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동생 버지니아 울프 산하작은아이들 40
쿄 맥클레어 글, 이자벨 아르스노 그림, 노경실 옮김 / 산하 / 2014년 3월
평점 :
절판


작가 버지니아 울프와 언니 바네사의 이야기를 소재로 가져왔다고 한다

우울증에 걸린 버지니아를 옆에서 보살피고 위로했던 바네사의 이야기

 

나는 이 책을 사춘기 자녀를 둔 부모의 마음으로 읽는다,

내 아이 하나는 무던한 사춘기를 겪었다,

다 지나고 보니 무탈했다고 느껴진다,

그러나 한 순간 순간 살얼음같고  도무지 해답을 찾을 수 없는 무능한 내모습을 마주하면서 절망하고 그저 이 시간이 흘러가주기를 눈감고 기다리는 것밖에 할 수 없는 시간도 있었다,

그게 지속된게 아니라 어느 순간 순간 터져주었으니 다행이라고 할까

그리고 한 아이는 막 이 문턱에 섰다,

어쩌면 제 언니보다 조금 더 지독하게 하겠다는 예감이 들어 불안하다

그러면서 어떤 예감이 - 아무리 우울한 예감이라도- 든다는 건 그래도 견딜만하겠구나 싶기도 하다

 

어느 순간 사랑스럽던 내 동생이 늑대가 되어버리는 것처럼

내 아이가 낯선 누군가가 되어버린다,

답은 없다,

알지만 해주고 싶지 않은 것도 있고 알면서도 내 몸이 따라가지 못하는 것도 있고 알지만 그래선 안된다는 이성이 먼저 켜지는 경우도 있고 도무지 모르는 경우도 있다,

그럴때 그저 지켜보고 들어주고 기다려주는 것말고는 답이 없다

답은 정해져 있다, 정답은 누구나 알고 있다,

그런데 그걸 풀어가는 해답을 통과하는 것이 힘들다,

사실 책을 읽으며 무채색으로 변해버린 앞 부분에서 금방 화사한 색채감을 드러내는 중반 이후가 조금 억지라는 생각도 한다,

현실은 쉽지 않다고,,,

이렇게 세상에 빛을 넣기까지 바네사는 얼마나 노력했을까

그 노력이 고작 한 페이지뿐이라는게 화가 난다,

단 한 페이지로 바네사는 버지니아의 마음을 돌리고 풀어준다니,,, 이런 된장스러운 일이,,,

 

말은 쉬운데 누군가에게 귀 기울이고 기다려주는 일은 의외로 에너지가 많이 쓰이는 일이다,

나를 잠시 퍼스 시켜두고 타인에게 몰입해야하는 시간이다,

지루하고  저리고 더딘 시간이다,

에민해진 아이는 조금이라도 자기에게 집중하지 않는 순간을 귀신처럼 캐치해낸다,

내게 관심도 없지?

금방 화살은 날아온다,

그래서 자꾸 관심을 켜두려고 예비 베터리까지 꺼내 들지만 그동안 일단 멈춤 된 나 자신은 점점 굳어져 가고 시들어간다,

내가 누구이고 여기는 어디고 나는 누구랑 이야기하나 싶은 .....

그래도 상대가 , 아이가 다시 예쁜 버지니아로 돌아오면 모든게 덮히고 잊히지만

그 날이 영영 오지 않을거 같은 불안감도 늘 함게 한다,

다 지나고 보면 별거 아닌 것 투성이지만

지나기 전 그 안에서는 그게 전부고 고통이고 별천지다,

누군가를 기다려주는 힘

그걸 기들 수 있는 건  결국 나를 채워서 단단하게 해 두는게 우선이라는 생각을 한다,

단단하고 강한 바네사로 살아갈것

그것이 버지니아처럼 약해지는 누군가를 함께 지탱하는 일이다.

기다려 주는 것 함께 있어주는 것

내가 무능하고 무능하게 여겨저서 더 힘들지 않게

누군가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내가 단단해질 필요가 있다,

그럼 언젠가 버지니아도 바네사를 기다려 줄 때가 오지 안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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