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에서 역사와 이야기는 같은 말이다
후지사와 마치오 지음, 임희선 옮김 / 일빛 / 200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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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재밌다.

막연히 이탈리아 유적지에 역사적 사실들을 가볍게 섞은 책인 줄 알았는데 본격적인 평전이다.

열 명의 이탈리아 위인들을 선정해 당시 시대상을 자세히 설명한다.

특히 코시모 메디치가 어떻게 피렌체의 정권을 잡고 독재를 하게 됐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가장 흥미로웠다.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 보는 기분이 들 정도로 마치 한 편의 소설처럼 너무너무 재밌다.

무산계급의 지지를 바탕으로 민주주의를 유지하는 척 하면서 교묘하게 1인 독재를 뒤에서 조종하기.

요즘 정치 상황과도 비슷한 대목이 있다.

원래 똑똑한 사람들은 민중을 움직이는 작업을 잘 하는 것 같다.

그런데 이런 비공식적인 공작 정치는 독재자가 보이지 않는 조율을 아주 잘 해야 하기 때문에 코시모의 후손들은 이 복잡한 조정에 실패해 쫓겨나고 만다.

왜 이탈리아는 근대 통일국가를 형성하지 못했나 의아했었는데 바로 이 상업 세력이 지배하는 자치 도시들의 힘이 워낙 셌고 교황까지 가세해 군주가 이들을 누를 수 없었던 것이다.

시칠리아와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인 프리드리히 2세의 통일 노력은 이들의 강력한 저항에 밀려 실패하고 만다.

오히려 그의 자손들은 프랑스에서 건너 온 루이 9세의 동생 카이로 1세에게 밀려 왕권까지 뺏기고 만다.

프랑스와 스페인, 영국 등이 절대주의 왕정으로 변모했던 것과 대조되는 대목이다.

최초의 근대인이라고 하는 프리드리히 2세의 일생도 아주 흥미롭게 읽었다.

이렇게 똑똑한 사람도 여러 자치 도시들이 난립하는 반도의 통일은 어려웠던 모양이다.

살아 움직이는 이탈리아 역사 이야기, 인물을 통해 만나 보는 이탈리아의 역사가 이렇게 재밌었나 싶을 정도로 인상적인 책이었다.

왜 이런 재밌는 책들은 베스트셀러가 못 되는 것일까?


<오류>

121p

노르만 왕조의 마지막 왕이었던 굴리엘모 2세에게는 후계자가 없었기 때문에 숙모인 콘스탄차가 왕권의 유일한 계승권자였다.

-> 콘스탄차는 굴리엘모 2세의 숙모가 아니라 고모 할머니다.

318p

대비의 눈에 든 사람은 도를레앙 공작의 딸인 안이었다. 그녀는 루이 14세의 손녀였으므로 다시없이 좋은 자리였다.

-> 비토리오 아메데오 2세의 부인이 된 도를레앙 공작의 딸 안은, 루이 14세의 손녀가 아니라 조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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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안의 봄
이시다 미키노스케 지음, 이동철 외 옮김 / 이산 / 200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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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뜻한 표지와 달리 내용은 너무 지루하고 어려웠다.

일제 시대 때 나온 책이라니, 이렇게 오래 된 책인 줄 몰랐다.

아무리 역사서라 해도 역시 새롭게 해석된 책이 좋은 것 같다.

당나라 때라고 하면 무려 1400년 전 전인데 이렇게도 많은 자료들이 남아 있나 놀랍다.

확실히 당나라는 북방 유목민과 서역계 문화가 많이 전파되어 개방적이고 활달했던 것 같다.

측천무후의 잔치에서 무용수 900명이 춤을 췄다니 스케일이 정말 대단하다.

여자들도 말을 타고 얼굴을 드러내놓고 다니고 폴로를 하던 시대이니 유교 문화와는 매우 다른 느낌이다.

정월 대보름의 연등 축제는 황제인 중종 부부가 궁 밖으로 구경을 나갈 정도로 성대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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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과 코란 - 무엇이 같으며 무엇이 다른가
요하임 그닐카 지음, 오희천 옮김 / 중심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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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좋은 책들을 많이 읽고 있어 독서 생활이 풍부해지는 느낌이다.

