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거정 평전 - 과연 시대는 개혁을 바라는가
주둥룬 지음, 이화승 옮김 / 더봄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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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서 발행된 역사서는 확실히 서구 역사서와 다른 느낌이다.

사회 제도 등의 분석 보다는 인물에 초점을 맞췄다고 할까.

평전이니 더욱 그렇겠지만 얼마 전에 읽은 <영락제> 평전이 대외원정을 중화질서의 완성이라는 측면에 초점을 맞춰 매우 흥미로웠던 반면, 이 책은 사서에 기록된 장거정이라는 인물의 활동에 너무 포커스를 두는 바람에 다소 지루했다.

그럼에도 막연하게만 알고 있었던 명대의 정치 제도와 관료들에 대해 기본적인 지식을 얻게 된 점은 유익했고 장거정이라는 개혁가이자 독재자의 일생을 비판적으로 살펴볼 수 있었다.

권력자가 옆에 있다고 황제가 전부 바보가 되는 것은 아닌 모양이다.

표트르 대제가 어린 나이에 즉위했으나 곧 권력을 휘어잡고 러시아를 개혁했던 반면 비슷한 나이에 즉위한 순조는 평생 세도정치에 휩싸여 왕으로서 역량을 발휘하지 못했던 것을 보면 개인의 자질도 매우 중요한 것 같다.

이 책의 중요 인물인 신종 만력제 역시 10세의 나이에 황위에 올라 잘못을 하면 어머니 앞에 꿇어 앉아 반성문을 쓸 정도로 다소곳 했고 장거정에게 전권을 위임한 것처럼 처신했으나 결국은 그의 사후 조정을 휘어잡고 전제군주로써 보복을 가했으니 역사적 평가와는 별개로 결코 만만한 인물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섭정왕이었다가 사후 순치제에 의해 의해 격하된 도르곤이 떠오른다.

황제 일인의 전제국가라는 점에서 중국 역사는 의회의 힘이 커져 민주주의로 발전한 서구와는 확실히 매우 다른 전통을 가졌던 듯 하다.


<인상깊은 구절>

28p

그는 스무 살에 학생이 되어 과거를 준비했으나 향시에 7차례나 낙방했다. 훗날 아들인 장거정이 한림에 제수된 지 3년이 지나자 비로소 "어려서부터 이제까지 40여년간 공부를 할 만큼 했는데도 오늘날까지 이 모양인 것은 운명인가 보다"라며 과거를 포기했다. ... 태조 주원장이 하층 출신이었다는 점은 그에게 큰 자극이 되었다. 장거정은 한림원 편수로 중용된 후 자신의 출신 배경을 이렇게 밝혔다. "국가는 오직 능력으로만 현자를 뽑으니, 공을 세우면 신분은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

37p

명조는 3대 성조 이래 정치의 중심이 내각에 있었다. 구성원인 내각대학사는 황제의 개인비서일 뿐이다. 아무리 세력이 크다 하더라도 여전히 황제의 제한을 받았고, 대학사라 하더라도 황제에게 버림을 받으면 바로 지체 없이 북경을 떠나야 했다.

45p

친번의 위협은 사라졌지만 세습 종실이 많았고, 조정은 이들의 막대한 생활비를 대느라 국고가 휘청댔다. 이제 이 문제는 정치보다는 경제 문제로 변해 있었다. ... 이들의 생활을 책임지는 국가의 재정은 커다란 압박을 받았다. "두 성의 곡식만으로는 종실을 먹여 살리기에도 부족하니 관리나 군인들은 어떻게 하란 말인가?"

91p

명대 언관의 힘은 실로 대단했다. 벌떼와 같아서 건드리기만 하면 무리지어 달려들곤 했다.

96p

그러나 목종은 탕임금이나 진시황은 고사하고 이 나라의 태조, 성조, 심지어 세종도 아닌 그저 관대하고 후덕하기만 할 뿐, '전체를 장악하고 위엄으로 다스리는' 황제가 못 되었다. .... 명나라는 개국 초기부터 완전한 전시 체제를 취하고 있었다. 국가의 정치 중심인 북경은 최전선에 있어, 언제나 전쟁의 위협에서 벗어나지 못하였다. 대신들은 모두 국방이 제일이라는 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104p

모반을 하려면 그만한 용기와 준비를 했겠지만, 요왕은 그저 놀기 좋아하는 한심한 왕족이었을 뿐이었다. 모반의 준비는 오직 흰 깃발이 전부였고, 홍조선도 이를 알았다. ... 목종은 대신들과 가져야 할 관계를 갖지 못하자 환관들에게 의지했다. ... 다음 날 목종황제가 서거했다. 고공은 큰 소리로 울부짖었다. "열 살 난 태자에게 어떻게 천하를 다스리라고 하는가!" 그는 자신의 책임을 더욱 막중하게 느끼는 듯했다.

