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미는 누군가를 떠올리게 했다. 조용하고 말이 없지만 느닷없이 내편을 들어주는 사람.

무조건 내편이어서 마구 상대에게 쎈소리를 해가며 역성드는 것이 아니라

상대가 틀렸음을 옳지 않음을 조곤조곰 말햐면서 내가 당신 편을 들려고 하는게 아니라 틀린 걸 틀리다고 말하려는 것 뿐이라는 태도로 내 편을 들어 줄 사람.

그럼에도 그의 편이 되기는 쉽지 않은 사람

아픔을 드러내지 않고 늘 괜찮은 얼굴로 괜찮은 이야기만 하고 정말 괜찮아 보여서 참 잘 살고 있구나 편안한 삶이구나 싶어 어느 정도 이상 관심을 끌지 않는 사람

사실 아무렇지 않은게 아니라 자기 상처를 어떻게 드러내야 하는지 모르는 사람

이걸 드러내야 하는 것인지도 모르고 드러낸다는 걸 배우지도 못했고 그래도 된다는 걸 알지 못하는 사람. 다들 힘들테니까 굳이 나까지 무게를 얹지 않겠다고 늘 괜찮은 얼굴로 말갛게 있는 사람 어쩌면 자기 상황이 폭력속에 있다는 것조차 인식하지 못하면서 타인의 폭력에는 민감하게 반응하고 편을 들어주는 사람.

그래서 쉽게 잊히기도 하고 아무렇지도 않아보여 팔자편해보이기도 하고 무심해 보이기도 하고 그런 사람. 그래서 그가 무언가를 말하는 순간 목청을 높이는 순간이 참 많이 어색하고 낯설기도 한 사람

그런 사람이 떠올랐다.

시미는 자기 아픔을 드러내 보이지 않는다.

화인의 아픔을 쉽게 알아차린다. 무심학 다가가지 않음을 예의로 삼은 시미는 병실에서 자기 옷자락을 잡은 화인의 아픔을 알아차린다.

그리워했던 아이를 대면하는 순간 아이가 내뱉는 차가운 한마디에 그리고 남긴 커피잔에서 아이의 기호릉 알아내고 아이가 그동안 혼자 얼마나 외로움과 버려짐을 견뎌냈는지를 알아차린다.

너무 잘 알아차려서 자기 통각을 잊었다.

 

폭력에 오래 노출된 사람들은 폭력에 대한 민감성이 높기도 하지만 굉장히 둔감하다.

이게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모든 잘못을 자기에게 묻는다.

아니 상대의 잘못일거라고 생각해도 그 생각을 언어로 꺼집어 내거나 행동으로 드러내지 않는다. 분명 상대의 문제지만 드러내는 순간 말하는 순간 그건 내가 감당해야하는 일이라는 걸 너무 선명하게 안다.

그리고 눈앞의 폭력이 사라지는 순간 자기는 괜찮다고 생각한다.

순간 순간 불쑥 올라오는 불안과 공포를 내가 감당해야할 것이라고 여길 뿐이다.

 

그러고 보면 그런 사람은 시미만 아니고 화인도 그렇다.그리고 나도 그렇다.

내 심장에 새겨진 폭력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다시 심장에 수를 놓는다.

절대 잊힐 수 없는 고통을 잊기 위해 다른 고통을  내 몸에 새긴다. 그리고 나를 지켜줄 무언가를 내 몸에 새긴다.

내 고통은 무엇이 지켜줄까

시미를 닮은 화인을 닮은 그들은 무엇이 지켜줄까

 

책을 읽으며 속에 뭔가 얹혀서 내려가지도 올라오지도 않는  그것이 생겨버렸다.

심장에 수 놓는 일이 쉽지 않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