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낭메고 돌아본 일본역사
임용한 지음 / 혜안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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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임용한씨 글을 참 좋아하는지라, 홈페이지에서 답사기가 나왔다는 소식을 듣고 얼른 구입해서 읽었다 올 가을에 일본 여행을 계획하고 있기 때문에 더더욱 열심히 읽게 됐다

사실 나는 3년 전 4박 5일 코스로 일본을 다녀온 적이 있다 여행 상품이 다 거기서 거기인지라 이 책에 나온 곳도 오사카를 제외하고는 전부 다녀왔다 그런데 그 때는 일본에 대한 사전지식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가이드 설명에만 의존해야 했다 그나마 가이드가 있어서 망정이지, 그 설명도 없었더라면, 즉 배낭여행으로 혼자 떠났다면 눈에 비추는 일본의 풍경에 만족하고 왔어야 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나는 가이트 투어를 선호한다)

내 눈에 비친 일본은 굉장히 낯선 곳이었다 지리적으로 가깝다는 이유만으로 나는 일본이 우리와 매우 비슷할 것이라고 착각을 했었다 또 축소지향형이라는 편견 때문에 실제의 모습을 보고 더 놀랬던 것 같다 일본의 절은 우리와 매우 달랐다 우리나라 절이 산 속에 고즈넉 하게 위치한, 수도를 위한 곳처럼 보인 반면, 일본의 절은 굉장히 화려하고 규모가 매우 컸다 정말 일본이 축소지향형인지 굉장히 의심스러웠고, 내가 알고 있던 일본은 내 편견에 불과했던 게 아닌가 의심이 갔다. 특히 성 같은 곳은 한국의 산성들과는 다르게, 마치 유럽의 성처럼 굉장히 웅장했고 천수각은 보는 사람을 압도하는 힘이 있었다 확실히 무사들의 나라다웠다

일본 여행 후 일본에 대한 관심이 부쩍 늘어 관련 책들을 읽던 차에, 좋아하는 작가의 답사기가 나와 굉장히 반가웠다. 역시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던가! 내가 무심코 지나쳤던 유적지들에 대해 꼼꼼하게 역사와 건축 구조 등을 설명해 준다. 역사학을 전공하신 분답게 단순한 감상 위주의 여행기는 아닌지라 실제 여행에 참고하려면 다소 무거운 경향이 있지만, 책을 읽고 간다면 2배는 더 즐거운 여행이 되리라 확신한다. 특히 일본의 성에 대한 설명은 매우 자세하다. 전공인 만큼 보는 눈도 남다름을 느꼈다 그 분의 다음 저서가 될 임진왜란 편이 더욱 기대되는 바다.

일본의 역사를 잘 모르기 때문에 지난 번 여행이 수박 겉핥기에 지나지 않았던 것 같다. 답사기를 읽으면서 헤이안 시대와 전국 시대, 그리고 에도 막부 등에 대한 기본 지식을 얻을 수 있었다. 이 책의 장점을 꼽자면, (사실 저자의 장점이기도 한데) 현상만을 나열하는데 그치지 않고, 그 현상이 나오게 된 사회적 배경을 꼼꼼하게 짚어준다는 데 있다. 단순히 일본인의 국민성이 그렇다는 식으로 간단하게 넘어가지 않는다 또 그런 배경을 알기 위해 역사학자들의 가르침이 필요한 게 아닌가 싶다. 무책임하게 한국인은 맞아야 정신을 차린다던지, 일본인은 원래 깨끗하고 부지런하다든지, 몇 대째 걸쳐 가업을 이을 정도로 장인 정신이 뛰어난 사람이라든지 이런 식의 무비판적인 찬양이라던가, 아니면 반대로 일본 얘기만 나오면 군국주의의 화신이라는 식으로 매도하는 것도 참 부담스럽다 그런데 저자는 겉으로 드러나는 현상에 숨겨진 사회적 배경을 짚어줌으로써 근본적으로 모든 인간은 보편적인 특성을 지니고 있음을 보여 준다 결국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남의 지배를 받아야 할 만큼 열등한 민족도 없고 반대로 남을 지배할 만큼 위대한 민족도 없다는 얘기다

일본에 대한 경계심이 워낙 높아서인지, 일본의 군국주의적 특성에 대한 비판은 매우 조심스러운 경향이 있다 신사에 대한 설명은, 매우 유용했다 일본인들 입장에서 보면 전쟁으로 희생된 사람들의 넋을 위로하는 우리 식으로 하자면 국립묘지 격이 바로 신사라고 한다. 한 발 더 나아가 전쟁을 일으킨 전범까지도 받들기 때문에 문제가 되고 있지만 어쨌든 죽은 이를 신으로 모시는 일본 특유의 무속 신앙이 들어 있는 독특한 곳이 바로 신사라는 것을 알게 됐다

