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와 그리스도교 - 그리스도교는 어떻게 로마를 정복했는가? His+STORY 그리스도교의 역사 1
김덕수 지음 / 홍성사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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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 디자인이 참 예쁘고 보기 편하게 편집되었다.

같이 실린 명화들은 흑백이고 너무 작아 차라리 빼는 게 나을 뻔했다.

기독교가 어떻게 로마의 국교가 됐느냐에 대한 고찰이기도 하지만 역으로 기독교의 로마화이기도 한다.

다신교 전통이 강했던 로마가 유일신 사상이 기독교로 바뀌는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비성경적인 요소들, 이를테면 성인숭배나 마리아 공경 등과 같은 풍속들이 유입되었다.

2천 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종교이고 보면 16세기 종교개혁을 통해 정화된 개신교보다는 교리적으로 좀더 빈틈이 많을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기독교가 국교화 된 후 로마가 오히려 멸망해 버리자 당시 사람들의 충격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하나님이 축복하는 나라인데 오히려 이민족들에게 망해 버리다니.

저자는 아우구스투스의 <신국론>이 이러한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쓰여졌다고 본다.

하나님의 나라인 신국과 지상의 나라 로마는 서로 별개라는 것이다.

마치 유대인들이 제대로 신앙 생활을 하지 않아 나라가 멸망하고 디아스포라에 처해졌으니 더욱 열심히 믿어야 한다는 논리의 변형 같다.

현실과 교리상의 모순을 자체적으로 해결하지 못했다면 오늘날까지 보편적인 종교로 계승되지 못했을 것이다.

게르만족의 침입으로 로마가 멸망했으나 오히려 그들에게 복음을 전파하여 기독교는 유럽 전체를 지배하게 된다.

북방 이민족이 중국을 점령한 후 오히려 한화가 되버린 경우와 비슷할까?

여러 민족을 하나로 통합하는데 기독교가 중요한 정신적 기둥 역할을 잘 수행해 낸 것이다.

로마는 왜 멸망했는가에 대한 에드워드 기번의 대답은, 제국이 커지면서 많은 문제들이 생겼는데 기독교를 국교화 함으로써 상무 정신을 잃어버리고 세속적인 에너지를 종교에 돌려버려 그 모순점들을 해결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오늘날 종교 광신주의자나 중동의 이슬람 국가들을 생각해 보면 일리있는 지적 같기도 하다.

서구가 근대화에 성공한 것도 종교로부터 독립하여 세속적인 방향으로 선회했기 때문일 것이다.

주제는 기독교지만 전체적으로 로마사를 훑어볼 수 있는 좋은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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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1클래식 1기쁨 - 하루하루 설레는 클래식의 말 1일 1클래식
클레먼시 버턴힐 지음, 김재용 옮김 / 윌북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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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는데도 진도가 빨리 빨리 안 나가서 왜 그런가 생각해 봤더니, 모르는 작곡가들이 많아서 그랬던 것 같다.

현대 미술가 소개하는 책을 읽을 때도 일일이 찾아보느라 한 시간에 20페이지 속도로 읽는 것처럼 이 책도 꽤 시간이 오래 걸렸다.

문체도 좋게 말하면 위트가 있지만 가독성이 다소 떨어지는 느낌인데 저자 약력을 보니 소설가이기도 해서 비유적인 표현을 많이 쓰다 보니 번역 과정에서 더 매끄럽지 않게 느껴지는 것 같다.

그렇지만 흔한 고전음악 작곡가와 유명곡만 늘어놓은 책은 아니라서 클래식에 대한 내 관심을 높이는데 큰 도움이 됐다.

저자가 여성 바이올리니스트라 그런지 여성과 흑인 같은 클래식 작곡가들의 주변부에 대해서도 많은 분량을 할애한 점이 참 좋다.

글 하나하나에 클래식 음악에 대한 저자의 애정이 녹아있어 정말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이구나 느낌이 온다.

나는 클래식은 큰 관심이 없지만 위대한 작곡가나 연주가에 대한 경외심은 늘 갖고 있고 특히 눈에 보이지 않는 추상적인 음악을 만드는 작업에 대한 호기심이 있다.

내가 좋아하는 건 이야기가 있는 오페라이고 더 좋아하는 건 그 오페라가 만들어진 인문학적 배경이다.

사실 클래식이라고 하면 모차르트, 베토벤, 말러 등 19세기 정도로 끝인 줄 알았다.

그런데 20세기에도 여전히! 정말 많은 클래식들이 만들어지고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

저자는 클래식 작곡가에만 국한하지 않고 재즈 같은 다양한 현대 음악의 작곡가들도 편견없이 소개하고 있다.

