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틀라스 한국사 - 역사읽기, 이제는 지도다! 아틀라스 역사 시리즈 1
한국교원대학교 역사교육과 지음 / 사계절 / 200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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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서술 중심의 역사에서 벗어나 지도를 중심으로 본 역사책이라는 홍보 문구에 이끌려 선택했건만 아주 실망스럽다 국사책 보는 기분이다 교과서와는 명백히 구분되야 함에도 불구하고 왜 이렇게 밖에 못 쓰는지 모르겠다 그냥 딱 교과서 수준의 서술과 사회과부도 정도의 지도가 있을 뿐이다 혹시 국사 점수 잘 맞을 사람 있으면 방학 때 이걸로 공부해도 좋을 것 같다 시험칠 필요가 없는 일반인들이 읽기에는 아주 부적합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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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달, 바보가 된 고구려 귀족
임기환 기획, 이기담 지음 / 푸른역사 / 200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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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이 책에 기대를 많이 했었다 바보 온달 신화를 역사적으로 해석하므로써 온달이란 인물을 살아 있는 존재로 환원시킬 수 있으리라 기대했는데 너무너무 실망스럽다 일단 저자가 소설가라는 게 치명적인 문제가 된 것같다 역사학자가 쓴 것과 비전공자가 쓴 것은 수준 차이가 날 수 밖에 없는데 고구려 역사를 전공한 사람과 공저라고 해서 믿고 읽었건만, 그 학자는 조언자에 불과했다 대체 출판사는 왜 이런 어설픈 편집을 했을까? 각자 잘하는 분야가 있는데, 역사를 쓰는 것과 역사소설을 쓰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다 그런데도 편집자는 역사 이야기를 소설가가 쓰면 독자에게 읽기 쉽게 다가가리라는 큰 착각을 한 것 같다

저자의 글 솜씨도 정말 실망스럽다 소설가라면서 왜 저 정도 밖에 못 쓰는지 모르겠다 전공 분야가 아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생기는 한계일까? 그렇다면 글을 쓰지 말던가. 홍보는 공저로 돼 있지만 100% 그녀 혼자 쓴 책이다 임기환은 명백히 조언자에 불과하다 차라리 글솜씨가 없더라도 고구려사를 전공한 이 사람이 혼자 책을 썼으면 더 낫지 않았을까? 모처럼 재밌는 주제를 만났는데 서술이 수준 이하라 정말 실망스럽다

이 책은 역사에세이라기 보다는 그저 기행문일 뿐이다 굳이 제목을 붙이자면 온달 신화를 따라 간 기행문이랄까? 아니면 온달 신화를 찾아 떠난 단양 여행기 정도? 이보다 더 형편없는 책도 많이 나오지만 그래도 기본적으로 역사적인 배경은 있어야 할 것 아닌가? 내가 보기엔 저자나 나나 아는 것은 거의 비슷한 수준이다

간단히 책 내용을 요약하자면 온달은 고구려의 하급 귀족이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신화를 자세히 들여다 보면 평범한 사람들은 절망하기 마련이다 바보가 공주랑 결혼하고 큰 무공을 세워 장군이 될 리 만무하다 상식적으로도 그렇다 바보고 아니고 간에 일단 가난한 서민이 어떻게 출세를 할 수 있겠는가? 고대의 신분제 사회에서 말이다

평강왕과 영양왕 즉위 과정에서 신귀족과 구귀족 간의 싸움이 있었고, 신귀족이 승리함에 따라 신진 세력 진출이 활발해졌다 그 과정에서 무술 대회 때 두각을 나타낸 온달이 왕의 눈에 들어 벼슬을 얻을 수 있었다는 추론이다 이 대회는 삼월 삼짇날 치뤄졌는데 고대에는 연애가 자유로웠기 때문에 평강 공주가 온달을 보고 반해서 부모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을 감행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물론 어디까지나 가정일 뿐이다

온달은 삼국사기 열전에만 등장할 뿐 본기에는 나오지 않기 때문에 실존 인물이 아니라는 설도 있다 반대로 온달이 공을 세운 전투는 본기에 기록되어 있기 때문에 그 전투의 지휘관인 고승이 온달이라는 말도 있다 당연히 증거는 없고 추론에 불과하다 온달이 죽은 장소 역시 정확하지 않다 온달 산성이나 아차 산성 등이 후보지로 거론되지만 그 곳에서 명문 같은 증거물이 발견되지 않는 이상 모든 것은 그저 가설일 뿐이다

