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와 당신들 베어타운 3부작 2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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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호르몬이 가득한 작은 공간 베어타운에서 하키를 향한 사람들의 정확히는 남자들의 의리와  사랑에 대한 이야기가 전편이었다면 이번 편은 그 저 남성 호르몬이 가득한 상남자들의 하나하나를 세밀하게 보여준다

그렇게 페로몬이 가득한 공간에서 성폭행사건이 일어나고 그 가해자가 그 공동체의 영웅이었고 희망이었다면 그 사건이 어떻게 전개될 수 밖에 없는지 그 마을의 성향과 결이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분투하고 애를 쓰며 살아가려고 하는지를 보여줬다면 이제 사건이 마무리가 되었다고 여겨지는 무렵부터 이야기를 시작한다.

마을의 자부심이던 하키는 팀은 거의 해체되다시피하고  그나마 하키에 재능이 있던 청소년들과 코치는 라이벌팀인 헤드로 넘어가고 이제 베어타운은 그냥 잊혀질 쇠락한 소읍이 되고 말 지경이다.

그러나 베어타운에서 나고 자라서 이곳이 세상의 전부라고 믿는 사람들 그들의 자부심이 어떻게 뻗어가는지를 그려낸다

사실 크게 일어나는 중심사건이 있는 것은 아니다

개개인은 어떤 단체에 속하기도 하고 어느 곳에서 소속감을 느끼며 안정을 느끼기도 하지만 결국은 개인의 맥락이 더 중요하다. 한 개인을 정의하는 건 그의 소속이나 환경보다 스스로가 가진 어떤 관계들과 감정들로 인한 맥락이다. 맥락이 중요하다.

 

 

"어쩌면 우리는 좋은 사람인 동시에 나쁜 사람일 수도 있다.좋은사람과나쁜사람을둘러싼문제가복잡해지는 이유도 우리가 대부분 좋은 사람인 동시에 나쁜 사람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소설에는 중심 이야기가 따로 없다. 분량의 차이는 있을 망정 모두가 주인공이 될 수 있고 모두가 자기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 우리편 너희편이 딱히 존재하지 않는다. 물론 베어타운이냐 헤느냐의 강한 라이벌 구도가 존재하지만 개개인은 자기 이익에 따라 감정에 따라 혹은 그동안의 정에 따라 누구랑도 편을 먹기도 하고 누구와도 등을 진다. 좋은 아버지고 좋은 남편이더라도 좋은 이웃이 될 수 없기도 하고 무심하고 문제가 많은 가장이지만 어디선가는 꼭 필요한 사람이거나 모두가 피하는 폭력배라고 할지라도 누군가에게는 내 목숨과 바꿀 수 있는 소중한 존재다. 그래서 모두가 좋은 사람인 동시에 나쁜 사람이다.

 

 

"우리가 타인에 대해 아는 사실들 가운데 가장 치악을 꼽으라면  우리의 삶이 그들에 의해 좌우된다는 것이다 그들의 행동이 우리 삶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우리가 선택하고 좋아하는 사람들뿐 아니라 그 나머지 바보들의 경우에도 말이다 내 앞에 줄을 서 있는 사람. 운전을 제대로 할 줄 모르는 사람. 텔레비젼 프로그램을 좋아하고 식당에서 너무 시끄럽게 떠들며 유치원에서 우리 아이들에게 노로바이러스를 옮기는 아이를 키우는 사람 주차를 엉망으로 하고 우리 일자리를 가로채며 엉뚱한 정당에 투표하는 사람 그런 사람들도 매 순간 우리 삶에 영향을 미친다.

 

아아 우리는 얼마나 그들을 미워하는가

 

페쇄된 마을에서 서로가 서로에 대해 뻔하게 알고 있는 상황에서도 그렇고 타인들이 모래처럼 모인 삭막한 도시에서도 우리는 타인에게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다.

그가 나를 딱 지목하고 저 사람을 망치겠어. 저 사람을 변화시키겠어. 좋은 영향을 주겠어라고 선언할리 없지만 우연한 작은 행동들이 한사람 한사람을 거치면서 혹은 곧장 나에게로 날아와 혹 나의 삶을 바꾸기도 한다. 그건 나의 몸짓 역시 마찬가지다.

 

 

"그들은 환한 데서만 달리기를 하고 말은 하지 않지만 둘 다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 나자들은 평생 어둠을 신경 쓸 필요가 없다는 생각 그건 그들의 인생에 아무 문제도 되지 않는다는 생각이다. 남자들이 어둠을 무서워하는 이유는 귀신과 괴물때문이겠지만 여자들이 어둠을 무서워하는 이유는 남자들 때문이다"

 

" 폭력의 시작점이 어디인지 정확히 아는 사람은 없기 때문에 싸움을 벌인 사람에게는 항상 그럴 듯한 변명이 있다. '도발한 네 잘못이야' ' 내가 어떤 식으로 반응할지 알면서' '네 탓이야. 너는 당해도 싸. 네가 자초한 거야'

 

전작에 이어 성폭력은 이미 일어났고 그 이후의 삶에 대해 이 소설에서는 많이 보여준다.

마을의 영웅이 성폭행을 했고 그가 나락으로 떨어진다는 것은 우리 마을의 마을이 나락으로 떨어진다는 것이다. 그 내리막에서 누군가를 원망해야한다면 그건 문제를 일으킨 당사자 케빈이 아니다. 케빈으로 하여금 문제를 일으키게 꼬리를 친(?) 마야다. 마야는 헤프고 불안하고 경박한 걸레가 된다. 그래야만 문제는 케빈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마야에게 있는 것이고 마야를 원망하고 공격하는 자기들이 안전하고 당연하게 된다.

