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집 동궐에 들다 - 창덕궁과 창경궁으로 떠나는 우리 역사 기행
한영우 지음, 김대벽 사진 / 효형출판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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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헷갈리는 동궐도를 공부하려고 고른 책이다.

최근에 읽은 홍순민씨의 <궁궐> 보다 훨씬 상세하고 자세히 각 건물과 사용처를 설명하고 있어 큰 도움이 됐다.

동궐도는 위키백과에 실린 큰 이미지를 이용했다.

반복해서 읽으니 동궐도를 보면 어떤 건물인지 대충 알겠다.

지루하지 않고 창덕궁과 창경궁의 건물들을 자세히 살펴볼 수 있는 좋은 책이다.

전문 사진 작가의 사진이 실려 있어 도판도 매우 훌륭하다.

다만 정조 독살설이나, 효명세자가 세도 정치와 싸웠다는 식의 지나친 비약과 가정이 가끔 보여 아쉽다.

맨 마지막에 조선이 궁궐을 화려하게 짓지 않은 이유가 사치를 용납하지 않는 유교적 철학 때문이고, 화려한 궁궐을 지은 나라는 현재 가난하고 민주화가 진행되지 않았다고 하는데 이건 정말 말도 안 되는 아전인수 식 해석인 듯 하다.

당장 베르사유 궁이나 쇤부른 궁, 상수시 궁 등 유명 건축물을 지은 프랑스, 오스트리아, 독일을 보라.

민주주의의 최전선에 있지 않나.

저자는 혹시 중국이나 러시아 등을 얘기하는지 모르겠는데 현재의 정치 상황과는 별개로, 궁궐의 크기는 명백히 당시 사회의 경제적 여력을 보여 주는 지표라 생각한다.

조선은 생산력이 떨어지는 사회였으니 당연히 궁궐 건축에 큰 돈을 투자할 수 없었고 그것이 아예 유교적 정치 철학으로 이념화 되어 오랫동안 유지됐을 뿐이다.

조상을 비하할 필요도 없지만 쓸데없는 찬양도 무의미한 일이다.


<오류>

112p

정조는 문효세자를 중희당에서 세자로 책봉했다. 세자는 이 곳에서 가례까지 치렀으나 정조 10년 아깝게도 요절하고 말았다.

->문효세자는 만 5세의 나이로 사망해 세자 책봉례는 치뤘으나 가례는 이뤄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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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과학은 어렵습니다만 - 털보 과학관장이 들려주는 세상물정의 과학 저도 어렵습니다만 1
이정모 지음 / 바틀비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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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를 네이버 오디어 클립의 초대 손님 코너에서 처음 접했다.

과학자 탐구가 주제였는데 저자는 다윈의 일생에 대해 화려한 말솜씨로 나를 사로잡아 마침 신간이 나왔길래 도서관에 신청해서 읽게 됐다.

시의성 있는 정치 얘기들이 많은 걸 보니 아마도 어디 칼럼 등에 연재했던 글 모음인 것 같다.

글솜씨 보다는 말솜씨가 더 낫고 객관적인 평가가 아직 어려운 동시대의 정치 얘기는 책보다는 인터넷 게시판이 훨씬 어울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뭐든지 자기가 이야기할 수 있는 전문성을 가진 분야에 대해서만 언급하는 게 안전한 듯 하다.

특히 사회 현상을 비판하는 글을 쓸 때는 견강부회를 매우 조심해야 하는데 이렇게 신중한 칼럼니스트를 본 적이 많지는 않다.

그 외는 재밌게 읽었다.

맨 첫 부분에서 지구의 나이가 6천 년이냐, 46억 년이냐에 관한 창조과학 발언이 장관 청문회에서 나왔다는 사실에 대한 비판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우리나라는 아직까지 미국처럼 창조과학이라는 사이비 이론이 대세는 아닌 모양이다.

저자의 말 중 가장 공감했던 것은 과학은 단순한 지식이 아니라 생각하는 방법이고 삶의 태도라는 사실이다.

제일 답답할 때가 양의학, 한의학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특히 신토불이 등과 연관해 민족의학 운운할 때다.

차라리 현대의학과 전통의학이라고 하면 이해를 하겠다.

의학에 동서양 구분이 어딨겠는가.

의학은 그냥 천문학, 물리학, 생화학처럼 학문일 뿐이다.

나도 과학이 매우 어렵다.

저자는 과학관장인데, 단지 보여주는 전시에 그칠 게 아니라 관람객을 교육하고 직접 과학 실험에 참여하는 기관이 되야 한다고 역설한다.

매우 고차원적인 목표라 많은 인력과 노력이 필요하겠으나 궁극적으로 이런 과학 교육이 과학적인 삶, 과학적인 사회가 될 수 있는 길이라는 생각이 든다.

다른 말로 하면 음모론에 휘둘리지 않고 "합리적인 사고"를 할 수 있는 사회 말이다.

중력파, 태양계와 비슷한 외계 행성 발견, 새로운 원소 이야기 등 잘 몰랐던 흥미로운 이슈들이 많았다.

당장 네이쳐 같은 과학 잡지부터 보고 싶다.

얼마 전에 읽은 <발트해>라는 책 역시 해양 잡지의 특별판이었다.

쉬운 것부터 접근해 봐야겠다.