지금도 여성 작곡가나 지휘자는 드물지만 여성에게 참정권이 없던 시절에도 역사에 남는 여성 음악가들이 있었다는 사실이 놀랍다.

정말로 시대를 앞서 가는 천재들이었던 모양이다.

브라질이나 아르헨티나, 베네수엘라 등 남미권 작곡가들도 많이 나와 신선했다.

책에서 추천하는 곡들을 매일 한 곡씩 들어 봐도 참 좋을 것 같다.

오늘날에는 플레이 버튼만 누르면 세상 모든 음악을 다 들을 수 있으나, 불과 백 년 전만 해도 음악을 듣기 위해서는 연주회장으로 가는 수밖에 없는 상황, 즉 다양한 음악을 접하지 못하는 상태에서도 이렇게나 훌륭하고 놀라운 음악들을 만들어 내는 작곡가들은 정말 천재라는 생각이 든다.


<오류>

100p

현악 사중주 C장조, 도이치 956번

-> 현악 오중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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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자료 읽기 나의 역사 쓰기
김인걸 외 지음 / 경인문화사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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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자 크기가 작은데 400 페이지가 넘어 읽기 힘들까 봐 걱정했던 책이다.

김인걸 교수의 제자들이 정년 기념으로 본인들에게 특별했던 역사 자료들에 관한 에피소드들을 짧은 글로 쓴 모음집 형식이다.

일제 시대 이후를 다룬 맨 마지막 몇 편만 지루했고 그 외 챕터들은 아주 흥미롭게 읽었다.

새삼 이분들은 박영규씨 같은 대중 역사 저술가가 아니라 진짜 학자들이구나 느꼈다.

항상 내가 가장 좋아하고 잘할 수 있을 것 같은 역사학도의 길을 가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이 남아 있었는데 이번 책을 읽으면서 학자가 된다는 것은 정말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자료라고 하면 겨우 조선왕조실록이나 삼국사기 정도 수준 밖에 몰랐는데 이렇게 방대한 엄청난 자료들이 산재해 있는지 미처 몰랐다.

기본적으로 한문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야 자료 해석이 가능할텐데 전공자들도 매우 어려운 문제인가 보다.

김인걸 교수도 서문에서 대학생 때 제자들에게 한문 독선생을 붙여 준 스승에 대한 고마움을 여러 차례 표현한다.

해서로 깔끔하게 인쇄된 자료만 있는 게 아니라 초서로 휘갈겨 쓴 자료들도 많아 판독부터 어려운 경우도 종종 있었다.

오늘날 지성인들의 수준에도 어려운 게 한문이고 보면 조선시대 선비들의 학문 수준이 과연 대단했구나 싶고, 일반 서민들이 주경야독으로 과거 준비를 한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을 듯하다.

김인걸 교수가 대학원 면접 때 집에 돈은 있는가라는 질문을 받았다는 에피소드가 있다.

어제 전형필 같은 예술 후원가들의 책을 읽으면서도 느낀 바지만 학문이나 예술로 돈을 번다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고 (어쩌면 불가능할지도) 자산이 있지 않으면 설령 열정과 재능이 있다 할지라도 고된 학문의 길을 간다는 것은 어려운 듯하다.

더군다나 가정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남자라면 더욱 그럴 것이다.

내가 현재의 직업을 갖게 된 계기도, 역사를 무척 좋아해서 사학과에 가고 싶었으나 철학교수였던 아빠가, 여자가 대학에 남기는 매우 어렵다면서 이과로 돌리면 어떻겠냐고 조언해 줬기 때문이다.

최근까지도 무척 아쉬운 부분이었으나 요즘 대중서보다는 좀더 깊이있는 책들을 읽으면서 지금처럼 즐겁게 독서하는 수준이 내 깜냥에 맞구나 싶다.


여러 전공 분야의 저자들이 쓴 글들이라 흥미로운 이야기가 많았지만 특히 19세기 조선이 세도정치로 갑자기 몰락한 것은 아니라는 의견이 제일 기억에 남는다.

전에도 비슷한 주장을 접했던 기억이 난다.

특히 19세기의 세도정치는 영정조 이후로 왕권이 강화되면서 비판 세력이 줄어든 가운데, 정조가 김조순 가문을 외척으로 삼아 국정을 끌고 가려 했던 구상이 어린 임금의 즉위와 더불어 세도정치로 변질됐다고 했다.

조선은 근대화에 실패하여 몰락했으나 일반적인 이미지처럼 백성들을 수탈하고 정부 조직이 완전히 무너진 것이 아니라 마지막까지 전통 사회의 안정된 통치를 위해 많은 노력이 있었음을 보여준다.