저자 역시 역사적 지식이 부족하다 보니 몇몇 전문가들의 조언과 답사 여행으로 힘들게 한 권의 책을 이끌어 간다 그러다 보니 감상적인 내용이 많고 정작 역사적 배경이나 정황 등은 많이 부족하며 중언부언 하는 부분이 많다 정말 재밌고 좋은 소재인데 참 안타깝다 더구나 고구려 역사는 잘 알려져 있지 않기 때문에 많은 호기심을 자아내는데도 전혀 충족은 못 시킨다 보다 전문적인 필자가 나와서 맛깔나는 이야기를 들려 주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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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케 현상 2005-01-23 17: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 그럴 줄 알고 전 안 읽었죠 ^^여기 기획이 요즘은 너무 뻔해지고 있는 것 같네요
 
슈렉 1 - 할인행사
앤드류 애덤슨 외 감독, 에디 머피 외 출연 / CJ 엔터테인먼트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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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슈렉 2를 먼저 봤는데 1보다 2가 더 재밌다 속편이 더 재밌기는 어려운 법이지만, 슈렉에서는 이 법칙이 안 통하는 것 같다 디즈니 만화는 진짜 만화 같은데, 드림웍스 만화는 꼭 인형들 같다 1편에서는 특히 그런 느낌이 강하다 1편과 2편이 연결된 건 줄 알았는데 알고 봤더니 거의 관련성이 없는 듯 하다

1편에서는 키작은 영주와 숙녀 용이 등장한다 귀여운 당나귀는 1,2 편 모두 등장한다 2편에서 장화 신은 고양이와 마법사가 나오는데 속편 캐릭터들이 훨씬 생동감 있고 재밌다 1편은 좀 더 밋밋하다고 할까? 마법에 걸린 피오나 공주는 1편에서 영주와 바로 결혼식 하려고 하더니만, 2편에서는 느닷없이 부모에게 인사를 드리러 간다고 한다 음, 우리나라 같으면 상상도 못할 일인데... 결혼 후에 부모에게 통보라... 그럼 적어도 혼수나 예단 문제로 속상할 일은 없겠지?

동화를 패러디 하는 것도 재밌었다 헐리우드식 비빔밥이라고 해야 하나? 마녀나 난쟁이 등 사회의 약자들을 숲으로 쫓아 내는 장면은 중세 시대의 억압성을 보는 것 같다 피노키오도 쫓겨 나고 피리 부는 사나이도 쫓겨 나고 소녀 잡아 먹은 늑대도 쫓겨 난다 성숙한 사회란 다양성이 존중되고 사회적 기준에 의해 재단되지 않는 곳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피오나 공주는 진실한 사랑을 만났는데도 왜 마법이 풀리지 않는 걸까? 풀리긴 풀렸는데, 옛날에는 낮에만 공주님이고 밤에는 괴물이었던 것에 비해 슈렉과 첫 키스를 한 뒤로는 아예 밤낮으로 똑같은 괴물이다 이것도 외모 지상주의에 대한 풍자인가? 슈렉 2편의 리뷰 중 이런 내용이 있었다 마법의 명약을 마시면 잘생기고 예쁜 사람으로 변할 수 있었지만 슈렉과 피오나는 계속 괴물로 살기로 하고 그 약을 던져 버린다 이 장면을 두고 어떤 사람이 자기 블로그에서 잘 생기고 예뻐진다는데 왜 포기하냐면서 헐리우드식 어설픈 인간 중심주의라고 비난했다 멋진 사람으로 변신하면 더이상 늪에서 편안한 생활을 못하고 왕국을 다스리며 권력적인 삶을 살아야 하기 때문에 그들이 괴물로 남기로 한 건 훨씬 더 고차원적인 선택 아닐까? 아마 그 명약을 마시고 멋진 남녀로 다시 태어난다고 했으면 그 사람은 외모 지상주의라고 또 비판했을 거다 미국 숭배도 우습지만 무조건 미국적인 가치라고 비난하고 보는 것도 너무 촌스럽다 말 나온 김에 하는 말인데, 친일파라고 그 작품까지 싸잡아 비난하는 사람들도 한심하다 그렇다면 월북 작가 책 금지한 독재 정부와 다를 게 뭐란 말인가?