책에 아쉬운 점이 있다면, 여행 경로를 표시한 지도가 없다는 점과 칼라 사진이 몇 장 첨부됐으면 좋겠다는 점이다 400페이지를 넘기 때문에 이미 15000원이라는 만만치 않은 가격이지만 흑백 사진만 실려 있어 아쉬웠다 다시 한 번 꼼꼼하게 읽은 후 가을에는 제대로 일본 여행을 다녀올 생각이다 좋은 책이 홍보 부족으로 묻히는 것 같아 참 안타깝다 혹시 일본 여행을 하실 계획이 있는 분이라면 강력 추천하는 바다 단 다소 수준있는 글이라 한번에 죽 읽히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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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ine 2006-08-15 00: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작보다는 다소 재미가 떨어지지만, 읽은 보람은 있습니다
이런 책들 홍보 좀 많이 하면 좋을텐데 늘 아쉬워요

비로그인 2006-09-20 22: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단 혜안에서 나온책이니 신뢰갑니다. 혜안이 일본역사전문출판사죠. 저도 서점에서 살펴보고 만족해서 다음달에 살려고 하는데 님의 리뷰에 별이 3개라 의아했는데 평은 좋군요.아마 칼라사진이 있으면 책값이 올라서 흑백으로 했겠죠. 분량에 비하면 값은 보통 학술서정도네요.
 
악마의 사도 - 도킨스가 들려주는 종교, 철학 그리고 과학 이야기
리처드 도킨스 지음, 이한음 옮김 / 바다출판사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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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바이러스의 세가지 특징

 

1. 신념적

2. 증거 부족

3. 수수께끼 상태를 유지하고 싶어 함

 

도킨스가 비판하는 점은, 종교가 아무런 근거도 없으면서 무조건 믿도록 강요한다는 것이다

사실 종교의 경직성과 무비판적인 태도는 비난받아 마땅하다

마녀 재판식의 판결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의심하면 일단 믿음이 부족한 것으로 본다

절대 교리를 의심해서는 안 된다

근거를 대라고 하는 것은 믿음이 부족하다는 증거다

이성적으로 사유하면 이미 그것은 종교가 아니다

의심많은 도마라는 말처럼 모욕적인 단어도 없을 것이다

보지 않고 믿는 자에게 복이 있다는 식으로, 뭐든지 신의 특별한 계획이란 식으로 넘어가고 이런 신비주의를 강화함으로써 더더욱 종교의 교리는 절대적이고 교조적으로 변해 간다

 

도킨스의 지적한 바대로, 성체 의식 역시 예수님의 몸과 피라는 상징적 의미만으로도 충분히 믿음을 환기시킬 수 있다

그런데 어떤 사제들은, (혹시 이것이 카톨릭의 공식 교리인지도 모른다) 실제로 빵과 포도주가 육화됐다고 믿는다

화학적인 변화를 거쳤다는 식으로 말이다

상징적인 의미 부여만 해도 충분할 것을, 종교의 절대적인 권위에 기대어 말도 안 되는 오버를 하는 것이다

그러니 포도주가 피가 됐다는 식의 논리를 어떻게 자연과학자들이 받아들이겠는가?

더구나 이것에 대해 구체적으로 따지고 들면 믿음이 부족하다는 식으로 몰아 부치니, 과학하는 사람들이 종교와 화합하기란 참 요원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나도 종교의 그 교조적인 분위기가 싫다

믿음과 교회는 별개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교회 시스템의 무오류설이 부담스럽다

하나님의 말씀을 제멋대로 조작하고 마음대로 해석해 버리는 듯한 느낌을 피할 수가 없다

신도들의 믿음을 권력의 기반으로 사용하는 것 같다

실제로 카톨릭이 권력을 얻은 중세 천년간 하나님의 이름을 빗대어 엄청난 권력 전횡과 범죄들이 일어나지 않았던가?

