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왕자의 귀환>을 리뷰해주세요
어린왕자의 귀환 - 신자유주의의 우주에서 살아남는 법
김태권 지음, 우석훈 / 돌베개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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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의 병폐에 관한 학습만화 같다. 대부분의 학습 만화가 그렇듯이 이 책도 신자본주의가 결코 우리 사회의 발전이나 우리 모두의 행복을 위한 적절한 대책이 아닌 이유를 참 쉽게, 그리고 설득력 있게 말해주고 있다.  

이 만화는 어른들을 위한 동화라는 [어린 왕자]를 많이 차용하고 있다.  

진짜 중요한 것을 알지 못하고 보이는 세계에만 치중하는 어리석은 어른들과 대비되는 순수한 영혼의 상징, 어린왕자!!  정확한지는 모르겠지만,  "네가 네시에 온다면 난 세시부터 행복해 질거야.. ~~ 네 장미가 특별한 이유는 그 장미에 들인 네 정성과 시간 때문일거야. 사막이 아름다운 이유는 그 안에 샘을 품고 있기 때문이야.. "등등 아직도 마음에 여운이 많이 남는 아름다운 원작을 완전 패러디해서, 이 만화에서는 두명의 어린 왕자 주영과 남수가 등장한다. 

어린 왕자처럼 가진 것 별로 없는 (작은 별에 작은 화산, 장미 하나 정도 밖에 없다.) 비정규직 젊은 왕자 주영과 남수는 어느날 문득 은하철도 999를 타고 온 낯선 자에게 설득당해 은하계의 여러 별들을 전전하면서 신자본주의의 허와 실을 생생하게 체험하게 된다.  

말하자면 이런 식이다. 리카르도의 비교우위설에 입각해서 자신이 잘 할 수 있는 분야에만 집중하면 모두 잘 살게 된다는 자유 무역 이론이 실제로는 가난한 나라의 재화를 어떻게 부자 나라로 옮아가게 하는지 소금과 우산의 사례를 들어서 설명하고, 보이지 않는 손이라는 시장의 자율 기능을 맹신했을 때, 개개인의 이익을 추구하는 시장의 속성에 의해 어떻게 공익이 폐기처분되는지.. 경영 합리화란 명목으로 얼마나 쉽게 개인의 존재가치가 나락으로 떨어지게 되는지, 무슨 만병 통치약처럼 언급되는 공기업 민영화가 왜 방만한 부실 공기업에 대한 해법이 될 수 없는지에 대해 이야기 한다.  또 나날이 커가는 자본의 힘으로  노동 계층을 정규직/ 비정규직, 남성/ 여성, 화이트칼라/ 블루 칼라, 내국인/외국인, 도시인/ 시골주민 등으로 나눠 한쪽만을 우대해 주는 방식으로 교묘하게 분리시켜 버린다.  

그러니, 나날이 강성해지는 자본의 힘앞에 개별화된 노동자는 무력할 수 밖에... 

88만원 세대가 비단 지금 20대만의 문제는 아니다. 무자비할 정도로 이윤을 추구하는 자본주의의 궁극에 이르면 가진 자라는 부류에 속하지 못하는 대부분의 사람은 언제든 비정규직으로 몰릴 수 있고 그런 사람들을 받아줄 사회 안정망은 너무 허약하다. 더욱이 지금 대통령은 미국식 신자본주의의 힘을 맹신하는 2MB이다.     

 어린 왕자는 사막에서 다시 자신이 태어난 별, 자신이 길들인 아름다운 장미가 기다리고 있는 자기 별로 돌아갔지만, 이 책 속 어린 왕자 주영과 남수는 보이지 않는 물신(物神) 자본의 힘 앞에 무력해져서 자신의 별을 잃어버리고... 자본주의 우주 어딘가에서 무기력하고 슬픈 표정으로 자신의 별을 바라보고  있을 것이다.  

바로 우리들이 그런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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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위의 작업실>을 리뷰해주세요
지구 위의 작업실
김갑수 지음, 김상민 그림, 김선규 사진 / 푸른숲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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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제목은 마음에 들었다. 지구 위의 작업실이라?? 뭐 하는 사람일까 하는 호기심으로 읽어 나가기 시작했다.  

