국은 변한다는 얘기다
앤서니 라빈스가 말한 새로운 신경 회로의 형성까지 시간이 좀 걸리는 것 뿐이다
그래서 앞으로는 더욱 적극적인 독서를 하려고 한다
느낌이 안 오는 책은 과감하게 포기하고, 대신 공감할 수 있는 책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상황을 가정해 보고 내 경우에 대입하면서 내 감정을 더 많이 드러내는 능동적인 독서를 하고 싶다
그러려면 지금처럼 남독 수준의 빠른 읽기를 지양해야 할 것이다
책을 아껴서 읽는다는 어느 일본 독서가의 말이 떠오른다
소설 같은 경우도 메모를 하면서 플롯 구조를 파악하는데 애쓸 필요가 있다
"오만과 편견"  같은 경우 메모하지 않았다면 곧 중심을 잃고 헤맸을 것이다
18세기에 쓰여진 작품이라 그런지 모든 상황이 너무 낯설어 몰입하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역시 첫 십여 장에 집중하라는 충고가 맞는 걸까?
시작 부분에 제시되는 인간 관계에 대해 정확히 이해하니까 뒤로 갈수록 쉽게 읽을 수 있었다

간단히 메모를 하면 집중할 수는 있는데, 대신 속도가 느려져 나중에는 메모하다가 흐름을 놓치기도 한다
내 책이면 가볍게 책에 메모도 하면서 줄도 긋고 편하게 읽을텐데 그게 좀 아쉽다
그렇지만 한편으로 생각하면 같은 책을 두 번 읽는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더구나 요즘처럼 한 주에 10권 이상 읽는다면 책값이 만만치 않을 것이다
그래도 나중에 글을 쓰려면 원전이 있긴 있어야 할 거다
개인 도서관을 위해 예산을 세워 놓으라고 한다
서재라는 말 보다 얼마나 듣기 좋고 거창한지!!
어제 읽은 책에서도 6만권의 장서를 소유한 사람이 나오지만, 나도 그런 꿈이 있긴 하다
그렇지만 솔직히 이런 경우는 본말이 전도된 게 아닌가 싶다
책을 읽는 것보다 모으는 것에 더 의의를 두는 식으로 말이다
그렇지만 가치있고 우아하며 고상한 취미라고 생각한다
적어도 인형이나 우표 모으는 것 보다는 말이다!

이 곳 공공 도서관에는 약 2만 권의 책이 있다
아주 넓은 공간은 아니다
꼼꼼하게 배치한다면 아파트 큰 방 하나만 비우면 충분히 많은 책을 소장할 수 있을 것이다
방 하나를 서재로 짜면 절대 공간이 부족하지는 않을 것 같다
더구나 내가 읽은 책으로만 채운다면 주체하지 못할 정도로 많은 책을 소장하지는 않을 것이다
책에 대한 소유욕, 내 손때가 묻은 책으로만 진열하기, 생각만 해도 흥분된다
붙받이장을 만들듯 서재를 아예 벽에다 짜서 넣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새 책에 대한 욕심 때문에 다시 읽기는 힘들 것이다
하긴 "닥터 지바고" 같은 책은 다음에 읽으면 다른 느낌일 것 같다
"호밀밭의 파수꾼" 이나 "위대한 게츠비" 역시 마찬가지다
아마 지금 읽은 것과 나이 들어 읽는 느낌은 확연히 다를 것이다
직장을 옮기게 되면, 즉 도서관 갈 시간도 없고 책 읽을 시간도 부족하면 그 때는 사서 읽을 생각이다
한 주에 한 권만 읽어도 괜찮지, 뭐
그 때부터는 책을 열심히 모아야겠다

