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영화포스터 커버 특별판)
줄리언 반스 지음, 최세희 옮김 / 다산책방 / 2012년 3월
평점 :
품절


지난학기 책모임에서 고전을 다시 읽으면서 꽤 깊은 울림을 준책이 데미안이었다.

예전에 읽었던 느낌과 다르게 이제는 데미안과 싱클레어의 시간을 지나 그들의 부모의 시간에 가까워진 나이에 다시 읽은 데미안은 또다른 세상을 보여주었다.

심오한 철학이나 데미안의 독특하고 깊은 사유의 세계보다는 평범한 싱클레어가 어떻게 변화해가는가가 더 관심을 끌었다고 했던 기억이 있다.

스스로를 부정하고 미워하고 그러면서 스스로에 대한 주체할 수 없는 그리고 알 수 없는 자신감이 혼재한 시절.. 사춘기라고 할 수도 있는 그런 성장기를 읽으면서 내내 내 아이를 떠올리고 나의 지난시절을 떠올리며 가슴이 먹먹해지기도 했다.

 

지금 또 이책을 읽으면서 어쩌면 싱클레어의 뒷이야기가 아닐까

아니면 그 아이들보다 조금은 더 평범하고 우리가 쉽게 볼 수 있는 요즘 아이들의 성장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물론 이 책은 성장기라고 하기엔 너~무 긴 성장기이기는 하다.

주인공의 나이가 60대라 성장기라고 해야하나 싶지만 결국 사람은 죽는 그 순간까지 성장을 멈추면 안된다는 걸 생각하면 진정한 성장기가 아닐까

20대 어느순간 훌쩍 커버린 이후 모든 성장이 멈추어버리기엔 남은 날들이 너무나 많다,

나이를 먹어도 온화하고 깊어지기는 커녕 점점 아집과 독선이 강해지고 사랑하고 이해하는 것보다는 미워하고 미워하는 것들이 자꾸 늘어가는 나자신에게 한참 실망하는 순간에 든 책이어서일까

 

토니의 어이없는 실수아닌 실수 그리고 그의 분위기 파악못함 도무지 알지를 못하는 단순성 그리고 뻔뻔하고 지극히 평군적인 삶이 주는 무게가 퍽!하고 다가온다.

딱히 찍어서 그가 무언가를 잘못했다고는 할 수 없다,

다만 예전 학창시절 그가 이야기했듯이 역사라는 것이 부정확한 기억과 불충분한 기억의 만남이라는 것 .......... 그것에 맞게 연결되었을 뿐이다.

한때 허세에 쩔었던 소년들이 눈군가 나와 다른 눈에 띄는 친구에게 흠모의 감정을 느끼고 열등괌과 자랑스러움을 동시에 느끼면서 청년이 된다. 그리고 지기 싫어하는 마음 드러내고 싶은 마음이 합쳐저서 어떤 편지를 보내고 잊는다.

아니 잊는다라는 건 옳지 않다.

과거는 잊혀지는 것이 아니라 기억된다. 다만 그 기억이 객관적인 사실들로 이루어 지느 ㄴ것이 아니라 개인적인 감정 , 정서. 그때의 날씨.혹은 그때 먹은 음식. 들었던 음악 등등과 포개어지면서 내가 보는 혹은 내게 보이는 진실로 변화한 것들이 기억이 된다.

기록하지 않고 머릿속에 넣어둔다는 건 그렇게 조금씩 변하기 마련이다,

기록도 그때 그 마음 그 기분이 나중까지 고스란히 전해지지도 않긴 마찬가지지만...

