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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 본능 - 불, 요리, 그리고 진화
리처드 랭엄 지음, 조현욱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11년 10월
평점 :
제목만 보고 요리에 관한 책인 줄 알았는데 저자가 진화생물학자라 호기심에 고르게 됐다.
왜 제목을 이렇게 지었을까?
센스있는 것 같으면서도 책의 내용을 짐작하기 어렵게 한다는 점에서 아쉽다.
요리라고 하면 문화적 활동을 생각하지 불을 이용한 익혀 먹기가 인류의 진화에 미친 특성을 생각하기는 어려울 듯하다.
그렇지만 번역도 매끄럽고 무엇보다 어려운 인류학을 너무 쉽게 또 재밌게 설명해 주는 훌륭한 책이다.
사실 나는 요리에 1도 관심이 없어 요리 본능이라는 말 자체가 너무 어색하게 들린다.
저자는 화식을 통해 호모 하빌리스에서 호모 에렉투스로 진화했다는 점을 보여주고 한 단계 다 나아가 남자는 바깥일, 여자는 집안일이라는 성별분업까지 이어졌다고 주장한다.
사냥감만 잡아 오면 되는 게 아니라 불에 굽고 식사를 준비하는 과정이 필요하기 때문에 여자가 요리하는 동안 음식물을 뺏어가지 않게 남자가 지켜주고 둘러 앉아 함께 나눠 먹는 가정이라는 공동체가 형성됐다는 것이다.
한때는 나도 페미니스트라고 생각했는데, 학교나 집에서 차별받아서가 아니라 여성은 직장보다 가정이 우선이라는 관념이 너무 싫었기 때문이다.
요리나 육아 가사일에 전혀 관심이 없고 솔직히 말하면 크게 가치를 두지 않는데 여성의 본분은 가정이라는 그 생각이 너무 싫었다.
그래서 가끔 여성 커뮤니티에서 놀랄 때가, 남편이 맞벌이 하라고 강요한다는 글이다.
내 생각에는 남편이 직장을 그만두라고 해야 고민일 것 같은데 왜 직장을 다니라고 하는 게 문제일까 너무 의아하다.
엄마는 국어교사였는데 친구들이 결혼하고 아이 낳으면서 거의다 학교를 그만뒀지만 엄마만 유일하게 아이 셋을 낳고도 무사히 40년 근무 후 정년퇴직을 하셨다.
항상 그런 엄마가 자랑스럽고 엄마가 학교 생활을 잘 할 수 있도록 후원해 주는 아빠가 멋지게 느껴진다.
지금도 내가 남편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 일을 하기 때문에 요리는 전적으로 남편이 담당하고 있다.
남편이야 말로 요리본능에 아주 적합한 사람일 듯하다.
나는 먹는 것 자체에 큰 의미를 안 두고 데우기 귀찮아서 뜨거운 것도 안 먹을 정도인데 남편은 한끼 식사를 위해 정말로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 유튜브도 요리 채널만 본다.
남녀의 성별분업이 본능이라면 정말 현대인은 인간의 자연스러운 본능에 역행하여 살아가는 셈이다.
마치 성인이 돼서도 우유를 소화시키는 유전자가 최근 만 년 이내에 생겨나는 것처럼 문화의 변화가 먼 훗날 지금과 다른 인간을 만들어 낼지도 모르겠다.
그러고 보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어 준 생물학적 특징은 언어, 직립보행, 도구의 사용, 큰 뇌 등이 있지만 무엇보다 불의 사용이 가장 큰 것 같다.
불을 사용하여 음식을 익혀 먹게 됨으로써 소화기관이 짧아지고 에너지 효율성이 높아짐에 따라 뇌에 많은 포도당을 공급할 수 있게 됐다.
큰 뇌가 화식으로 가능해졌다는 얘기다.
큰 뇌가 불을 사용할 수 있게끔 만든 게 아니라 불을 사용해 익혀 먹음으로써 에너지 이용률이 높아져 뇌가 발달했다는 방향이 신기하다.
저자는 이 시기를 호모 하빌리스에서 호모 에렉투스로 넘어가는 시기, 즉 190만년 전으로 본다.
호모 하빌리스가 육식을 시작했고 땅에 내려와 머무는 기간이 길어졌다면 어느 순간 불을 이용해 익혀 먹는 호모 에렉투스로 발전했고 현재의 인류와 거의 흡사한 체형을 가졌다고 한다.
복잡한 진화 인류사를 요리라는 친숙한 소재를 이용해 잘 설명해 주는 좋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