뭔일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지만 기분이 처졌었다.
환절기라서 일까 아니면 반복되기만 하는 일상이 지긋지긋해져서일까?
달달하고 기분좋아지는 그러면서 눈도 즐겁고 아무 생각없이 빠질 수 있는 영화를 보고 싶었다.
<시라노 연애조작단>
적당히 멋있는 배우 최다니엘과 엄태웅 그리고 질투없이 이쁘다 하고 볼 수 있었던 김민정과 박신애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박철민.....
새로울것도 없지만 적소에 폭소가 터지고 방심하다가 풋! 하고 웃음이 터지면서 영화가 진행되었다. 연애라는 감정에 빠져본지가 얼마나 되었었까? 아니 그렇게 맹목적으로 빠지고 질투하고 한
없이 믿다가도 한없이 의심하는 그 오묘하고 복잡하고 유치한 감정에 빠졌던 적이 있었던가?
어려서는 없는 콧대 세우느라 이것저것 재보느라 그런 기회를 놓쳤고
좀 지나서는 맬랑콜리한 감정에 빠지는 걸 은근히 즐기면서 여기저기서 본듯한 들은 듯한 감정을
연기하는 듯 즐기는 듯 하느라 푹 빠지지는 못했던거같다.
그러다 보니 과거의 희중이 했던 병훈과의 사랑보다는 상용과 하는 시니컬하고 아닌척하고 적당히 지치고 속물이 된 사랑이 더 와 닿는다.
재미있고 예쁘고 달달한 사랑이야기로 죽죽 나가다가 마지만 사랑고백을 대신 해주는 장면에서
주책없이 눈물이 나온다. 이젠 떠나버린 내사랑에게 나아닌 다른 사람을 통해서 고백하는
병훈의 말들이 이상하게 마음을 울컥하게 했다.
그게 사랑이든 정이든 연인인든 가족이든 자식이든 보편적으로 통하는 말이어서였을까?
믿으니까 사랑하는 게 아니라 사랑하니까 무조건 믿어줘야 한다는 것
의심잆이 받아주고 속아줄 수도 있어야 하는데..
나이 들수록 무언가를 누군가를 믿어버린다는것이 참 힘들다.
한번 의심하고 확인하는 것이 세련되고 합리적이고 똑똑한 것이라고 생각해버리고
알게모르게 믿지 못하는 마음이 내 속에 자리잡고 있었다.
그냥 바보처럼 믿어주고 그렇게 사랑하는 것.... 그게 정말 중요하다는 걸
참 사소한 영화를 통해 배운다.
자신의 사랑은 믿지 않으면서 사랑을 상품으로 팔아온 병훈도
한번의 상처를 핑계로 더이상 사랑을 믿지않으려고 희중도
사랑에 서투르다고 생각하면서 쉽게 돈으로 사랑의 방식을 사려던 상용도
결국 그냥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드러내면 사랑을 받아들이고 상처를 치유한다,
지금 사랑에 서툴던 상용도 시간이 흐려면 사랑을 믿지 않는 병훈이 될 수도 있고
마지막에 사랑을 향해 용기를 내는 박신애도 혹시 상처를 받으면 마음을 닫아버리는
희중이 될 수 도 있다.
순수함 진실이 영화처럼 항상 승리하고 사랑을 차지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편이 본인에게 후회나 상처를 덜 남기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가을에 멜랑코리한 감정에 빠지고 싶다면 한번 보면 좋을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