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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시작이다
오사다 히로시 지음, 박성민 옮김 / 시와서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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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뭐지...

이 사람 뭐지...

뭔데 이렇게 좋지...


순전히 내가 간직하고 싶어서

잊어서는 안 될 것 같아 옮겨 적는다.


꽤 오랜만에 이런 느낌.


뭔가 굉장히 말하고 싶었는데 그걸 표현해 낼 말을 갖지 못해 난감하던 차에,

바로 그 말을 가진 사람을 만나 그 말을 적확하게 듣게 되어 

온 몸의 근육이 풀어지는데 딱 적당한 온도의 바람 한 가닥이 

등줄기를 지나가는 듯한 ...






자신의 안에서, 오래오래 이어지는 또 다른 하나인 무언가를 찾는다. 인간이란 그렇게 단 하나가 아닌, 또 다른 하나를 늘 필요로 하는 존재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 P18

음악이라는 표현을 유지해 온 것은 일상에 없는 소리인 것입니다.

...일상에 없는 것으로 무언가를 만들어 낸다는 것이 인간의 문화를 만들어 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 P23

서점이나 도서관의 책장에서 보이는 것은 대부분 책의 등입니다 - P32

독서란 ‘나‘를 찾고 있는 책을 만난다는 경험입니다. - P36

말을 풍요롭게 한다는 것은 나 자신의 말을 제대로 가질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내 것이 아닌 말에, 유행하는 말이나 남에게서 빌린 말에, 절대로 나를 맡기지 않습니다. - P82

왜냐하면 나를 표현하는 말에 아무런 불편함을 느끼지 않기 때문에, 어떤 말이 나에게 필요한 것인지, 이제는 아무도 생각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 P83

가난해진다는 것은 빈곤한 말밖에 갖지 못한 인간이 되어 버린다는 것입니다. 말이 가난한 사람은 가난합니다....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우리의 머릿속을, 스스로 믿지도 않는 잡동사니 같은 말들로 가득 채워 버릴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 P84

의미라는 것은, 말에 의해서 나타나는 마음의 방향입니다. 그리고 말이라는 것은, 내가 쓰는 말이 어떠한 나를 나타내고 있는가, 입니다. - P89

책을 잘 읽는다는 것은 읽어서 좋았다고, 스스로 자신에게 말할 수 있는 경험을 하는 것입니다. - P116

각자의 경험은 고립되어 있고, 하나하나가 개별적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은 자신이 하지 않은 것, 자신이 모르는 경험에 대해 자신의 마음을 열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 각자의 경험을 서로의 공통의 기억으로 바꾸어갑니다. 또한 저마다 각자의 경험을 통해 서로의 공통의 장소를 만들어 갑니다. - P138

어린이책이란 어린이책을 통해서 바라보는 세상은 이렇게 보인다는 기억을 남겨주는 책입니다. - P141

중요한 것은 ‘함께‘가 아닙니다. ‘공통‘이라는 것은 ‘함께‘라는 것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함께‘라는 기억이 아니라, ‘공통‘이라는 기억을 가지는 것입니다...공통의 소중한 기억이란 그곳에 각자의 기억이 모일 수 있는 곳입니다...존재를 한없이 얇게 깎아 버리는 것이 정보라고 한다면, 존재를 가능한 한 두텁게 만드는 것은 기억입니다. - P143

말을 사용한다는 것은 타자와의 관계를 스스로 적극적으로 인정한다는 것입니다. 말을 내 것으로 만든다는 것은 말이 만들어 내는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자신의 위치를 확인한다는 것입니다. - P150

우리가 정체를 알 수 없는 것을 꺼리는 이유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것은 대개 데이터가 없기 때문에 경쟁에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 P162

경쟁력이란 물리치는 힘을 말하지만, 우리가 찾아야 하는 것은 물리치는 말이 아니라, 끌어안는 말, 다가가는 말입니다. - P163

모호함을 잘라 버리는 것이 아니라, 모호함 그 자체를 환히 드러내는 곳에 우리가 찾는 말의 방향이 있습니다. - P163

감수력이란 수용하는 힘입니다. 타의 존재에 의해 나 자신이 살아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 P163

경험은 말로 바뀌고 나서야 비로소 말을 가진 경험이 되는 것입니다...심지어 경험하지 않은 것까지도, 나만의 말로 만들어 낼 수 있다면 내 안에 남게 됩니다. 거꾸로 말하면, 말이 되지 못하는 경험은 내 안에 남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 P164