저자는 학교가 문학을 어렵게 만든다고 안타까워 한다
충분히 일리있는 지적이다
그 역시 대학에서 영문학을 가르친 사람이지만, 문학이 독자에게 감동을 주는 본연의 기능을 잃고 대학 교수들 밥먹여 주는 수단으로 전락했다
시간의 시련을 이겨낸 고전일수록 더욱 접근하기 어렵다
있는 그대로 텍스트를 읽고 내 식으로 감동하면 되는데 일단 학문으로 자리 잡으면 너무 엄청난 가치를 부여해 모든 것이 어려워진다
세익스피어가 위대한 건 알지만 그의 모든 작품을 다 높이 받드는 건 넌센스라는 얘기다
대학 교수나 평론가들의 이런 태도가 정작 책을 독자로부터 유리시킨다
당장 국어 시간을 생각해 보면 알 수 있다
그저 시나 소설로 느껴도 될 것을 거기다 밑줄 긋고 무슨 의미인지 받아 적고 시험보고, 그러니 개인적인 감동으로 다가올 수 있겠는가?

만약 내가 국어 선생이라면 어떻게 할까?
대학이라면 또 몰라도 중고교생에게 수능 강의 이외의 형식으로 가르칠 수 있을까?
대안 학교도 아닌데 그 따위로 수업하면 쫒겨날 거다
또 하고 싶어도 어떻게 해야 할지도 잘 모른다
그러니 페레가 세운 모던 스쿨에서는 교사에게 전권을 주는 대신 그 교사는 수업 준비를 엄청나게 해야 했다
정해진 룰이 없으니 스스로 만들어야 하니까 말이다
나라면 문학을 학생들에게 어떻게 가르칠까?
일단 학기초에 혹은 학기 시작 전에 필독 도서 목록을 나눠 주고 그 책에 대해 토론한다
당연히 한 클래스 숫자는 적어야 한다
가능하면 10명 이내로
먼저 책에 대한 각자의 느낌을 발표하고 내가 등장 인물이나 플롯, 문체에 대해 질문을 던지면 그 주제에 대해 토론을 하는 거다
수업 평가는 얼마나 참여하느냐, 또 학생이 제출하는 에세이 등으로 주관적인 평가를 한다
(이렇게 하면 내신 성적 때문에 학부모들이 객관성이 없다고 들고 일어나겠지)
정해진 답이 없다는 것만으로도 보다 자유롭고 개인적인 독서가 되지 않을까?