흔히 생각하는 환곡의 문란도 정부에서 무조건 수탈한 것이 아니고, 부세로서 의미가 강해지긴 했으나 나름 지방관들이 구휼에 애를 쓴 내용들도 나온다.

조선 시대 생산력이 워낙 낮아 기본적으로 많은 세금을 거둘 수가 없었다는 주장도 들었던 적이 있다.

많은 자료들이 남아 있고 바로 몇백 년 전 시대인데도 사회상을 정확히 알기 어려운 걸 보면 고대 시대의 역사는 정말 더듬더듬 만지는 수준일 것 같다.

그래서 상상력도 많이 가미되고 역사 왜곡도 쉽게 이루어지는 모양이다.

병자호란 당시에 대한 이야기도 나온다.

흔히 인조와 조정 대신들이 척화를 주장했다고 하지만, 저자는 당시 조선의 여론이 강력하게 척화를 주장했고, 오히려 조정 대신들은 상황이 어렵다는 것을 인지하고 강화를 맺었다고 한다.

나라를 운영하는 사람들이 바보가 아닌데 사극에 나오는 것처럼 무조건 싸우다가 죽자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주화파였던 최명길 역시 강화 맺은 것을 평생 부끄럽게 생각했다고 한다.

대명의리는 비단 일부 조정대신의 주장이 아니라 나라의 모든 선비들이 주장했던, 인조반정의 매우 중요한 명분이었던 셈이다.

오히려 드러나는 자료에 따르면 인조는 광해군대의 외교 정책을 물려받아 왜의 동태를 살펴 청에 전함으로써 같은 안보권에 묶으려고 하는 등 나름 노력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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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넷 2020-05-22 21: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미있을 것 같아요

marine 2020-05-23 09:05   좋아요 0 | URL
김인걸 교수의 글은 방법론을 강조해서 좀 어렵고, 제가 잘 몰랐던 자료가 이렇게 많았나 놀랬어요.
정말 학자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구나 싶을 정도로 학위 논문 쓰는 사람들은 참 대단하다 싶어요.
 
청나라, 키메라의 제국 서울대 인문 강의 시리즈 1
구범진 지음 / 민음사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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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인문 강의 시리즈는 대중 인문학이라는 취지에 맞게 흥미로운 주제를 전문적이고 높은 수준으로 재밌게 서술되어 정말 마음에 든다.

책의 서문에 나온 바대로 쉽게 설명하는 게 오히려 어려웠을 학자들인데도 어쩜 이렇게 대중의 눈높이에 딱 맞게 쉽고 재밌게 설명할 수 있는지 다시 한 번 대한민국 최고의 학부 교수님들에 대한 존경심이 생긴다.

저자의 전작 <병자호란, 홍타이지의 전쟁>은 수치와 통계 위주이고 분량도 많아 지루한 면도 있었는데, 이번 주제는 250 페이지의 부담없는 분량이고 무엇보다 내용이 아주 재밌다.

청나라라는 한 제국의 역사를 서술하는 비교적 복잡한 주제인데도 간결하게 독자에게 제국의 속성에 대해 쉽게 설명해 준다.

청나라라고 하면 만주족에게 점령당한 중국 왕조라고만 생각했었는데, 오히려 오늘날 중국이 주장하고 있는 5족공화가 본질적인 속성이라고 한다.

물론 청은 겉으로만 만한병용을 내세웠을 뿐 거의 마지막까지 만주족이 정치를 장악했다.

명의 영토였던 중국 본토는 한족의 관리체제로 다스렸고 이 때도 총독과 같은 고위직은 만주족이 독점했다.

그 외 지역은 중국의 황제가 아닌 칸이나 티벳 불교 등의 원리로 통치했고 이 때 토사제를 통해 상당 부분 자치를 허용했다.

즉 청나라의 황제는 중국의 역대 왕조처럼 유교 원리만으로 통치하는 것이 아니었다는 얘기다.

또한 러시아와 네르친스키 조약을 맺거나 조선에 사신을 보내는 등 외교 정책에는 한인들을 배제시켰다.

조선에 환관을 보냈던 명나라와는 매우 대조적으로 청은 정3품 이상의 고위 관료들, 특히 만주족을 사신으로 보냈다.

조선이 끝까지 청의 종주권에 저항했던 이유도 있지만 완전히 복속된 18세기 이후에도 여전히 정책을 고수했던 것을 보면 저자는 청이 중국 본토의 한족과 그 외 변방의 민족에 대해 이원적인 정책을 폈기 때문이라 지적한다.

청나라는 단순히 한족을 점령한 소수의 만주족이 세운 중국 왕조가 아니라, 티벳, 몽골, 위구르, 한족을 아우르는 거대한 제국이었다.

