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권의 십자군 이야기 4 - 무슬림의 역습과 인간 살라딘 김태권의 십자군 이야기 4
김태권 글.그림 / 비아북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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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권에 드디어 살라딘이 등장한다.

앞서 읽은 <누가 이슬람을 지배하는가>에서 매력적으로 그려진 살라딘이 주인공이라 기대가 컸는데 만화라는 형식의 한계인가, 산만하기 그지 없어 제대로 알기가 어려웠다.

아무래도 시오노 나나미의 <십자군 이야기>를 읽어봐야겠다.

그래도 수많은 등장 인물들과 십자군 나라와 이슬람 지역 국가들이 어느 정도 윤곽이 잡혀 조금씩 이해가 된다.


<인상 깊은 구절>

23p

역사적으로는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예언자들이 사악하다고 한 왕들은 주변의 강대국에게 공물을 바치거나 이교도 숭배를 허락함으로써 평화와 생존을 유지했으며, 오히려 그들이 경겅하다고 한 왕들은 공물을 거부하고 이교도 제사를 금함으로써 나라를 위리고 몰아넣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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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권의 십자군 이야기 3 - 예루살렘 왕국과 멜리장드 김태권의 십자군 이야기 3
김태권 글.그림 / 비아북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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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의 힘인가, 술술 잘 넘어간다.

3권의 주인공은 모술의 군주 장기와, 예루살렘 왕국의 보두앵 2세와 그의 두 딸, 멜리장드와 알릭스다.

앞서 읽은 <누가 이슬람을 지배하는가>에서는 이 부분이 자세히 나왔는데 이 책에서는 너무 소략된 것 같아 아쉽다.

이슬람 역사를 설명하는 첫 부분에서, 선지자 무함마드의 얼굴을 그리지 말라는 이슬람의 문화를 존중해 얼굴을 베일로 가린다.

종교를 믿지 않는 사람이 종교의 계율을 왜 지켜야 하는가?

그렇게 따지면 기독교나 불교의 금기도 다 지켜줘야 공평하지 않나?

표현의 자유라는 측면에서 저자의 오버스런 행동이 부담스럽다.

이슬람 세력이 스페인을 지배했을 때 오히려 문화가 융성하고 유대인과 기독교인이 함께 어우러졌고, 레콩키스타 후 관용이 사라져 끔찍한 시절을 보냈다고 하는데, 스페인 입장에서는 이슬람 세력이야 말로 명백한 외세의 지배가 아닌가?

아무리 관용의 정책을 쓰면 뭐하나.

결국은 외부의 압제자인데 말이다.

마치 일제 시대 때 조선이 근대화의 기반을 만들었다던가, 영국의 인도 지배는 문화적이었다는 맥락과 비슷하게 들린다.

스페인 입장에서는 레콩키스타야 말로 민족국가의 틀을 만든 위대한 역사적 사건이 아니겠는가.

편파적 서술이라는 거부감이 생기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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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권의 십자군 이야기 2 - 1차 십자군과 보에몽, 개정판 김태권의 십자군 이야기 2
김태권 글.그림 / 비아북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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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권의 주인공은 군중 십자군에 이어 본격적으로 1차 십자군을 이끌고 온 보에몽과 고드프루아, 레몽의 이야기다.

안티오키아 공국을 세운 보에몽 1세가 주인공이다.

아버지 사후 새어머니에게 영지를 뺏겨 머나먼 중동으로 땅을 찾아 떠난 기사는 안티오키아를 차지하지만 조카인 탕크레드에게 뺏기고 시체로까지 위장해 다시 유럽으로 돌아온다.

그는 필리프 1세의 사위가 되서 동로마 원정을 떠나는 것으로 2권이 마무리 된다.

읽다 보니 흡인력이 있다.

은자 피에로는 롱기누스의 창을 발견했다고 여론 조작에 이용되다가 불의 심판을 받고 죽고 만다.