일본 만화 보다는 훨씬 사실적인 느낌이다 똑같이 환상적인 얘기를 하는데도 미국 애니메이션은 일상을 보여 주는 반면 일본은 동화 속 전설 같은 판타지들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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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와 모델 - 화가의 붓끝에서 영원을 얻은 모델 이야기 명화 속 이야기 5
이주헌 지음 / 예담 / 200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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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이주헌은 참 글을 잘 쓴다
그가 소개하는 서양 미술사를 읽고 있자면 마음이 행복해진다
명화를 소개하는 많은 책들이 있지만, 그는 가히 최고의 작가라 할 만 하다
단순히 그림을 소개하는데 그치지 않고 자신의 느낀 점을 독자에게 자연스레 전달하는 글쓰기 방식이 참 마음에 든다
지금까지 읽은 그림책 중 이 사람의 책이 가장 편하고 정겹다
그러면서도 단순한 그림 감상서에 머물지 않고 핵심이 되는 지식과 감상 포인트도 빼놓지 않고 독자에게 자상하게 알려 준다
"나의 서양 미술 순례" 를 읽을 때도 참 편하고 따뜻했다
이런 책들을 읽을 때는 아름다운 그림과 함께 좋은 글 때문에 책 읽는 기쁨이 두 배가 된다

서양화는 인물화라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모델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그래서 화가와 모델 사이는 감정적으로 꽤 밀착되어 있었다
이해가 간다
특히 자기 마음에 딱 드는 이미지의 모델이 나타나면 그를 상대로 여러 장의 그림을 그리고 싶을 것이다
한 두 시간 만에 뚝딱 해치우는 게 아니고 몇 개월씩 작업을 해야 하므로 모델과 화가 사이에 인간적인 정리가 쌓이는 것은 인지상정일 것 같다
그래서 모델과 결혼하는 화가도 많고, 정부가 되는 경우는 훨씬 많았다

이 책에서는 25명의 모델들이 소개되는데, 가장 바람직한 케이스는 17세기 회화의 대가인 루벤스인 것 같다
"명화의 비밀" 을 보면 카메라 루시다를 통해 인물의 형상을 캔버스에 투영시킨 후 그대로 따라 그리는 기법이 유행했는데 (우리가 감탄하는 살아 움직이는 듯한 그림들이 바로 이 기법을 응용한 것이다) 루벤스는 이런 기구를 전혀 이용하지 않고 직접 자기 눈으로 보고 드로잉 해서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루벤스의 위대함 중 하나가 바로 이 놀라운 드로잉 솜씨라는 것이다
루벤스는 성격도 좋고 화술에도 능해 유럽 왕실을 돌아 다니며 외교 사절 역할도 했다고 한다
일단 왕들을 깜짝 놀라게 할 만한 멋진 그림들을 그려 분위기를 화기애애 하게 만든 후 외교 문제를 풀어 나가는 것이다
예술가라면 이런 정치 문제나 일상 생활에 완전히 꽝일 것 같은데, 루벤스라는 사람은 그림도 잘 그리지만 생활인으로서도 능력이 뛰어났던 것 같다
그런데 이 멋지고 유능한 화가는 아내에 대한 사랑도 대단해 아내들을 상대로 많은 그림을 그렸다
첫 아내와 의가 매우 좋았지만 일찍 죽는다
34세 때 그는 16세의 둘째 아내와 결혼한다
얼핏 생각하면 도둑놈 같지만, 당시 루벤스는 기사 작위까지 수여받은 세력가였다
반면 두 번째 아내는 제분업자의 딸로 하층민이었다
주위에서는 사회적 지위에 걸맞게 귀족 출신의 아내를 맞으라고 했지만 루벤스는 자신의 예술 세계를 이해해 주고 모델 일을 통해 작업에 함께 참여해 줄 현숙하고 자상한 아내를 원했다
요즘 말로 하자면 재벌 2세가 가난한 집 여자와 결혼한 셈이다
또 당시 유럽에서 16세는 전혀 어리지 않은, 결혼 적령기였다고 하니 오히려 돈 대신 사람을 택한 루벤스의 인간성에 박수를 보내야 할 것 같다
그는 첫 아내와 두 번째 아내를 모델로 많은 그림을 그렸고, 심지어 두 아내를 미의 여신으로 함께 등장시키는 그림도 그렸으니 아내들에 대한 그의 사랑이 어땠는지 짐작이 간다
이렇게 바람직하고 훌륭한 결혼 생활을 한 사람은 이 책에서 루벤스 한 명 뿐이라는 사실이 서글프다