그리고 외번으로 조선과 베트남, 유구 등을 거느렸다.

청 제국이 오스만 제국과 비슷하다는 말에 공감이 된다.

오스만 제국은 유럽까지 영토를 넓힌 거대한 제국이었으나 오늘날 터키라는 아나톨리아 반도로 축소되었다.

반면 청 제국은 비록 외몽골이 소련에 의해 독립했으나 그 외의 지역들은 전부 유지하고 있다.

그러고 보면 오늘날의 중국은 단순히 한족의 유산이 아니라 몽골과 티벳, 위구르를 복속시킨 청 제국의 후신인 셈이다.

오히려 청나라는 이들 지역에 대해 자치권을 부여했지만 중화민국이 들어선 후 중앙 정부에 복속시키고 한화 정책을 시행하여 지금까지도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

민족주의 국가가 대세이고 소련이 해체된 것만 봐도 오늘날 중국의 정책은 이들 지역에 대해 매우 폭압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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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담과 이브의 모든 것
스티븐 그린블랫 지음, 정영목 옮김 / 까치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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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자 지상주의, 혹은 근본주의 기독교를 공격하는 책은 주로 리처드 도킨스 같은 과학자들이 쓰는 줄 알았는데, 이 책의 저자는 인문학 교수인 것 같다.

진화론에 입각한 책인 줄 알고 읽었는데, 창조의 기원, 즉 창세기의 주인공 아담과 이브가 실존 인물이 될 수 없음을 역사적으로 논증하고 있다.

번역자 정영목씨의 번역본들이 아주 매끄럽게 잘 쓰여 있어 무척 기대가 컸지만, 원서 자체의 문체가 난해한지 한 눈에 읽히지 않아 다소 어려웠다.

다른 리뷰에는 번역이 아주 훌륭하다고 하는데 문학적인 표현이 많아서 그런가 나로서는 가독성이 많이 떨어져 아쉽다.

너무 꾸미는 문학적 문장이 많아 명료하지가 않다.

전체적인 내용은 공감하는 바가 아주 컸다.

내가 여전히 기독교에 관심이 있고 또 무신론 혹은 진화론에 대한 확고한 증거를 열심히 찾고 있는 것은 순전히 근본주의자인 엄마 때문이다.

엄마는 인격적으로 매우 존경스럽고 사회 생활과 가정 생활 모두를 훌륭하게 해내는 내 롤모델 같은 분인데 문제는 그 굳건한 자존감의 근원이 기독교적 근본주의에 있다는 사실이다.

신이 있는가, 이런 거창하고 근원적인 질문에는 확고하게 답하기 어렵다.

그렇지만 적어도 이 책에서 주장한 바와 같이 아담과 이브가 인간의 기원이 아님은 확실히 알고 있다.

근본주의자들은 문자 그대로 성경을 해석하고 진화를 여전히 가설에 불과하다고 폄훼한다.

그런데 이런 성경의 모순에 대해서는 진화에 대한 과학적 증거를 갖고 있는 현대인들만 지적한 것이 아니라, 오래 전부터 서구인들도 지적하고 고민해 왔음을 알게 됐다.

진화라는 엄청난 비밀을 모른다 해도 문자 그대로 성경을 해석하자면 너무나 많은 모순에 직면하게 된다.

필연적으로 성경은 알레고리, 즉 우화로써 읽힐 수 밖에 없지만, 그럴 경우 종교적 믿음이 흔들리게 되므로 아우구스티누스 같은 초기 교부들은 강력하게 창세기의 문구를 방어하고, 아담과 이브의 원죄가 우리에게 전해 왔다고 설파했다.

<아담 이전 사람들>을 저술한 17세기의 이삭 라 페이레르에 따르면 아담의 자녀들은 누구와 결혼했단 말인가?

그들은 근친상간으로 번성했는가?

카인이 아벨을 죽이고 도망갔을 때 다른 사람들이 그를 죽이려 할까 봐 두려워 했다는데 그들은 또 누구란 말인가?

인류 이전의 공룡 화석은 또 뭐란 말인가?

지구의 나이가 6600년이라고 지금도 믿고 있는 근본주의자들이 창조론을 과학 시간에 함께 가르쳐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으니 성경을 문자 그대로 진리라고 믿었어야 했던 당시 지식인들의 고뇌가 얼마나 컸을까 싶다.

아담과 이브는 유대인의 조상일 뿐이라는 게 라 페이레르의 결론이다.

문자 그대로의 창세기를 믿지 않으면 진정한 믿음이 아니라는 교회의 논리에 맞서 신앙과 과학의 조화는 결국 성경이 알레고리임을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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