어차피 선생 될 일은 없으니까 애들에게 교육시키면 어떨까?
"현대 한국 사회의 일상 문화 코드" 를 읽고 느낀 거지만, 교육이란 특히 자식 교육의 경우 학원만 보낸다고 될 일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부모의 참여다
양육이란 단순히 자식의 의식주를 해결해 주는 게 아니라, 성장 과정에 함께 참여하는 보다 고차원적인 행위라는 걸 깨달았다
그렇게 의미 부여를 하면 자식 키워도 부질없다는 생각은 안 해도 될 것 같다
아직까지는 아이를 낳는 일에 회의적이지만, 낳을까 싶은 생각도 한 번씩 해 본다
독서는 어느 정도까지는 취향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애 성격이 책 보다는 춤추는데 끌리면 어쩔 수 없는 거다
그래도 날 닮았으면 좋아할 것 같기도 한데, 동생 생각하면 전혀 안 좋아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어쨌든 아이랑 같이 책을 읽고 거기에 대한 느낌을 서로 얘기하면 참 재밌을 것 같다
아이가 자라면서 경험하는 것을 엄마가 함께 느낄 수 있다면 양육하는 과정 자체가 나에게 큰 의미를 줄 것이다
그러려면 학원에 보내는 건 별 의미가 없을 것이다
시간 투자를 아이에게 많이 해야 하는데 전업 주부도 아니고 애가 인생의 목적도 아닌데 현대 사회에서 자아 실현과 제대로 된 양육이 양립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어쨌든 만약 아이를 낳게 된다면 함께 책을 읽고, 여행을 많이 다니고 싶다
여행이야 말로 (특히 해외 여행) 경험의 폭을 넓히는 가장 큰 교육이라고 생각한다
결국 자식은 부모의 대리물이 아니고 나와는 별개의 인간이라는 개념을 가져야 자식에게 자율성을 부여하고 맹목적인 경쟁적 교육에 빠지지 않을 것 같다
애가 성공하면 기분 좋은 일이고 실패해도 어쩔 수 없다는 얘기다
양육하는 과정에서 기쁨과 의미를 느껴야지, 그 결과에만 초점을 맞추려다 보면 결국 아이도 나도 다 같이 불행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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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만의 제국
그렉 크리처 지음, 노혜숙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0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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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미국이 점점 더 뚱뚱해지는 이유는 패스트 푸드점의 판매 전략 때문이라는 분석은 이미 수많은 책에서 다뤄졌다
맥도널드로 대표되는 패스트 푸드점은 비만에 가장 큰 원인이 되고 있다
세트 메뉴나 라지 사이즈의 개발로 가격을 올리면서 칼로리도 엄청나게 늘리고 있다
솔직히 1인분 양으로 너무 큰데도 패스트 푸드점은 계속 큰 사이즈만 내 놓는다
T.G.I.F. 같은 패밀리 레스토랑도 마찬가지다
1인분 양으로는 지나치게 많다
그런데도 한꺼번에 많은 양을 주면서 값도 올린다
양을 절반으로 줄이고 가격을 내리면 좋을텐데 절대 그렇게 하지 않는다
덕분에 우리는 더 많은 돈을 지불하면서 점점 더 뚱뚱해진다
패밀리 레스토랑이 칼로리 공개를 안 하는 건 너무 당연하다
제정신 박힌 사람이면 그 엄청난 칼로리의 음식들을 아무 부담감 없이 먹을 수 있겠는가?
한 끼 식사에 천 칼로리가 넘을 정도라면 말 다했지, 뭐
그래도 패스트 푸드점은 가격이라도 싸고 칼로리도 패밀리 레스토랑 보다는 더 낮다
물론 패스트 푸드점처럼 자주 가는 건 아니지만 말이다
이 놈의 패밀리 레스토랑은 값도 무지하게 비싸지, 칼로리도 엄청나게 높지, 1인분 양도 지나치게 많지, 좋은 게 하나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광고 마케팅 때문에 왠지 거길 가야 세련되고 신세대 문화에 동참하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켜 비싼 돈 주고 뚱뚱해지려고 기꺼이 간다
패밀리 레스토랑이야 말로 타도의 대상이다

요즘은 돈을 벌어서인지 패스트 푸드점에 갈 일이 별로 없다
그런데 미국인들은 직장에서 점심을 해결하기 위해 맥도널드를 많이 찾는 것 같다
하긴 그 사람들이야 고기가 주식이니까 간단히 해결하는 좋은 식당일 것이다
우리처럼 우르르 몰려가서 같이 밥 먹는 게 아니니까 혼자 편하게 회사 근처 맥도널드 가서 싸게 한 끼 때울 것이다
그래서 다들 맥도널드의 폐해에 대해 목소리를 높힌다
맥도널드 세트 메뉴를 먹으면 기본적으로 5천원은 넘으니까 절대 싼 건 아니다
그런 허접한 음식을 먹으려고 5천원을 지불하느니, 차라리 한식을 제대로 먹는 게 낫다
이건 우리나라 현실이고 미국은 5천원 가지고 한 끼 식사하기가 힘들 것이다
미국에서는 맥도널드가 편하게 이용할 수 있는 싼 식당이란 얘기다
마치 우리나라의 백반집처럼 말이다

아직도 굶어 죽는 아프리카 난민들이 넘쳐 나지만, 왠만큼 사는 나라에서는 칼로리 과잉이 심각한 문제다
생산력 향상으로 더 이상 못 먹어 죽는 사람은 없다
더구나 값싼 군것질거리가 얼마나 많은가?
저자의 지적처럼 국가로부터 제대로 된 사회 복지를 받는 대신, 싸구려 먹거리로 욕구를 충족시키고 있다
기분이 우울할 때 먹는 것과 텔레비젼으로 스트레스를 푸는 이유는 너무 간단하다
그게 제일 돈이 적게 들고 간단하기 때문이다
미국인은 하루 평균 4시간 동안 TV를 시청한다고 한다
5시에 퇴근해서 집에 가면 7시부터 11시까지 줄곧 TV를 시청한다는 소리니, 운동할 시간이 없는 건 너무 당연하다
비디오 게임, 인터넷, TV 등이 더해져 우리는 소파에서 꼼짝달싹도 안 한다
싸구려 군것질거리들로 입을 만족시키면서 우리의 신체는 휴식이랍시고 그걸 즐기고 있다
다른 여가 활동은 돈이 많이 드니 시도할 엄두가 안 날 것이다
당장 운동 하나만 하려고 해도 돈이 든다
이러니 흑인이나 멕시칸들의 비만이 심각할 수 밖에

