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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위의 작업실
김갑수 지음, 김상민 그림, 김선규 사진 / 푸른숲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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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제목은 마음에 들었다. 지구 위의 작업실이라?? 뭐 하는 사람일까 하는 호기심으로 읽어 나가기 시작했다.  

도입부, 그의 이야기와 나의 이야기가 단락 단락으로 교차된다. 번잡한 도회지 생활을 정리하고 시골에 자신만의 집필실을 꾸민 남자가 막상 자신의 작품을 집필하려고 자판 앞에서 "THE" 를 써 놓고 그 다음에 쓸 말이 없어서 망연자실 .. 시간만 보내는 사이에 걸작에 대한 부담 없이 시골 생활의 소소한 즐거움이나 감상을 끄적거리던 그의 아내가 결국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었다는 영화 속 이야기는 신선했고 재미있었다.  

그래서 저자는 왜 자신만의 작업실을 고집하는지, 그 작업실에서 무얼 하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저자는 위에 소개된 이야기중..  THE에서 막혀 버린 걸작 지망생 타입인지, 아니면 그의 아내 같은 부류일지 생각하면서 읽어 나가기 시작했다.  

책을 다 읽고 난 기분은 썩 상쾌하지만은 않다.  

책의 1/3은 커피 이야기, 나머지 1/3은 오디오 이야기, 그리고 나머지는 저자의 소소한 생각과 일상 이야기 대충 이렇게 정리해 볼 수 있겠는데, 책의 내용 중 상당 분량을 차지하는 커피와 오디오에 대해 저자처럼 깊은 취향을 갖지 못하고 있는 나로서는 공감하기 힘든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저자가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는 오디오 기기들이나 커피 머신에 대해 얼마나 힘들게 그런 제품을 구했을지, 얼마나 귀한 것들인지, 얼마나 가치 있는 것들인지 전혀 알지 못하는 나로서는 저자의 그 경탄이 아무 감흥도 불러 일으키지 못했다.  

예전에 읽은 책 중에 [그림 아는 만큼 보인다]란 책이 있었다. 그런데, 아는 만큼 보이는 것은 그림 만이 아니다. 모든 것들이 다 그렇다. 커피도 그렇고, 오디오도 그렇고, 영어 회화도 그렇고, 영화도 그렇고, 음악도 그렇고, 책도 그렇다. 다 자신의 지식과 경험의 한계 내에서 모든 게 체험 가능하다.  

커피에 빠져드는 사람들, 오디오에 빠져드는 사람들이 저자 외에도 많이 있다. 그런 사람들이라면 나와는 다른 느낌으로 저자와 깊은 공감을 하면서 책을 볼 수도 있었겠지만, 글쎄, 타인의 취향을 몹시 존중하는 인내심 많은 사람이 아니라면,  끝까지 읽기가 좀 힘든 책이 아닐까 싶다.  

물론 책 곳곳에서 번뜩이는 저자의 박학다식함이나, 무모할 정도로 커피와 오디오에 몰입하는 그의 삶의 태도, (그렇게 몰입하니까, 그런 걸 거의 업으로 삼아 글을 쓰고 강연을 할 정도의 경지에 오르게 된 것일 테지만) 자체는 물론 경탄스럽지만,  그러면서도 내내 내 머리 속에서는 한 달에 얼마 정도 벌면, 지하에 저런 어마어마한 시설의 작업실을 꾸미고.. (뭐 별로 작업하는 것도 없는 것 같지만.. 음악 감상과 커피 로스팅도 작업이라고 한다면... )  커피 머신을 마구 사들이고 수만장의 판을 사 모으고, 얼핏 소개된 것만으로도 몇 백에서 몇 천은 족히 넘을 거 같은 1930년대 오디오 기기들을 수집할 수 있을까를 가늠하느라 바빴다.  

그래서 책을 다 읽고 나니, 왠지 내 생활이 더 비루해진 것 같고,  지난 날의 꿈을 모두 잃어 버리고, 월급에 목 매여 다람쥐 쳇 바퀴 돌듯 매일 같은 생활을 반복하는 게 지겹게 느껴지는 것 같아서 별로 기분이 유쾌하지 못하다..  한마디로 나에게 보여지는 그의 생활은 한량의 사치 놀음처럼 보인다. (이건 아마 내 시기심 때문일 거다.. 나도 저런 공간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마음.. 아니면, 저자처럼 여유 있게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 수 있는 경제적인 여유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부러움 정도.. )  

그의 세계를 이해하고 공감하기에는 참 문화적 격차가 크단 생각이다.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이란 책이 생각난다. 너무 오래 전에 읽은 거라 생각은 잘 안나지만, 여자도 자신의 생각을 가꿀 수 있는 경제적인 자립과 교육과 독립 공간이 필요하다는 내용이었던 것 같은데,  당시 막 시골에서 상경해서 처음 독립 생활을 하게 된 나에게는 참 많이 와 닿았었다.  

여자건, 남자건, 자신만의 공간이 필요하다. 그게 꼭 저자처럼 거창한 작업실은 아니더라도.. 그리고 그런 공간이 더 소중한 것은 그것이 나의 전부이기 때문이 아니라, 사회속의 내가 아니라, 그냥 본래의 나자신과 만날 가능성이 높은 곳이기 때문 아닐까.  

저자의 작업실도 그런 곳일까?? 왠지 아닐 것 같다. 그러기에는 너무 많은 것들이 차 있어서.. 저자의 글이 차고 넘지는 것처럼, 그의 작업실도 차고 넘치는 것처럼 보인다면 너무 지나친 걸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도 한번은 저자가 그토록 자랑하는 그 줄라이홀이란 곳에 가서 저자가 몹시 아끼는 오디오로 그가 추천하는 명반을 한번쯤은 들어 보고 싶다. 어떤 느낌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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