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여행자를 위한 고대 로마 안내서
필립 마티작 지음, 이지민 옮김 / 리얼부커스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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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읽은 <로마에서 24시간 살아보기>와 거의 비슷한 포맷이다.

작가도 같고 나온 시기도 똑같은데 출판사만 다르다.

내용이 아주 겹치지는 않아서 재밌게 읽었다.

로마 시대는 상대적으로 내가 취약한 분야라 약간 지루하면서도 새로운 지식을 얻는다는 점에서는 좋았다.

로마라고 하면 역시 2천 년 이상 보존되고 있는 놀라운 건축물일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무려 2천 년 전에도 수원지에서 물을 끌어다주는 상수도 시설이 있었다는 사실은 너무나 놀랍고, 콜로세움이나 판테온도 그 규모를 보면 고대 문명의 발달이 대단할 뿐이다.

하긴 그보다 2천 년이나 더 오래 전에 건설된 기자의 대피라미드를 생각하면 인류의 문명은 그 초기부터 매우 찬란했음이 분명하다.

검투사나 전차경기, 연극 같은 로마인들의 놀이나 공연 문화 등이 흥미롭다.

당시로서는 세계 최고의 선진 문명이었으니 도시와 상업의 발달로 문화 생활도 매우 활발했을 것이다.

도시의 빈민들이 좁은 거리에 아파트를 짓고 밀집되어 살다 보니 불이 자주 났는데, 소방대는 요즘처럼 소방차 동원해 불을 끌 수 있는 실력이 안 됐기 때문에 건물을 해체하는 것으로 진압했다고 한다.

어쨌든 이런 공적 시스템이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

로마의 감옥도 소개되는데, 조선 시대와 마찬가지로 전근대 사회는 감옥에서 죄수들을 먹여 살릴 경제적 여건이 안 됐기 때문에 죄수의 자유를 박탈하기 위해 가둬놓는 것이 아니라 판결 전의 대기소 개념이었다고 한다.

항생제가 없고 위생 시설이 부족한 시대이다 보니 감염병에 취약해 평균 수명이 짧을 뿐더러, 영아 사망률은 매우 높았는데 반대로 그 시기를 넘긴 사람들은 면역력이 매우 뛰어났다.

그래서 인류가 환경에 굴복하지 않고 오늘날까지 번식하면서 생존해 온 것 같다.

당시 의학 수준으로는 대부분의 치료가 불가능했기 때문에 갈레노스는 깨끗한 물과 운동에 대해 강조하고 낫기 위함이 아니라 해가 되지 않는 치료를 강조했다고 하니 과연 의학사에 남는 의사답다.

저자의 다른 책에서 소개된 바와 같이 후원자와 후원인 관계가 흥미롭다.

전통사회에서는 국가에서 모든 사회적 시스템을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에 (대표적인 예가 치안) 자체적인 마을 공동 질서에 따라 움직였던 것 같다.

서로 도움을 주고 받는 사적인 관계가 마치 공적인 원리처럼 유기적으로 잘 돌아감으로써 사회의 안정을 추구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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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의 시간은 다르게 흐른다 - 상사원도 알고 싶은 이란의 속사정
유달승 지음 / 한겨레출판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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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이란을 전공하신 분이라 기대를 많이 했는데 책의 밀도가 떨어져서 아쉽다.

외교관인 류광철씨가 쓴 책 정도의 수준을 기대했던 터라 실망했다.

이란 유학기 정도라고 할까?

중간에 이란 현대 정치사에 대한 챕터는 이란의 현재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됐다.

개인적인 소회보다는 전공자이니 본격적인 분석을 해주는 책을 냈으면 독자들에게 더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이란은 종교국가로 규정하고 있는데 서구에 대한 자주성과 민주주의, 개인의 자유, 탈권위주의 등은 함께 갈 수 없는 것인가 생각해 봤다.