도입부, 그의 이야기와 나의 이야기가 단락 단락으로 교차된다. 번잡한 도회지 생활을 정리하고 시골에 자신만의 집필실을 꾸민 남자가 막상 자신의 작품을 집필하려고 자판 앞에서 "THE" 를 써 놓고 그 다음에 쓸 말이 없어서 망연자실 .. 시간만 보내는 사이에 걸작에 대한 부담 없이 시골 생활의 소소한 즐거움이나 감상을 끄적거리던 그의 아내가 결국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었다는 영화 속 이야기는 신선했고 재미있었다.  

그래서 저자는 왜 자신만의 작업실을 고집하는지, 그 작업실에서 무얼 하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저자는 위에 소개된 이야기중..  THE에서 막혀 버린 걸작 지망생 타입인지, 아니면 그의 아내 같은 부류일지 생각하면서 읽어 나가기 시작했다.  

책을 다 읽고 난 기분은 썩 상쾌하지만은 않다.  

책의 1/3은 커피 이야기, 나머지 1/3은 오디오 이야기, 그리고 나머지는 저자의 소소한 생각과 일상 이야기 대충 이렇게 정리해 볼 수 있겠는데, 책의 내용 중 상당 분량을 차지하는 커피와 오디오에 대해 저자처럼 깊은 취향을 갖지 못하고 있는 나로서는 공감하기 힘든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저자가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는 오디오 기기들이나 커피 머신에 대해 얼마나 힘들게 그런 제품을 구했을지, 얼마나 귀한 것들인지, 얼마나 가치 있는 것들인지 전혀 알지 못하는 나로서는 저자의 그 경탄이 아무 감흥도 불러 일으키지 못했다.  

예전에 읽은 책 중에 [그림 아는 만큼 보인다]란 책이 있었다. 그런데, 아는 만큼 보이는 것은 그림 만이 아니다. 모든 것들이 다 그렇다. 커피도 그렇고, 오디오도 그렇고, 영어 회화도 그렇고, 영화도 그렇고, 음악도 그렇고, 책도 그렇다. 다 자신의 지식과 경험의 한계 내에서 모든 게 체험 가능하다.  

커피에 빠져드는 사람들, 오디오에 빠져드는 사람들이 저자 외에도 많이 있다. 그런 사람들이라면 나와는 다른 느낌으로 저자와 깊은 공감을 하면서 책을 볼 수도 있었겠지만, 글쎄, 타인의 취향을 몹시 존중하는 인내심 많은 사람이 아니라면,  끝까지 읽기가 좀 힘든 책이 아닐까 싶다.  

물론 책 곳곳에서 번뜩이는 저자의 박학다식함이나, 무모할 정도로 커피와 오디오에 몰입하는 그의 삶의 태도, (그렇게 몰입하니까, 그런 걸 거의 업으로 삼아 글을 쓰고 강연을 할 정도의 경지에 오르게 된 것일 테지만) 자체는 물론 경탄스럽지만,  그러면서도 내내 내 머리 속에서는 한 달에 얼마 정도 벌면, 지하에 저런 어마어마한 시설의 작업실을 꾸미고.. (뭐 별로 작업하는 것도 없는 것 같지만.. 음악 감상과 커피 로스팅도 작업이라고 한다면... )  커피 머신을 마구 사들이고 수만장의 판을 사 모으고, 얼핏 소개된 것만으로도 몇 백에서 몇 천은 족히 넘을 거 같은 1930년대 오디오 기기들을 수집할 수 있을까를 가늠하느라 바빴다.  

