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몬드 (양장) - 제10회 창비 청소년문학상 수상작
손원평 지음 / 창비 / 2017년 3월
평점 :
절판


사람은 관계를 떠나 살 수 없다.

누군가 타인과 관계를 맻는다는 것은 입고 먹고 자고 배설하는 일만큼 중요하다.

기본 욕구가 충족된 다음 사람은 누구와 관계를 맺고 인정받고 이해받고 사랑받고 싶어한다

동시에 누군가를 사랑하고 이해하고 인정하고 싶다.

어쩌면 사람이 사람에게 바라는 것은  관계를 통한 인정받음이고 그 방식은 상대가 보여주는 감정반응일 것이다,

웃어주고 울어주고 화도 냈다가 어깨를 툭툭 치면서 괜찮다고  힘내라고 하는 말과 행동과 표정들   그런 하나하나의 몸짓이 사람을 살아가게 하는 것같다.

내가 웃으면 함께 웃고 울면 함께 울어주고 어깨를 다독여주고 무서울 땐 안아주고 힘들 땐 가만히 기다려주고 하는 감정표현들이 사소하지만 사소하지 않다.

 

다만 그 감정의 표현에 대해 우리가 기대하는 바가 늘 있다,

내가 깨닫지 못하지만 내가 원하는 방식

나는 지금 화내지만 그냥 다독여주면 좋겠어요

나는 지금 화를 내지만 사실은 그냥 울고 싶은 걸 참는 거예요

웃고 있지만 지금 너무 불안하고 무서워요.

울고 있지만 사실 개운하기도 해요....

어쩌면 사람마다 가지는 감정의 패턴은 조금씩 다르다,

 

아니 우리는 모두 우리감정조차 모르기때문에 타인의 감정은 더더구나 알지 못한다.

내가 가진 감정조차 그것이 무엇인지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데 남의 욕구나 감정을 어떻게 알까

그냥 알아주길 바라지만 사실 서로 오해하고 착각하며 살고 있다.

우리는 서로 잘 안다고  니마음은 내가 잘 안다고 너말고 누가 날 알아주겠냐고

그렇게 조금씩 어긋나고 조금씩 오해하고 오해받으면서도 관계를 이어나간다

그건

모두에게 통용되고 인정받는 방식과 함께 사회마다 개인마다 조금씩 다른 방식이 함께 존재하기 때문이다. 각각은 다르지만 그럼에도 공통으로 통하는 무언가를 가지는 것 그것이 사람들사이의 관계 그리고 그 관계들의 질서다.

그래서 누구나 알기도 쉽지만 누구도 알 수 없는 것이 감정이고 표현이고  가장 쉬우면서 어려운 것이 타인과 관계하는 일이다,

 

선윤재는 선천적으로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소년이다,

자기에게 일어나지 않은  감정이므로 타인의 감정도 알지 못한다.

어떤 상황에서 어떤 마음이 드는지 선재는 일일이 상황마다 경우마다 그때의 감정들을 배우고 외울 뿐이다, 쉽지 않다, 사람마다 다르고 상황마다 다른데 사람ㄷ과 상황이 뒤섞이면 그 경우의 수는 기하급수로 늘어날 뿐이다,

다만 선재는 내 감정도 모르고 타인의 감정도 모르기에 솔직하다,

나는 모른다, 나는 다르다, 나는 느끼지 못한다는 것을 드러낼 뿐이다,

엄마라는 울타리가 없어진 이후 어쩌면 선재에게 솔직함만이 살아가는 무기가 될수 있겠다,

그리고 곤이를 만난다,

전재와는 정반대에 있는 곤이

아무것도 모르고 무심한 선재와 달리 가장 에민하고 가장 민감하고 가장 약한 곤이가 만난다,

서로는 서로를 알 수 없다,

복잡한 수학공식보다 더 알 수 없는 존재들이다,. 서로에게

그리고 소년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성장한다,

윤재는 윤재의 방식으로 그리고 곤이는 곤이의 방식으로  나중에 등장하는 도라 역시 그만의 방식으로 성장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제각각이고 그래서 아름답고  세상은 괴롭고 동시에 즐겁다.

 

 

소설은 조금은 독특한 선재의 성장담이며 동시에 선재가 만나고 관게맻는 사람들과 나누는 감정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관계 맺음은 세가지로 나뉜다,

나와의 관계

타인과의 관계

세상과의 관계

사람들은 나와 다른 타인과의 관계맺음이 가장 어렵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어쩌면 그건 가장 쉬운 방법일 수도 있다. 그저 맞는 척 연기할 수도 있고 조금 양보하면 그만이거나 무대뽀로 밀고 나갈 수도 있다. 연기할 수도 있고 그래서 상처받기도 하지만  타인과의 관계없이 살기는 쉽지 않기때문에 누구나 어쨌든 관계를 맺는다,

그리고 살아가는 사회에서 누군가 타인과 관계를 맺기 시작했다면 사회와의 관계도 맺어 나가기 어렵지 않다,

가장 어려운 일은 아무래도 자기와의 관계 맺기다,

사람들은 가장 잘 알고 있다고 믿어서 가장 무심하게 대하는 존재가 바로 자신이다,

곤이는 스스로 곤이를 모른다, 이수였던 곤이 그리고 댱양한 이름으로 불렸던 곤이이전의 이후의 이름들의 그 존재를 스스로 잘 모른다, 내가 원하는 것 내가 그토록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고 아니 어쩌면 그 감정들이 두렵고 낯설어서 더 설쳐대고 더 강한 척하고 더 거칠게 군다,

윤재도 윤재자신을 모른다, 감정을 느끼지 못하고 두려움을 느끼지 못한다는 건 알지만 그럼에도 그 속에 무엇이 꿈틀거리는지 알지 못한다, 단지 감정을 알지 못한다는 것만으로도 그는 자신을 모른다고 여긴다,  윤재와 곤이의 다른점은 여기서 시작한다,

윤재는 자기를 모른다는 걸 알고 있고 곤이는 그것조차 모른다,

윤재는 그저 솔직하게 자기를 드러낼 뿐이다, 상처를 입거나 상처를 주거나 정직하게 직면하고 받아들이고 학습한다

곤이는 피하고 무시하고 도망칠뿐이다, 더럽고 치사하고 싫고 두려워서..

 

성장을 말하고 있을지 모를 이야기에서 나는 관계맺음을 찾는다,

나와 타인과 세상과의 관계에 대해서...

그래서 내 삶이 해피앤딩이 되는 것인지 새드 앤딩이 되는 것인지는 다 살기전에 알 수 없다.

다 살고 나서도 쉽게 단정지을 수 없을 것이다,

삶은 그냥 그대로의 삶이지 그게 행복이든 불행이든 의미가 없을것이다,

그건 다만 나중에 관계 없는 타인들이 붙이는 이름이다,

 

다행히 이야기 말미에 모두기 조금씩은 더 행복해지는 쪽으로 방향을 틀고 나가지만

그래도 삶이 끝나지 않은 한 또 다른 모퉁이가 나오고 또다른 복병이 튀어나올지 모른다,

그래서 살만한지도 모르겠다.

 

 

사족  요즘 보는 드라마 '비밀의 숲'에 나오는 황시목이라는 인물이 윤재의 20년 쯤 후의 인물이 아닐까 싶었다, 감정을 느끼지 못해 지나치게 솔직하고 직선적인 인물

드라마를 보면서 자꾸  아몬드의 윤재가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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