모든 것이 드러나고도 마야는 여전히 마을 사람들이 두렵다. 그리고 사람들은 여전히 마야에게 쪽지 폭탄을 던지고  폭력적인 눈길을 보내며 아는 척 하지 않는다.

단 한명의 단짝과 가족이 있지만 그들도 자기의 삶이 있다.

자기의 문제가 있고 자기가 해야할 일이 있고 고민이 있고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을 때가 있다.

누군가에게 책임을 지운다면 가장 만만한 상대가 좋고 내가 그래도 상관없는 사람이면 더 좋다.

마야는 그런 존재였다. 이제 전부는 아니지만 아직 누군가에게는

자기 가족에게 자기 편에게 자기 자녀에게는 좋은 사람들이 마야에게는 가혹하다.

 

 

중간은 없다. 완전히 들통나든지 전혀 아무도 모르든지 둘 중 하나다. 세상 밖으로 흘러나가는 순간 비밀은 지진이 되고 산사태가 되고 쓰나미가 된다. 생각없이 던진 말 한마디 언뜻 지나간 생각 상처를 입은 사람이 인터넷에 올린 사진만으로도 어쩌다 그렇게 됐는지 모르는 새 돌이 굴러 떨어지고 눈이 쏟아지고 넘을 수 없는 파도의 벽이 밀려들 수있고 그때부터는 그 어떤 것도 막을 수 없다 칠월의 향기를 오므린 두 손에 담으려는 것처럼 부질 없는 짓이 된다. 이제 모르는 사람이 없다 아무도 알 면 안되는 걸 모르는 사람이 없다. "

 

"벤이는 그들의 주장을 숱하게 들었다. 관중석에서 시합을 치르러 가는 버스안에서 그의 옆에 앉은 어른들이 '아이스하키의 세계에 동성애자는 없다'고들 했다. 통상적으로 주고 받는 농담들이 벤이에게 실질적으로 영향을 미친 적은 없었다. 가장 심한 상처는 너도나도 욕을 하고 싶을 때 '호모'라는 단어를 쓴다는 것이다. (중략)

물론 그 단어를 절대 쓰지 않는 어른들도 있었다. 그중 일부는 그대신 다른 표현을 썼다. 그들은 아무 생각이 없었겠지만  벤이는 그들이 나눈 대화의 조그만 파편들을 몇 년동안 간직하고 있다. '그런 사람들은 하키 안 해도 돼. 그게 어떻게 가능하겠어? 로커룸이랑기타 등등 어쩌라고 만일의경우를 대비해서 로커룸을 세개 만들어야 하나?'  평범한 학부모, 아이들의 하키단을 위해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은 친절하고 마음씨 넓은 학부모들이 이런 소리를 했다. 그들은 극단적인 정당에 투표하지 않았고 누가 죽길 바라지 않았고 폭력 행사는 꿈도 꾸지 않았다. 그들은 누가 들어도 빤한 소리를 했다. '그런 사람들은 하키가 불편하게 느껴질 거야. 다른 걸 좋아할 거야. 하키는 거친 운동이잖아.' 어떨 때는 단도직입적으로 외쳤다."하키는 남자들을 위한 스포츠잖아!" 그들은 '남자들'이라고 했지만 벤이는 어렸을 때부터 그 말의 속뜻은 '진짜 남자'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잠자코 그 옆에 서 있곤 했다.

 

'벤이는 더 이상 그들과 같은 편이 아니라는 걸 알기에 오늘 팀 훈련에 참석하지 않는다. 그는 그들과 같은 편이 아니면 무엇이 되어야 하는지 알지 못한다 그리고 다른 무엇이 되길 바라는지도 알지 못한다.

 

이번 편에서는 벤이의 비밀이 드러난다. 순간의 질투심과 민망함이  누군가의 비밀을 순간적으로 발설하고 퍼진다. 퍼지는 소문은 발이 없다.. 날개가 없다. 가만 어디든 내려앉고  누구에게든 스며든다. 벤이의 성적취향이 문제겠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누군가에게는 우리편이었던 벤이가 우리를 속였다는 것이 더 큰 배신이다. 나랑 다르지 않다고 믿었는데 나랑 달랐다. 이제 그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 그것이 혼란스럽다.

어쩌면 타인 내가 모르는 사람이 두렵고 미운 것은  그를 모른다는 것뿐이다.

모르니까 어떻게 내가 대처해야할지 모르니까 그냥 괴물로 만들거나 쓰레기로 만든다.

 

"인생은 우라지게 희한한 것이다 우리는 모든 시간을 쏟아부어가며 인생의 여려가지 측면을 관리하려고 하지만 통제할 수 없는 영역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인생의 대부분을 규정한다. 우리는 이해를 절대 잊지 못할 것이다. 가장 좋았던 기억도 가장 나빴던 기억도 이해는 언제까지고 우리에게 영향을 끼칠것이다.

 

 

어쩌면 전편 "베어타운"에서 문제를 드러냈던 인물들이 여기서 조금씩 마무리가 되고 자기 자리를 잡아간다. 뭐 극적인 해피앤딩도 있고 뭔가 희망적인 마무리지만 그 마무리에 닿기까지 많은 실패가 있고 좌절이 있고 부재의 자리들이 생겼다.

삶이란 그렇다.

이렇게 하나의 고비가 마무리 되나 싶으면 또 다른 모퉁에에서 다 끝났다 싶은 마무리가 다시 헤집어지면서 다른 문제와 연결되고 꼬여있다. 그리고 아무것도 해결된 것이 없다.

그러나 그냥 지금 이 순간 문제에 집중해서 하나씩 해결하는 수 밖에

삶은 어쩌면 크게 목적을 정하고 멀리 바라보고 계획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서 내앞에 놓은 숙제를 해치워나가야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두꺼운 책을 다 읽어 홀가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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