<인상깊은 구절>

171p

"과학자에게는 자유로운 과학 연구를 위해서 정치적으로 적극 나설 의무가 있습니다. ... 과학자는 어렵게 얻은 정치적, 경제적 신념을 똑똑히 밝힐 용기가 있어야 합니다."

아인슈타인이 에이브러햄 링컨 탄생 130주년에 한 말이다.

187p

동물의 왕국에는 우두머리에 대한 충성심이나 애틋함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만약 그렇다면 그 집단은 다음 세대로 이어지지 못할 것이다. 동물의 왕국은 배신의 연속으로 이어진다.자연에 평화로운 죽음이란 없다. 그것이 바로 자연사다. ... 인간사는 기본적으로 계약과 신뢰로 이루어져 있다. ... 동물의 왕국에서는 오직 서열 1위만이 행복하다. 인간 사회가 동물의 왕국과 다른 것은 서로 존중하고 공정한 규칙 안에서 경쟁하고 협력하기 때문이다.

238p

"기존 교과서에는 우주론이 없다. 역사적인 맥락, 인문학적인 배경이 없는 채 그저 별까지의 거리나 별의 밝기를 측정하고, 느닷없이 별자리도 배운다. 별자리는 서양 신화를 그려 넣은 것으로 과학적으로 아무런 의미가 없는 지식이다. 황도 12궁도 마찬가지다."

... 그는 초등학생들에게 별자리를 아주 재밌게 설명하였다. 정말로 뛰어난 능력을 보여주었다. 문제는 거기에는 별자리에 얽힌 동서양의 신화만 있고 과학이 없었다는 것이다. ... 지구의 잔전과 공전 그리고 세차운동과 우주의 좌표가 빠진 별자리 이야기는 그냥 신화다. 신화만 이야기하면서 과학으로 아이들을 이끌었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아르키메데스의 유레카 일화만 얘기하고서 부력을 설명했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과학의 대중화란 어렵다는 이유로 본질적인 것을 빼고 주변 일화를 설명하는 게 아니다. 본질에 접근하는 수준에 문화적으로 설명하는 것이 과학의 대중화다.

262p

자기는 과학이 어려워서 일찌감치 포기했으면서 왜 아이들에게만 과학이 신나고 재미난 것이라고 거짓말을 하는가. 다 어렵다. 역사도 어렵고 (아니다, 역사는 재밌다. 다른 모든 학문보다 훨씬 접근도가 높고 스토리텔링이 강해 쉽게 즐길 수 있다. 그래서 이른바 재야사학자도 넘쳐나는 것이다) 영어도 어렵고, 지리도 어렵다. 그리고 과학은 더더욱 어렵다. ... 과학은 쉬운 게 아니다. 쉬워서 하는 게 아니라 어렵지만 그 어려움을 극복하고 깨달을 때 그리고 뭔가 새로운 것을 알아내고 만들었을 때 재미가 있기 때문에 하는 것이다. ... 과학을 쉽고 재밌게만 가르치려다 보면 우리는 핵심을 빼놓고 과학자 주변의 일화만을 들려주게 된다. 과학관에서 이뤄지는 교육은 어렵더라고 과학의 본질에 도전해야 한다. ... 건물 건축비 예산을 확보하는 일은 의외로 쉽다. 전시물과 장비를 사는 것도 그다지 어렵지는 않다. 그런데 전문가를 고용하는 데는 아주 인색하다. 심지어 인건비는 곧 혈세 낭비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한국 풍토가 무형의 지적 가치에 대한 평가가 특히 인색한 듯 하다. 전문가의 의견을 돈을 많이 지불하고 듣는다는 것이 대해 저항감이 큰 것 같다)

283p

이제는 완전히 다른 시대다. 부모의 지난 인생 경험이 자식에게 거의 도움이 되지 않는 시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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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차이나반도 남행 - 중국.미얀마.싱가포르.말레이시아.태국.캄보디아.라오스.베트남.중국 전운성 교수의 세계농업문명 기행답사 3
전운성 지음 / 이지출판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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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수의 기행문이라 여행기 외에도 동남아 여러 국가들의 기본적인 배경지식이 많이 나올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너무 간략해 약간 실망스럽다.

기행문은 궁극적으로 에세이 수준의 문장력이 있어야 읽을 만 한데, 이 정도가 되려면 하루키의 <먼 북소리> 수준은 되야 하니 전문 작가가 아니면 도달하기 어려운 목표이고, 그렇다면 배경지식 전달에 좀더 노력을 해야 읽을 만한 기행문이 나오는 것 같다.

단지 자기 여행 루트만 기록한다면 너무나 평범한 책이 되버린다.

정수일씨의 <문명의 보고 라틴 아메리카를 가다>도 그랬고, 손호철 교수의 <레드 로드>도 그렇고 이 책 역시 비슷한 맥락이다.

<박한제 교수의 중국역사기행>은 전공자로서의 식견과 중국 곳곳에 대한 애정이 글에 녹아 있어 위진남북조 시대에 흥미를 갖게 되는 계기가 됐다.

동남아시아에 대해서 잘 몰라 기행문을 택했는데 앞으로는 가능하면 이런 기행문 보다는 좀 쉽게 쓰여진 학술서를 읽는 게 나을 것 같다.

밤잠도 못 자고 읽고 있는데 아까운 내 시간... 

앞쪽 미얀마나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태국 부분은 주마간산 식의 기행문이라 아쉬웠는데 저자가 오래 일했던 캄보디아, 라오스, 베트남 편은 상대적으로 유익했다.