루벤스나 렘브란트 등은 자신의 그림 실력을 바탕으로 신분 상승을 한 경우다
그림이 신분 상승의 방법이 될 수 있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흔히 예술가라고 하면 고흐처럼 세상과 단절돼 자기만의 세계에서 불행하게 사는 사람들을 떠올리는데, 가만히 보면 고흐나 모딜리아니 등 일부 화가에 불과한 것 같다
피카소 같은 경우는 그림을 통해 가난뱅이에서 억만장자가 됐을 정도니, 그림도 하나의 권력이고 자본이 될 수도 있나 보다
예술이 제도권 속에 갇히면 그 생명력을 잃을 위험도 있지만, 그만큼 사회가 예술의 가치를 인정해 준다고 생각하면 얼마나 바람직하고 다행한 일인지 모르겠다
피카소는 억만장자가 됐어도 92세에 죽을 때까지 실험적이고 창의적인 노력을 멈추지 않았다고 한다
그게 바로 진정한 예술가의 정신일 것이다
사람들의 인정이나 돈, 권력 유무와는 상관없이 말이다

빛의 화가인 렘브란트는 아내가 유력 집안의 딸인데 죽기 전, 다른 여자와 결혼할 경우 자기 재산을 상속할 수 없다는 유언을 남겼다
덕분에 렘브란트는 아내가 죽은 뒤 평생 동거만 했다고 하니, 좀 잔인한 처사가 아닌가 싶다
동거녀는 사회적 지위도 얻을 수 없고 법적 권리도 없던 당시 풍조를 생각해 보면, 렘브란트 보다는 함께 산 여자들이 더 불쌍하다
그의 아내는 남편이 재혼할 경우 자기 아들에게 돌아 갈 재산이 줄어들까 봐 염려하여 그랬다고 한다
그러나 대단히 사치스러웠던 렘브란트는 죽기 전 알거지가 됐다고 하니, 재산을 지키려던 아내의 노력도 다 물거품이 됐을 것이다

화가들은 대체로 결혼을 속박이라 생각하고 동거를 선호했다
결혼을 했다 할지라도 정부를 두는 경우가 많았다
이 정부들은 모델을 서다가 감정이 발전되곤 했다
피카소 같은 경우는 정식으로 오래 관계를 맺은 여자만 해서 7명이나 되지만 (92세까지 장수한 걸 생각하면 이해가 되기도 한다) 정식 결혼은 딱 두 번 뿐이었다
확실히 예술가들은 결혼을 속박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라파엘로는 한 여자와 12년을 살았지만 결혼은 하지 않았다
마르게리타라는 이 여자는 라파엘로의 그림에 성모의 모습으로 자주 등장한다
그림 속에서 그녀는 라파엘로라는 이름이 새겨진 팔찌를 차고 있기도 하다
꽤나 사랑했던 모양이다
그런데 왜 끝까지 결혼은 거부했는지 모르겠다
라파엘로는 37세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뜨면서 마르게리타를 위해 많은 돈을 남겨 준다
단순한 정부로 생각한 것이 아니라 삶의 동반자로 생각했음이 분명하다

