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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풍경에서 관능적인 매혹을 느꼈다. 지금도 내 소설 속의 풍경 묘사는 다른 작가 소설 속의 러브신과 동등한 무게를 가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소설가의 휴가> 중에서



미시마 유키오 문장의 즐거움 중 하나는 아름다운 자연 풍경의 묘사입니다.
소세키의 풍경 묘사도 사랑하지만 그 느낌이 많이 다른 것 같아요. 은은히 눈앞에서 흐르듯 펼쳐지는 소세키의 문장과 달리, 미시마의 풍경은 단번에 휘몰아치듯 사로잡으며 정신을 못 차리게 하는 것 같은...
<시를 쓰는 소년>에도 미시마의 풍경 묘사를 즐길 수 있는 문장들이 많습니다. 미시마의 말대로 그야말로 “관능적인 매혹”을 느끼게 하는 풍경들이 펼쳐집니다.


아득히 먼 아래쪽 바위 뿌리에 부딪히는 파도 소리는 그 멀고도 아름다운 풍경으로부터 추상되어 완전히 별개의 음악이 되고, 희미하게 울리는 먼 천둥소리처럼 하늘 한구석에서 들려왔기 때문에, 현기증이 날 듯한 절벽 아래서 하얀 부채를 접었다 펼쳤다 하는 파도의 모습과, 바위에 튀어 흩어지는 물보라와, 순간 바위 위에서 강렬히 반짝이는 물방울, 그 모든 것이 소리 없는, 섬뜩할 만큼 고요한 풍경으로 보이는 것이었다.
...


영겁의 미사를 끊임없이 노래하는 파도 소리는 바다에서 먼 산기슭 별장의 베개마저 밤마다 흔들었고, 꿈속에서는 어느새 소리도 없이 흘러온 바다가 툇마루 끝까지 밀려와, 물에 잠긴 뜰의 채송화 위로 작고 붉은 도미 떼가 지나가는 모습 따위가 그려졌다.

-<곶 이야기>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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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 중인 <소설가의 휴가> 출간이 좀 늦어질 것 같습니다.

해를 넘기고 다음 달에 나오게 될 것 같아요.


미시마 유키오의 에세이 <소설가의 휴가>에는 미시마의 삶과 문학, 예술에 대한 생각이 담긴 글들이 듬뿍 실립니다. 소설가 미시마가 아닌 평론가 미시마의 모습을 보실 수 있을 거예요.
평론가 고바야시 노부히코는 “미시마 유키오를 소설의 천재라고 한다면, 비평, 평론에서는 초천재입니다. 읽고 있으면 잠이 싹 달아나고 머리가 맑아질 정도로 재미있어요.”라고 말했어요.

지금은 <나의 편력 시대>라는 에세이를 교정 중입니다. 신선한 관점, 파격적이고 아슬아슬하고, 웃기면서 애처롭기도 한... 소설에서 느끼지 못한 미시마 유키오를 기대해 주세요.


문학에서는 육체가 노후한 후에야 예술의 청춘이 시작된다는 축복이 있다. 20대의 나는 아무리 해도 청년을 그릴 수 없었지만, 30대 후반이 가까워진 나는 이제 슬슬 청년을 그릴 수 있는 나이에 접어들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언젠가 나카무라 미쓰오 씨가 이렇게 말했다.
“서른이 됐을 때 나는 이제 젊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마흔이 되면 나는 아직 젊다고 생각하게 되지.”

- <나의 편력 시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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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세상의 동서도 분간하지 못하던 때부터 소설을 쓰기 시작했기 때문에, Y 군처럼 젊은이가 소설을 쓰는 것에 반대하지 않는다.
내 작품을 뒤돌아보며, 표현에서도, 인간의 의식에서도, 인생의 사고방식에서도, 지금이라면 이렇게는 쓰지 않을 텐데, 하고 생각하는 곳을 종종 발견한다. 하지만 그것이 명백한 오류라 할지라도 괜찮다. 소설가는 소설을 씀으로써 현실을 발견해가는 수밖에 도리가 없다.
...


미시마 유키오 <소설가의 휴가> 중에서



요즘은 미시마 유키오의 에세이 <소설가의 휴가> 작업에 한창입니다.

1월 말쯤 출간 예정인데 연말이라 조금씩 일정이 늦어지네요...ㅜㅜ


<시를 쓰는 소년>에는 미시마의 자전적인 내용을 담은 단편이 몇몇 실려 있습니다.

미시마 유키오의 작품을 좀 더 깊이 있게 들여다볼 수 있도록 제가 좋아하는 자전적 단편을 실었는데요, 에세이에서는 좀 더 미시마 유키오의 삶과 문학, 예술에 대한 이야기가 깊고 넓게 펼쳐질 거예요. 

열심히 작업해서 소개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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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하이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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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쓰는 소년>의 표지 이미지를 고를 때 계속 생각한 미시마의 말이 있습니다.

그래도 이거다 하고 제 마음속의 이미지와 딱 맞아떨어지지는 않았지만 이 이미지의 느낌이 좋았습니다. 


미시마의 이 말은 같은 유미주의 문학이라도 가와바타 야스나리나 다니자키 준이치로와는 확실히 구별되는 점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문학에서뿐만 아니라 일본 예술 전체에도 해당되는 것 같기도 하고요. 야스나리의 문장과는 또다른 의미에서 제가 미시마의 문장을 사랑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예전에 미시마 씨의 문장은 무척 가냘프지 않았냐는 어느 여학생의 질문에 미시마가 대답한 것 중의 한 부분이에요.

제가 가냘팠다고 하는 설이 있습니다만, 나는 문학에서는 지금도 가냘픈 파입니다. 이것은 제발 오해하지 않기를 부탁드립니다. 저는 문학은 지금 질문하신 여성보다 훨씬 더 가냘프고, 아무리 우아한 여성보다도 훨씬 더 우아하고 가냘픈 것이라고, 아무튼 손바닥에 살짝 놓아두어도 금방 부서지고 말 것처럼 우아하다고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그러나 내가 문무 양도(文武兩道)라고 말씀드린 의미는, 그런 우아한 문학이 한편에 있고 다른 한편에는 무사도가 있다는 것이 일본 문화의 가장 본질적인 형태라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일본에서는, 지금의 우아한 문학에서 봤을 때, 제가 가냘픈 문학을 하고 있지 않다면 점점 중간 소설의 조악하고 까칠까칠한 문학이 되고 말 뿐입니다. ...


미시마가 문무양도의 문장을 찾아온 길은 지금 작업하는 에세이에서도 종종 나오는데, 미시마의 에세이도 기대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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