250 페이지 정도의 짧은 분량이지만 이슬람교의 본질에 대해 잘 설명하고 있다.

단순히 이슬람의 교리와 역사에 대해서만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그 바탕이 되는 유대교와 기독교를 대비시켜 설명하므로 본질적인 면들이 훨씬 선명하게 이해된다.

성경과 코란이라는 제목은 차이점 보다 공통점에 초점을 맞추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기독교가 유대교의 구약을 바탕으로 창시된 것처럼, 이슬람교도 유대교와 기독교의 전통 아래서 만들어진 새로운 종교다.

동양의 불교나 힌두교와는 전혀 결을 달리하는 "유일신"교이다.

이 세 종교의 핵심은 바로 유일신의 천지창조를 믿고, 세상의 종말과 사후심판을 기다린다는 것이다.

유대교의 구약 역시 그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면 메소포타미아 신화와 이집트 신화에 많은 부분 차용했음을 여러 학자들이 밝히고 있다.

고대로부터 중동 지역에서 발생했던 종교의 원형이 세월이 지나면서 다양하게 변용되어 오늘날 보편적인 종교의 위치를 점하게 된 과정이 흥미롭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는 것이니, 가장 마지막에 만들어진 이슬람교는 필연적으로 아라이바 반도에 전파된 유대교와 기독교의 전승을 참조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어쩌면 무함마드는 삼위일체에 대한 거부감 때문에 아라비아 반도의 특성에 맞는 유일신 운동을 전개한 것은 아닌가 싶다.

본문에도 여러 번 언급된다.

예수는 아브라함과 모세와 같은, 하나님이 보내신 선지자였고, 무함마드 자신도 그 계보를 잇는 자이며, 다만 마지막으로 세상에 완벽한 계시를 전하는 사람이라고 말이다.

무함마드는 예수를 신과 동격으로 삼는 기독교의 삼위일체 교리를 거부했고 하나님은 인간사를 초월하신 절대자, 오직 한 분임을 주장했다.

사실 기독교 신학 중 가장 핵심이면서도 쉽게 받아들이기 힘든 부분이 예수가 곧 신이라는 사실이다.

심지어 어떤 학자들은 예수 생전에 그는 자신을 신으로 여기지 않았다고 했다.

그는 후대에 신으로 높여진 것이다.

삼위일체는 무함마드의 오해처럼 세 명의 신으로 받아들이기가 훨씬 쉬워 보인다.

아라비아 반도의 유목민 문화에 맞게끔 유대교와 기독교의 유일신 신앙을 개조한 것이 바로 이슬람이라는 게 이 책의 요지다.

그러므로 이 세 종교는 사실 같은 뿌리를 가진 셈이다.

보다 엄격하게 유일신 신앙을 지향하는 이슬람이 신학적으로 훨씬 선명해 보이면서도, 그런 분명한 교리 때문인지 여전히 세속과 분리되지 않아 현대사회에서 뒤처지고 있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기독교가 됐든 이슬람이 됐든 궁극적으로 신앙은 문화의 일부로 남아야 존재 의의가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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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를 통해 본 조선후기 사회사 국학자료 심층연구 총서 6
이성임 외 지음, 한국국학진흥원 / 새물결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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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주인공은 17세기 영남 출신 양반인 김령이다.

그가 수십 년 간 쓴 <계암일록>, 즉 일기를 바탕으로 16세기 조선사회를 분석한다.

여러 학자들이 다양한 측면에서 분석한 책이라 조선 지방 사족들의 삶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됐고 특히 맨 마지막 장에서 세금 문제 기술한 부분이 가장 흥미로웠다.

세금은 지금도 어렵지만 당시 양반들에게도 매우 복잡하고 중요한 문제였던 모양이다.

임란 이후 나라를 복구하는데도 재정이 많이 들었는데 명청 교체기에 중간에 끼다 보니 막대한 외교비용까지 더해져 지방에서는 엄청난 양의 세금에 시달렸다.

화폐경제가 아닌 실물경제 사회다 보니 운반 등의 수수료도 엄청났지만 할당된 세금도 유력층에서는 어떻게든 빠져 나가려 하고 그나마도 지방관들이 방납업자들과 결탁해 백성들에게 부담시키다 보니 법전에 나온 세금의 대략 10배 이상이 부과됐다고 한다.