도킨스는 종교에 부당한 권력이 주어짐을 비판하는 것이다

지금도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은 신의 이름으로 테러를 가하고, 여성들을 핍박한다

신에 대한 논쟁은 접어두고서라도, 기존 종교인들의 행태는 비난받아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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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적 믿음에 대한 몇 가지 철학적 반성 책세상문고 우리시대 22
이태하 지음 / 책세상 / 200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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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읽은 줄 알았는데 절반 정도 읽었다

어찌나 줄을 열심히 그어 댔는지 다시 보기 싫을 정도다

앞으로 철학이라고 이름붙은 책은 안 보려고 한다

너무 어렵다

철학에 대한 건 형이상학적이고 눈에 보이지 않는 실체를 가지고 논하기 때문에 너무 사변적이다

그리고 말을 위한 말이 되기 쉽다

상당히 부담스럽다

 

왜 도덕적 개인은 많아지는데 사회는 점점 타락해지는가?

사회가 타락해진다는 말도 믿을 수 없다

과거 어느 시대에 비해 얼마큼 타락했단 얘긴가?

타락의 근거가 뭔가?

인간의 속성이 비슷하듯 그들이 이루는 사회도 다 오십보 백보였다고 생각한다

특별히 도덕적인 시대가 과연 있었을까?

어쨌든 개인은 도덕적일 수 있으나 사회가 비도덕적인 이유는 인간이 집단을 이룰 때 집단의 이익을 먼저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집단 이기심을 제어할 수 있는 제도 정비가 우선이라는 것이다

단순히 개인의 도덕심 정도로 생각할 문제가 아니라고 본다

일리있는 지적이다

그런데 그 개인도 그다지 도덕적이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루이스는 양심, 절대적인 도덕률을 들어 신이 인간의 내면에 명령한 소리라고 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공동체에서 함께 살아가기 위해 즉 비난을 피하기 위해 상식 수준에서 도덕을 지킨다

물론 살인 같은 끔찍한 범죄는 누가 보든 안 보든 쉽게 저지르기 힘들지만 아무도 없는 곳에서 지갑을 주웠다면 경찰서에 가져다 주는 것 보다 그냥 쓰는 게 훨씬 더 일반적이고 인간의 본성에 맞는 행동일 것 같다


 

"종교개혁 당시 농민들이 복음의 원리를 사회적 평등의 원리로 이해하고 천국을 이 땅에 실현시키려고 했을 때 루터가 봉건제후들의 편에 서서 농민들에 대항했던 것처럼, 오늘날 영향력 있는 성직자들 역시 사회적 평화 뒤에 숨은 불의와 억압의 요소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사회의 기득권층이 되어 무비판적으로 현존하는 질서를 유지하고자 하는 보수주의의 입장에 서 있다 기독교가 신비적 종교로서의 신약적 측면 그리고 예언자적 종교로서의 구약적 측면이라는 이중성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중요한 것은 이 두 가지 측면이 억압받는 자에게는 체념을, 압제하는 자에게는 용기를 주는 잘못된 방식으로 해석되고 적용된다는 것이다 만약 정의롭지 못한 사회구조를 정확하게 직시하고 잘못된 점을 용기있게 말할 수 있는 성직자라면 억압받는 자들에게는 신음하는 백성의 외침에 응답하는 하나님의 모습을 그리고 있는 구약의 종교를 통해 삶의 의지를 북돋아 줄 것이다 반면에 압제하는 자들에게는 내세의 심판과 천국을 그리고 있는 신약의 종교를 통해 자신이 지닌 부와 권력이 영속될 것처럼 살아가는 사람들의 오만을 겸손으로 변모시킬 것이다 이와 같이 성직자들이 기존의 질서에 존재하는 불의를 올바르게 인식하고 그것에 대한 건전한 비판 세력이 될 때 종교는 비로소 사회의 정의를 실현하고 사회를 도덕화하는 데 일조할 수 있다"

 

좋은 말이긴 하지만, 완전히 동의할 수는 없다

과연 종교가 사회를 도덕화 시킬 수 있을까?

종교라는 이름으로 사회에 관여한다는 게 옳은 일일까?

루이스에 따르면, 성직자들은 천국을 약속받은 사람들을 영적으로 이끌기 위해 교육받은 사람들이기 때문에, 사회 제도나 운영 체제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한다고 했다

그러므로 그들은 사회 개혁의  주체가 되지 못한다

잘 모르는 일에는 나서지 말아야 하는 게 아닐까?

물론 박정희 시대 때는 숨죽이고 독재 정권에 협력하면서 경제 개발의 특혜를 누린 교회가, 누구나 다 말할 수 있는 민주화 시대가 오자 사학법 들먹이면서 나라 구한답시고 구국 기도회를 여는 모습은 가소롭기 짝이 없다

내가 생각하기에 성직자는 말 그대로 성직을 수행하면 될 것 같다

사회의 도덕화 문제로 고민할 필요도 없고 (능력이 안 된다고 본다)교인들의 영적인 삶을 이끌기 위해 애써야 하지 않을까?

