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자료 읽기 나의 역사 쓰기
김인걸 외 지음 / 경인문화사 / 2017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활자 크기가 작은데 400 페이지가 넘어 읽기 힘들까 봐 걱정했던 책이다.

김인걸 교수의 제자들이 정년 기념으로 본인들에게 특별했던 역사 자료들에 관한 에피소드들을 짧은 글로 쓴 모음집 형식이다.

일제 시대 이후를 다룬 맨 마지막 몇 편만 지루했고 그 외 챕터들은 아주 흥미롭게 읽었다.

새삼 이분들은 박영규씨 같은 대중 역사 저술가가 아니라 진짜 학자들이구나 느꼈다.

항상 내가 가장 좋아하고 잘할 수 있을 것 같은 역사학도의 길을 가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이 남아 있었는데 이번 책을 읽으면서 학자가 된다는 것은 정말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자료라고 하면 겨우 조선왕조실록이나 삼국사기 정도 수준 밖에 몰랐는데 이렇게 방대한 엄청난 자료들이 산재해 있는지 미처 몰랐다.

기본적으로 한문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야 자료 해석이 가능할텐데 전공자들도 매우 어려운 문제인가 보다.

김인걸 교수도 서문에서 대학생 때 제자들에게 한문 독선생을 붙여 준 스승에 대한 고마움을 여러 차례 표현한다.

해서로 깔끔하게 인쇄된 자료만 있는 게 아니라 초서로 휘갈겨 쓴 자료들도 많아 판독부터 어려운 경우도 종종 있었다.

오늘날 지성인들의 수준에도 어려운 게 한문이고 보면 조선시대 선비들의 학문 수준이 과연 대단했구나 싶고, 일반 서민들이 주경야독으로 과거 준비를 한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을 듯하다.

김인걸 교수가 대학원 면접 때 집에 돈은 있는가라는 질문을 받았다는 에피소드가 있다.

어제 전형필 같은 예술 후원가들의 책을 읽으면서도 느낀 바지만 학문이나 예술로 돈을 번다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고 (어쩌면 불가능할지도) 자산이 있지 않으면 설령 열정과 재능이 있다 할지라도 고된 학문의 길을 간다는 것은 어려운 듯하다.

더군다나 가정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남자라면 더욱 그럴 것이다.

내가 현재의 직업을 갖게 된 계기도, 역사를 무척 좋아해서 사학과에 가고 싶었으나 철학교수였던 아빠가, 여자가 대학에 남기는 매우 어렵다면서 이과로 돌리면 어떻겠냐고 조언해 줬기 때문이다.

최근까지도 무척 아쉬운 부분이었으나 요즘 대중서보다는 좀더 깊이있는 책들을 읽으면서 지금처럼 즐겁게 독서하는 수준이 내 깜냥에 맞구나 싶다.


여러 전공 분야의 저자들이 쓴 글들이라 흥미로운 이야기가 많았지만 특히 19세기 조선이 세도정치로 갑자기 몰락한 것은 아니라는 의견이 제일 기억에 남는다.

전에도 비슷한 주장을 접했던 기억이 난다.

특히 19세기의 세도정치는 영정조 이후로 왕권이 강화되면서 비판 세력이 줄어든 가운데, 정조가 김조순 가문을 외척으로 삼아 국정을 끌고 가려 했던 구상이 어린 임금의 즉위와 더불어 세도정치로 변질됐다고 했다.

조선은 근대화에 실패하여 몰락했으나 일반적인 이미지처럼 백성들을 수탈하고 정부 조직이 완전히 무너진 것이 아니라 마지막까지 전통 사회의 안정된 통치를 위해 많은 노력이 있었음을 보여준다.

흔히 생각하는 환곡의 문란도 정부에서 무조건 수탈한 것이 아니고, 부세로서 의미가 강해지긴 했으나 나름 지방관들이 구휼에 애를 쓴 내용들도 나온다.

조선 시대 생산력이 워낙 낮아 기본적으로 많은 세금을 거둘 수가 없었다는 주장도 들었던 적이 있다.

많은 자료들이 남아 있고 바로 몇백 년 전 시대인데도 사회상을 정확히 알기 어려운 걸 보면 고대 시대의 역사는 정말 더듬더듬 만지는 수준일 것 같다.

그래서 상상력도 많이 가미되고 역사 왜곡도 쉽게 이루어지는 모양이다.

병자호란 당시에 대한 이야기도 나온다.

흔히 인조와 조정 대신들이 척화를 주장했다고 하지만, 저자는 당시 조선의 여론이 강력하게 척화를 주장했고, 오히려 조정 대신들은 상황이 어렵다는 것을 인지하고 강화를 맺었다고 한다.

나라를 운영하는 사람들이 바보가 아닌데 사극에 나오는 것처럼 무조건 싸우다가 죽자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주화파였던 최명길 역시 강화 맺은 것을 평생 부끄럽게 생각했다고 한다.

대명의리는 비단 일부 조정대신의 주장이 아니라 나라의 모든 선비들이 주장했던, 인조반정의 매우 중요한 명분이었던 셈이다.

오히려 드러나는 자료에 따르면 인조는 광해군대의 외교 정책을 물려받아 왜의 동태를 살펴 청에 전함으로써 같은 안보권에 묶으려고 하는 등 나름 노력했다고 한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가넷 2020-05-22 21: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미있을 것 같아요

marine 2020-05-23 09:05   좋아요 0 | URL
김인걸 교수의 글은 방법론을 강조해서 좀 어렵고, 제가 잘 몰랐던 자료가 이렇게 많았나 놀랬어요.
정말 학자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구나 싶을 정도로 학위 논문 쓰는 사람들은 참 대단하다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