카르미나 부라나라는 곡이 삽입되었는데 변덕스러운 운명을 한탄하면서 스러져가는 영웅들의 마지막이 인상적이다.

누가 봐도 훌륭한 자질을 가진 영웅이 파멸하는 것은 운명 탓이 아니라면 자신의 오만 때문이라는 말도 기억에 남는다.

힘이 정의인가, 올바른 것이 정의인가의 논쟁도 흥미로웠다.

소크라테스나 플라톤이 인용되는데 과연 괜히 위대한 철학자가 아니었구나 싶을 정도로 공감이 간다.

보통 의사가 돈을 벌기 위해 환자를 치료한다고 하지만, 정말로 의사가 돈을 최종 목적으로 치료 행위를 하는가? 

그렇다면 소크라테스의 말대로 그것은 의업이 아닌 보수 획득술로 불러야 할 것이다.

모든 전문 직업인들은 올바른 것을 추구하기 위해 자신의 지식을 사용한다.

정말 힘이 정의라고 한다면 직업의식이나 소명의식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고 어쩌면 우리는 문명 사회를 이루지도 못했을 것이다.

세상은 약육강식이고 당연히 힘센 놈이 정의다라고만 생각하고 살았는데 뒤통수를 맞는 듯한 깨달음이다.


<인상 깊은 구절>

90p

경제적으로 아쉬운 것이 많은 기사일수록, 더 열심히 원정에 참여한 것이다. 단 한 명의 기사만이 여기서 예외였다고 하는데, 그는 바로 부유한 귀족 레몽 백작이었다. 이미 초로의 나이였던 그의 주된 동기는 신앙과 명예 때문이었다고 이야기된다.

288p

어떤 인물이 남보다 월등한 능력에도 불구하고 파멸한다면, 사람들이 여러 이유를 꼽을 것이다. '영웅'의 파멸은 그 자신의 히브리스(오만)에서 시작한다고, 옛 그리스 사람들은 생각했다. 물론 인간의 파멸은, 변덕스러운 신의 분노나 얄궂은 운명 때문일 수 있다. 그러나 그 전에, 신의 비위를 거스르고 운을 망가뜨리는 것은, 그 자신의 결함인 '히브리스'라는 것이다. '우리의 승리야말로 정의가 승리한 것'이라는 낯간지러운 아전인수는, 적어도 당시에는 먹히지 않았던 셈이다.

305p

희망은 위기의 위안자입니다. 힘에 여유가 있는 자가 희망을 갖는다면 해를 입을지언정 멸망하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모든 것을 희망에 거는 자는 꿈이 깨어졌을 때 그 실체를 깨닫고서 경계하려 할 때에는 이미 희망도 사라져버리고 없을 것이다. 여러분은 희망을 점괘나 예언에서만 찾으려다 파멸을 초래한 많은 이들과 같은 전철을 밟아서는 아니 될 것입니다. ... 신의 법은 분명히 자연의 법칙에 의해 힘센 자가 언제나 이기는 것이라고 우리는 상식적으로 이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법칙은 우리가 결정한 것도 아니고, 처음 이용한 것도 아니며, 예로부터 존재해 영구히 이어져 가는 것이며, 우리는 그에 따라 행동하고 있는 데 불과합니다. 그리고 여러분뿐만 아니라 누구라도 우리와 같은 권좌에 오르면 똑같은 행동을 취하리라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 원조국의 관심사는 피원조국의 호감을 얻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행동이 결정적으로 우월한 힘으로 수행될 수 있는가 없는가에 있습니다.

309p

트라시마코스: 저로서는 올바른 것이란 '더 강한 자의 이득' 이외에 다른 것이 아니라고 주장합니다.