못 사는 동네는 공원 하나 제대로 없다
그러니 운동할 공간이 없는 셈이다
치안도 형편없어 어두워지면 나가지도 못한다
어디서 운동을 하겠는가?
잘 사는 동네는 치안도 확실하고 공원 조성도 잘 되어 있다
백인일수록 날씬하고 유색 인종일수록 뚱뚱한 건 필연적인 결과다
더구나 백인 중산층들은 시간이 나면 돈을 들여 스포츠 활동을 즐긴다
또 그들은 칼로리가 높은 싸구려 음식 대신 영양이 풍부하지만 칼로리는 낮은 좋은 식품들을 섭취한다
비만에 대한 사회적 인식도 다르다
못사는 사람들은 먹는 게 남는 거라고, 마음껏 멋기라도 해야 한다면서 비만 자체를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지만, 잘사는 사람들은 뚱뚱한 것은 곧 자기 관리의 실패라고 보기 때문에 날씬해질 것을 서로 격려한다
인식부터 다른 셈이다

HFCS, 이른바 액상과당은 설탕보다 칼로리가 월등히 높고 팜유 역시 콩기름 보다 훨씬 높다
그렇지만 값이 싸기 때문에 (설탕은 3세계 국가 보호 차원에서 높은 가격에 묶여 있고 싸구려 팜유는 말레이사아와의 무역을 위해 많이 수입했다) 식료품 가격을 내리기 위한 정책의 일환으로 다량 유통됐다
더구나 이들은 맛이 더 강하다
훨씬 바삭바삭 튀겨지고 단맛도 강하다
식료품 회사들은 앞다투어 이것들로 바꾸었다
칼로리가 올라간 건 당연하다
정부가 비만을 유도한 셈이다

코카 콜라나 맥도널드의 광고 작전도 대단히 공격적이다
그들은 학교에 광고판을 세우고 배달하는 대신 엄청난 기부금을 제공한다
돈이 없어 체육 시간까지 없애는 마당에 억 단위의 기부금을 거부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학교 급식을 직접 하는 대신 맥도널드나 핏자헛 등에서 직접 배달을 한다고 하니, 칼로리가 얼마나 올라갈지 알 만 하다
이런 이미지 광고는 소비자들도 현혹시킨다
이런 음식들을 먹어야 유행에 뒤지지 않는 것처럼 느껴지도록 이미지 광고를 한다
패스트 푸드이 폐해를 제대로 알지 못하는 소비자라면 이 대열에 합류해야 할 당위성을 느낄 것이다
말하자면 하나의 새로운 문화로 정착되는 것이다