마치 우리가 일제 식민 역사에 대해 지금도 극렬하게 거부감을 갖고 있듯, 이슬람 국가들도 서구의 지배, 특히 미국의 영향력에 대해 근원적으로 거부감을 갖고 있고 그것을 밖으로 표현할 때 민주우의나 자유, 탈권위 같은 보편적인 근대적 가치마저도 거부한다는 느낌이 든다.

서구식으로 세계화가 됐기 때문에 좋든 싫든 그런 것들은 현대 사회의 보편적 가치인데 민족주의 혹은 종교와 맞물려 대립한다는 사실이 안타깝다.

그래도 여기는 사우디 아라비아처럼 여성의 사회적 권리를 완전히 박탈하는 것은 아닌 모양이다.

차도르를 쓰고 집에만 있는 게 아니라 차도르를 쓰고 사회 활동을 하는 식으로 말이다.

책에서는 이란 사회가 어머니를 중심으로 돌아간다고 하고, 또 어떤 책에서는 이탈리아 남자들을 조정하는 게 바로 여자라고 했지만, 여성은 어머니라는 또다른 지위를 얻지 않아도 인간 그 자체로서 어떤 범주에도 속하지 않고 자신의 역할을 하는 것을 원한다.

누구의 어머니라서 사회적 권리가 생기는 것을 원하지 않고 여성이라는 규정에 갖춰 특별히 약자로서 대우받기도 원하지 않으며 그냥 한 개인으로서 사회적 역할을 수행하고 싶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요즘 같은 여성주의도 반대한다.

이란은 여전히 개인 보다는 가정, 친족과 같은 혈연 공동체를 중시하는 동양의 풍속과 비슷해 보인다.

손님을 환대하고 체면을 중시하고 가부장적인 느낌을 준다.

이슬람혁명을 일으킨 호메이니에 이어 하메네이가 이란 최고 지도자라는 위치를 갖고 있다고 한다.

정치인 혹은 이런 종교 지도자의 절대권 권위 인정도 공산국가나 신정국가들의 특징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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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역사 : 위진남북조 중국의 역사
가와카쓰 요시오 지음, 임대희 옮김 / 혜안 / 200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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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지금까지 이상한 역사책만 읽었었나 보다.

서양에서 발간된 역사서들은 사회구조 분석인 경우가 많아 수준이 높다고 느낀 반면, 동양에서 나온 역사서는 주로 인물사, 일화 중심이라 너무 평면적이라 생각했었다.

이제 보니 좋은 책들을 접하지 못해서 편견이 있었나 보다.

아주 오래 전에 출간된 책 같은데 이렇게 유익하고 재밌을 수가!

감탄하면서 읽었다.

늘 모호하기만 하던 위진남북조 시대의 400년 혼란기 사회 구조를 입체적으로 깔끔하게 정리해 준다.

좀 어려운 부분도 있었으나 전체적으로 아주 재밌게 읽었다.

이민족들의 중원 침입은 로마 제국이 게르만 용병들에게 먹히는 것과 비슷한 패턴인 것 같다.

북방에는 이민족들이 많은 나라를 만들어 명멸해 갔으나 남방에서는 무인 황제와 더불어 무가 정권이 수립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화려한 귀족 문화가 꽃피우는 아이러니.

왜 중국이 서양처럼 봉건 영주제로 진화하지 않고 다시 중앙집권 관료제 국가가 되었는지 그 과도기의 귀족사회 형성 배경을 잘 설명해 주고 있다.

화북이 일찍부터 통일될 수밖에 없었던 지리적 요건도 잘 짚어준다.

관개와 강우량에 따른 풍흉의 폭이 컸고 중원은 지리적 장벽이 없는 넓은 평원이었기 때문에 고대로부터 지역적 차이를 조절할 힘이 있는 전제적 정권이 쉽게 들어설 수 있는 배경이 됐다.

반면 강수량이 풍부했던 남방은 자급자족이 쉽게 가능했기 때문에 오히려 원시 농업 사회를 오래 유지했다.

