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스트 러브
시마모토 리오 지음, 김난주 옮김 / 해냄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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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미모의 아나운서 지망생 칸나가 자신의 아버지를 살해한 혐의로 경찰에 체포되는 충격적 사건이 언론에 보도되고, 1인칭 화자이자 임상 심리 전문가인 유키가 출판사로부터 사건의 논픽션 집필을 의뢰받는 이야기로 시작된다. 주인공은 피의자의 국선 변호인으로 시동생이자 오래전 친구 사이였던 가쇼가 선임됐음을 알게 되고, 사건의 전말을 파헤치기 위해 그와 함께 칸나의 과거를 추적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피의자 칸나는 시종일관 모호한 진술을 하며 사건의 전모를 미궁으로 빠뜨린다.

 

 

제목이 왜 퍼스트 러브였을까?

첫사랑이라는 말 그 말이 주는 낭만적인 정서는 내용에서 전혀 찾을 수 없다.

물론 칸나가 첫사랑이라고 믿었던 아니 믿고 싶고 믿어야 했던 사람이 있긴 하지만 그것 역시 상호 다른 것을 보고 다르게 기억하고다르게 그 때를 판단하고 있다.

첫 사랑은 어쩌면 내가 태어가 가장 먼저 사랑해주는 존재를 의미하는 거 같다.

태어나서 내가 아무것도 혼자 할 수 없고 누군가의 선한 의도로 주는 무조건적인 사랑과 도움 그래서 나 역시 전적으로 나를 맡기고 의지하고 기댈 수 있는 존재

그것이 퍼스트 러브. 첫사랑이다.

그건 부모일 경우가 가장 많지만 꼭 부모만은 아니다.

첫 양육자일 것이고 나를 무조건 지지하고 믿어주고 내 불편함을 덜어주는 사람 그렇게 시작된 신뢰로운 관계는 좋은 애착을 형성하고 이후 다른 타인과의 관계에서 기본이 된다.

누군가를 믿어보고 나를 빋어준 경험은 다른 이들에게 확장이 된다.

그 신뢰는 낯선 타인을 만날 때 든든한 자원이 되고 나를 존중하는 힘이 된다.

무엇 보다 중요한 건 내가 나를 사랑하고 존중하고 지지하는 자원이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고지식하고 편협한 사람은 아이의 모든 문제는 부모에서 시작된다고 하고 특히 주 양육자인 엄마가 아이의 행동에 성겨기나 인성에 모든 책임이 있다고 믿고 몰아 붙이기도 한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주인공 칸나는 어릴 적 가정에서 정서적 성적인 학대를 받았다.

원하지 않은 모델을 서는 일부터 그로 인해 느껴지는 불쾌감을 누구에게 말할 수도 없고 부모에게 사랑받기 위해서는 그들의 말을 잘 들어야 하고 거부하지 않아야 한다는 도식을 갖는다.

그렇게 형성된 정서와 감정은 이후 타인을 만날 때 기준이 된다.

사랑받기 위해 싫어하는 기색을 보이면 안된다. 거부해서는 안된다 좋은 척 해야한다. 그러나 그렇게 다 맞춰주면  쉽다고 하고 해프다고 하고 질린다고 하고 모두가 떠난다.

몸에 남긴 자해의 흔적만 자기를 지키는 힘이 되어주고 위험하고 불쾌한 일을 막아준다.

동시에 그 자해의 흔적이 인정받는 도구로 쓰이기도 한다.

그리고 그렇게 길들여지고 타인과의 관계를 배워온 칸나는 어디에도 기댈 데가 없다.

자기 마음을 자기 기분을 들여다 본 적이 없고 자기 기분을 자기 말로 표현한 적이 없다.

그래서 어딘가 불안하고 알 수 없고 신뢰할 수 없는 인물처럼 보인다.

 

어쩌면 정말 헤프고 쉽고 불안정한 여자가 아니었을까?

그냥 그런 저런 이유로 아버지를 죽어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우리가 속고 있는 건 아닐까?

 

가정폭력은 물론 성폭력의 경우 가해자가 근친인 경우는 일이 참 복잡하다.

이건 사소한 가정내 문제라고 해야하는지 아니면 범죄라고 해야하는 것인지

집안일이라고 사소하게 여기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피해자가 어리고 약할 수록 가해자에게 더 많이 감정이입하고 동조하는 경우가 많다.

그럴 사람이 아니라는 말이 빈번하고  아이가 이상하다거나

그런 일이 있었는데 가해자를 (아버지 혹은 어른)을 따른다거나 아버지에게 하는 행동을 그대로 하는 분열된 상황을 의심한다.

도움을 청하기도 어렵고 도움을 주기도 난감하다. 모른 척 하는게 가장 좋은데 차라리 몰랐던 게 더 나았을 텐데....

그리고 가족이 얽힌 문제는  가해자와 피해자만 있을 수 없다. 옆에서 지켜보았거나 모른 척 했을 다른 가족도 있다. 피해자이며 동시에 가해자이거나 방관자인 사람들

그들을 미워해야할지 동정해야할지도 몹시 헷갈린다.

이편에서 보면 당연한 방관자이고 공범자지만 저 편에서는 그 역시 피해자이기도 한 경우가 허다하다. 칸나의 경우처럼 그녀의 엄마는 피해자이며 동시에 가해자였다. 딸의 자해 흔적을 철저하게 모른 척하고 징그럽다며 부정하지만 그 역시 그 흔저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더라는 마지막 장면이 참 서글프다.

 

마지막 법정장면에서 칸나는 평소와 다르게 자기의 언어로 자기의 감정을 표현한다.

또박또박.. 그동안 아나운서 준비를 하던 훈련때문일까 아니면 자기를 믿어주고 이야기를 들어주던 사람들이 있어서 용기를 냈기 때문일지.. 법정 구형을 받긴 했지만 당연하게 받아들일 줄도 알게 되었다.

그냥 무심하게 일본추리물이겠거니 하고 편안하게 읽었던 소설에서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다만 개인적으로 좀더 칸나의 문제에 집중하면 좋았을 텐데 이야기를 풍성하게 하기 위해 유키나 안노의 일도 함께 버무렸던 것이 조금 산만하기도 하고 오히려 칸나의 문제가 흐릿해지는 기분이다.

 

첫 단추를 잘못 꿰면 나머지 단추들도 제자리를 찾기 힘들다.

단추쯤은 다시 다 풀어서 제대로 꿰면 되지만

인간의 삶에서 잘못 꿰어진 단추는 어떻게 해야할까

심지어 잘 못 꿰어진 것을 모르게 계속 다음 단추들의 자리를 찾느라 헛된 애를 쓰거나 단추탓을 하거나 옷에 문제가 있다고 엉뚱한 데서 원인을 찾고 탓을 할 수도 있다.

인간의 시간을 되돌릴 수 없고 그때 그때 받아야 할 애정과 성장의 과정을 거치지 않는다면 다음 단계에서 더 많은 노력이 더 많은 관심과 집중이 필요하다.

되돌릴 수 없어 점점 다음 단게에서 과중될 뿐이라 점점 삶이 무거워질 뿐이다.

첫 사랑... 처음 받은 신뢰와 믿음

그것은 사람의 삶에 참 큰 힘이다. 나를 사랑하고 인정하는 바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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