모딜리아니와 잔 에뷔테른의 이야기는 영화의 소재로 쓰일 만큼 비극적이고 애절하다
목이 긴 여인으로 대표되는 모딜리아니는 마약 중독자에 가난하며 무절제한 남자였다고 한다
피카소 같은 경우는 세탁선이라 이름붙은 가난한 집에서 이 친구들과 어울렸으나 곧 성공해서 이 곳을 빠져 나갔다
그러나 모딜리아니는 여전히 가난한 지역에서 못 벗어나고 술과 마약에 절어 살았다
이 때 나타난 구원의 여신이 열 네 살 어린 잔이었다
그녀 역시 미술학도였는데, 19세 때 33세의 모딜리아니를 만나 동거를 시작한다
잔의 아버지는 백화점 간부로 둘의 결혼을 극렬히 반대했기 때문에 착실한 카톨릭 신자였던 잔은 아버지와의 관계를 끊지도 못하고 매우 고통스러워 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 열렬한 사랑은 3년 후 뇌막염으로 모딜리아니가 사망하면서 이튿날 임신 8개월의 잔이 투신 자살 함으로써 끝을 맺는다
조선 시대에 가문과 정절 이데올로기 때문에 자살을 강요당한 가엾은 미망인들의 죽음과는 또다른 비극성이 느껴진다
임신 8개월이면 출산도 얼마 안 남았으니 모성애 때문에라도 악착같이 살 것 같은데, 대체 모딜리아니를 얼마나 사랑했으면 따라 죽었을까?
그녀가 그린 자화상을 보면 대단히 현대적이고 시원시원한 공간배치가 돋보인다
화가로서의 자의식이 풍부하고 실력도 뛰어났으며 부유한 집안에서 부족할 것 없이 자랐을 이 독실한 카톨릭 신자가 대체 얼마나 깊이 사랑했으면 남편이 죽자마자 출산을 앞둔 몸으로 죽음을 택했을지 쉽게 상상이 안 간다
그저 안타깝고 슬플 따름이다
아이를 키우면서 남편의 그림을 정리하고 화가로서 제 2의 삶을 살 수도 있었을텐데, 왜 극단적인 선택을 했는지 정말 마음이 아프다

화가들이 뽑은 가장 훌륭한 그림이라는 벨라스케스의 "시녀들" 에 등장하는 스페인 공주 마르가리타에 관한 이야기도 나온다
"시녀들" 이라는 그림은 복잡한 배치도 때문에 더욱 유명한데, 펠리페 4세의 큰 신임을 받은 벨라스케스는 두 번째 왕비가 낳은 마르가리타의 초상화를 여러 장 그렸다
당시 스페인 왕실은 오스트리아의 합스부르크 가문과의 근친혼을 통해 혈통을 유지시켰기 때문에 (두 왕실은 뿌리가 같다) 마르가리타는 태어나자마자 약혼자가 정해졌다
당시에는 전화도 없고 비디오도 없으니 해마다 초상화를 그려 미래의 시댁에 인사를 대신했다고 한다
벨라스케스는 왕실 화가가 된 후 자기 직업과 위치를 너무 사랑했으며 펠리페 4세와의 관계도 대단히 끈끈해서 친구 같았다고 하니, 어린 공주에 대한 애정도 컸으리라
저자는 마치 삼촌이 조카를 그리듯, 마르카리타의 초상화에는 화가의 따뜻한 시선이 배어 있다고 말한다
그러고 보니 어린 아이 특유의 천진난만함과 앙증맞음, 그러면서도 공주의 품위를 잃지 않으려는 어색한 딱딱함 등이 잘 녹아난 듯 하다
이 귀여운 공주님은 겨우 22세의 나이로 요절했다

아이를 그린 가장 멋진 그림을 꼽자면 영국 화가 밀레이가 그린 어린 딸 에피를 꼽고 싶다
아버지가 딸을 그려서일까?
다른 초상화에서는 느끼기 힘든 왠지 모를 친근감과 따뜻한 시선이 배어 있다
다섯 살 때 처음으로 교회에 가 설교를 듣는 모습은 어찌나 앙증스러운지 깨물어 주고 싶다
빨간 망토와 성장을 차려 입고 교회 의자에 앉아 나름대로 얌전을 빼는 이 귀여운 꼬마애는, 결국 아버지가 다음 해에 그린 설교 모습에서는 잠이 들고 만다
첫 설교 때는 나름대로 품위를 지키려고 안 졸려고 애를 썼지만, 두 번째 설교부터는 도저히 잠을 참기 힘들었을 것이다
제목도 "나의 첫 설교" 와 "나의 두 번째 설교" 로 그림의 주제를 잘 표현한다
밀레이는 이 그림으로 공전의 히트를 쳤고, 심지어 런던의 대주교는 왜 설교가 길고 지루해서는 안 되는지를 이 그림이 잘 보여 준다는 논평까지 했다고 하니, 그 인기를 알 만 하다

