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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치와 광기 - 세계사를 바꾼 정복자와 독재자들
류광철 지음 / 말글빛냄 / 2017년 7월
평점 :
저자의 최근작 <누가 이슬람을 지배하는가>를 재밌게 읽고 (특히 십자군 부분이 너무 재밌었다) 다른 책도 같이 읽게 됐다.
제목이 좀 모호하고 책 디자인이 세련되지가 않아 확 눈에 띄지는 않지만 내용은 역시나 흥미진진하다.
과거 역사에서 두 사람, 현대사에서 세 사람을 뽑아 평전처럼 기술한다.
1편은 일종의 총론인데 인물들을 먼저 설명하고 뒷부분에 종합하는 식으로 실었으면 어땠을까 싶다.
알렉산드로스나 칭기즈칸은 역사적 인물들이라 비교적 잘 알고 있었지만 히틀러와 스탈린, 특히 사담 후세인에 대해서는 거의 몰랐던 부분이라 아주 흥미롭게 읽었다.
역사에 남는 영웅 내지 반영웅이 되려면 일단 배포가 커야 하고 범인으로서는 갖기 어려운 무자비함과 냉혹한 성격을 지녀야 하는 듯 하다.
히틀러의 유대인 학살이야 워낙 많이 알려져 그러려니 하지만, 스탈린의 숙청 규모가 이렇게 큰 줄 미처 몰랐다.
전제주의 황제를 몰아내고 세운 인민의 나라라는 실체가 결국 수백 만명에 달하는 자국민 처형이었다니 마르크스가 주장하던 공산주의는 그저 문자로만 가능한 이야기인 듯 하다.
마오쩌둥의 대약진 운동이나 문화혁명을 봐도 그렇고 프롤레타리아에 의한 나라라는 것도 결국 1인 독재로 귀결되어 엄청난 사망자를 낼 뿐이니 공산주의나 사회주의는 결국 실패한 체제가 아닐까 싶다.
<인상깊은 구절>
67p
고대 영웅들인 알렉산드로스나 칭기즈칸과는 달리 히틀러는 점령지 국민들 자국민으로 편입시키는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히틀러의 목표는 오로지 넓은 영토를 확보하는 것이었다. 독일인이 광대한 생존공간에 일등신민으로 활동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목표인 것이다. 이런 목표를 가진 히틀러는 점령지 주민을 제거하거나 몰아내려고 했지 구태여 동화시키려고 하지 않았다. ... 그가 독일 국민을 세상에 우뚝 선 민족으로 만들어줄려고 했던 망상은 산산조각 나버렸다. 히틀러가 영광을 되찾아주려고 했던 제국은 무너져 내렸고 독일은 전승국들에 의해 분할 통치되는 신세로 전락하고 말았다. 히틀러가 유대인과 함께 타도의 대상으로 삼았던 공산주의는 오히려 타오르는 불길이 되어 유럽의 절반을 차지했고 히틀러의 수도를 나누어 가졌다. 히틀러를 영웅으로 여기고 모든 것을 히틀러에게 걸며 그를 숭배했던 독일 국민은 그 대가를 톡톡히 치러야 했다. 독일은 오늘늘까지도 히틀러가 끼친 죄과를 사죄하며 히틀러의 망령이 되살아나는 것을 가장 경계해야 하는 나라로 살고 있다.
85p
팔랑크스 진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대열을 이탈하지 않는 것이다. 이를 위해 뒤쪽 열에는 경험이 풍부한 병사들을 배치했다. 밀고 들어가는 전법이므로 밀리지 않는 것이 생명이었다. 죽어도 물러서는 일이 없도록 팔랑크스 대원들은 혹독한 훈련을 받았다. ... 안티파트로스는 섭정의 임무에 충실했다. 그는 평생 군인답게 충실하고 엄격한 섭정이었으나 올림피아스와는 성격이 맞지 않았다. 안티파트로스에 대한 그녀의 불평과 비난 그리고 폄하는 원정 내내 알렉산드로스를 괴롭혔다. ... 젊은 알렉산드로스는 멋쟁이 지휘관이었으며 모든 일에 솔선수범했다. 전투에서 앞장 서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고 적의 목표가 되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 역사상 위대한 업적을 남긴 많은 영웅들과 마찬가지로 알렉산드로스도 대단한 행운아였다. ... 알렉산드로스는 파르메니온과는 달리 위험 부담을 마다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 시대를 막론하고 정복자들이 처음부터 모든 조건을 완벽하게 갖춘 뒤 출정에 나서는 경우는 거의 없다. 부족하지만 강한 신념과 정열에 의지하여 출정에 나서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따라서 이들에게는 부족한 식량과 돈을 마련하는 것이 늘 현실적인 문제였다. 알렉산드로스가 이를 극복하는 모습을 보여준 것은 후세의 정복자들에게 귀감으로 남았다. ... 또한 그들은 중무장한 알렉산드로스군 앞에서도 겁을 집어먹지 않았다. 싸워보지도 않고 알렉산드로스에게 굴복할 경우 영원히 예속될 것을 우려한 것이다. ... 중앙아시아 정복은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스키타이계, 투르크계 민족들은 용맹했고 전투에 능했다. 지방의 호족들은 자신의 영지를 지키기 위해 조직적으로 저항했다.... 말리 족과의 전투에서 알렉산드로스는 가슴에 활을 맞고 거의 죽을 뻔했다. 단신으로 성벽에 올라가 부하들이 도착하기도 전에 적진에 뛰어들었던 것이다. 무모한 면도 있었지만 젊은 알렉산드로스는 전투를 즐기는 철두철미한 군인이었다.