그래서 책을 다 읽고 나니, 왠지 내 생활이 더 비루해진 것 같고,  지난 날의 꿈을 모두 잃어 버리고, 월급에 목 매여 다람쥐 쳇 바퀴 돌듯 매일 같은 생활을 반복하는 게 지겹게 느껴지는 것 같아서 별로 기분이 유쾌하지 못하다..  한마디로 나에게 보여지는 그의 생활은 한량의 사치 놀음처럼 보인다. (이건 아마 내 시기심 때문일 거다.. 나도 저런 공간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마음.. 아니면, 저자처럼 여유 있게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 수 있는 경제적인 여유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부러움 정도.. )  

그의 세계를 이해하고 공감하기에는 참 문화적 격차가 크단 생각이다.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이란 책이 생각난다. 너무 오래 전에 읽은 거라 생각은 잘 안나지만, 여자도 자신의 생각을 가꿀 수 있는 경제적인 자립과 교육과 독립 공간이 필요하다는 내용이었던 것 같은데,  당시 막 시골에서 상경해서 처음 독립 생활을 하게 된 나에게는 참 많이 와 닿았었다.  

여자건, 남자건, 자신만의 공간이 필요하다. 그게 꼭 저자처럼 거창한 작업실은 아니더라도.. 그리고 그런 공간이 더 소중한 것은 그것이 나의 전부이기 때문이 아니라, 사회속의 내가 아니라, 그냥 본래의 나자신과 만날 가능성이 높은 곳이기 때문 아닐까.  

저자의 작업실도 그런 곳일까?? 왠지 아닐 것 같다. 그러기에는 너무 많은 것들이 차 있어서.. 저자의 글이 차고 넘지는 것처럼, 그의 작업실도 차고 넘치는 것처럼 보인다면 너무 지나친 걸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도 한번은 저자가 그토록 자랑하는 그 줄라이홀이란 곳에 가서 저자가 몹시 아끼는 오디오로 그가 추천하는 명반을 한번쯤은 들어 보고 싶다. 어떤 느낌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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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마지막 인터뷰>를 리뷰해주세요
노무현, 마지막 인터뷰 - 대한민국 제16대 대통령 노무현! <오마이뉴스> 오연호 대표기자와 나눈 3일간 심층 대화
오연호 지음 / 오마이뉴스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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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전부터 사람의 진정한 가치는 그 사람이 죽었을 때 알 수 있다는 말을 많이 들어왔었다. 그의 죽음에 가슴 아파하며 뜨거운 눈물을 흘릴 자가 몇인가에 따라, 그 사람의 살아온 인생이 평가될 수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런 면에서 전 대통령 노무현은 헌정 역사상 가장 많은 사람들로부터 진심어린 조문을 받았으니, 어떤 면에서는 한 평생을 잘(말의 본래 뜻 그대로, 가치 있고 훌륭하게) 사람일 것이다.   

도대체 노무현은 어떤 사람이었기에 그의 죽음에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아파했을까? 그런 의문을 풀어줄 수 있는 책이 나왔다.  

이 책은 오마이뉴스의 오연호  기자가 재임 마지막 해를 보내고 있던 노무현 대통령과의 했던 3일간의 인터뷰 내용을 바탕으로 평생 총 여덟 번에 걸친 만남을 통해 우리가 잘 모르는 바보 노무현, 정치가 노무현, 대통령 노무현, 정치학자 노무현, 사상가 노무현, 인간 노무현의 모습을 복원해 낸 책이다. 

 

정치 자체에 무관심 했던, 그래서 대통령 선거 때도 투표조차 안하며, 아무도 선택하지 않는 것도 내 권리라고 말했던 나는 참여 정부 내내, 대통령 노무현을 싫어했었다.  

그 정도 위치에 오르면 의례 따르기 마련인 언론의 비판에 대해 발끈해서 막말을 쏟아내는 그의 모습을 보면서 지도자로서의 포용력이 부족한 사람이 아닌가 생각했고, 걸핏하면 힘들어서 못해먹겠다고 하는 그를 보면서 대통령으로서의 카리스마와 리더쉽이 모자란다고 평가했다. 뜬금없이 한미 FTA를 한다고 할 때는 자동차, 핸드폰, 컴퓨터 좀 더 팔겠다고 국민 대다수를 승자 독식의 미국식 자본주의에 제물로 바치는 미친 짓이라고 했다.  