147p

풍보는 장인태감으로, 궁내에서는 황제의 하인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황제에게 건네지는 모든 문서를 장악하고 있으므로 역시 장거정에게는 또 한 사람의 주인이었다. 풍보는 절대적으로 자성황태후에게 의지했다. 그러므로 장거정은 태후와 좋은 관계를 유지해 풍보의 압박을 줄이려 했다. ... 그는 풍보가 정치에만 간섭하지 않으면 대체로 눈을 감았다. ... 신종은 당시 열 살이어서 비교적 쉽게 상대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가장 어려운 상태였다. 장거정이 죽은 뒤 발생한 일을 보면 얼마나 어려웠는지 잘 알 수 있다. 

그는 자신이 이 나라의 주인임을 알았지만, 실제로는 정치를 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의 지시를 받아야 하며, 심지어 자신을 지배하는 사람에게 호감을 얻어야 한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었다. 신종은 장거정에게 호감을 얻어야 한다는 것을 아는 한편, 자신이 그의 주인이라는 것도 깨닫고 있었다. 신종은 자신의 지위와 행동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고, 이를 바로잡으려 했다. 따라서 장거정에 대한 호감은 자격지심으로 인해 점차 나쁜 감정으로 변해갔다. 그러나 나이가 어린 신종의 미묘한 변화를 장거정은 간과하고 말았다.

180p

신종은 황태후에게 다시 청해 처형을 집행하도록 허락받았다. 실제적인 책임을 지지 않는 사람들은 항상 관대함을 주장해 백성들의 호평을 받았지만, 실제로 책임을 맡은 사람들에게 이것은 받아들이기 어려운 선택이었다. 

183p

명대처럼 과거시험이 문화에 절대적인 영향을 준 시대도 드물다. 때문에 중기 이후에는 학교 교육이 과거시험을 위한 준비기관으로 전락하였다. ... 만약 장거정이 자신의 정치적 생명을 고려했다면 학풍을 정돈하는 일을 단행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어느 시대에나 당대의 지식층이 있고 이들에게 밉보이면 정치적으로 곤경에 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수재는 당시의 지식층으로 관리 배출뿐 아니라 지방 여론을 주도했다. ... 개인적인 정을 돌보지 않아 많은 적을 만들었으니 개혁은 성공했으나, 훗날의 재앙을 피하지 못하였다.

202p

명대 정치에는 부패 요소가 많았다. 지금은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일들도 당시에는 그저 관례적으로 여겼다. 따라서 말하지 않으면 관습으로 여기지만, 일단 지적을 받으면 부패가 되었다. .. "권력을 잡은지 몇 년 되지도 않았는데, 부는 이미 지역의 으뜸이다"그는 지적은 틀린 말이 아니다. 그러나 이것은 명대 관리들의 일반적인 모습이었다. 사람은 환경의 지배를 받기 마련이다. 만약 장거정이 이렇듯 부패가 만연한 시대에 살지 않았다면, 그리고 그런 부친이 없었다면 그는 청렴한 재상으로 남았을지 모른다. ... 권력을 잡은 인물들은 아들에게 지나치게 집착해 이 두 갈래 길에서 물의를 일으키곤 한다. 이는 고금을 막론하고 인류 사회가 가진 공통된 약점이다.

245p

미관말직은 '그저 자리에 몸을 싣고' 고관대작은 '명철보신'하는 태도를 보이기 마련이다. 국가의 일에 실제로 책임을 지려는 사람들은 '자리에 연연한다'고 욕을 먹거나 '세속에 물든 관리'라고 손가락질을 받지만,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사람들은 내가 아니라도 누군하 하겠지 하고 시나 지으며 세속적인 일에 관심을 갖지 않는다. 

252p

열여섯 살의 황제는 자신과 권력을 다투지는 않더라도 나날이 성장하고 있었고, 상황도 변해서 독재를 하는 신하와 군주의 대립은 피할 수 없었다. 하지만 자신만 이를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장거정이 죽자마자 신종이 가장 큰 적으로 돌아선 것은 정치역학적인 면에서 보자면 당연한 일이다. 다만 신종 초에는 신종과 장거정 모두 이러한 경각심이 없었다. 그리고 유태, 왕용급 등은 그저 장거정이 지나치게 독선적으로 행동하니, 황제가 그를 제재해야 하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299p

친정을 시작하게 된 신종은 재물에 관심이 많았는데, 금관은 그 대표적인 사례다. 그때부터 명나라는 급격히 멸망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오류>

14p

왕망은 조카 애제의 황위를 찬탈했다.

->왕망은 애제가 아니라 원제의 정비인 왕황후의 조카이다. 원제의 손자인 애제가 급사 후 역시 원제의 손자인 평제가 즉위했고, 왕망의 딸이 평제의 황후가 된다. 평제를 죽인 후 선제의 현손인 유영이 황위에 오르는데 이 황위를 찬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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