올바른 질문을 받아들이지 않은 채, 올바른 답을 찾으려 하기 때문에 우리는 실수를 합니다. - P164

말이란 그 말로 전하고 싶은 것을 전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말을 써서, 그 말로는 전할 수 없었던 것, 말로는 표현할 수 없었던 것, 아무리 애를 써도 남게 되는 것, 그런 것을 동시에 그 말을 통해 전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 P189

보통 말은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고, 말은 오히려 아무리 해도 표현할 수 없는 무언가를 전달하는 커뮤니케이션의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 P1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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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4-03-16 15: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뽑아 주신 문구 하나하나가 참 좋네요. 명언 같습니다.^^

젤소민아 2024-03-16 22:57   좋아요 1 | URL
그렇죠 페크님? 표지도 밋밋...하달까...제목도 평이하달까...별 기대않고 펼쳐들어서 더 그럴까요. 메모하고 문장마킹하다가 포기했어요. 그냥 모든 문장과 콘텍스트가 감당못할 의미들을 품고 팡팡 터지는 느낌요. 이 책, 너무 좋네요.

책은 시작이다.

제목만 믿지 마세요 ㅎㅎ
책은 시작인데,
우리가 책을 통해 ‘공통의 기억‘을 갖기 위한 시작이다...란 뜻 같아요.

함께 vs 공통

저는 입때껏 ‘함께‘란 단어를 디스(?)한 콘텍스트는 처음이라...

함께,보다는 공통이더라고요.

이 책에 그런 설명은 따로 붙지 않았지만, 생각해 보니..
‘‘함께‘는 다른 기억을 가진 이들이 병립하는 것이라면,
‘공통‘은 다른 기억을 가진 이들이 손잡고 기억을 공유하는 것이라..

함께,마저 품어버릴 수 있다는 것을요.

좋아요, 좋아. ㅎㅎ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레삭매냐 2024-03-19 20: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을 읽으면서 적어 주신
그런 감정을 느끼게 된다면
정말 -

젤소민아 2024-03-20 02:35   좋아요 2 | URL
레삭매냐님의 주옥같은 리뷰 읽으면서 많이 배웁니다~왕림해 주셔서 감사해요~책 읽으며 ‘그런 감정‘ 느낄 수 있는 기회가 또 흔치 않잖아요. 좋은 책이더라도 말이죠. 물론 개인마다 그 느낌의 근거와 계기는 다를 거고요. 레삭매냐님과 그 느낌을 공유하고 싶네요~

시와서 2024-04-02 09: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연히 올려주신 글을 보고 댓글을 안 달 수가 없어 인사드려요. 첫 부분 몇 줄의 감상이 너무 좋네요. 제가 느낀 것들을 젤소미나님이 딱 써주신 것 같아요.^^ 오사다 히로시는 제가 정말 좋아하는 작가라 꼭 국내에 소개하고 싶었는데 이렇게 공감해주시는 분이 계셔서 책 만든 보람이 큽니다. 정말 감사드려요!^^

젤소민아 2024-04-02 10:01   좋아요 0 | URL
시와서 출판사 에디터님, 혹은 대표님이신가 봐요~. ‘책은 시작이다‘ 읽고 좋아서 오사다 히로시의 시집을 죄 구입했는데 모두 시와서에서 만드신 거네요! 좋은 작가, 좋은 책 만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도 소설/에세이 쓰는 사람이라 인연을 맺고 싶긴 한데 일본 작가의 책만 다루시는 듯하여~~한발 물러섭니다. ㅎㅎ

번창하시길요! 좋은 책 내는 출판사는 번창해야 합니다~.