화가들은 대체적으로 성욕이 강했던 것 같다
성욕이야 인간의 본능이니 없는 사람이 이상한 거겠지만, 화가들은 넘치는 에너지를 예술로 승화시키는 놀라운 사람들이다
피카소는 말할 것도 없고, 여기 등장하는 대부분의 화가들이 결혼 관계 외에도 많은 정부들을 뒀다
그런데 오스트리아의 화가 에곤 실레는 좀 독특하다
보통 누드를 그리면서 모델과 깊은 관계가 되기 마련인데, 실레는 어린 여동생을 누드 모델로 썼다
그는 워낙 어린 소녀의 누드를 좋아해서 미성년자 보호법에 걸려 실형을 살기도 했을 정도다
사춘기 시절부터 누드 그리기를 좋아한 이 화가는 어린 나이에 모델 구하기가 힘들어서 그랬는지, 아니면 여동생 게르티의 끼가 훌륭해서 그랬는지 여동생의 누드를 많이 그렸다
단순히 벗겨 놓은 것도 아니고 기묘한 포즈를 많이 취하게 해서 근친상간을 한다는 비난을 들었고 일부 평론가들은 실제로 그럴지도 모른다는 얘기도 한다
겨우 스물 여덟의 나이로 사망한 실레는 직접 그린 자신의 초상화를 보면 꽤나 예민하고 날카롭게 생겼다
그래서인지 누드화도 인물의 형태와 감정을 순식간에 잡아내는 식으로 (어찌보면 커리캐쳐처럼) 날카롭게 그렸다
오빠 앞에서 옷을 벗고 모델을 서는 여동생이라...
요즘도 오해의 소지가 많이 생길 일이다

책에 등장하는 케이스 하나하나가 너무 재밌고 흥미진진 하다
저자의 서문에 밝힌 바대로 예술의 경지를 넘어 인간 삶의 희노애락과 애환이 고스란히 드러나 더욱 감동적이고 흥미롭지 않나 싶다
그림 속의 인물들이 단순히 화가의 재능을 드러내는 도구로서가 아니라 하나의 생생한 인물로 살아서 다가오는 느낌이다
저자의 소망대로 모델들에 관한 연구가 많이 이뤄져서 위대한 예술가와 함께 고민을 나누던 그들의 역할이 제대로 평가받게 됐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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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드 2005-01-14 13: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주헌씨 프랑스 미술 여행기 밖에 못 읽었지만, 참 좋았어요. 이 책도 한 번 읽어봐야겠네요. 기획은 평범한데, 이주헌씨의 글이라면야.

marine 2005-01-14 13: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얼마 전에 "프랑스 미술 여행기" 아빠에게 선물로 받았어요 읽고 리뷰 올려야겠다^^ 이 책도 읽어 보세요 참, "서양화 자신있게 보기" 도 정말 재밌답니다 하이드님의 여행 계획은 잘 진행되고 있나요??

비로그인 2005-07-14 14: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잔 에뷔테른을 판박이처럼 똑같이, 하나도 어긋나지 않고 똑같이 생긴 사람이 있었더랬습니다.
 
아는 여자 (2disc) - 할인행사
장진 감독, 이나영 외 출연 / 아트서비스 / 200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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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다는 네티즌들 평 때문에 봤는데 감독이 장진이란 걸 몰랐다
알았다면 안 봤을텐데 말이다
그의 전작 "간첩 리철진" 이나 "킬러들의 수다" 등을 통해 나하고 장진 감독의 작품은 서로 코드가 안 맞는다는 걸 알았는데 이번 영화를 통해서 다시 한 번 확인했다
배우를 보고 영화를 고르기 보다는 감독을 보고 고르는 게 훨씬 더 안전하다는 사실을 분명히 느끼게 한 영화다
그렇지만 나름대로 상큼하고 따뜻하며 소박한 매력은 있다
특히 청룡영화제 여주 주연상에 빛나는 이나영의 귀여운 연기가 볼 만 하다
짝사랑 하던 남자와 영화를 보러 왔는데 옛 애인을 만나 자신을 그냥 아는 여자라고 소개하는 걸 보고 풀이 죽은 이나영, 영화 볼 때 살짝 물어 본다
"아는 여자가 몇이나 돼요?"
이나영 못지 않게 순진하기 짝이 없는 정재영은 어색한 표정을 던지며 한 마디 내뱉는다
"그 쪽 한 사람 뿐인데요"
그러자 이나영 얼굴, 순간 환하게 밝아지면서 좋아서 어쩔 줄 모르고 웃음을 참는데, 그 표정이 너무 귀여웠다
저런 일상적인 행복의 모습을 잘 포착해 낸 걸 높이 사서 여우 주연상을 받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했다