국민의 마음을  하나로 묶어,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바에 대한, 그 시대적 분위기에 맞는 비전을 제시하는 것이 대통령의 몫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기에, 아무런 비전도 제시하지 못하는 노무현, 왠지 실패만을 거듭하는 것처럼 보이는 대통령 노무현을 나는 아무 죄책감 없이 준비되지 않은 대통령이라고 판단해 버렸다.    

그런데, 요즈음 내 섯부른 판단과 오만에 대해 많이 반성중이다. 어리석게도 보수언론의 노무현 흠짓내기에 너무 쉽게 넘어가 버린 꼴이다.  

책을 다 읽고 나니, 그런 반성과 자책감에 더더욱 얼굴이 많이 달아오른다.  

대통령 노무현이 추구했던 가치, 강하고 재능있는 사람들이 모든 것을 주도하는 사회가 아니라, 약자를 보듬어 안아 함께 하고자 했던 그 마음, 자신의 권위가 사정없이 무너져 내리더라도 민주주의의 원칙을 지키고자 했던 그의 원칙과 소신을 왜 예전에는 미처 알지 못했을까.  그저 권위적으로 이끌어가는 독재 정권에 너무 익숙해져 있었기에,  권력을 위임을 하되, 지배는 단호하게 거부하는성숙하고 깨어있는 시민 권력에 대한 앞선 비전을 가졌던 지도자 노무현을 나는 수용하지 못했는지도 모른다.    

정말 전 세계 어디에 내 놓아도 부끄럽지 않을, 자기 자신의 명예나 사욕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앞날을 위해,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국민 한 사람 한사람의 보다 나은 삶을 위해 살았던 대통령을 잃고 나서야 비로소 그의 가치를 조금씩 깨닫게 된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꿈꾸었던, 아니, 단지 꿈만 꾼 게 아니라, 직접 행동했던(너무 앞서 있어서 제대로 이해받을 수도, 지지 받을 수도 없었지만) 노무현이라는 걸출한 지도자를 우리는 보수 언론의 무자비한 비판에, 현 정권의 치졸한 술수앞에 무방비로 내 던져 버렸었다.   

노무현의 자살은 단지 전직 대통령 한 사람의 불운이 아니라, 너무 거대해진 언론 권력, 시장 권력 앞에 평범한 소시민의 행복하고 자유로운 삶의 욕구가 말살되어가는 하나의 상징이다. 단지 현 정권 뿐만 아니라, 보이지 않는 거대 자본의 벽 앞에 민주, 자유, 평등이라는 인간 본연의 가치가 무시되고 있는 현 상황에 대한 상징이다.

지금도 국회에서는 거대 언론의 미디어 장악을 위한 미디어법이 개악되려고 하고 있다.

그가 가고 나서야, 비로소 그를 죽음으로까지 몰아 넣은 것은 수구 세력만이 아니라, 그에 진심을 외면했던, 혹은 아예 무관심했던 나와 같은 보통 사람들일 수도 있다는 반성을 하게 된다. 그를 보내고 나서야, 한 사람의 걸출한 지도자가 이끄는 나라가 아니라, 성숙되고 깨어난 보통 시민들이 제대로 제 역할을 하는 나라에 대한 그의 이상을 위해 우리 모두 각성해야 함을 깨닫는다. 또 그를 보내고 나서야 더이상 무관심과 무책임으로 선거를 외면하는 것이 선택이 아니라, 무책임한 책임 회피임을 절감한다.  

책에 실린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말로 글을 끝맺고자 한다.

"노무현입니다.. ~ 중략 ~ 

저도 부족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저도 부족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납득하지 않으려는 사람들을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그런 분들은 속았다고 생각하기가 쉽지요. 그리고 실망하고, 다음에는 세상을 불신하게 되지요. 

부족한 그대로 동지가 되면 좋겠습니다..""  