소크라테스: 그 어떤 전문적 지식이라도 더 강한 자의 이득을 생각하거나 지시하지 않고 오히려 더 약한 자이며 제 관리를 받는 자의 이득을 생각하며 지시하오. 그 어떤 의사든, 그가 의사인 한은, 의사에게 이득이 되는 걸 생각하거나 지시하지 않고, 환자를 위해 그러지 않겠소? 엄밀한 뜻의 의사는 몸을 관리하는 자이지, 돈벌이를 하는 자가 아니니까요. 진정한 의사라면 환자의 이익을 먼저 생각하죠. 제대로 된 위정자도 마찬가지 아니겠소? ... 전문 지식이 있는 실력자들끼리는 서로를 능가하려 들지 않고요, 반면 잘 모르고 실력 없는 이는 전문 지식이 있건 없건 누구나 이기려 든다는 것입니다. 올바른 사람은 저와 같은 사람에 대해서는 능가하려 하지 않으면서도, 같이 않은 사람(올바르지 않은 사람)에 대해서는 능가하려 하지만, 올바르지 못한 사람은 같은 사람(불의한 사람)에 대해서도 같이 않은 사람(올바른 사람)에 대해서도 능가하려 한다고 말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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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귀신들 - 대한민국 수재 2,000명이 말하는 절대 공부법
구맹회 지음 / 다산북스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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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아직도 이런 책을 졸업하지 못하는 걸까?

이른바 서울대 들어가는 학생들이 이런 책을 읽을 리가 없고 (오히려 이런 책에 수기를 올려줘 소정의 돈을 받을 것이고) 설마 이런 공부법 읽고서 서울대 갈 리도 없을텐데 말이다.

자기계발서로 성공하는 사람은 그 책을 써서 돈버는 저자 뿐이라던데.

합격할 시험도 없는데 여전히 공부법 관련 책을 들여다 보는 까닭은, 효율적인 독서 생활을 위해서다.

시간 관리를 어떻게 할 것인가, 더 정확히는 바쁜 일상에서 어떻게 독서 시간을 확보할 것인가.

읽은 내용을 좀더 오래 기억할 수 있는 효율적인 방법이 있을까.

책의 주제를 파악하고 요점 정리하는 독서법은 어떤 것일까 등등.

항상 느끼는 바지만 특별한 비결은 없고 다만 목표 자체에 흥미를 느끼기 위해 끊임없이 자극을 줄 필요가 있다.

책에 소개된 핵심 중 하나가 스몰 스텝 전략이다.

다른 책에서도 무수히 보아온 얘기다.

작은 성공을 되풀이 하라.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란 말은, 실패는 또다른 실패를 부른다가 현실이다.

거대한 목표는 이루기 어려우니 목표를 잘게 쪼개 하나씩 달성해 가는 기쁨을 느끼는 것이다.

계획을 세우는 것도 1년치 거창한 계획보다는 큰 목표를 세운 다음, 분기별로, 월별로, 주별로, 더 어려우면 1일 계획으로까지 쪼개는 것이다.

약간 독창적인 이 책의 아이디어로는, 1주일을 두 개로 나눈다.

월화수, 목금토로 나누어 일요일 저녁에 전반기 계획을 세우고 수요일 저녁은 비워놓은 뒤 부족한 부분을 채워넣고, 후반기 계획을 세운다.

토요일 오후 역시 비워놓고 후반기를 마무리 한 뒤 1주일에 부족했던 부분은 다시 일요일에 보충한다.

예비 시간을 두라는 의미다.

100% 달성은 어렵기 때문에 여유 시간이 있어야 한다.

내 경우에도, 평일에는 바쁘기 때문에 주말에 몰아서 책을 읽으려고 하는데 오히려 주말이 더 바쁘고 쉬고 싶은 욕구 때문에 진도가 안 나간다.

가장 궁금했던 부분이 암기법이다.

어떤 방식이 최적의 암기법일까?

기억의 궁전이니 마음의 눈으로 보라는 얘기는 나한테는 도움이 안 됐고, 에빙하우스 망각의 곡선을 이용해 하루, 1주일, 한 달의 간격 복습법이 그나마 나은 것 같다.