종교가 사회에 관여하면 (도덕화든 어떤 명분이든) 곧 하나의 권력으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에 늘 사회참여는, 특히 종교의 힘이 센 사회에서는 많은 주의를 요한다고 생각한다

정말 사회를 도덕화 시키려면 보이지 않는 곳에서 국가가 미처 신경쓰지 못한 복지 부분에서 조용히 일해야 하지 않을까?

어떤 의미로든 종교는 영적이 삶을 책임져야지, 절대 사회 권력화 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종교란 궁극적으로 개인적이고 인격적인 신의 체험이라고 말할 수 있지만 곧 개인적 체험의 절대화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난다는 성서의 구절처럼 개인의 종교적 체험은 경전의 이해와 해석에 의존하며 이해와 해석은 불완전한 인간에 의존하기에 종교적 체험을 절대화하는 것은 자칫 자신의 주관을 절대화하는 오류에 빠질 수 있다"

 

기독교는 배타적 종교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을 통하지 않고는 절대 스스로 구원받을 수 없다

그러므로 불교 같은 자력종교는 구원 자체가 불가능 하다

이슬람은 어떤 교리인지 모르겠으나 하여간 적어도 내가 알기에 불교신자는 신에게 구원받을 수 없다

그러나 기독교도가 말하는 신만이 옳다는 것도 아집이고 독선일 수 있다

내가 이해한 바로는, 절대자 즉 야훼 하나님을 대면하는 방식이 서로 다른 게 아닌가 싶다

카톨릭에서 선언한 바대로, 교회 밖에서도 구원이 있을 수 있다고 해야 하나?

루이스의 저서에도 타종교의 경우 자신은 느끼지 못하지만 점점 우리가 믿는 구원 쪽으로 변해가는 경우를 설명했다

방식은 다르지만 믿음과 성찰을 통해, 교회를 통한 방법보다는 돌아가는, 빠르지 않은 길이지만 어쨌든 하나님께로 가고 있는 사람들이 분명히 있을 거라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종교적 관용은 인정되야 하는 게 아닐까?


 

"우리가 극심한 고통을 당하는 당사자라면 이 고통이 죄의 대가라는 질책, 천국에서 영생하는 상급이 있을 것이라는 위로 그 어느 것 하나 우리에게 참된 답이 될 수는 없다는 것을 파늘루 신부는 깨닫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므로 고통 속에 있는 당사자에게 필요한 것은 실질적으로 아무런 위안도 되지 않는 악에 대한 해명이 아니다 고통 속에 있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파늘루 신부처럼 비록 이해할 수는 없지만 성스러운 신의 의지를 신뢰하면서 모든 것을 신의 뜻에 맡기고 어둠 속에서 더듬거리며 계속해서 전진해나가며 선을 행하려고 노력하는 신앙의 결단일 것이다 또는 고통 속에 부르짖는 인간에 대해 침묵하는 냉혹한 신을 믿기보다는 신 없는 성자가 되기를 원하며 자원봉사대를 조직해 페스트와 맞서 싸우는 리유와 장 타루처럼 어둠 속을 맹목적으로 헤쳐나가는 비신앙의 결단이 필요한 것이다"

 

"사실 영생의 기쁨이 순간적인 인간의 고통을 보상해 줄 수 있다고 누가 감히 단언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런 소리를 하는 자는 몸소 육체와 영혼의 고통을 맛본 주님을 섬기고 있는 기독교인이라고는 결코 말할 수 없으리라

 

기독교인은 신의 성스러운 의지에 자신을 내맡길 줄 알아야 할 것이다 나는 그것을 이해하지만 그러나 그것을 받아들일 수는 없다는 말을 할 수는 없다 우리에게 닥쳐온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의 핵심을 향해서 바로 우리의 선택을 하기 위하여 뛰어들어야만 한다 어린아이들이 겪은 고통은 우리들에게 쓴 빵과 같다 그러나 그 빵 없이는 우리들의 영혼은 정신적인 굶주림으로 죽고 말 것이다"

 

극심한 고통 속에 헤맬 때 마땅히 네 죄 때문에 받아야 하는 댓가이므로 감사하게 생각하라는 성직자가 있다면 당신이 한 번 당해 보라고 되받아 치고 싶을 것이다

다리를 절거나 말을 못하는 등의 선천적 불구가 하나님이 당신을 더욱 사랑하시고 천국의 자리가 더 높기 때문이라고 위로한다면, 당신이 그 자리에 앉고 나 대신 불구가 돼보라고 쏘아 주고 싶을 것이다