비만인들의 비위를 맞추기 위한 (혹은 반짝하는 아이디어로 돈을 벌어 보려는) 잘못된 다이어트 책들도 문제다
다이어트가 돈이 되니까 여기저기서 그럴듯한 방법론을 제시하면서 독자들을 현혹하는 것이다
진실은 하나, 적게 먹고 땀이 날 정도의 강도로 한 시간 이상 운동하는 수 밖에 없다
운동으로 일주일에 2500 칼로리를 소비해야 심장병 발생 위험도 줄어든다고 한다
2500칼로리면 적어도 하루에 400칼로리는 소모해야 한다는 얘긴데, 이게 만만치 않을 것이다
걷기로는 힘들 것이고 조깅 정도의 강도로 뛰어야 한다
결국 노력을 해야 이 풍요의 시대에 건강하게 살 수 있다는 얘기다
나이가 들어도 마찬가지라고 한다
나이 들어서 살 찌는 건 괜찮다고 하는 얘기도 다 신화에 불과하다
나이와 상관없이 비만은 위험하다
왜 기독교에서 탐식과 게으름을 7대 악의 하나로 꼽았는지 알 것 같다
탐식은 절제하지 못하는 인간의 특징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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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만과 편견 밀레니엄 북스 31
제인 오스틴 지음, 성기조 옮김 / 신원문화사 / 2004년 9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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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부터 읽고 싶던 책을 드디어 읽었다
결론은 다소 실망스럽다
솔직히 재밌는지도 모르겠다
다만 18세기 영국 사회의 결혼 풍속도를 엿보는 재미는 있다
그 당시 시대상을 알려면 소설책을 읽으라는 말은 이 책에 딱 들어맞는다
왜 이 책이 고전이 됐을까?
겨우 21세 때 초고를 쓴 후 36세 때 출간하기까지 여러 번 수정 작업을 거쳤다고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통속 소설과 고전과의 아슬아슬한 경계선 위에 있는 것 같다
젊은 여자 작가의 가벼운 애정 스케치라고 해야 하나?
물론 지나치게 통속적인 줄거리 따위는 없다
그런 담백한 점이 마음에 들기는 하다
그렇지만 고전이라면 도스토예프스키처럼 심오한 사상을 담고 있는 소설이라고 알고 있는 나에게, 이런 가벼운 필체는 그저 당황스러울 뿐이다
마치 "호밀밭의 파수꾼" 을 읽었을 때의 기분이랄까?
"위대한 개츠비" 나 "이방인"  혹은 "파리 대왕" 처럼 현대 소설들은 장중한 문체로 승부를 내지 않나 보다
소설의 내용 뿐 아니라 문체도 중요하다고 보는 나 같은 사람은, 아무래도 이런 가벼운 문체에는 감동하기 힘들 수 밖에...

엘리자베드는 무척 매력적인 캐릭터다
언니 제인은 착한 여자 컴플렉스에 걸렸거나 아니면 너무 순진해서 사람을 무조건 좋은 쪽으로만 보는, 어찌 보면 좀 답답한 여자다
막내 리디아는 열 다섯에 남자를 따라 집을 나간 어처구니 없는 여자애다
로미오와 목숨을 건 사랑에 빠진 줄리엣이 겨우 열 세살이었다고 하지만, 18세기 영국에서 15세면 결혼해도 괜찮은 나이였나 보다
오래 못 살아서 조혼이 유행했을까?
그러고 보면 이들은 학교도 다니지 않고 집에서 가정 교사나 부모로부터 교육을 받았다
학교가 생긴 게, 혹은 학교에 당연히 다닌다는 개념이 생긴 게 얼마 안 됐나 보다
지금으로부터 겨우 200년 전인데도 소설에는 학교라는 교육 기관이 등장하지 않는다
하긴 우리나라로 치면 영,정조 시대니까 지금과 다른 게 당연하긴 하다
그러고 보면 이 소설도 참 옛날 이야기다
서양 소설은 근대 소설이라고 해도 왠지 현대 소설과 같은 선상에 있는 것 같다
서구식으로 현대화가 진행되서 그런가?
영정조 시대 소설이라고 생각하면 "오만과 편견" 이 이 정도의 현대성을 갖는 것도 신기한 일이긴 하다
당시 써진 우리 고전 소설은 아예 공감 자체가 안 되니까 말이다