정재영의 연기는 지루했다
어수룩한 캐릭터 탓도 있겠지만, 또 감독의 요구도 있었겠지만, 어쨌든 너무 답답해서 야, 좀 적극적으로 살아 봐라, 너 야구 선수잖아, 스포츠맨 답게 좀 패기가 있어야지, 혼자 이렇게 중얼거릴 정도였다
보통 스포츠맨이라면 저돌적이고 물불 안 가리는 열정적인 성격으로 묘사되는데, 영화 속의 정재영은 2류 선수도 아닌, 프로 야구팀의 선발이면서도 어찌나 소심하고 답답하며 또 소박하던지...
맨날 지하철 타고 버스 타는 장면만 나와서 무슨 야구 선수가 차도 없냐, 이런 생각까지 했다

영화를 위한 장치였겠지만, 의사의 오진은 소송감이었다
정재영 보고 암이라고 두 달 밖에 못 산다고 하니까 어리숙한 그는, 집을 담보로 1억을 빌려 불쌍한 사람 돕고 산다
그런데 불우 이웃 돕기, 이런 게 아니라 집에 들어 온 도둑에게 개과천선 하라고 돈 쥐어서 보내는 식이다
순진하고 착한 성격이 잘 드러내는 장면이다
1억이나 빌렸으면 원없이 쓰고 화려하게 살아볼텐데 기껏 한다는 게 도둑놈 적선하는 거라니, 참...
어쩜 그래서 이나영처럼 착하고 순진한 아가씨가 몇 년 동안 짝사랑 하는 건지도 모른다

가장 하이라이트는 야구에 대해 전혀 모르는 이나영이 정재영에게 이런 질문을 한다
"공을 잡아서 1루에 안 던지고 관중석으로 던지면 어떻게 되요? 되게 궁금하다"
참 맹한 아가씨다
그런데 두 달 밖에 못 사는 줄 알고 마지막 등판을 한 정재영이 9회 말 투아웃에서 원바운드 된 타자의 공을 잡았는데, 이나영의 소원을 들어 주기 위해 진짜로 관중석에 던져 버린 것이다
아무리 두 달 밖에 못 사는 시한부 인생이라지만 참 대단하다
그 용기가 가상하다
학생들 아마추어 경기도 아니고 프로에서, 그것도 완봉승을 거두기 직전의 순간에 그런 또라이 짓을 하다니, 이건 시한부 인생이고 뭐고 간에 순전히 성격 탓이다
나중에 의사 오진인 거 알고 미쳐서 광분하지만 말이다
(영화와 상관없는 내용이지만 이러니까 암 같은 중요한 질병은 꼭 여러 병원에서 확진해 볼 필요가 있다 가끔 이런 어이없는 실수가 벌어지곤 한다 병원도 사람이 운영하는 곳이니, 어쩔 수 없는 통계상의 오류가 있는 것 같다)

어리숙하지만 순진하고 착한 두 남녀, 이나영과 정재영의 사랑 만들기라고 보면 된다
영화 내용으로 봐서는 이나영이 아주 아깝긴 하지만 초등학교 때 자기 동네로 이사 온 중학생 오빠를 십 여년 동안 짝사랑 한 것이 이뤄졌으니, 대단하다
로맨틱 코메디 영화인데 장진식 코메디라고 보면 된다
"킬러들의 수다" 같은 좀 느리고 어이없는 웃음 코드들이 간간히 섞여 있다
"간첩 리철진" 에서도 느낀 바지만 감독의 성향 자체가 아주 느린 것 같다
전개가 어찌나 천천히 가는지 답답했다
그렇지만 퍽 개성적인 감독임은 분명하다
김정은 나오는 흔한 로맨틱 코메디와는 분명하게 구분되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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