토지에 세금을 매기는 전조는 그래도 공평하게 운영되는 편인데 특산물을 징수하는 공납과 요역이 부정부패의 온상이었다.

한가지 흥미로운 것은 공납을 호 단위로 부과한게 아니라 마을 단위의 세금이었다는 것이다.

마을마다 나오는 특산물이 다르니 이해가 되기는 한다.

마을에 할당된 세금을 각 주민들에게 나눠주는 사람이 바로 지방관이니, 여기서 많은 폐단이 생겼다.

대동법은 이 공납을 면포로 정해서 납부하는 것인데 그 후에도 여전히 갖은 명목의 공납품들이 계속 부과됐다고 한다.

얼마 전에 읽은 <루이 14세는 없다>를 보면 프랑스 왕실에서도 만성적인 전쟁을 수행하기 위해 엄청난 세금을 거둬들였고, 징세청부업자들에게 먼저 세금을 받은 후 그들로 하여금 알아서 세금을 거둬들이게 했다.

조선시대의 전조도 이런 방납이 가능했는데 이 과정에서 실제 세금보다 훨씬 많은 양의 세금이 부과된 게 문제였다.

프랑스 사회는 조선보다 생산량이 훨씬 높았기 때문에 총력전을 치룰 수 있었던 것일까?

프랑스 역시 혁명으로 봉건 정부가 무너지고 말았고 조선 역시 결국 외세에 의해 망하고 말았으니 과도한 세금 수취는 국가를 멸망으로 이끄는 것인가 생각해 봤다.

현대의 복지국가도 결국은 수입의 절반 이상을 세금으로 내면 정부가 알아서 잘 나눠주겠다는 취지인데 과연 큰 정부가 효율적으로 운영될 수 있나 회의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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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에서 역사를 엿보다 - 청대일기를 중심으로 국학자료 심층연구 총서 9
우인수 외 지음 / 새물결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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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대일기>는 18세기 영남 학파의 대표 문인인 권상일이 무려 60여 년 간 써 온 일기를 분석한 책이다.

일기류의 사적 기록들이 많이 발굴되어 조선 후기 사회를 좀더 상세하게 분석할 수 있어 참 흥미롭다.

권상일은 퇴계 학통을 계승한 상주 출신의 문과 급제자인데 이미 당시는 노론이 정국을 장악하던 때라 중앙관직을 역임하기는 했으나 영향력이 크지는 않았고 오히려 지방재지사족으로서 존경받았다.

노론 일당 독재에 구색용으로 중앙 관직에 천거되는 위치였다.

안 그래도 남인은 정계에서 소외되고 있었는데 이인좌의 난으로 완전히 정국에서 배제될 위기에 처했다.

권상일은 만경현령을 할 당시 발빠르게 역적 소탕에 대처하여 영조의 눈에 들 수 있었다.

81세에 사망했으니 천수를 누린 셈이다.

전염병이 돌던 시대라 아내는 셋이나 먼저 보냈고 결국은 소실을 들여 반평생을 보낸다.

워낙 손이 귀하고 유아 사망률이 높은 때라 아내가 죽은 해에 바로 새장가를 들곤 했다.

18세기는 문중 중심의 종법이 확립된 시기라 제사가 아주 중요한 의례로 자리잡았다.

단순히 조상을 추모하는 자리가 아니라 1년에도 수십 차례 있는 제사를 준비하면서 마음을 경건하게 하고 문중 사람들과 친교를 다지는 중요한 행사였다.

체백이 있는 묘지에 가서 지내는 제사보다는 신주를 모신 가묘에서 지내는 제사로 바뀌게 되는데 이런 과정을 보면 확실히 성리학은 종교적인 측면이 강한 것 같다.

사족의 신분 유지를 위해 과거 급제를 강렬하게 소망하면서도 급제를 통해 聖人 으로서의 포부를 실천하려는 도덕적 목표 달성을 추구하는 모습을 보면 조선시대 유생들이 단순히 권력 지향적이기만 한 계층은 아니었던 것 같다.

도덕적 인간이 다스리는 도덕국가는 인간이 이기적이고 욕망하는 존재라는 본성을 무시하는 것이니 결국 조선사회는 몰락할 수밖에 없었을 것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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