결혼은 정말 사회적 결합인가 보다
하긴 두 사람만의 사랑이 전부라면 굳이 결혼이라는 복잡한 예식을 치룰 필요도 없다
연애와 결혼이 별개라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얘기인지도 모른다
일부일처제가 인간의 본성에 맞지 않다는 말은 명백히 무책임한 얘기다
본성에 어긋나지만 사회 유지를 위해 필요하기 때문에 다른 가능성 있는 파트너들을 포기하고 한 사람과 평생 살겠다고 만인 앞에서 서약하는 게 아닌가?
연애 결혼이란 부르주아 계급이 등장하면서 생긴 새로운 결혼 제도라는 말이 생각난다
이 소설을 보면 재산과 신분, 영향력 있는 친척 등 결혼의 외적 조건들이 대단히 중요하다는 걸 알게 된다
심지어 가장 분별력 있게 그려진 주인공 엘리자베드 역시 위캄이 청지기의 아들이고 돈이 없다는 이유로 그와의 결혼을 쉽게 고려하지 않을 정도다
위캄이 리디아를 데리고 도망간 것은 빚쟁이들을 피하기 위해서였는데, 지참금을 얼마 정도 가져 오면 결혼하겠다고 했을 때 가족들은 그 액수가 적은 것에 감격한다
너무 어이가 없어 당황스럽기까지 한 내용이었다
딸을 데리고 도망간 것도 황당한데, 감히 지참금을 요구하다니!
그런데 가족이란 사람들은 그 지참금이 적다고 횡재했다고 생각하다니!
정말 믿을 수가 없는 설정이다
여자는 지참금을 들고 오고, 남자는 평생 그녀를 먹여 살리는 일종의 계약이었나 보다

지참금 이야기는 끊임없이 나온다
평범한 가문의 딸인 엘리자베드는 지참금을 많이 가져갈 수 없기 때문에 남자들이 자기와 결혼하기 힘들 거라고 생각한다
돈과 사랑에 대한 함수 관계는 비단 요즘의 문제만은 아닌 게 분명하다
다섯 딸의 어머니 베네트 여사는 속물 중의 속물로 나온다
그녀는 제일 예쁜 큰 딸 제인을 부자인 빙리와 결혼시키려고 애쓰고 막내 리디아가 위캄과 도망갔을 때도 지참금을 적게 요구한다는 사실 때문에 크게 기뻐한다
부유한 다아시가 건방지고 오만하다고 싫어하지만 둘째 엘리자베드에게 청혼한 사실을 알고 얼마나 큰 횡재를 했냐고 금방 자세를 바꾼다
다아시에게 어떻게든 잘 보이려고 애를 쓰는 어머니를 엘리자베드는 한심하게 쳐다 본다
혹시 사윗감을 계속 싫어하면 어쩌나 고민했던 자신이 어리석었다고 느꼈을 것이다

그래도 아버지 베네트씨는 좀 낫다
엘리자베드가 콜린즈에게 청혼받았을 때 비록 그가 부자지만 인격이 형편없기 때문에 결혼하지 말라고 충고한다
사실 그 집안의 땅은 베네트가 죽고 나면 콜린즈에게 상속될 예정이었으므로 베네트 여사는 엘리자베드에게 청혼을 받아들이라고 강요한다
그런데도 아버지는 그녀에게 어울리지 않는 베필이라고 승낙을 거부한다
부자인 다아시가 청혼했을 때도 평소 그녀가 그의 오만한 성격을 싫어했던 걸 기억하고서, 넌 네가 존경할 수 있는 남자를 만나야 한다고 신중하게 생각해 보라고 충고한다
이 정도 분별력을 가진 부모라면 자식이 존경할 만 하다
그렇다고 베네트 여사가 자식 앞날에 대해 전혀 생각이 없는 건 아니다
다소 속물적이긴 한데, 베네트 여사가 생각하는 바람직한 결혼이란 돈 많은 남자에게 시집가서 일생을 편하게 사는 것이기 때문에 사윗감을 볼 때 재산을 최우선시 할 뿐이다
저자 역시 베네트 여사를 나쁘게 묘사하지 않는다
다만 철이 좀 없다는 식으로만 얘기한다
당시 가치관이 결혼은 돈과 지위와 신분을 보고 한다는 관념이 강했던 것 같다