당신을 동지로 받아들이기에는 많이 부족했던 저희 모두를 용서하시길~~..  당신님의 뜻대로, 이제 한 사람 한사람 시민들이 각성하고 있음이 조금은 위안이 되시길~~.. 그리고 영면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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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년의 즐거움>을 리뷰해주세요
노년의 즐거움 - 은퇴 후 30년… 그 가슴 뛰는 삶의 시작!
김열규 지음 / 비아북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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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안 열풍이 몰아치고 있다. 어떻게 해서든 남들보다 조금이라도 젊어지기 위해 숱한 화장품을 바르고, 별별 음식을 다 챙겨 먹고, 운동을 하고 옷을 차려 입고 심지어 얼굴과 몸에 칼을 대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나이보다 좀 더 들어보이는 얼굴은 개개인에게는 지금 거의 저주처럼 다가오는 시대다. 그런 시대에 저자는 노인 예찬을 한다! 

내 기억 속 가장 아름다운 할머니의 모습은 머리 숱이 별로 남지 않은 흰 머리를 풀어내려, 자주색 비단끈 같은 거랑 같이 곱게 따아 내린 후 예쁘게 쪽을 만들고 낡고 투박한 은비녀를 꼽으시던 그 손놀림이다.  아련한 그리움으로, 너무 오래전 일이라, 사실 할머니 얼굴 조차도 가물가물 생각나지 않는데도, 무슨 소중한 의식마냥, 방 안에서 작은 거울 앞에서 참빗을 가져다 놓으시고 꼭 새색시 분칠하듯 조심스러운 손놀림으로 머리를 땋으시던 그 풍경이 어슴프레 떠오른다.  아마 그 때의 할머니 연세가 한 일흔 중반 정도 되셨던 것 같다.  

그 시절만해도 우리 사회 곳곳에는 노인에 대한 존경의 문화가 많이 남아 있었다. 어디서든 한 집안의 가장 높으신 어른으로 대접을 받으셨던 같다. 할아버지 말씀은 그자체가 무슨 법처럼 감히 토를 달수 없는 지극히 높은 말씀처럼 받들어졌었고 그래서 어쩌다 할아버지가 사랑방 위 작은 벽장 속에서 어쩌다 꺼내 주시던 과자며 사탕 같은 것에 그렇게 감격했었는지도 모른다.   

그 시절에는 노인분들은 대부분 인생의 깊은 지혜를 간직한 존재로 여겨졌었다.  (뭐, 이제 그 시절의 할머니만큼이나 나이들어 버린 우리 엄마가 가끔 당신의 시어머니인 할머니에 대해 맺고 끊는 게 분명치 않은 양반이라, 당신이 힘드셨다는 식으로 옛 이야기를 하는 걸 보면, 속으로는 미덥지 않은 부분이 많이 있었던 모양이지만, 어쨌든 할머니 돌아가실 때까지 내 놓고 할머니한테 뭐라고 하시지는 못하셨던 것 같다.)  

언제부터 나이 드는 게 무슨 저주마냥, 도망갈 수만 있다면 무슨 수를 쓰던 도망가고 싶은 무거운 짐이 되어 버렸을까? 

대가족 제도 하에서 노인이란 인생의 지혜와 신비를 간직한 존재이며, 또 저자의 말처럼, 어린아이와도 같은 순수함을 다시 찾은 존재였었다. 그러나, 지금처럼 핵가족화 되어 버린 우리 사회에서 노인이란, 어느 새 일할 능력을 상실한, 좋은 시절 다 보내고, 인제는 힘도, 열정도, 재능도 다 잃어버리고, 인생의 중심 무대에서 떨려나 한발 한발 죽음으로 다가서는 (?) 존재처럼 취급되기 일수다. 또 노인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이 대부분 부정적인 것 일색이기에 모든 인간은 불가항력으로 시간의 흐름과 더불어 나이를 먹게 됨에도 불구하고, 나이 먹는 것에 대해 적대적, 혹은 방어적으로 되어 버렸다.  

그런 우리의 보편적인 통념에 대고 저자는 정말 그런가를 묻는다. 노인이기에 가질 수 있는 많은 축복들, 이를 테면, 인생의 고비 고비를 넘겨오면서 자연스럽게 터득한 지혜와, 다른 사람에 대한 깊은 이해와 연민을 얻을 수 있음을 말하고, 하루 하루의 소중함을 제대로 느낄 수 있음을 말한다. 깊게 패인 주름과 쪼그라들어 버린 육체 안에서 비로소 성숙되는 인간 정신의 위대함을 말하고 지는 노을처럼 아름다운 노인의 마음씀을 이야기한다.    