158p
황제는 칭기즈칸이 얼마나 뛰어난 전략가인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 양측의 차이는 뚜렷했다. 칭기즈칸은 총사령관으로서 몽골군을 진두에서 지휘하면서 작전을 펼쳤으나 금황제는 장군들에게 지휘권을 양도하고 자신은 북경의 궁궐에서 보고만 받았다. ... 북경은 관심 밖이었으므로 그는 자신이 정복한 도시에 가보지도 않았다. 북경 뿐 아니라 이 후에 정복한 모든 도시들에 대해서도 칭기즈칸은 거의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몽골군은 성을 약탈하고 파괴했을 뿐 도시를 점거한 후 활용하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들은 도시를 살만한 곳으로 여지기 않았다. 싸움이 끝나면 도시를 파괴하고 속히 초원으로 돌아가는 것, 그것이 그들의 목표였다. 칭기즈칸은 도시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었고 새로운 지식을 얻으려 하지도 않았다. ... 칭기즈칸은 살육자에 도시 파괴자를 겸한 것 같은 정복자였다. ... 유럽이나 중동에서 벌어진 다른 전쟁에서는 전투에서 패해도 귀족이 죽는 일은 드물었다. 그들은 포로가 되어도 기사도 정신에 따라 귀족으로서 대접을 받았다. 그러나 몽골군에게는 그러한 관행이 없었다. 포로면 포로지 귀족이고 평민이고 구분이 없었다. 몽골군은 왕족이나 귀족은 오히려 더 귀찮은 존재로 생각했다. 살아 돌아가면 힘을 규합하여 복수전을 펼칠지 모른다는 생각에서였다. 따라서 몽골군은 그들을 보이는 족족 죽였다. ... 포로로 잡히는 순간 태후의 존재는 사라지고 말았다. 고귀한 신분이라고 해서 배려해주는 일은 일체 없었다.
227p
히틀러가 국민으로부터 영웅 취급을 받고 전례 없이 높은 인기를 누리는 인물로 떠올랐지만 사실 그의 권력을 지탱해 준 것은 군부이다. 히틀러는 베르사유 조약 위반을 감수하고 재무장 정책을 추진할 것을 공약했는데 이는 군부의 전폭적인 지지에 힘입은 것이다. 군을 확장하겠다는데 군부가 반대할 이유가 있겠는가? ... 재무장까지는 좋았지만 히틀러가 그보다 더 나아갈 것을 예측하지는 못했던 것이다. 군부는 히틀러에게 운명을 맡긴 뒤 5년도 못돼 전통적인 지위를 상실하고 그에게 예속된 집단으로 전락했다. 그들은 승리를 장담하지 못하는 두려운 길을 히틀러와 함께 걸어가야 했다. ... 영국의 견고한 저항은 히틀러를 패망으로 이끈 원동력이 되었다. 히틀러는 영국을 제압하지 못할 경우 언젠가는 대서양 너머 거대한 미국이 지원 세력으로 나서게 될 것으로 예측했다. 비록 군사적으로 영국을 돕지 않아도 경제적으로 도울 가능성은 다분했다. 독일은 총체적으로 소련을 얕보고 있었다. 히틀러는 소련을 경멸했고 그의 지휘관들도 마찬가지였다. 나치는 슬라브족을 우습게 봤고 볼셰비즘 따위는 쉽게 무너뜨릴 수 있을 것으로 판단했다. ... 그러나 독일은 소련의 잠재력을 너무나 몰랐다. 히틀러는 소련군보다는 오히려 조직력이 탄탄한 유대인이 더 문제가 될 것으로 오판했다.