강원대가 동남아 국가들과 이런 농업 교류를 맺고 있는지 몰랐다.

공산주의의 이상이란 허망한 것인가 싶은 생각도 든다.

공산주의 정권 후 집단농장 체제로 바뀌면서 생산량이 현저히 떨어졌고 개방 후 다시 세계 2위 쌀 생산국이 됐다는 베트남의 사례를 봐도 그렇다.

저자는 직접 동남아의 농업 현장에서 일한 경험이 있어서인지 이른바 좌파 지식인들의 현학적 명분론과는 매우 다르게 실제적인 문제점을 지적하고 비판하고 있어 신선했다.


<인상깊은 구절>

133p

미국 고위층을 만난 북한정권에 대한 공개된 이광요의 논평을 보면, 북한 집권자들은 정신병자 같은 집단이다. 중국은 이러한 북한이 핵무기를 보유하지 않기를 원할지 모르나, 일본이 핵무장을 한다고 해도 한중 국경에 미군이 나타나는 것보다는 핵무장한 북한을 더 선호할 것으로 보았다. "나는 종교적 가치를 크게 신봉하는 사람은 아니다. 나는 기도가 사람을 치유한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다만, 기도는 사람을 안심시킬 수는 있다. 그리고 신을 믿는 사람들은 위기가 닥칠 때 엄청난 힘을 발휘한다고 생각한다."  ... 한국인의 격정적인 행태를 언급했다. "한국인은 무서운 사람들이다. 잘 조직되고 훈련된 조동자들과 학생들이 거리에서 경찰관과 싸우는 모습은 전투 장면 같다. 그들은 타협할 줄 모르는 맹렬한 성격이고, 권위에 도전할 때는 폭력적이고 정력적이다. 그러면서 한국인들은 역동적이고 부지런하며, 의지가 강하고, 유능한 국민들이다. 그들의 경쟁문화는 그들을 성취지향적으로 만든다" 그는 한국경제 발전의 성공 요인을 박정희 대통령이 여론과 언론을 무시했기 때문이라고 평가했다. 왜냐하면, 어떤 국가의 지도자들은 자신의 관심과 정력을 언론과 여론의 호의적인 평가를 받는 데 소모한다. 그런데 대통령은 이러한 여론을 무시하고 자신의 정력을 오직 일하는 데만 집중시키고 평가는 역사의 심판에 맡긴 자세가 아니었다면, 오늘 우리가 보는 이런 대한민국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 남한의 인구는 북의 두 배이고, 훨씬 부자이며 미국의 좋은 무기들을 얻을 수 있는데, 북한의 군사력에 압도된 듯한 북한에 대한 두려움으로 차 있는 것에 이상하다고 느꼈다. ... 아무리 중국과 소련이 개방과 개혁을 취한다고 해도, 지나친 낙관론자들의 견해에 동의할 수 없다. 개혁과 개방 운운해도 동서관의 화해는 기본적으로 제약이 있다. 공산당의 본질은 200~300명의 무고한 시민을 무참히 몰살시키는 항공기 폭파 등을 서슴지 않는 야만정권이다. 이 점만 유념한다면 남북한 교류는 한국에 많은 이점이 따를 것이다. 

기업가들이 많이 나와서 투자해 성공하여 정당하게 돈을 벌었다고 내세울 수 있는 사회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 그런데 요즘 우리나라에서는 엄청난 경쟁을 뚫고 성공한 기업인에게도 부정한 눈초리를 보낸다. 이는 기업들의 투자의욕을 상실시키기 마련이다. 그래서 나온 경제민주화라는 이름으로 각종 규제를 양산하고 기업의 체력을 약화시키는 것이야말로 오히려 경제 양극화를 심화시키는 등 사실상 실패한 정책이라는 분석도 있다. ... 대학 랭킹은 바로 얼마나 재원을 확보하는가에 달려 있음을 다시금 확인시켜 주는 대목이다. 우수한 교수와 학생들을 유치하기 위한 자금이라든가, 그리고 유치한 인재들을 위한 연구나 학생들의 면학을 독려하기 위한 엄청난 예산 등이 마련되지 않으면 좋은 대학의 명성을 얻는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196p

당시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았던 때여서, 국제사회 분위기는 침략전쟁을 일으킨 북한에 상당히 적대적이었다. 그런 까닭에 전투부대 파병 16개국, 의료지원부대 파병 5개국, 그 외에도 많은 물자지원국 등 당시 전세계 국가의 3/4에 해당되는 67개국이 우리를 돕기 위해 나섰던 것이다. ... 그때의 참전이 오늘날의 눈부신 경제발전에 기여했다는 것을 생각하면 기쁜 일이다. 그리고 태국은 베트남전쟁에도 참전했으나 공산화된 베트남에 비하면 한국은 정말로 대단한 민족이다. 

218p

빛과 공기는 사람이 만들어 낼 수 없다. 물은 사람에 의해 이용조절이 가능하다. 그런데 식량은 사람이 기존의 빛과 공기 그리고 물을 합성하여 만들어 낼 수 있다. 문제는 식량을 생산하는 데는 사람의 두뇌 활동을 필요로 한다. 즉 과학을 바타응로 하는 농업기술의 지본에 의존하고 있다는 것이다. ... 특히 식량 확보는 인류 문명의 발전은 물론 사람들의 인성을 높이는 데 매우 중요한 전제조건이었다. 인도의 간디는 "빵이 있어야 신도 보인다"라는 말을 남겼다. 그러나 이러한 현대 농업 기술의 발달에도 불구하고 개도국을 중심으로 하는 식량난은 우리 인류가 나누어 가져야 할 과제이다.