누구나 자기가 겪지 않는 고통에 대해서는 쉽게 말할 수 있다

그래서 위로랍시고 하는 얘기들이 오히려 더욱 큰 분노를 불러 일으키게 된다

왜냐면 그저 피상적인 이해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만약 상대방이 위로마저 하지 않는다면 그렇다고 해서 내가 상대에게 화를 낼 권리가 있는 것도 아니다

내 불행은 오로지 나에게만 국한된 것이고 누구의 잘못으로 대신 겪고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므로 남에게 분노를 쏟아낼 아무 권리도 없다

한술 더 떠서 상대가 비난하고 조롱한다 해도 나는 대항할 능력조차 없다

이미 불행해져서 방어할 능력조차 사라진 상태기 때문이다

 어떤 실직자가 있다

그는 주변 사람들이 자신이 얼마나 불행한지 제대로 알아 주지 않는다면서 왜 나를 이해해 주지 않냐고 화를 낸다

그러나 냉정하게 따지자면 그는 가족을 위해서 자신을 희생하다가 불행해진 것이 아니다

그저 자기 잘못으로 자기 책임으로 오늘날의 비참한 상태에 이른 것이다

그러므로 누구도 그에게 빚진 사람도 없고 분노와 노여움을 받아 줄 의무가 있는 사람도 없고 굳이 이해를 하러 들 필요도 없다

오히려 그가 주변의 호의를 구해야 하는 처지다

그런데도 단지 가족이라는 이유만으로, 혹은 자신이 남들보다 불행하다는 이유만으로 (억울하게도 말이다) 주변 사람들에게 무한한 인내와 호의를 당연하게 기대한다

우리가 흔히 저지르기 쉬운 오류다

내가 불구가 된 것은 누구 탓도 아니다

세상이 나에게 잘못한 것도 아니고 하나님이 내게 잘못하신 것도 아니다

나는 다만 열등하게 태어났을 뿐이다

무시당해야 마땅한 약자이지만, 도덕이나 동정심 같은 인간 본연의 아름다운 심성에 기대어, 혹은 종교나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나는 이해받고 배려받는 넘치는 호의를 누리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내 불행을 세상탓 하고 하나님 탓하는 사람은 남에게 책임을 전가시키는 어리석은 사람에 불과하다

절름발이가 착하다는 편견을 버리라는 니체의 일갈이 생각난다


 

다양한 기독교적 해석을 읽으면서 다소간의 안심이 된다

신전통주의나 자유주의 신학처럼 과학과 신학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이기 때문에 얼마든지 양립할 수 있고, 성경의 말씀이 전부 사실이라 할지라도 그것을 해석하는 것은 인간의 몫이기 때문에 다양한 관점이 있을 수 있음을 깨달았다

그러니까 나는 지금까지 한국 교회의 보수적이고 극단적인 창조론에 입각한 성경무오류설 같은 한쪽 교리만 접하면서 고민해 왔던 것이다

성경의 말씀이 전부 사실이라 할지라도 그것을 어떻게 해석하느냐는 다른 문제로 남는다

특정 교회의 일방적이고 독선적인 해석을 따르지 않는다고 해서 구원이 사라지는 것은 결코 아님을 알았다

내가 믿는 하나님과 진화론은 얼마든지 함께 설명할 수 있고, 갈릴레이의 말처럼 하나님을 말씀을 통해 즉 성경을 통해 계시하기도 하지만, 자연을 통해서 계시하시기도 한다

그렇다면 과학이야 말로 하나님이 창조하신 우주의 비밀을 푸는 가장 중요한 방법이 아니겠는가?

그래서 뉴턴이나 갈릴레이 같은 위대한 과학자들도 독실한 신앙인이었던 모양이다

하나님을 배격하는 것이 아니라, 잘못된 해석을 하는 성직자들을 반대할 뿐이다

신의 존재를 가지고 왈가왈부 하는 게 아니라, 신의 말씀에 대한 해석을 놓고 다양한 의견을 제시하는 것이다

그렇게 따지면 페미니즘과 신앙도 훌륭하게 조화될 수 있다고 믿는다

 

좀 더 다양한 신학적 관점을 알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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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역사인가 신화인가 책세상문고 우리시대 93
정승우 지음 / 책세상 / 200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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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책을 읽는가?

카프카의 말처럼 우리의 머리를 도끼로 내리치는 정신의 각성이 없다면 굳이 시간을 내서 글자 속에 파묻힐 까닭이 없지 않겠는가?