이건 청춘 예찬이 아니라, 노년 예찬이다!! 브라보!!

사고방식이 경직되어 무엇 하나 새롭게 도전하지 못하고, 그저 남의 눈에 비쳐지는 내 모습에만 신경 쓰느라 소신 있게 살지 못하고 한 술 더 떠 하루 하루 먹고 사는 데에만 급급한 내 모습이 더 노인 같다는 생각이 든다. 현실에 안주하고 더이상 노력없이 변화 없이 머물려고 하는 그 순간부터가 어쩌면 진짜 늙기 시작하는 건 아닐까?  

그렇다면.. 자연에 가장 가까운 삶을 살고, 정신과 인품이 완숙해지는 걸 느끼며, 꽃보다 푸른 노년을 노래하는, 하루 하루 최절정의 아름다운 인생을 즐기고 있는 저자는 결코 노인이 아니다. 우리보다 더 푸른 청춘이다!!

저자와 같이 은퇴 이후에 더 아름다운 인생을 살아가는 지혜롭고 용감한 노장 어르신들께 당신들의 그 힘찬 용기를 닮고 싶다는 말씀을 올리고 싶다. 또 하루 하루 성실하게 살고 계신 우리 부모님께 이 책을 한권 보내드리고 싶다! 그런데, 이 활자를 읽으실 수 있으시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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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보다 긴 하루 Mr. Know 세계문학 14
칭기즈 아이트마토프 지음, 황보석 옮김 / 열린책들 / 200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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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사로제끄는 거대한 스텝 중간 어디엔가 있는 화물열차만이 간간히 정차하는 간이역이다.

그런데 스텝?  스텝이 뭐지? 책을 읽으면서 거대한 사막, 혹은 목초지? 비가 거의 오지 않는 곳이면 사막인데, 사막이라고 하기엔 책에는 너무도 빈설하게 폭설과 추위가 기승을 떨치는 곳으로 표현하고 있으니 도대체 거기가 어딜까? 하는 생각에 방금 스텝을 검색해 보았다.   

스텝은 헝가리에서 시작하여 동쪽으로 우크라이나와 남부 러시아를 지나 중앙 아시아와 만주까지 뻗어 있는 대상의 넓은 초지라고 한다. 나무 한 그루 제대로 자라지 않지만, 그런 척박한 환경에서도 사람들은 살아간다.   

이 책의 주인공인 예지게이도 전쟁으로 인한 정신적 상처로 피폐해졌을 때, 우연히 만난 까잔갑을 따라 이곳 사로제끄의 부란니 간이역에 정착했다. 거대한 불모지를 오가는 철로를 손보는 철로 노동자로의 삶은 고되고 척박했지만, 그 안에서 맺어진 탄탄한 인간 관계 덕분에 예지게이와 그의 아내 우꾸빌라는 이곳에서 삼십여년을 크고 작은 일을 겪으면서 평탄하게 살아왔다.  

무슨 공상 과학 소설 마냥 외계인과 접촉하는 두 우주인 이야기와 그것에 당황해서 자기 보호에 급급한 미/소 양대 진영의 이야기가 섞여들기는 하지만, 이 책의 주된 줄거리는 예지게이가 그의 오랜 동료인 까잔갑이 사망한 후, 그의 시신을 그의 평소의 바람대로 부족 전통의 묘지인 아나 베이뜨로 매장하러 가면서 하루 동안에 겪는 여정이다.  

더 이상 전통의 가치나 신을 믿지 않는 젊은 아들이나, 술주정뱅이 사위등과 함께 까잔갑의 시신을 모시고 낙타를 타고서 사로제끄의 황야를 횡단하며 아나베이뜨 묘지를 향해 가는 동안 예지게이는 순간 순간 자신의 삶에 아른다웠던 순간, 혹은 가슴 아픈 순간, 그리웠던 순간들을 떠올리게 된다.  