230p

내가 이 곳에서 일할 때, 나의 상대 파트너였던 정부의 국장은 자신의 봉급만큼이나 월급을 주어야 하는 두 명의 가정부를 두고 있었다. 이는 개도국에서 이해가 되지 않는 많은 일 중의 하나이다.

242p

그래도 누군가 가난하지만 생활 만족도가 높은 곳은 선진국이 아니라 빈국에 있다는 주장을 하는 모양이다. 이는 수도승이나 일부 사람의 경우는 그럴지 몰라도 당치도 않는 미사여구를 늘어 놓은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는 기본적인 생활만 충족되면 행복은 소득과 비례하지 않는다는 이스털린의 역설이 틀리다는 것을 현지 방문을 통하여 수없이 보았기 때문이다. 그들도 삶의 질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가난으로부터 벗어나려고 몸부림치고 있었다. 그런데 얼마 전 미국 펜실베니아대 워튼 스쿨의 경제학 교수인 벳시 스티븐슨과 저스튼 울퍼스는 돈 많은 나라 국민들이 더 행복하고, 그 중에서도 돈을 많이 버는 사람일수록 더 행복하다는 조사 결과를 발표한 일이 있는데, 이는 전적으로 나의 생각과 다르지 않았다.

251p

라오스에 머물고 있을 때, 캄보디아의 킬링필드와 같은 무수한 사람들이 희생되었다는 이야기가 회자되고 있었다. 다만, 캄보디아는 공산 정권이 민주 정권으로 바뀌면서 과거 정부에서 행한 사건 등이 파헤쳐져 그 내용이 낱낱이 공개되어 악랄한 죄상이 세상에 알려졌다. 그러나 라오스의 경우 계속적인 좌익 정부의 집권으로 그러한 사실이 철저히 밝혀지지 않아 실상을 알기 어렵다는 이야기였다.

291p

지구상에는 북한의 김일성과 김정일, 러시아의 레닌과 스탈린 그리고 중국의 모택동 등이 이와 같이 주기적인 방부 처리를 통해 시신을 영구 보존하면서, 이들이 추구했던 생전의 이념을 주입시키고 있다. 꼭 이렇게 해야만 인민의 존경을 받는지는 모르겠다.

333p

중국은 변경 지역에서의 공세적이고 자신만만한 개방적 자세를 취하고 있음을 알았다. 그러니 상대적으로 중국과 국경을 접하고 있는 나라는 방어적으로 나올 수밖에 없다는 것도 깨달았다. 이는 '일대일로'라는 평화와 공동 번영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는 있지만 내심 국가 이익을 우선시하는 공세적인 것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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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거정 평전 - 과연 시대는 개혁을 바라는가
주둥룬 지음, 이화승 옮김 / 더봄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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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서 발행된 역사서는 확실히 서구 역사서와 다른 느낌이다.

사회 제도 등의 분석 보다는 인물에 초점을 맞췄다고 할까.

평전이니 더욱 그렇겠지만 얼마 전에 읽은 <영락제> 평전이 대외원정을 중화질서의 완성이라는 측면에 초점을 맞춰 매우 흥미로웠던 반면, 이 책은 사서에 기록된 장거정이라는 인물의 활동에 너무 포커스를 두는 바람에 다소 지루했다.

그럼에도 막연하게만 알고 있었던 명대의 정치 제도와 관료들에 대해 기본적인 지식을 얻게 된 점은 유익했고 장거정이라는 개혁가이자 독재자의 일생을 비판적으로 살펴볼 수 있었다.

권력자가 옆에 있다고 황제가 전부 바보가 되는 것은 아닌 모양이다.

표트르 대제가 어린 나이에 즉위했으나 곧 권력을 휘어잡고 러시아를 개혁했던 반면 비슷한 나이에 즉위한 순조는 평생 세도정치에 휩싸여 왕으로서 역량을 발휘하지 못했던 것을 보면 개인의 자질도 매우 중요한 것 같다.

이 책의 중요 인물인 신종 만력제 역시 10세의 나이에 황위에 올라 잘못을 하면 어머니 앞에 꿇어 앉아 반성문을 쓸 정도로 다소곳 했고 장거정에게 전권을 위임한 것처럼 처신했으나 결국은 그의 사후 조정을 휘어잡고 전제군주로써 보복을 가했으니 역사적 평가와는 별개로 결코 만만한 인물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섭정왕이었다가 사후 순치제에 의해 의해 격하된 도르곤이 떠오른다.

황제 일인의 전제국가라는 점에서 중국 역사는 의회의 힘이 커져 민주주의로 발전한 서구와는 확실히 매우 다른 전통을 가졌던 듯 하다.


