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은 사랑하지 못하는 병>을 읽고 리뷰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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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은 사랑하지 못하는 병 - 사랑했으므로, 사랑이 두려운 당신을 위한 심리치유 에세이
권문수 지음 / 나무수 / 2009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한 때 정신과 의사나 상담사란 직업을 부러워한 적이 있었다. 텔레비젼 드라마에 등장하는 그들은 대개 지적이고 따뜻하게 타인의 아픔을 어루만지는 멋진 사람처럼 보여졌다. 내심으로는 뼈 빠지게 육체를 써서 일하는 것도 아니고, 무언가 창조적인 일을 하느라 자신의 뇌를 혹사시킬 것도 없고, 다른 의사들처럼 힘든 수술을 해야 하거나, 죽어가는 환자를 살려 내야 한다는 심적 부담감에 시달릴 필요도 없고, 환자나 상담자들의 이야기나 들어주면서 적당히 맞장구만 잘 쳐 주면, 설렁설렁 하면서 돈도 벌고 존경도 받으니, 더할 나위 없는 직업이란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여러 사람들과 어울려 살다보니, 타인의 말을 진심을 다해 듣는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알기에, 이젠 더이상 정신과 의사나 상담사란 직업이 만만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사람에 대한 보편적인 애정과 신뢰가 나에게 있는가? 라는 면에서 나와는 맞지 않는 일인 듯 싶고 무엇보다 이제와서 업종 전환을 꿈꾸기에는 내가 너무 나이를 먹어 버렸다. 그래도 늘 타인의 내밀한 이야기들을 더듬는 그들의 직업에 대해 적당한 정도의 호기심과 존경심은 여전히 간직하게 된다.
이번에 내가 읽은 책은 바로 그런 사람이 쓴 이야기이다. 정신과 의사는 아닌 것 같고, 테라피스트라니까, 심리 치료사(?), 혹은 상담사(?) 인 듯 싶다. 미국에서 사랑의 상처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수많은 환자들을 상담한 사례를 들어서, 어쩌면 모두가 갈망하고 간절히 원하지만, 필연적으로 우리를 아프게 하고 절망케 하고 또 언제 그랬냐는 듯, 행복하게도 했다가 사라져버리는, 움켜쥐려고 할 수록 더 금새 빠져나가버리는 사랑의 경험에 대해 다양한 이야기를 한다.
번번히 상처 받을 줄 알면서 나쁜 남자에게 끌려 다니는 여자, 혹은 습관처럼 이여자 저여자와 관계를 맺고, 상처를 주면서도 죄의식이 없는 남자, 사랑이 두려운 사람, 혹은 더이상 아무도 사랑하지 못하게 될까 두려운 사람, 모든 것에 무감각해진 여자, 외도를 하는 여자와 남자 등등 많은 사람들의 진솔한 고백과 그 고백을 듣고 때론 이해하고 때론 충고하고 때론 함께 안타까와하는 저자의 생각들을 함께 읽을 수 있어서 좋았다.
이 책의 주제는 한 마디로 사랑이다.. 가수 양희은의 노래처럼 누구나 살아가는 동안에 한번은 잊지 못할 사람을 만나 사랑, 혹은 외사랑을 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많은 변화를 겪게 된다. 상대에 대한 애타는 갈망, 기대, 초조감, 애착, 그리움, 망상, 원망, 황홀감 등등 정말 다양한 감정을 느끼게 되고, 그 과정에서 현명한 처신을 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청소년기를 흔히 질풍노도의 시기라고들 하지만, 어쩌면 진짜 질풍노도의 시기는 바로 한 인간이 다른 사람을 사랑하게 되는 순간부터가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사랑이라는 감정을 어떤 식으로 받아들이고, 어떤 방식으로 경험하는가에 따라 한 사람의 나머지 인생이 좌우된다고 말하면 지나친 걸까??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대부분 그 사랑을 겪는 과정에서 무언가 순탄하지 않았고, 그게 자신의 삶의 앙금으로 남아 다른 모든 부분까지 힘들어져버린 사람들이다. 우리는 쉽게 타인의 삶을 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그건 옳지 않다거나, 어리석은 일이라거나, 무모한 일이라거나 지금은 힘들어도 지나고 나면 다 편안해질거라거나, 여러 가지 말로 충고하거나 판단을 내려 버린다. 그런데, 과연 그런 판단이나 충고를 할 만큼 우리 자신은 사랑에 대해, 삶에 대해 자신만만한가??
책을 읽으면서 내내 내가 감탄한 부분은 저자의 태도였다. 상담자들을 도와주고 싶어하는 마음(?뭐, 이건 직업 상담사로서 당연히 갖추어야 할 소양이니까, 그다지 놀랍지는 않다.)이 아니라, 판단을 배제하려는 마음, 선입관이 아니라,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공감해 보려는 마음, 그러면서도 어느 정도 거리를 유지하고 그들의 생각과 판단을 존중해 주려는 그의 태도였다.
사실 자신의 문제에 대한 해답은 자기 자신이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미처 깨닫지 못하거나, 아니면 애써 외면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 사람에게 무엇이 옳다거나 이게 더 나은 방식이라고 가르치는 것보다는 그냥 그들의 이야기를 진심을 다해 들어주면서 그들이 자신 속의 진실에 다가가도록 해 주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일 것이다. 그런데, 살아가면서 참 그게 어렵다는 걸 종종 느낀다.
얼마전에 오래 동안 아끼던 동생이 술을 왕창 먹고 와서 한참 울다 간 적이 있었다. 서른을 훌쩍 넘은 뒤에 찾아온 첫 사랑의 아픔 때문에 마음을 추스리지 못한 탓이었다. 자신보다 훨씬 어린 남자의 지극한 구애에 넘어갔다가, 뒤늦게 남자가 전 애인과 여전히 만나고 있음을 알게 되고. 그 과정에서 숱하게 싸우고 상처주고 결국 이별하고 등등.. 누구나 주변에서 한 두번을 들어보았을 법한 사랑 이야기를 들으면서.. 참 안타깝기도 했고, 동생이 바보 같다는 생각도 했다. 어짜피 이루어지기 힘들 상대였음에도 그 상대가 자신으로 인해 상처받았다며 자책하며 아파하는 후배와 함께 아파해주기보다는 나는 그 정도 남자 때문에 왜 네가 힘들어야 되냐고, 바보 같이 굴지 말고 정신차리라고 다그쳤었다.
그러면서 마음 한편으로는 어쩌면 그 동생이 부러웠었는지도 모르겠다. 어느 새 책에 나온 첫 번째 여자처럼 모든 것에 무감각해져버려서 어느 누구에게도 아무런 감정을 품지 않게 된 나 보다는 그 후배가 훨씬 더 아름답게, 더 여자 같이 느껴졌었다. 책에 나온 사람들처럼 무슨 특별한 상처가 있는 것도 아니고, 우울하거나 슬프지도 않고, 그렇다고 마냥 신나지도 않은 나 같은 사람에게는 저자가 어떤 말을 해 줄지 문득 궁금해진다. 제목에서 두번은 사랑하지 못하는 병이라고 했는데, 꼭 나 같다. 그런데, 단 한번의 사랑이라도 나는 제대로 했던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