시와서 2024-04-02 20: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집까지 읽어주시다니.. 너무 감사합니다!^^ 작가님이셨군요! 한발 물러서다니요. 당치 않습니다. 전 일본문학을 번역해서 내는 거고 언제든 우리 작가님들의 책도 낼 계획입니다. 언젠가 인연이 생기기를요~^^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2024-04-02 21: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4-04-03 15: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4-04-04 00: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4-04-04 00: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믿을 수 없게 시끄럽고 참을 수 없게 억지스러운 - 콜센터 상담 노동 이야기
콜센터상담원 지음 / 코난북스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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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이름이 없다. 콜센터상담원,이 필명이다. 상담원은 알바고 본업은 에세이스트 아니면 소설가이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요즘 유독 많은 알맹이 없는 에세이나 소설보다 백배 재미있고 의미있다. 게다가 ‘현실‘이다. 콜센터란, 분노와 인내의 교착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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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책을 읽다 - 미술책 만드는 사람이 읽고 권하는 책 56
정민영 지음 / 아트북스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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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하는 미술서를 다 사고 싶을 정도로 문장도, 내용도 좋다. 그러나 소개하는 책을 태반은 살 수 없었다. 모두 절판이거나 품절. 경험상, ‘절판‘ 표시를 ‘어떻게든 구해서 읽을 책‘으로 이해했던 게 역시 옳았다. ‘어떻게든 구할‘ 투혼을 발휘, 절반은 건졌다. 절판책 사냥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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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 상실, 사랑 그리고 숨어 있는 삶의 질서에 관한 이야기
룰루 밀러 지음, 정지인 옮김 / 곰출판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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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어 있는 보잘 것 없는 것들

(28p)

일기인가

기록인가

평전인가

에세이인가

논픽션인가

하물며, 소설인가


경계를 넘나드는 '듯' 보이는 이유는 무엇인가


아하.

경계를 넘나든다는 말 자체를 거부하는 책이구나


경계,를 '포기'하는 책이구나


그 따위 것은 기쁘게 포기하는 책이구나

'어류'를 통해


그렇다면 제목이 맞는가?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물고기는 존재하되

어류가 존재하지 않는 것 아닌가


지구, 아니, 우주 모든 존재를 귀히 여기자는 메시지가 아닌가

'민들레 법칙'이란 걸 들어서.


민들레 역시,

밟고 지나다녀도 아깝지 않을 시시한 풀꽃이 아니라 

귀한 존재성을 가진, 

그도 꽃이란 이야기가 아닌가


그러니까 민들레는, 존재한다는 이야기가 아닌가


이책을 읽고 더 단단하게 든 생각은 역설적이게도

물고기는 존재한다, 이다


그리고 그 생각을 더 단단하게 해 준 저자에게 감사한다

다시 한 번, 역설적으로


책의 전반을 관통하는 서사법, 수사법이 참으로 매력적이다


허구는 아니지만 이 책이 소설로 읽히는 이유는

챕터마다 저자가 발군의 솜씨로 발휘한 '궁금증 유발' 끝맺기다.


이책을 '페이지터너'라고 명명하는 사람들은 스스로 눈치채지 못할 수도 있다

뒷이야기가 궁금한 이유가 

사실은 거창하게 커튼을 벗길 만한 이야기가 아닐 수 있지만

(거창하게 커튼 벗길 만한 이야기가 맞기도 하다)

바로 뒤에 걸작이 걸려있다고 적시에 귀띔하는 

저자의 탁월한 글쓰기에 있음을.


이 책의 매력을 앞다투어 손꼽는 사람들은 많다.


그 중 절대다수가 품은 메시지와 말하는 형식,이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란 가설 내지, 전제 내지, 결론 하에

시간의 흐름대로인 듯, 혹은 의식의 흐름대로인 듯

픽션인듯, 논픽션인 듯 풀어가는 형식.


개인적인 느낌으로는

그 모든 것을 품은 '글솜씨'이다.


룰루 밀러는 픽션과 논픽션의 경계를 넘나든다기 보다는

그런 경계가 필요없다.


이쪽과 저쪽을 긋는 경계선이 이 사람에겐 의미가 없다.

원래는 논픽션 통이다. 저널리스트니까.

하지만 그에게 픽션을 쓰라고 자리를 깔아주면 

기가 막힌 작품이 나올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이대로만 쓰면 될테니까.


경계가 필요없는 사람이 경계가 필요하지 않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

참기 힘들 정도로 매력적이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자신이 민들레인 것인데...

자칫, 자기합리화를 위해 이토록 매력적인 이야기를 했느냐는

빈축을 살 지도 모르겠다.


그런 빈축을 제기할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민들레가 민들레의 귀함을 논하지 않으면 누가 해 줄 거냐고.

이 세상이 그리 짝짝꿍이 잘 맞드냐고.


이 책에서 더없이 소설적이라 추앙하고 싶은 문장.

내가 쓰는 소설에서 결국은 못 쓰고 말겠지만,

어찌어찌 쓸 수 있었다면 영예가 되었을 문장.


인간은 "하늘을 바라보며" 직립하는 방식으로 자신들의 우월성을 드러내지만, 물고기는 "물속에서 엎드려"있다.


(44p)



아, 저자에게 이 말은 꼭 하고 싶다.