<인상깊은 구절>

28p

그는 스무 살에 학생이 되어 과거를 준비했으나 향시에 7차례나 낙방했다. 훗날 아들인 장거정이 한림에 제수된 지 3년이 지나자 비로소 "어려서부터 이제까지 40여년간 공부를 할 만큼 했는데도 오늘날까지 이 모양인 것은 운명인가 보다"라며 과거를 포기했다. ... 태조 주원장이 하층 출신이었다는 점은 그에게 큰 자극이 되었다. 장거정은 한림원 편수로 중용된 후 자신의 출신 배경을 이렇게 밝혔다. "국가는 오직 능력으로만 현자를 뽑으니, 공을 세우면 신분은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

37p

명조는 3대 성조 이래 정치의 중심이 내각에 있었다. 구성원인 내각대학사는 황제의 개인비서일 뿐이다. 아무리 세력이 크다 하더라도 여전히 황제의 제한을 받았고, 대학사라 하더라도 황제에게 버림을 받으면 바로 지체 없이 북경을 떠나야 했다.

45p

친번의 위협은 사라졌지만 세습 종실이 많았고, 조정은 이들의 막대한 생활비를 대느라 국고가 휘청댔다. 이제 이 문제는 정치보다는 경제 문제로 변해 있었다. ... 이들의 생활을 책임지는 국가의 재정은 커다란 압박을 받았다. "두 성의 곡식만으로는 종실을 먹여 살리기에도 부족하니 관리나 군인들은 어떻게 하란 말인가?"

91p

명대 언관의 힘은 실로 대단했다. 벌떼와 같아서 건드리기만 하면 무리지어 달려들곤 했다.

96p

그러나 목종은 탕임금이나 진시황은 고사하고 이 나라의 태조, 성조, 심지어 세종도 아닌 그저 관대하고 후덕하기만 할 뿐, '전체를 장악하고 위엄으로 다스리는' 황제가 못 되었다. .... 명나라는 개국 초기부터 완전한 전시 체제를 취하고 있었다. 국가의 정치 중심인 북경은 최전선에 있어, 언제나 전쟁의 위협에서 벗어나지 못하였다. 대신들은 모두 국방이 제일이라는 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104p

모반을 하려면 그만한 용기와 준비를 했겠지만, 요왕은 그저 놀기 좋아하는 한심한 왕족이었을 뿐이었다. 모반의 준비는 오직 흰 깃발이 전부였고, 홍조선도 이를 알았다. ... 목종은 대신들과 가져야 할 관계를 갖지 못하자 환관들에게 의지했다. ... 다음 날 목종황제가 서거했다. 고공은 큰 소리로 울부짖었다. "열 살 난 태자에게 어떻게 천하를 다스리라고 하는가!" 그는 자신의 책임을 더욱 막중하게 느끼는 듯했다.

147p

풍보는 장인태감으로, 궁내에서는 황제의 하인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황제에게 건네지는 모든 문서를 장악하고 있으므로 역시 장거정에게는 또 한 사람의 주인이었다. 풍보는 절대적으로 자성황태후에게 의지했다. 그러므로 장거정은 태후와 좋은 관계를 유지해 풍보의 압박을 줄이려 했다. ... 그는 풍보가 정치에만 간섭하지 않으면 대체로 눈을 감았다. ... 신종은 당시 열 살이어서 비교적 쉽게 상대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가장 어려운 상태였다. 장거정이 죽은 뒤 발생한 일을 보면 얼마나 어려웠는지 잘 알 수 있다. 

그는 자신이 이 나라의 주인임을 알았지만, 실제로는 정치를 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의 지시를 받아야 하며, 심지어 자신을 지배하는 사람에게 호감을 얻어야 한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었다. 신종은 장거정에게 호감을 얻어야 한다는 것을 아는 한편, 자신이 그의 주인이라는 것도 깨닫고 있었다. 신종은 자신의 지위와 행동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고, 이를 바로잡으려 했다. 따라서 장거정에 대한 호감은 자격지심으로 인해 점차 나쁜 감정으로 변해갔다. 그러나 나이가 어린 신종의 미묘한 변화를 장거정은 간과하고 말았다.

180p

신종은 황태후에게 다시 청해 처형을 집행하도록 허락받았다. 실제적인 책임을 지지 않는 사람들은 항상 관대함을 주장해 백성들의 호평을 받았지만, 실제로 책임을 맡은 사람들에게 이것은 받아들이기 어려운 선택이었다. 

183p

명대처럼 과거시험이 문화에 절대적인 영향을 준 시대도 드물다. 때문에 중기 이후에는 학교 교육이 과거시험을 위한 준비기관으로 전락하였다. ... 만약 장거정이 자신의 정치적 생명을 고려했다면 학풍을 정돈하는 일을 단행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어느 시대에나 당대의 지식층이 있고 이들에게 밉보이면 정치적으로 곤경에 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수재는 당시의 지식층으로 관리 배출뿐 아니라 지방 여론을 주도했다. ... 개인적인 정을 돌보지 않아 많은 적을 만들었으니 개혁은 성공했으나, 훗날의 재앙을 피하지 못하였다.

202p

명대 정치에는 부패 요소가 많았다. 지금은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일들도 당시에는 그저 관례적으로 여겼다. 따라서 말하지 않으면 관습으로 여기지만, 일단 지적을 받으면 부패가 되었다. .. "권력을 잡은지 몇 년 되지도 않았는데, 부는 이미 지역의 으뜸이다"그는 지적은 틀린 말이 아니다. 그러나 이것은 명대 관리들의 일반적인 모습이었다. 사람은 환경의 지배를 받기 마련이다. 만약 장거정이 이렇듯 부패가 만연한 시대에 살지 않았다면, 그리고 그런 부친이 없었다면 그는 청렴한 재상으로 남았을지 모른다. ... 권력을 잡은 인물들은 아들에게 지나치게 집착해 이 두 갈래 길에서 물의를 일으키곤 한다. 이는 고금을 막론하고 인류 사회가 가진 공통된 약점이다.

