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본  지금은 없어진 시네마 선재에서 본 "걸어도 걸어도"라는 영화였다.

자식을 다 키운 나이 든 어머니 역할이었는데 참 이질감이 드는 엄마였다.

아니 이질감만 드는 건 아니었고 뭐랄까 드라마나 영화에서 흔히 그려지는 엄마는 아니었다

흔히 동양적인 혹은 한국적인 사회에서 그려지는 희생하고 배려하는 나이든 엄마는 아니어서 그래도 명색이 가족영화인데 엄마가 너무 속물스럽고 튄다는 느낌이 참 낯설었다.

그런데 사실 현실에선 그런 엄마가 참 많다.

내 엄마도 그런 면이 있고 주변 누군가의 엄마를 떠올려도 그렇고 이제 엄마가 된 내 모습도 마냥 푸근하고 따뜻한 존재만은 아니다.

자식을 위해 뭐든 할 수 있다는 모성은 다르게 보면 내 자식만 위하는  이기심과 누군가를 미워하고 질투하고 일부러 힘들게 하기도 하는 악감정을 품기도 한다. 기억은 적당히 내가 편리하게 왜곡해서 자식들에게 심어주기도 하고 내가 보기 불편한 것들은 보이지 않은 척하고 좋은 것만 취하고 싶은 속물적인 마음도 없지 않다.

엄마란 완벽한 존재가 아니다. 다만 엄마 아닌 다른 모두에게 완벽한 엄마가 편리할 뿐이다.

키키 키린이 연기하는 엄마는 그랬다.

완벽하려고도 하지 않고 그럴 필요도 없고 오히려 가족을 옥좨기도 하고 마듬대로 들었다 놓았다 하면서도 내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의뭉스럽게 아무것도 모른다는 표정으로 어쩔줄을 몰라하면서 돌아서면 픽 하고 냉소를 품어내기도 한다.

꽤 낯설지만 매력있고 닮고 싶기도 한 엄마였다.

 

그 이후 여러 영화에서 그녀를 쉽게 찾을 수 있었다.

<태풍이 지나기면>  <앙> <도쿄 타워>에서 그녀는 늘 엄마였고 소수자였고 억척스러웠고 떄로는 속물스러웠고 한없이 동동거리면서도  무심하게 태연했다.

마지막 작품이었던 < 어떤 가족>에서는 모든 면을 품어내며 무심하게 그려냈다.

꽤 익숙한 크리세같으면서도 그녀가 아니면 그려낼 수 없는 인물을 만들어 냈다.

 

그리고 그녀에 대한 글을 읽는다.

아니 구체적으로 읽었다기보다는 그녀의 말을 들었다.

책의 구성은 조금은 쉽게 만들었다고도 할 수 있을, 여기저기 그녀의 인터뷰를 모아서 전체 맥락이 아닌  그 중 하나의 질문에 대한 키키 키린의 대답을 모았다.

하실 그  말도 그 질문에 대한 전체 맥락인지 아니면  괜찮아보이는 몇몇 구절만을 뽑아온 것인지 알 수 없다. 그래서 어쩌면 이렇게 단편적인 말 몇마디라면 그에 대한 이해보다 오해를 더 만들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내가 얻고 싶은 건 내가 몰랐던 키키 키린을 더 잘 이해하고 알려는 것이 아니다.

그냥 내가 느꼈던 그녀의 모습을 확인하고 싶고 어쩌면 오해일 수 있지만 내가 가진 그녀의 이미지를 다시 한 번 보고 싶은 것일테니 책의 편집방향은 중요하지 않다.

 

짧은 인터뷰의  대답에서 그녀의 성격이 잘 보인다. 아니 내가 다시 확인한다.

그녀는 쉬운 삶을 살진 않았지만 적어도 자기 삶에 무릎꿇지는 않았다.

하나의 포커페이스일 수도 있고 진실을 감추기위한 방편일 수 있지만 시종일관 유쾌하고 유머가 있다. 매사가 심각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아무렇게나 대하지 않았다.

심각해서 될 일이라면 충분히 심각하게 생각하고 행동하겠지만 그렇게 해도 어쩔 수 없는 일이라며 그냥 재미나게 받아들여야하지 않겠어요? 라는 무심하고  시크한 답변들을 듣는다.

그럼에도 얼마나 열심히 살아왔는지가 보인다.

누군가의 말한마디나 글 한 줄로 그 사람을 다 알 수는 없다.

어쩌면 나는 글이나 말을 통해 그 사람이 내가 생각하는 그 사람이 맞다는 걸 다시 확인하고 싶어하는 것같다. 내가 몰랐던 다른 면을 알게 되어 더 상대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는 것도 좋지만 행여 내가 기대했던 그 사람이 아니어서 실망하게 되는 게 두려워서 그냥 내가 아는 모습이 전부일 거라고 믿고 싶어서 말이나 글에서 내가 보고 싶은 것을 찾고 내가 판단한 대로 받아들이며 읽고 보는 것이다.

그렇다면 키키 키린은 여전히 유쾌하고 유머있고 생에 대해 사람에 대해 냉소적이지만 그 이면에 따뜻함도 가지고 있었다. 살아보니 별거 아니더라 그렇지만   아니 그래서 최선을 다해 살아보는 것도 나쁘진 않아. 라고 말한다.

결혼에 대해 후회하면서도 그 후회조차 내 선택이었고 뭔가 내게 좋았다고 말하고 배우 생활에서 뭔가 최정점을 찍겠다는 각오는 없지만 이렇게 길게 오래 이 일을 할 수 있어 감사하고 있다.

어려 작품에서 보여주는 한없이 가볍고 속물스럽지만 그렇다고 비난할 수 없는 깊이마저 느껴지는 그 감각을 여기서도 발견한다.

 

약간 사시가 있고 나중에 들으니 한 쪽 눈이 실명되어 제각각 다른 방향으로 향하는 그녀의 시선이 약간 코믹하고 슬프면서도 한편으로 서늘한 두려움도 느끼게 하는 것 처럼

그녀가 연기하는 어머니 할머니 어떤 소수자는  쉽게 주변에서 본듯한 인물이면서도 전혀 새로운 독특한 인물이다. 그건 무거운 건 가볍게 가벼운 것은 무겁게 연기하는 그의 방식이었다.

이제 더 이상 작품에서 그녀를 만날 수는 없다.

그럼에도 필름작품은 언제든 다시 볼 수 있어 다행이다.

화면에서 말하고 움직이고 표정짓던 그가 글로 보인다.

그를 모른다면 굳이 읽을 필요가 없지만 그의 작품을 보고 그가 괜찮다고 생각했다면 한 번 읽어볼만하다.

 

부디 세상만사를

재미있게 받아들이고

유쾌하게 사시길

 

너무 노력하지도

너무 움츠려 들지도 말고.

 

 

그렇게 나도 늙어가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