더구나 요즘처럼 정보가 넘쳐나고 문자의 위치가 낮아지는 세상에 말이다

책은 오락거리로서의 위치조차 잃어 가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내 신앙에 대해 깊이 고민하게 됐다

나를 돌아볼 수 있게 하는 것, 단순히 지식을 얻기 위함이 아니라 내 가치관과 행동에 변화를 주는 것, 이것이 독서의 진정한 의미일 것이다

 

값싼 은혜를 구하지 말고 그리스도의 부름에 실존적으로 응답해야 한다는 저자의 결론이 마음에 큰 울림을 준다

단순히 기복신앙적으로 혹은 사후 세계에 대한 보험 정도로 신앙을 생각한다면 진정한 믿음이 아닐 것이다

나는 현세에 복을 준다는 기복신앙 면에서는 별 관심이 없었지만, 내 영혼의 구원에는 관심이 많았다

키에르케고르의 말을 빌리자면 신이 있다고 믿어서 손해날 게 없기 때문에 만약 있을 경우 안 믿었다면 영혼 구제를 못 받고, 없더라도 굳이 손해 볼 것은 없기 때문에 그런 심정으로 하나님을 찾았다

솔직히 말하면 그 정도 믿음 밖에 안 되기 때문에 굳이 복을 달라, 기도하지 않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면서 신앙은 단순히 영혼의 구원 문제로 끝나는 게 아니라는 걸 알았다

또 슈바이처야 말로 얼마나 위대한 신앙인인지도 느낄 수 있었다

슈바이처는 그리스도의 부름에 답하여 직접 행동으로 응답한 사람이다

우리는 단지 하나님을 부를 뿐 누구도 그 분의 부름에 대답하지 않는다

교회 열심히 나가고 복달라고 기도 많이 하고  나와 다른 신앙을 가진 사람을 불쌍하게 여기고 배척하는 것이 믿음의 전부라고 생각한다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가!!

 

페스트에서 인용된 것처럼 왜 하나님은 악을 만드셨나 학문적으로 고민하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

모든 의문과 고통 속에서도 신이 주신 고난의 길을 헤쳐나가고 내 삶 속에서 그 분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이 진정한 믿음일 것이다

믿지 않더라도 페스트 환자들을 돌보는 그 의사가 오히려 더 진정한 신앙인일지도 모른다

행동하는 그리스도인!!

 

저자의 말대로 예수는 한가롭게 서재에 앉아 신학 논쟁을 벌이는 현학자가 아니었다

로마의 식민 통치에 신음하는 민중들을 직접 치유하면서 그들의 삶을 보듬어 주고 창녀와 문둥병자와 세리들과 불구자들과 가난한 모든 이들의 상처를 다 어루만져 주셨고 새로운 세계가 오리라 확신을 준 분이다

부활 이후 하늘로 올라가신 하나님으로서의 예수만 찾는다면 정말 우리는 그 분의 육신을 부인하는 가현설의 오류에 빠질지도 모른다

기독교는 역사 속에서 인간의 몸으로 1세기 팔레스타인에서 살다 가신 예수를 내 주님으로 고백하는 종교다

그런데 그 분의 인성은 무시하고 오직 하늘에 계신 신성만 강조하면서 영적 측면의 믿음만 찾는다면 그리스도가 직접 세상에 오신 의의가 퇴색될 것이다

 

나는 그 동안 종교인의 사회 참여에 대해 매우 부정적이었다

종교가 목소리를 키우면서 권력을 얻길 원한다고 생각해서였다

물론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함없다

다만 행동하는 그리스도인이라는 패러다임은 반드시 가져야 할 것 같다

일부 목사님은 봉사 활동이 중요한 게 아니라고 하지만, 실천하는 그리스도인도 신앙인의 중요한 정체성이라고 생각한다

가난한 이를 돌보고 자선을 베풀고 우리 주님께서 그러했듯 사회의 가장 낮은 이를 감싸안을 수 있을 때 비로소 주님께서 세상에 내려 오신 뜻을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뭔가 앞이 좀 보이는 기분이다

 

단지 책만 읽고 지식을 축적하는데 끝난다면 읽었을 때와 안 읽었을 때의 차이가 없다

오히려 지적 교만만 더 커질지도 모른다

행동의 변화, 내 삶에 적용하기, 가치관의 재형성 이런 중요한 변화들이 반드시 뒤따라야 진정한 독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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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교문화와 여성 살림지식총서 74
김미영 지음 / 살림 / 200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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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잘 써진 책이다