245p

미관말직은 '그저 자리에 몸을 싣고' 고관대작은 '명철보신'하는 태도를 보이기 마련이다. 국가의 일에 실제로 책임을 지려는 사람들은 '자리에 연연한다'고 욕을 먹거나 '세속에 물든 관리'라고 손가락질을 받지만,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사람들은 내가 아니라도 누군하 하겠지 하고 시나 지으며 세속적인 일에 관심을 갖지 않는다. 

252p

열여섯 살의 황제는 자신과 권력을 다투지는 않더라도 나날이 성장하고 있었고, 상황도 변해서 독재를 하는 신하와 군주의 대립은 피할 수 없었다. 하지만 자신만 이를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장거정이 죽자마자 신종이 가장 큰 적으로 돌아선 것은 정치역학적인 면에서 보자면 당연한 일이다. 다만 신종 초에는 신종과 장거정 모두 이러한 경각심이 없었다. 그리고 유태, 왕용급 등은 그저 장거정이 지나치게 독선적으로 행동하니, 황제가 그를 제재해야 하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299p

친정을 시작하게 된 신종은 재물에 관심이 많았는데, 금관은 그 대표적인 사례다. 그때부터 명나라는 급격히 멸망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오류>

14p

왕망은 조카 애제의 황위를 찬탈했다.

->왕망은 애제가 아니라 원제의 정비인 왕황후의 조카이다. 원제의 손자인 애제가 급사 후 역시 원제의 손자인 평제가 즉위했고, 왕망의 딸이 평제의 황후가 된다. 평제를 죽인 후 선제의 현손인 유영이 황위에 오르는데 이 황위를 찬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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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치와 광기 - 세계사를 바꾼 정복자와 독재자들
류광철 지음 / 말글빛냄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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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최근작 <누가 이슬람을 지배하는가>를 재밌게 읽고 (특히 십자군 부분이 너무 재밌었다) 다른 책도 같이 읽게 됐다.

제목이 좀 모호하고 책 디자인이 세련되지가 않아 확 눈에 띄지는 않지만 내용은 역시나 흥미진진하다.

과거 역사에서 두 사람, 현대사에서 세 사람을 뽑아 평전처럼 기술한다.

1편은 일종의 총론인데 인물들을 먼저 설명하고 뒷부분에 종합하는 식으로 실었으면 어땠을까 싶다.

알렉산드로스나 칭기즈칸은 역사적 인물들이라 비교적 잘 알고 있었지만 히틀러와 스탈린, 특히 사담 후세인에 대해서는 거의 몰랐던 부분이라 아주 흥미롭게 읽었다.

역사에 남는 영웅 내지 반영웅이 되려면 일단 배포가 커야 하고 범인으로서는 갖기 어려운 무자비함과 냉혹한 성격을 지녀야 하는 듯 하다.

히틀러의 유대인 학살이야 워낙 많이 알려져 그러려니 하지만, 스탈린의 숙청 규모가 이렇게 큰 줄 미처 몰랐다.

전제주의 황제를 몰아내고 세운 인민의 나라라는 실체가 결국 수백 만명에 달하는 자국민 처형이었다니 마르크스가 주장하던 공산주의는 그저 문자로만 가능한 이야기인 듯 하다.

마오쩌둥의 대약진 운동이나 문화혁명을 봐도 그렇고 프롤레타리아에 의한 나라라는 것도 결국 1인 독재로 귀결되어 엄청난 사망자를 낼 뿐이니 공산주의나 사회주의는 결국 실패한 체제가 아닐까 싶다.


<인상깊은 구절>

67p

고대 영웅들인 알렉산드로스나 칭기즈칸과는 달리 히틀러는 점령지 국민들 자국민으로 편입시키는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히틀러의 목표는 오로지 넓은 영토를 확보하는 것이었다. 독일인이 광대한 생존공간에 일등신민으로 활동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목표인 것이다. 이런 목표를 가진 히틀러는 점령지 주민을 제거하거나 몰아내려고 했지 구태여 동화시키려고 하지 않았다. ... 그가 독일 국민을 세상에 우뚝 선 민족으로 만들어줄려고 했던 망상은 산산조각 나버렸다. 히틀러가 영광을 되찾아주려고 했던 제국은 무너져 내렸고 독일은 전승국들에 의해 분할 통치되는 신세로 전락하고 말았다. 히틀러가 유대인과 함께 타도의 대상으로 삼았던 공산주의는 오히려 타오르는 불길이 되어 유럽의 절반을 차지했고 히틀러의 수도를 나누어 가졌다. 히틀러를 영웅으로 여기고 모든 것을 히틀러에게 걸며 그를 숭배했던 독일 국민은 그 대가를 톡톡히 치러야 했다. 독일은 오늘늘까지도 히틀러가 끼친 죄과를 사죄하며 히틀러의 망령이 되살아나는 것을 가장 경계해야 하는 나라로 살고 있다.