그리고 그 변형된 기억속에서 내가 스스로 별일 아니라고 느끼는 건 소멸되고 사소하지만 내게 중요한 일은 크게 확대되면서 새로운 질서를 가진다,

 

어쩌면 나는 대략 합의하에 결정된 역사가 더 안전하다고 생각하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전과 똑같은 역설이거나 즉 바로 우리 코앞에서 벌어지는 역사가 가장 분명해야 함에도 그와 동시에 가장 가변적이라는 것 우리는 시간속에 살고 그것은 우리를 제한하고 규정하며 그것을 통해 우리는 역사를 측량하게 되어있다.  p107

 

개인의 기억 역시  그런게 아닐까

 

시간이란 처엄에는 멍석을 깔아줬다가 다음 순간 우리의 무릎을 꺽는다. 자신이 성숙했따고 생각했을 때 우리는 그저 무탈햇을 뿐이다

 

요절하는 것보다는 늙은 것이 언제나 나은 법이다. 젊었을 때는 산날이 많지 않기때문에 자신의 삶을 온전한 형태로 기억하는 게 가능하다. 노년에 이르면 기억은 이리저리 찢기고 누덕누덕 기운것처럼 되어버린다.

 

스스로 질서를 부여한 기억속에서 인간이란 언제나 내가 이로운 것만 기억한다. 그리고 잊는다.

토니가 정말 성장하고 있다는 것 그것은 비록 자신이'평균치'의 인간으로 평균치의 삶을 살아온 지극히 평균치의 인간임에도 불구하고 뭔가 의혹을 느끼는 순간 포지하지 않고 그 진실로 가까이 다가간다는 것이다. 물론 그 행동의 이면에는 누군가를 이해하려는 공감이 부족했고 자의적이었고 오만했던 행동도 있었다. 그러나 포지 하지 않고 들어가 결국 진실과 마주하고 내 기억속에서 사라진 그 사실 그리고 그 이면의 모습과 마주한다. 처절한 자기반성과 함께

결국 포기하지 않고 스스로를 깊이 파고 들어가는 인간이 성장하는 것일까

데미안이나 에이드리언이 될 수 없었던, 싱클레어조차 되지 못했던 평범한 인간 토니는 포기하지 않는 동안 계속 성장해왔다. 그리고 잔인한 진실앞에서 반성하고 후회한다.

 

신중하기 그지없는 삶을 살았던 내가 이긴적도 패배한적도 없이 다만 인생이 흘러가는 대로 살지 않았던가 흔한 야심을 품었지만 야심의 실체를 깨닫지도 못한 채 그것을 위해 섣불리 정착해버리지 않았던가 상처받는게 두려웠으면서도 생존력이라는 말로 둘러대지 않았던가 거지서납부를 하고 가능한 모든 사람들과 무난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살았을 뿐 환희와 절망이라는 말은 얼마지나지 않아 소설에서는 구경한게 전부인 인간으로 살아오지 않았던가 자책을 해도 마음 속 깊이 아파한적은 한번도 없지 않았던가.

 

주인공의 반서에 내 얼굴이 화끈거린다.

이렇게 살았으면서 이렇게 살고있다는 것조차 몰랐던 내게 쿵! 돌이 떨어진다.

책을 읽으면서 생각을 하고 이해를 하고 그리고 책장을 덮으면서 끝!이었다.

내가 공감을 하고 느끼면서도 끝!이었다.

알고 있다는 것 느꼈다는 것에서 한발도 나가지 못하고 내 속에  갇혀서 그것조차 몰랐다는 것을 이 책을 덮으면서 깨닫는다.

 

이 책에 숨은 대단한 반전이 사실 중요하지는 않았다.

엄밀히 따져 그의 잘못도 아니다.

에이드리언이 미성년자도 아닌 한사람의 성숙한 인간으로 스스로 선택한 일이고 선택한 결과이다. 결국 좋지 않고 아름답지 않은 마무리지만 그의 삶이라는 점에서,.. 누구의 삶도 경건하다는 입장에서 그를 존중한다.

평균치의 싦을 살던 주인공도 마찬가지로 경건한 삶이다,.

주도면밀하고 의도적으로 악의를 가진 행동은 아니다

 

그럼에도 그가 그 문제에 파고 들고 (그것이 노년의 따분함에서 비롯된 것일지라도) 포기하지 않고 공감하려고 애쓰면서 마침내 진실을 마주하는 것

그게 내게 없더라는 것..

이 책을 읽으며 내가 깨달은 것이다,

 

역사는 살아남의 자들의 회고담이라고 했던가

아직 살아갈 날이 많은 내가 조금 더 되돌아보며 나를 집요하게 파고 들어봐야할 때가 지금 이순간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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