100페이지의 짧은 분량으로 어쩜 이렇게 주제 분석을 확실하게 했는지, 저자의 논문 쓰는 실력이 놀랍다

왜 가부장제와 유교 문화가 현대 사회에 맞지 않는지를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음양 오행설에 기초한 유교 문화는 수직적 위계 질서를 근본으로 한다

그러므로 수평적 관계가 핵심을 이루는 현대 사회에 어울리지 않는다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아무리 포장을 해도 혹은 신유학이란 이름으로 탈바꿈을 한다 해도 유교가 가지고 있는 근본적인 속성인 남녀차별과 수직질서는 절대 바뀔 수가 없다

이게 바로 핵심 사상인데 이 차별의식이 사라진다면 어떻게 유교라고 명명할 수 있겠는가?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는 말은, 절대 감정적으로 흘려 들을 말이 아니다

공자의 뜻을 아무리 현대적으로 잘 해석한다 할지라도, 평등 원리와 배척되는 사상을 현대 사회에 적용할 수는 없다

어떤 사상이든 혹은 전통이든 지금 살고 있는 사회에 적합할 때만 살아남을 수 있고 의미가 있는 법이다

혹시 내가 유교의 참뜻을 오해하고 있지 않았나 하는 불안감을 확실히 떨쳐낼 수 있는 계기가 된 책이다

 

왜 한국 남성들이 여전히 남자와 여자의 할 일이 따로 있다고 생각하는지, 맞벌이를 하든 안 하든 집안일은 여자의 일로 생각하는지, 자식교육에 그토록 헌신적인지, 여성의 사회진출에 대해 부정적인지, 아직도 아내에게 폭력을 휘두르는지 분명히 알겠다

그들이 가진 사고 체계로는 당연한 일이다

여성은 남성에게 예속된 존재라는 것이 유교의 핵심이다

모든 것은 음양으로 나뉠 수 있는데 음은 연약하고 악한 것이고, 양은 강하고 선한 것이다

그러므로 음에 해당하는 여성은 양인 남자 없이는 절대 덕을 이룰 수가 없다

여자는 반드시 남자의 이끌림을 받아야만 자신의 약함을 덮을 수 있다

삼종지도는 괜히 나온 말이 아니다

음양론에 입각한 대단히 철학적인 규범이다

혼자서는 인간의 덕을 이룰 수 없는, 태생적으로 약하고 악한 (약하기 때문에 유혹에 빠지기 쉽다는 의미에서 약한 것이 곧 악하다는 얘길까?) 여자는, 어려서는 아버지의 양으로, 시집가서는 남편의 양으로, 늙어서는 아들의 양으로 자신의 허물을 덮어야만 한다

그러므로 결혼하지 않는 여자는 인간으로서의 기본 성품조차 가질 수 없는 천한 존재가 되고 만다

아들을 낳지 못하는 여성 역시 마찬가지다

집안의 대를 잇지 못함은 물론이고, 늙어서 자신의 허물을 덮어주고 덕으로 이끌어 줄 양인 아들이 없기 때문에 인간으로서의 정체성을 잃게 된다

 

여성의 의리는 오직 하나, 바로 정절이다

남성은 신의나 충성, 효 같은 다양한 의리가 있기 때문에 색을 밝힌다 해도 다른 행위를 통해 만회할 수 있다

그러나 여성은 오직 정절 외에는 지킬 수 있는 도덕 자체가 없기 때문에 이것을 잃어 버리면 인간으로서 가치가 끝장나게 된다

그래서 정절을 잃으면 자살까지 감행했나 보다

한 마디로 살아 있을 가치가 없는 셈이다

그래서 가장은 집안 여자들의 정절을 지키기 위해 그녀들의 섹슈얼리티를 철저하게 통제한다

좀 더 비약시키자면 이슬람 사회의 명예살인도 이런 논리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다

여성의 유일한 덕인 정절을 잃어 버리면 다시는 인간으로서의 가치를 회복할 수도 없고, 집안의 수치가 되기 때문에 가장은 딸을 죽임으로써 가문의 명예를 회복하게 된다

조선 시대에도 딸이 강간당하면 강간범을 고소하는 것이 아니라, 딸에게 자살을 명령했다

말이 자살이지 명백한 자녀 살해다

 

한대 유학이 국가의 통치 윤리로 작용해 충을 가장 중요시 했던 반면, 송명의 성리학은 가족을 기본 단위로 봤기 때문에 효를 더 강조했다

송명대의 국가 통치 단위는 향촌이었다

향촌은 가족 단위로 구성된 사회이므로 자연히 유학은 가정 내에서 실천됐다

효 역시 수직 질서를 기본으로 하기 때문에 부모는 자식에게 절대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자식은 부모를 계승해야 한다