85p

팔랑크스 진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대열을 이탈하지 않는 것이다. 이를 위해 뒤쪽 열에는 경험이 풍부한 병사들을 배치했다. 밀고 들어가는 전법이므로 밀리지 않는 것이 생명이었다. 죽어도 물러서는 일이 없도록 팔랑크스 대원들은 혹독한 훈련을 받았다. ... 안티파트로스는 섭정의 임무에 충실했다. 그는 평생 군인답게 충실하고 엄격한 섭정이었으나 올림피아스와는 성격이 맞지 않았다. 안티파트로스에 대한 그녀의 불평과 비난 그리고 폄하는 원정 내내 알렉산드로스를 괴롭혔다. ... 젊은 알렉산드로스는 멋쟁이 지휘관이었으며 모든 일에 솔선수범했다. 전투에서 앞장 서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고 적의 목표가 되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 역사상 위대한 업적을 남긴 많은 영웅들과 마찬가지로 알렉산드로스도 대단한 행운아였다. ... 알렉산드로스는 파르메니온과는 달리 위험 부담을 마다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 시대를 막론하고 정복자들이 처음부터 모든 조건을 완벽하게 갖춘 뒤 출정에 나서는 경우는 거의 없다. 부족하지만 강한 신념과 정열에 의지하여 출정에 나서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따라서 이들에게는 부족한 식량과 돈을 마련하는 것이 늘 현실적인 문제였다. 알렉산드로스가 이를 극복하는 모습을 보여준 것은 후세의 정복자들에게 귀감으로 남았다. ... 또한 그들은 중무장한 알렉산드로스군 앞에서도 겁을 집어먹지 않았다. 싸워보지도 않고 알렉산드로스에게 굴복할 경우 영원히 예속될 것을 우려한 것이다. ... 중앙아시아 정복은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스키타이계, 투르크계 민족들은 용맹했고 전투에 능했다. 지방의 호족들은 자신의 영지를 지키기 위해 조직적으로 저항했다.... 말리 족과의 전투에서 알렉산드로스는 가슴에 활을 맞고 거의 죽을 뻔했다. 단신으로 성벽에 올라가 부하들이 도착하기도 전에 적진에 뛰어들었던 것이다. 무모한 면도 있었지만 젊은 알렉산드로스는 전투를 즐기는 철두철미한 군인이었다. 

158p

황제는 칭기즈칸이 얼마나 뛰어난 전략가인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 양측의 차이는 뚜렷했다. 칭기즈칸은 총사령관으로서 몽골군을 진두에서 지휘하면서 작전을 펼쳤으나 금황제는 장군들에게 지휘권을 양도하고 자신은 북경의 궁궐에서 보고만 받았다. ... 북경은 관심 밖이었으므로 그는 자신이 정복한 도시에 가보지도 않았다. 북경 뿐 아니라 이 후에 정복한 모든 도시들에 대해서도 칭기즈칸은 거의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몽골군은 성을 약탈하고 파괴했을 뿐 도시를 점거한 후 활용하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들은 도시를 살만한 곳으로 여지기 않았다. 싸움이 끝나면 도시를 파괴하고 속히 초원으로 돌아가는 것, 그것이 그들의 목표였다. 칭기즈칸은 도시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었고 새로운 지식을 얻으려 하지도 않았다. ... 칭기즈칸은 살육자에 도시 파괴자를 겸한 것 같은 정복자였다. ... 유럽이나 중동에서 벌어진 다른 전쟁에서는 전투에서 패해도 귀족이 죽는 일은 드물었다. 그들은 포로가 되어도 기사도 정신에 따라 귀족으로서 대접을 받았다. 그러나 몽골군에게는 그러한 관행이 없었다. 포로면 포로지 귀족이고 평민이고 구분이 없었다. 몽골군은 왕족이나 귀족은 오히려 더 귀찮은 존재로 생각했다. 살아 돌아가면 힘을 규합하여 복수전을 펼칠지 모른다는 생각에서였다. 따라서 몽골군은 그들을 보이는 족족 죽였다. ... 포로로 잡히는 순간 태후의 존재는 사라지고 말았다. 고귀한 신분이라고 해서 배려해주는 일은 일체 없었다.

227p

히틀러가 국민으로부터 영웅 취급을 받고 전례 없이 높은 인기를 누리는 인물로 떠올랐지만 사실 그의 권력을 지탱해 준 것은 군부이다. 히틀러는 베르사유 조약 위반을 감수하고 재무장 정책을 추진할 것을 공약했는데 이는 군부의 전폭적인 지지에 힘입은 것이다. 군을 확장하겠다는데 군부가 반대할 이유가 있겠는가? ... 재무장까지는 좋았지만 히틀러가 그보다 더 나아갈 것을 예측하지는 못했던 것이다. 군부는 히틀러에게 운명을 맡긴 뒤 5년도 못돼 전통적인 지위를 상실하고 그에게 예속된 집단으로 전락했다. 그들은 승리를 장담하지 못하는 두려운 길을 히틀러와 함께 걸어가야 했다. ... 영국의 견고한 저항은 히틀러를 패망으로 이끈 원동력이 되었다. 히틀러는 영국을 제압하지 못할 경우 언젠가는 대서양 너머 거대한 미국이 지원 세력으로 나서게 될 것으로 예측했다. 비록 군사적으로 영국을 돕지 않아도 경제적으로 도울 가능성은 다분했다. 독일은 총체적으로 소련을 얕보고 있었다. 히틀러는 소련을 경멸했고 그의 지휘관들도 마찬가지였다. 나치는 슬라브족을 우습게 봤고 볼셰비즘 따위는 쉽게 무너뜨릴 수 있을 것으로 판단했다. ... 그러나 독일은 소련의 잠재력을 너무나 몰랐다. 히틀러는 소련군보다는 오히려 조직력이 탄탄한 유대인이 더 문제가 될 것으로 오판했다.