추운 곳에서 선진 문화가 발생하는 지리적 배경이 이해되는 대목이다.

북방에서 양자강 이남으로 밀려 내려오는 한족의 이동을, 미국의 서부 개척지와 비교하고 내부 식민지 개발이라 설명하니 쉽게 이해가 됐다.

선진 문화를 지닌 북방인들이 이민족들에게 쫓겨 농업 생산성이 높은 강남을 장악하고 한족 정권을 세운 것이다.

이민족의 침입으로 인한 민족 대이동이 오히려 한족의 판도를 넓힌 역할을 한 셈이다.


<오류>

105p

후한 황제 계보에서 7대 소제는 장제의 아들이 아니라 손자이다. 

351p

409년 도무제가 그의 아들에게 살해당하자 국내는 일시 동요했으나 북위제국의 창업 공신들은 후사로 지정되어 있던 여덟 살 난 탁발사를 옹립하고~

-> 탁발사, 즉 명원제는 391년 생으로, 409년 즉위 당시 열 여덟 살이었다.

353p

도무제 사후, 겨우 여덟 살 난 유약한 후계자가 옹립되어

-> 위키에 따르면 명원제는 391년생이고 409년에 즉위했는데 이 책에서는 계속 어린 나이에 즉위했다고 하니 뭐가 맞는 건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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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의 행간에서 조선의 삶과 문화 깊이 읽기 국학자료 심층연구 총서 13
장윤수 외 지음 / 새물결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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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루해 보이고 특색없는 제목과는 달리 이 시리즈는 표지를 참 잘 만든다.

250 페이지 정도의 짧은 길이고 일기를 분석한 책이라 두 시간만에 금방 읽을 수 있었다.

고문서들이 발굴되면서 거시사가 아닌 일상의 미시사가 연구되고 있어 반갑다.

이 책의 주제는 안동시 풍산읍의 오미마을에 세거한 풍산 김씨 일족의 3대에 걸친 일기이다.

안동의 하회마을 같은 곳인가 보다.

처음 듣는 이야기라 흥미롭게 읽었다.

고려 시대 호장이었다가 중앙으로 진출해 이 곳에 봉토를 받았고 이를 계기로 후손이 조선 전기에 내려와 자리를 잡게 되었다고 한다.

사대부가 어떤 계기로 한 지역에 세거하여 중심 위치를 점하게 되는지를 잘 보여준다.

보통 지방 사족들의 일기를 보면 과거 급제해 실패하고 평생 도전하다 끝날 정도로 매우 벽이 높던데 이 가문 사람들은 많은 급제자를 배출했다.

특히 김대현은 아들 여덟 명이 다 과거에 급제하고 그중 다섯 명은 문과에 급제해 인조로부터 오미마을이라는 영광스러운 칭호를 받게 된다.

생원과 진사를 뽑는 사마시도 가문에서 급제자를 배출하기가 얼마나 어려운데 8형제가 전부 급제하다니 정말 대단하다.

아버지의 교육열이 엄청났을 것 같다.

일기를 남긴 후선 김병황은 선조들과 달리 과거에 수년 동안 도전하지만 끝내 급제하지 못하고 만다.

한 번 서울 올라갈 때마다 엄청난 경비가 들기 때문에, 저자는 과거시험을 치러 간다는 것만으로도 지역 사회에서는 큰 위상을 갖었다고 설명할 정도다.

한마디로 과거 준비를 하면 생업에서 벗어나 학문에만 몰두할 수 있을 정도로 먹고 살만한 양반이라는 표시였다는 얘기다.

일기의 마지막 저자인 김정섭은 일제 시대를 살면서 항일운동을 하기도 한다.

동생들이 만주에서 독립운동을 하자 군자금을 대주다가 복역하기도 하고 지역에 학교를 세우기도 한다.

일본 천황에게 폭탄을 던진 김지섭이 족제였다고 하니, 이 가문의 항일의식을 알만 하다.