기억에서 약간 지워질만 할 때 다른 맥락에서 내용을 접하면 확실히 머리에 각인이 된다.

목차를 보면서 내용을 정리하거나, 백지에 배운 내용을 적어 보라는 말도 실천해 볼만 하다.

역사책의 사건이 일어난 해를 외울 때 나만의 방식이 있다.

프랑스 대혁명은 1789년에 일어났는데 17=8+9 이런 식으로 외운다.

루터의 종교개혁은 1517년이니까 5->7로 홀수로 늘어난다고 외운다.

프랑스의 7월 혁명과 2월 혁명의 순서도 헷갈려서 1학기 말이 7월이고 2학기 말이 2월이라고 외웠다.

서양의 왕위 계승 순위도 늘 헷갈린다.

존엄왕 필리프 2세, 성왕 루이 9세, 광인왕 샤를 6세 이런 식으로 특징이 있으면 쉬운데 그 외 왕들은 구별이 어렵다.

그래서 나름대로 법칙을 만들어서 외운다.

필리프 4세는 네 명의 자녀가 다 왕위에 올랐다.

루이 10세, 필리프 5세, 샤를 4세, 그리고 에드워드 2세의 부인인 이자벨이다.

미술사에서 화가들의 생존연대를 외울 때는 가장 중심이 되는 사람을 기준으로 그 사람보다 앞에 사람인가 뒤에 사람인가를 대략적으로 추측해 본다.

이를테면 인상파의 시작인 마네가 1830년대 사람이고 모네는 1840년, 고흐는 1850, 클림트는 1860, 마티스는 1870, 피카소는 1880, 샤갈 1890 달리 1900 이런 식으로 대략적인 연대를 설정하고 나머지 화가들은 앞뒤로 집어넣어 어느 시대 사람인지 가늠한다.

요즘 우리 옛 화가들에 대해 읽고 있는데 이 때도 자크 루이 다비드가 1748년 생이므로 정선이나 김홍도가 대략 이 사람보다 앞섰나 뒷섰나로 당시 서양 화단과 비교해 보면 입체적으로 이해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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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권의 십자군 이야기 1 - 군중십자군과 은자 피에르, 개정판 김태권의 십자군 이야기 1
김태권 글.그림 / 비아북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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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에 출간됐던 구판이 다른 출판사에서 새롭게 나온 모양이다.

만화 특유의 생략성 때문에 내용이 평이하고 가볍고 지극히 단순화 시켰다는 단점이 있지만 대신 쉽게 잘 넘어간다.

1권부터 5권까지 일독하고 시오노 나나미의 <십자군 이야기>를 읽어 볼 생각이다.

과거의 역사가 과연 현재의 1:1 거울이 될 수 있을까?

어떤 시대든 그 시대만의 특수성이 있기 때문에 단순 비교는 매우 위험하고 역사학의 진정한 목적도 아니라고 본다.

저자는 십자군 전쟁을 부시의 이라크 침공과 계속 비교하고 있는데 단순히 흥미를 끌기 위한 장치가 아니라면 1차원적인 사고에 지나지 않는 듯하다.

역사적 사건이 현대를 비판하는 도구로 쓰일 수 있을까?


<인상 깊은 구절>

172p

고향에서의 삶을 버리는 것이라 해도, 그들은 떠나는 일이 어렵지 않았다. "대부분의 경우 그들을 고향에 붙들어 매어놓을 수 있는 물질적 혜택이 전혀 없었다. 가진 것 없는 사람들이 많았고, 그들은 쉽게 고향을 떠났다. 순례자들의 배낭 속에 들어 있는 물품은 초라했다."

203p

때로 지식인들은 '순례'라는 이념 자체를 의심하였다. "한 학생은 '예루살렘이나 다른 성지에 가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나요?'하고 묻는다. 그러자 선생은 '여행에 드는 비용을 가난한 사람에게 주는 것이 더 낫다'고 대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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