272p

결국 전공과는 관계없는 과목을 독학으로 공부한 셈이다. 이 때문에 정식으로 대학에서 정치, 경제, 철학 등을 공부한 공산주의 이론가들과는 지식의 깊이나 넓이에 있어서 차이가 컸다. 스탈린의 학문 연구는 피상적이었기 때문에 레닌이나 트로츠키와는 상대가 되지 않았다. 레닌과 트로츠키는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나 부르주아 문화도 경험하고 대학에 전문적으로 지식을 익힌 사람들이었다. ... 부르주아인 레닌에게 노동자는 자신의 이념을 실현시켜 줄 대상이었으므로 낭만적인 감정이 앞섰으나 스탈린은 냉정했다. 그는 계급에 대한 증오심이 있었으나 그렇다고 해서 하층 계급 사람들에게 특별한 연민을 가지지 않았다. ... 스탈린은 농민에게 일체 자비를 베풀지 않았다. 도시인과 농민 모두가 먹고 살 만큼 식량이 충분하지 않을 때에는 누군가 희생되어야 하는데 스탈린의 선택은 농민이었다. ... 스탈린은 혁명을 성공으로 이끈 후 공포정치를 통해 내부 체제를 장악했고 이제는 국가를 구출한 전쟁 영웅으로 등장하게 되었다. 그의 행운은 끝이 없었다. ... 마셜은 전쟁으로 피폐한 유럽을 부흥시키기 위해 천문학적인 지원을 약속했고 그 덕분에 유럽은 빠른 속도로 과거의 풍요를 되찾을 수 있었다. 소련에게는 미국과 같은 구세주가 없었다. 모든 일을 자력으로 해결해야 했다. 설사 자존심을 팽개치고 미국에게 원조를 요청한다고 해도 1억 5천만 명에 달하는 국민을 만족시킬 수는 없었다. ... 차라리 함께 굶주리는 것이 더 나았다. 사실 모두 가난하다면 별로 불평이 나올 일도 없다. 스탈린은 서방에게 원조를 요청하지 않았고 함께 고난의 길을 택했다.

387p

양국을 절대적으로 지배하는 두 지도자는 성격이 다를 뿐 아니라 상반된 역사의식을 갖고 있었다. 불행한 것은 이 두 사람이 나라의 모든 것을 좌지우지하는 입장에 있었다는 사실이다. 후세인은 이슬람 혁명을 통해 집권한 호메이니가 그 촉수를 이라크에 미칠까 두려워했다. 반면 호메이니는 후세인을 경멸하고 싫어했다. 후세인이라는 존재 자체가 그에게는 종교적 신념에 대한 모독이었다. ... 군사적 경험이 전무한 후세인이 전쟁을 직접 지휘했다. 이에 비한 제2차 세계대전 중 독일군의 지휘봉을 잡은 히틀러는 그나마 나았다. 그는 제1차 세계대전 참전 경험이라도 있지 않은가. ... 전쟁이 지구전으로 치달으면서 후세인은 이라크보다 4배나 넓은 땅에 3배의 인구를 가진 상대국을 점령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절실히 깨닫기 시작했다. ... 이란은 11월 공세에서는 인해전술을 구사했다. 본격적인 군사훈련도 받지 않고 중무장도 하지 않은 젊은이들이 대규모로 전투에 참가한 것이다. 혁명수비대에서 전장에 나가기를 자원한 수만 명의 젊은이로 구성된 병력은 종교적 열기로 충만한 자하드 세력이었다. 물라를 앞세우고 전장에 나온 이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지하드 병력의 개입으로 이 전쟁은 무슬림 상호간의 성전 비슷한 양상으로까지 발전했다. ... 이들은 시아파이기는 해도 호메이니 정권과 같은 이슬람 원리주의 체제에서 살 생각은 없었다. 후세인을 미워하기에 앞서 호메이니가 전쟁을 계속하는 것이 보다 더 원망스러운 그런 사람들이었다. ... 빨리 끝날 수도 있었던 전쟁이 이렇게 오래 지속된 것은 기본적으로 양측의 전력이 비슷한 데 그 원인이 있었다. 또 하나의 이유는 두 고집쟁이 지도자들이 양측에 포진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국민의 희생을 줄이는 것보다 자신의 자존심을 더 중시하는 독재자들의 성향이 이 전쟁에서 뚜렷이 드러났다고 볼 수 있다.

420p

후세인은 대량파괴무기를 개발함으로써 서방에 대한 안전판을 만들려고 했지만 그의 계획은 결국 실패로 돌아갔다. 걸프전 패배 후 유엔에 의해 시작된 사찰에 순응하지 않았던 후세인은 일시적으로 미국을 이라크로부터 쫓아내는 데에는 성공했을지 모르지만 결국 그에 대한 대가를 톡톡히 치러야 했다. 조지 부시 대통령은 후세인이 대량파괴무기를 감추고 있다고 판단하여 9.11 이후 이라크를 침공키로 결정했다. 훗날 부시 대통령의 판단은 잘못된 것으로 드러났지만 당시에는 누구도 미국의 결정을 막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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