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의 눈빛이 저렇게 절절하긴 첨이었다.

예전 스물몇살때 본 '순수의 시대'도 나름 감동이었다.

아름다운 화면이 가장 기억에 남았고 미셀 파이퍼의 아름다운 모습도 기억한다.

그땐 미셀 파이퍼에게 감정이 이입되어 그녀가 안쓰러웠다.

시대를 앞선 이혼에, 사람들의 입방아에 그렇게 마음을 닫고 돌아서서 떠난 그녀가 안쓰러웠고

책임지지 못할 사랑을 시작한 그 남자가 미웠다.

뭐 그랬던거같다.

남자보다는 여자가 더 기억에 남았으니까

이제 이십년이 지나고 어느날 밤

유행가 가사처럼  그 옛날 극장에서 본 영화를 주말의 명화로 보면서

남자의 절절한 눈빛을 본다.

가장 소망했던 것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남자의 눈빛이 거기 있었다.

인생을 돌아볼때 후회스러움도 없이 늘 평온하고 명예로웠던 그 남자가 단 하나 갖지 못한건

그 남자의 일생에 가장 절잘했고 소중했던 '무엇'이었다.

마음속 깊은 우물속에 그'소중한'것을 넣어두고 두껑을 닫고 살아온 남자의 평온하고 잔잔한 표정에서 눈물이 난다.

그가 연기를 잘하는 배우라는 걸 알고있었지만 사실 '순수의 시대'에서의 그의 연기가 기억나지 않았다.

뭔가 강한 임펙트가 없었던 역이라서인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다시 본 오늘 밤 영화속 그 남자는 참 ...

 

남자 여자를 떠나서 내가 가장 소망했던 무언가를 버리고 돌아서는 사람의 표정은 그렇지 않을까

한없이 자상하고 따뜻한 미소뒤에 뻥 뚤려있는 무언가가 있다.

 

나는 살아오면서 무엇이 가장 중요할까

내 가족 아이들 지금현실의 삶....

어쩌면 나도 내 속의 깊은 우물속에 무언가를 봉인해넣었는지도 모른다.

아주 오래전에 꽁꽁 싸서 우물에 던지고 그대로 두꼉을 닫아버린 무언가가 지금 자꾸  기억속에서 아련하게 밀려온다.

그게 무엇이었을까

어느날 영화속의 그 남자의 얼굴에서  내가 잊어버리고 살았던 그 '절실했던'것이 그리운 밤이다.

 

 

 

 

낮에 딸이랑 '파파로티'를 봤다.

중간중간 어설프고 맥락이 끊어지는 부분도 있지만 그래도 단순히 마지막 노래때문에 좋았다.

순수한 표정에서 비열하고 삐뚤어진 표정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을 가진 이제훈도 좋았고

이제 나이 먹어 조금은 쓸쓸하고 마주 보기가 계면쩍어진 한석규도 좋았다.

한석규는 대사를 할때보아 튓마루에 앉아  동창에게 전화를 걸까 망설이는 순간 같은 그런 빈 장면을 채우는 때가 더 좋다.

뭐랄까 말하지 않아도 무심하게 앉아 무언가를 하거나  하지않거나 하는 모습이 더 많은 걸 보여준다.

그리고

내가 보기엔 대한민국에서 욕을 가장 맛나게 하는 배우가 아닐까 싶다.

어쩜 늘 쓰는 말처럼 욕이 그렇게 찰지게 들릴까?

 

지금도 여전히 아카데미 주연상을 받는 배우의 잊혀진 영화속의 모습과

한때 잘 나갔던 배우의 조금은  쓸쓸해진 지금의 영화속 모습을 보면서

왠지 지금 나 자신도 조금은 쓸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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