자식은 부모를 빛내기 위해 애를 쓰지만 절대 그 공덕을 내세워서는 안 되고 모든 공은 다 부모에게 돌려야 한다

오행 중 흙에 해당하는 덕이라고 한다

철저하게 복종하고 희생함으로써 부모와 왕을 돋보이게 하는 것이 흙의 속성이다

자신은 드러내지 않고 주변을 빛내는 속성 때문에 오행 중 가장 훌륭한 덕목으로 칭송받는다

 

부부관계의 기본 원리는 국가와 신하처럼 음양론에 입각한다

남편과 국가는 양이고 아내와 신하는 음이다

양은 긍정적이고 강하고 선한 모든 좋은 것들을 가리키고, 음은 반대로 부정적이고 약하고 악한 모든 나쁜 것을 총괄한다

음은 혼자 설 수 없기 때문에 반드시 양의 이끌림을 받아야 한다

양인 가장은 음인 아내와 자식을 이끌어야 하기 때문에 강함으로 엄격하게 집안을 다스려야 한다

왜 엄한 아버지 혹은 과묵한 아버지상이 한국 아버지들의 표준상인이 알 것 같다

양의 속성이 바로 강함이다

가장은 집안 사람들을 강함으로 이끌어야 한다

가장을 정점으로 한 가부장제 시스템은 더이상 현대 사회에 맞지 않다

남편은 돈벌고 아내는 집안일을 하는 시스템은, 이미 맞벌이 부부가 50%를 넘어가는 상황에서 맞지도 않을 뿐더러, 수평적인 관계를 지향하는 현대 사회에 더이상 어울리지 않는다

음양오행설에 입각해 남자와 여자의 역할이 따로 있다는 말을 아직도 신봉하면서 남녀차별의 근거로 삼는 행동은 마초짓에 불과하다

 

이제 대한민국도 유교질서를 포기해야 한다

서구 사회가 가부장제의 급속한 해체를 통해 시민사회로 거듭난데 비해, 동양은 유교 사상을 더욱 강화시킴으로써 서구화에 대응하고 있다

개인의 존재가 인정되지 않는 수직적 유교 원리는 이제 기득권을 포기해야 한다

이러니 윗사람에게 대꾸하면 버릇없는 걸로 찍히고 관습에 도전하면 왕따 당하는 거 아니겠는가?

유교가 지배하는 사회는 절대 발전할 수 없다

창의력이 생명인 21세기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너무나 구태의연하고 고루한 사고방식이다

 

더구나 독신자 비율이 늘어가고 이혼률도 상승하는데 가정 안에서만 여성의 지위를 보장하는 유교는 현대 여성에게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가정을 벗어난 여성에게 얼마나 가혹한 제재를 가하는지만 봐도 유교의 편협한 배타성을 알 수 있다

기본적으로 유교는 여성이 혼자 설 수 있다는 사실 자체를 부인한다

여성은 남성의 이끌림을 받을 때만 인간의 도리를 할 수 있는 존재로 본다

페미니즘은 절대 유교와 화해할 수 없다

 

유교는 성욕을, 하고자 하는 욕구로 봤다

반드시 섹스만 의미하는 게 아니라, 어떤 일을 하고 싶어하는 일반적인 욕망을 성욕으로 규정하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서구 사회가 기독교적 금욕사회였던 것과 비교된다

그런데 재밌는 건 이 자연스러운 욕구는 남성에게만 해당되는 말이다

물론 무한정으로 남성의 성욕을 보장한 건 아니다

예를 실천함으로써 덕을 이루는 것이 군자이기 때문에, 성욕 역시 예를 통해 적절하게 다스려야 한다고 봤다

뭐든지 하나에 몰두하고 빠지면 나쁘다는 의미로 적절한 조절을 요구했다

또 지나치게 섹스에 몰두하면 건강에 해롭고 다른 좋은 일을 못하기 때문에 자제력이 필요하다고 했다

반면 여자는 남편에게 의리를 지킨다는 의미에서 성욕을 억제해야 한다

가정 밖에서 색을 밝힌다는 건 있을 수도 없는 일이고, 집에서도 음의 기운이 양을 덮으면 악함으로 빠진다고 했다

유교 문화에서 여성은 모든 면에서 수동적일 수 밖에 없다

능동적으로 뭔가를 주도하면 양을 누르고 악함으로 빠지게 된다

음양론에 따르면 여자의 속성이 음이기 때문에 절대 스스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존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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