숨어 있는 보잘것없는 것들을 눈여겨봐 주어서 고맙다고.

어쩌면 뒤로 물러나져 있는 보잘것없는 것들,일테지만.


(번역은 또, 왜 이렇게 잘한 건지. 얼핏, 봉준호의 샤론최가 떠올랐다.)


*이책 읽다가 떠오른 무작위의 책들



우리는 더 이상 동질성의 세계에 살지 않는다. 동질 사회는 지난 20~30년 동안 천천히 사라졌다. 더딘 발전이었고, 또한 모든 영역에서였다.
동질 세계는 모든 물질적 영역에서 사라졌다. 물론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다. 그러나 거대한 변화가 있었다. 물론 열차 시간표는 여전히 존재한다. 그렇지만 다른 시간표를 보자. 「차이트 임 빌트」(Zeit im Bild, 오스트리아공영 방송의 저녁 뉴스 프로그램으로 1955년부터 방영되었다.)나 「타게스샤우」(Tagesschau, 독일에서 가장 오래 방영된 공영 방송의 뉴스 프로그램)를 보기 위해 전 민족이 오후 7시 30분이나 8시에 텔레비전 앞으로 모여 앉는다고 상상해 보라. 그랬던 적이 없는 젊은 사람들에게만 이상한 것이 아니라, 실제로 경험했고 그렇게 자란 사람들에게도 이런 일은 더 이상 상상할 수 없게 되었다. 다시 보기 서비스, 케이블 방송, 유튜브 사이에서 우리 사회는 더 이상 하나의 시간표로 규정되지 않는다.


-<나와 타자들> 중에서


혼돈이 그 사람을 집어삼킬 것이다 - P15

인간이 살아가는 방법은 매번 숨 쉴 떄마다 자신의 무의미성을 받아들이는 것이며, 거기서 자기만의 의미를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말이다. - P125

혼돈은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이라는 가정의 문제가 아니라, ‘언제 일어나는가‘하는 시기의 문제다. - P15

자기가 하는 일이 효과가 있을 거라는 확신이 전혀 없을 때에도 자신을 던지며 계속 나아가는 것은, 바보의 표지가 아니라 승리자의 표지가 아닐까 생각했다. - P19

이미 지도가 존재하는 땅들의 지도를 만든다고 시간을 허비하는 일은 그들에게는 경거망동이자 하루의 쓸모에 대한 모욕으로 보였을 것이다. - P25

미적 관심과 구별되는 과학적 관심을 보여주는 특별한 증거는 숨어 있는 보잘것 없는 것들에게 마음을 쓰는 일이다. 숨어 있는 보잘것 없는 것들. - P28

사람들이 이렇게 자신의 무력함을 느낄 때는 강박적인 수집이 기분을 끌어올리는 데 도움이 된다 - P31

아가시는 자연 속에 신의 계획이 숨겨져 있다고, 신의 피조물들을 모아 위계에 따라 잘 배열하면 거기서 도덕적 가르침이 나오리라고 믿었다 - P44

인간은 "하늘을 바라보며" 직립하는 방식으로 자신들의 우월성을 드러내지만, 물고기는 "물속에서 엎드려"있다. - P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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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는 기분
박연준 지음 / 현암사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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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도 과장도 아니다.

나는 내 평생 

가장 감동적으로 

장 짧은 문장을 이 책에서 만났다.


연필은 시인의 목발

부러져도 살아나는,



이책 34p) 

출처는=박연준, [예술은 낳자마자 걸을 수 있는 망아지처럼 태어나는 것 같다], <밤, 비, 뱀>, 현대문학


문장으로서 해 낼 일은 채우는 것이요,

메타포로서 해 낼 일은 떠올리는 것일 테다.


고작

연필, 정도에

울음이 터질 것 같았다.


나는 채워졌고,

떠올렸다.


한 시절, 길거리에 쪼그려 종이를 팔았던 탓에 

평생을 남몰래 절뚝여야했던 아비만  떠올렸던 건 아니다.


이제 그 아비가 팔던 종이에 글쓰며 살아가지만, 

어쩔 수 없이 아비처럼 절뚝이는 나도 떠올렸다.


이제 목발 없이는 한 걸음도 움직이지 못하는 아비의 침상 곁에서

이 자식은, 부러져도 살아나는 연필을 놀린다.


내 평생 가장 감동적인 문장을 만났으니

난 한동안은 절뚝이지 않을 수 있을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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