그럼에도 변화하는 20세기의 평등하고 민주적인 사회 분위기에 적응하지 못하고 여전히 차별적인 전통적 정서에 안주하려고 한 점은 한계라고 지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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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 서원의 위상 국학자료 심층연구 총서 7
차장섭 외 지음, 한국국학진흥원 기획 / 새물결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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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일기들을 분석한 이 시리즈, 아주 좋다.

여러 학자들이 다양한 관점에서 하나의 주제를 놓고 분석한 책이라, 당시 조선 사대부들의 생활상을 좀더 입체적으로 그려볼 수 있는 것 같다.

제목은 좀 지루해 보이지만, 궁금해 하는 주제를 명확히 보여준다.

조선 시대 가장 대표적인 서원인 퇴계 이황의 도산서원을 중심으로 재지사족들에게 서원이 어떤 위치였는지를 보여준다.

후기로 갈수록 노론 일당 독재에 경화벌열, 일부 가문에게만 관직이 허용되면서 상대적으로 영남 남인들은 지방에서 세력 확보가 매우 중요했을 것이다.

주자학이 점차 강화되면서 많은 제자들을 키운 퇴계의 영향력은 높아갔는데 서원이 바로 영향력의 중심이었다.

퇴계는 수령권과의 다툼을 극도로 경계하며 가장 먼저 세금을 바치고 수령의 포폄도 피할 정도였으나 도산서원의 위상이 높아질수록 재지사족들은 지방 수령과 대립하게 된다.

국가 권력에 대항하는 것은 오늘날에도 매우 어려운 일인데 차별적 질서가 당연했고 권력에서 200년 동안 소외되어 있던 조선 후기에는 더더욱 그랬을 것이다.

도산서원의 원장이었던 이황의 후손 이유도가 소송 중에 감사에게 불경한 언사를 했다고 갇힌 후 심문 중에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지금 생각하면 옥에 갇히는 것 자체가 고령의 노인에게는 위험한 일이었을텐데 형장까지 맞다 보니 사망해 버렸던 것 같다.

국가에서 재지사족들, 특히 영남 남인들을 엄격하게 제압하려 했었음을 알 수 있고, 이황의 처신이 현명했던 셈이다.

서원의 위상이 높아지자 19세기에는 이황의 집안인 진성 이씨 가문에서 원장을 독점하다 보니 지방 문화의 거점이 한 가문의 기구로 전락해 공적 기능과 위상을 잃어버리고 만다.

외부에서 원장을 초빙하기도 했으나 실제적인 권한은 진성 이씨 집안에서 쥐고 있었다고 한다.

영남 만인소 등을 통해 비록 권력에서 소외되었으나 중앙 정부와의 접점을 찾으려는 노력도 소개된다.

맨 마지막 챕터에서 여러 사대부들이 당색을 초월해 도산서원을 방문하여 지은 제영시들을 소개하면서 이곳이 당대의 문화공간이었음을 보여준다.

서양화가 아닌, 유교식의 근대화가 이루어졌다면 이런 수많은 제영시들도 문화 컨텐츠가 될 수 있겠지만, 저자의 바람과는 달리 과연 현대인들이 즐길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오류>

113p

안동부사 송상인은 부임 초부터 '가혹하고 사나운 정치'를 선보였던 원칙주의자였는데, 향촌에서 행세하던 사족과 양반 중 그에게 매를 맞은 이들이 많았다. 그런데 이유도가 문초받는 과정에서 수령과 감사를 모욕했고, 갇힌 지 2달 만에 장형을 받아 사망하는 불상사가 생겼던 것이다.

-> 같은 책 26페이지에 따르면 이유도는 안동부사 송상인에 의해서가 아니라 감사인 원탁에 의해 체포됐고, 감사가 직접 안동에 와서 형신을 가하다가 구금된지 15일 만에 사망했다고 한다. 전에 읽었던 김령의 계암일록에서도 이렇게 서술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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