특히 가슴 아픈 기억, 아부딸리브와 그의 가족들...   

전직 학교 교사였던 아부딸리브는 전쟁 포로였다가 유고슬라비아에서 게릴라 활동을 한 이력 때문에 직업을 잃고 하층민 생활을 전전하다가 비참한 처치가 되어 부란니 역에 흘러들게 된다. 예지게이는 그를 보면서 전쟁의 상처로 고통받았던 자신의 모습을 떠올리고 그들이 자신처럼 부란니 역에 정착해서 행복해지기를 바란다. 배운 사람임에도 어울리지 않는 막노동을 하면서 힘들게 살지만, 아부딸리브는 사랑하는 아이들에게 모든 것을 걸고 아이들을 사랑하면서 사는 아름다운 사람이었다. 금방이라도 부란니 역을 떠날 것 같았던 아부딸리브는 점차 예지게이가 그러했던 것처럼 광대한 자연의 힘과 몇 안되는 이웃이지만, 이웃 간의 따뜻한 정과 배려 덕분에 점차 건강과 행복을 회복해 간다.  

예지게이와 아부딸리브 가족은 점점 한 집안처럼 서로를 오가고 염려하고 서로 아껴주면서 부란니역에서 최고로 행복한 해를 보내고 있었다. 그러나, 무자비한 숙청과 밀고가 판치던 그 시절은 아부딸리브를 비켜가지 못했고, 단지 아이들을 위한 회고록과 까자흐의 구전 문학을 기록하고 있다는 것이 반동적이라는 이유로 아부딸리브는 당국에 의해 체포되어 버리고 그의 남은 가족들을 돌보던 예지게이는 그의 아내를 향한 절망적인 사랑에 빠져버린다.  

평생의 그리움으로 남은 여인, 그리고 평생의 아픔으로 남은 그의 벗 아부딸리브!!  

또 한 가지의 이야기는 만꾸르뜨에 대한 이야기인다. 먼 옛날 부족 전쟁이 여사로 이루어지던 시대에 추안추안족은 상대부족을 사로잡으면 그의 머리를 박박 밀어서 거기에 갓 도려낸 암낙타의 유방을 쓰워서 물 한 모금 주지 않고 사흘 이상 사막에 방치한다.  사막에 던져진 사람은 뜨거운 열기로 점점 머리를 옥죄어오는 낙타가죽 때문에 점차 뇌가 말살되어 살아남더라도 더이상 인간이라고 할 수 없는 상태로 전락한다. 극심한 고통으로 모든 기억이 말살되어 버리고 자신에게 먹을 것을 주는 주인에게만 반응하고, 인간으로서의 희노애락을 느끼지 못하는 가축같은 존재가 되어 버린다고 한다. 그런 노예를 만꾸르드라고 불렀다. 

인간이 인간에게 가하는 최고의 폭력이 그런 것일거라는 생각을 해 본다.  어느 누구도 다른 사람의 생각과 감정과 기억을 통제할 권리는 없으니까.  

어쩌면 우리 모두는 자본주의/ 물신주의/ 성장 제일주의라는 보이지 않는 낙타 가죽을 쓰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자신의 삶을 가치있게 만들어줄 소중한 것들을 다 내팽개치고 돈을 벌기 위해 혈안이 되어 버린 우리들의 모습들, 후손에 물려줄 보존 가치에 대한 생각 없이 마구 파해쳐지고 있는 우리의 강과 산들.. 그리고 광장에 모이기만 하면 기겁을 하고 달려드는 정권들...

생소한 분위기의 소설이었지만, 참 여러가지를 생각하게 만들었다. 책에서 잊을 만하면 등장하는 외계인과의 접촉 이야기가, 서로 공존을 위해 화합하지 못하고 기득권 유지와 체제 유지에만 혈안이 되어 있는 지금의 정치 체제에 대한 비판으로 볼 수 있겠지만, 그래도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희망을 이야기 하고 싶다.  

광대한 초원을 기차는 동에서 서로, 서에서 동으로 쉴 새 없이 오가고 그 안에서 인간의 삶도 계속 이어질 것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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