빙리와 제인이 맺어질 거라 생각했는데 빙리가 일방적으로 마을을 떠난 후 둘의 관계가 끊어지는 걸 보고 깜짝 놀랬다
점잖게 묘사된 빙리가 실은 난봉꾼으로 제인을 데리고 논 건가?
아니면 숙녀에 대한 단순한 호의를 제인이 오해한 건가?
빙리의 여동생은 제인에게 호의를 베풀면서도 정작 그녀 대신 부자인 다아시의 여동생과 오빠가 맺어지길 노골적으로 제인에게 말하는 위선적인 태도를 취한다
어쩌면 친구로서 제인은 좋지만, 올케로서는 싫었는지도 모르겠다
비록 제인이 아름답고 착하지만 돈이 없으니까 오빠에게 어울리지 않다고 여겼을 것이다
엘리자베드는 그녀의 위선을 간파하고 교제를 끊으라고 하지만, 남을 의심할 줄 모르는 제인은 빙리와 헤어지더라도 그의 동생과는 계속 좋은 관계를 맺길 원한다
또 나중에 둘이 결혼하기로 결정한 후에도 제인은 막연히 시누이와의 관계가 좋아지리라 믿어 버린다
도대체 이 소설에는 복잡할 게 없다
원래 당시 사교계가 왠만한 것은 이해하는 분위기였는지, 아니면 오스틴 자체가 복잡한 갈등 구조를 싫어하고 주변 상황에 크게 상심하지 않는 캐릭터를 좋아했는지 모르겠다

어쨌든 지나치게 심각하지 않은 건 마음에 든다
일반적으로 갈등 구조 유발을 위해 등장 인물간의 지나친 신경전이 벌어지곤 하는데, 이 소설은 그런 면에서 참 담백하다
엘리자베드는 자신에게 좋은 과거만 기억한다고 말한다
그러자 다아시는 고통스러운 기억은 원래 잊고 싶어 하는 거라고 답한다
마음에 드는 문답이다
엘리자베드는 다아시의 이모인 드 버그 부인에게 당당히 맞선다
사촌간의 결혼도 흔했는지 (하긴 찰스 다윈도 사촌 동생과 결혼했다) 그녀는 자기 딸과 다아시를 맺어 주려고 한다
자매끼리 서로 자기 자식을 맺어 주자고 약속하는 모습이 무척 정겹게 느껴진다
우리도 사촌끼리 결혼할 수 있다면 가족의 범위가 훨씬 더 확대될텐데...
드 버그 부인은 감히 너 같은 게 다아시의 베필이 될 수 없다고 모욕을 주지만, 엘리자베드는 전혀 기죽지 않고 다아시가 선택할 문제라고 대꾸한다
결혼 문제가 나오기 전,드 버그 부인의 화려한 저택에 초대받았을 때도 엘리자베드는 조금도 위축되지 않고 오히려 가벼운 마음으로 부잣집 풍경을 즐긴다
가정 교사가 없어서 안됐다는 부인의 말에 배울 건 다 배웠다고 아무 모욕감 없이 말하는 그 여유라니!!
대단한 후원인을 얻었다고 드 버그 부인을 하늘 같이 받으는 콜린즈와 왜 이렇게 비교되는지, 그녀가 콜린즈를 택하지 않은 건 정말 잘한 것 같다

만약 우리나라 소설이나 드라마였으면 드 버그 부인이 결혼을 방해할 것이고 다아시는 이모를 설득하기 위해 괴로워 할 것이다
대체 성인인 다아시가 왜 이모의 허락을 받아야 하는가?
그런데도 우리나라 드라마를 보면 극적 갈등 구조를 위해 사실은 별 영향력도 없는 가족의 허락을 얻기 위해 애를 쓴다
다아시는 결혼한다는 편지 한 장을 드 버그 부인에게 보내므로써 간단히 해결한다
이게 정상 아닌가?
우리나라 드라마를 보면 다들 마마보이 같다
성인이면서도 자기가 선택한 결혼을 책임지지 못하는 어린애들 같다
물론 드라마의 재미를 위해 억지로 설정한 거겠지만 말이다
(일본 드라마는 아예 가족은 등장하지도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 청춘물에 출연하는 배우 수도 적고 횟수도 아주 짧다고 한다 산뜻하게 남녀 간의 사랑에만 집중한다고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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