272p
결국 전공과는 관계없는 과목을 독학으로 공부한 셈이다. 이 때문에 정식으로 대학에서 정치, 경제, 철학 등을 공부한 공산주의 이론가들과는 지식의 깊이나 넓이에 있어서 차이가 컸다. 스탈린의 학문 연구는 피상적이었기 때문에 레닌이나 트로츠키와는 상대가 되지 않았다. 레닌과 트로츠키는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나 부르주아 문화도 경험하고 대학에 전문적으로 지식을 익힌 사람들이었다. ... 부르주아인 레닌에게 노동자는 자신의 이념을 실현시켜 줄 대상이었으므로 낭만적인 감정이 앞섰으나 스탈린은 냉정했다. 그는 계급에 대한 증오심이 있었으나 그렇다고 해서 하층 계급 사람들에게 특별한 연민을 가지지 않았다. ... 스탈린은 농민에게 일체 자비를 베풀지 않았다. 도시인과 농민 모두가 먹고 살 만큼 식량이 충분하지 않을 때에는 누군가 희생되어야 하는데 스탈린의 선택은 농민이었다. ... 스탈린은 혁명을 성공으로 이끈 후 공포정치를 통해 내부 체제를 장악했고 이제는 국가를 구출한 전쟁 영웅으로 등장하게 되었다. 그의 행운은 끝이 없었다. ... 마셜은 전쟁으로 피폐한 유럽을 부흥시키기 위해 천문학적인 지원을 약속했고 그 덕분에 유럽은 빠른 속도로 과거의 풍요를 되찾을 수 있었다. 소련에게는 미국과 같은 구세주가 없었다. 모든 일을 자력으로 해결해야 했다. 설사 자존심을 팽개치고 미국에게 원조를 요청한다고 해도 1억 5천만 명에 달하는 국민을 만족시킬 수는 없었다. ... 차라리 함께 굶주리는 것이 더 나았다. 사실 모두 가난하다면 별로 불평이 나올 일도 없다. 스탈린은 서방에게 원조를 요청하지 않았고 함께 고난의 길을 택했다.
387p
양국을 절대적으로 지배하는 두 지도자는 성격이 다를 뿐 아니라 상반된 역사의식을 갖고 있었다. 불행한 것은 이 두 사람이 나라의 모든 것을 좌지우지하는 입장에 있었다는 사실이다. 후세인은 이슬람 혁명을 통해 집권한 호메이니가 그 촉수를 이라크에 미칠까 두려워했다. 반면 호메이니는 후세인을 경멸하고 싫어했다. 후세인이라는 존재 자체가 그에게는 종교적 신념에 대한 모독이었다. ... 군사적 경험이 전무한 후세인이 전쟁을 직접 지휘했다. 이에 비한 제2차 세계대전 중 독일군의 지휘봉을 잡은 히틀러는 그나마 나았다. 그는 제1차 세계대전 참전 경험이라도 있지 않은가. ... 전쟁이 지구전으로 치달으면서 후세인은 이라크보다 4배나 넓은 땅에 3배의 인구를 가진 상대국을 점령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절실히 깨닫기 시작했다. ... 이란은 11월 공세에서는 인해전술을 구사했다. 본격적인 군사훈련도 받지 않고 중무장도 하지 않은 젊은이들이 대규모로 전투에 참가한 것이다. 혁명수비대에서 전장에 나가기를 자원한 수만 명의 젊은이로 구성된 병력은 종교적 열기로 충만한 자하드 세력이었다. 물라를 앞세우고 전장에 나온 이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지하드 병력의 개입으로 이 전쟁은 무슬림 상호간의 성전 비슷한 양상으로까지 발전했다. ... 이들은 시아파이기는 해도 호메이니 정권과 같은 이슬람 원리주의 체제에서 살 생각은 없었다. 후세인을 미워하기에 앞서 호메이니가 전쟁을 계속하는 것이 보다 더 원망스러운 그런 사람들이었다. ... 빨리 끝날 수도 있었던 전쟁이 이렇게 오래 지속된 것은 기본적으로 양측의 전력이 비슷한 데 그 원인이 있었다. 또 하나의 이유는 두 고집쟁이 지도자들이 양측에 포진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국민의 희생을 줄이는 것보다 자신의 자존심을 더 중시하는 독재자들의 성향이 이 전쟁에서 뚜렷이 드러났다고 볼 수 있다.
420p
후세인은 대량파괴무기를 개발함으로써 서방에 대한 안전판을 만들려고 했지만 그의 계획은 결국 실패로 돌아갔다. 걸프전 패배 후 유엔에 의해 시작된 사찰에 순응하지 않았던 후세인은 일시적으로 미국을 이라크로부터 쫓아내는 데에는 성공했을지 모르지만 결국 그에 대한 대가를 톡톡히 치러야 했다. 조지 부시 대통령은 후세인이 대량파괴무기를 감추고 있다고 판단하여 9.11 이후 이라크를 침공키로 결정했다. 훗날 부시 대통령의 판단은 잘못된 것으로 드러났지만 당시에는 누구도 미국의 결정을 막을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