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도쿄 여행 때 노(能) 공연을 보았습니다. 오래전부터 별렀는데 이번에 보게 되었어요. 노 공연을 처음 본 건 이십 대 중반 무렵이었는데 뭔지도 모르고 따라가서 이게 뭐야... 하면서도 묘한 인상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일본문학을 읽고 번역하면서 이 ‘노’라는 것이 가진 매력에 점점 끌리게 됐어요.

서양문학을 깊이 이해하는데 그리스로마신화나 성경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처럼 저는 일본문학의 곳곳에 이 ‘노’나 ‘가부키’ 같은 전통 예술의 흔적을 발견할 때가 있는데, 거기서 일본문학이 가진 독특한 미의식 같은 걸 느끼게 합니다.



이곳 국립노가쿠당은 도쿄 센다가야역 근처에 있는 노 전용 극장입니다. ‘노가쿠’라는 것은 ‘노’와 ‘교겐’을 합친 말이에요. 이번 공연작은 <유야>라는 유명한 작품인데 이 작품은 미시마 유키오가 각색해서 희곡으로 만들기도 했습니다. 마침 그 원작의 노 공연이기도 했고, 예전에 보고 느끼지 못한 것들을 하나하나 자세히 찬찬히 보고 싶기도 했습니다.


다행히 정면 중간 자리를 잡을 수 있어서 배우의 표정이나 움직임을 잘 볼 수 있었어요.


의자에 붙은 자막은 아주 좋았습니다. 글자도 큼직하고 영어, 일본어 다 나오고.


식사 시간을 놓쳐 극장 안에 있는 식당에서 간단히 먹었어요. 일본어를 모르는 S가 영어 안내서를 요청하니 인쇄해서 식당까지 가져와주는 친절에 감사감사 인사를 하고... 음식은 평범하게 맛있는 맛.. 배가 고파 싹싹 비웠습니다.







노의 무대는 양식이 정해져 있습니다. 무대는 편백나무로 지어지는데, 정면 무대 뒤에는 세 그루의 소나무 그림이 있고 왼쪽에는 긴 복도 같은 길이 있어요. 영화 <국보>의 가부키 무대에서 배우가 등장하는 길처럼, 이 복도(하시가카리)를 통해 배우가 등장합니다.


기다리는 동안 극장 안 구경...





노의 세계는 신비롭고 아름답습니다. 왼쪽 복도 끝의 막 뒤는 영혼의 세계입니다. 죽은 자는 이 막을 넘어 복도를 걸어 본 무대인 현세로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이 죽은 자가 노의 주인공이고 반드시 가면을 쓰고 등장합니다. 그리고 우연히 여행을 떠나온 이승의 사람과 우연히 마주치면서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산 자는 아무 것도 할 필요 없이 그저 죽은 자의 이야기를 들어줍니다. 죽은 자는 그저 자신의 이야기를 다 하고 떠납니다.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지만 그렇게 해서 이 죽은 자의 진혼이 이루어집니다.


제가 노에 관심이 깊어진 계기는 소세키의 <풀베개>를 작업하면서부터였어요. <풀베개>는 그야말로 노의 무대를 그대로 가져와 소설로 만든 거예요. 노에 조예가 깊었던 소세키는 <풀베개> 속 곳곳에 노의 표현 방법이나 진혼의 방식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런 배경을 생각하며 풀베개의 ‘나미’라는 여성이 하는 행동과 말, 죽은 여성들의 이야기를 보면 소세키가 말하려는 것이 조금씩 다가옵니다. 그리고 이번 단편집 <봄은 마차를 타고>에 실리는 <열흘 밤의 꿈>도 노의 형식을 그대로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노는 아무것도 모르고 보면 이게 뭐지 싶은데 보면 볼수록 끌립니다. 서민 예술인 가부키와는 달리 귀족들이 즐긴 예술다운 면면을 느낄 수 있고 알면 알수록 매력이 있어요. 이번에 가부키 무대도 보고 싶었지만 일정이 도저히 무리여서 다음으로 미루었습니다.
미시마 유키오는 일본의 전통 예술을 엄청 사랑하고 조예도 깊었습니다. 각색이 아니라 직접 창작한 가부키 작품이 있을 정도에 직접 배우로 가부키 무대에 오르기도 했어요.
앞으로 준비할 미시마의 노 각색 희곡집은 제가 읽고 그 자리에서 계약하겠다고 메일을 보냈을 만큼 좋았습니다. 이건 꼭 내가 하고 싶다... 생각했어요. 그저 그저 “아름답다...”라는 생각이었습니다.
사실 이 작품은 계약까지 여러 우여곡절이 있었는데 그래서 더 준비를 잘 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미시마의 이 희곡은 소세키의 <풀베개>처럼 노를 전혀 알지 못해도 아무 지장이 없지만 작품의 배경이 되는 원전을 번역서에 간단히나마 소개해드릴까 생각 중입니다.
미시마의 노 희곡 연극 공연은 꽤 자주 있는 편인데 다음번에 기회가 되면 미시마의 희곡으로 상연하는 연극을 꼭 보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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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은 마차를 타고>의 펀딩이 오늘로 끝이 납니다.

펀딩해주신 독자님들께 드릴 엽서가 도착해서 포장하고 있어요.

다음 주에 인쇄 들어가니 곧 보내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봄이 빨리 안 가게 붙잡고 싶네요...😆

펀딩해주시고 기다려주셔서 너무너무 감사드리고 이 책과 함께 아름다운 봄날을 만끽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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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도쿄 여행 때 책 쇼핑을 많이 못 했습니다. 진보초에 가고 싶었지만 시간이 나지 않았고 숙박한 기치죠지에도 아기자기한 서점이 좀 있으니 동네 책방을 돌아다닐 생각이었어요. 여행할 때 책방은 꼭 들르지만 일단 들어가면 나오기가 어려울 만큼 정신이 팔려서 요즘은 꼭 가고 싶은 곳만 들어가려고 해요. 지금은 한국에서 구하기도 쉬워서 온라인으로 구하기 힘든 책을 보려고 헌책방에 갑니다.

이번에 대여섯 곳을 돌아봤는데 작은 동네서점은 아기자기한 맛은 있지만 아무래도 관심 가는 책이 많지는 않아서 좀 아쉬웠는데, 숙소 바로 근처에 검색하지 않고 우연히 들어간 곳이 정말 맘에 들었습니다. 예쁘게 꾸민 책방이 아니라 그냥 책들을 엄청 쌓아놓은 헌책방인데 이런 곳을 워낙 좋아해서 시간도 없는데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고 구경했어요. 보니까 안으로 쭉 들어가 꽤 넓은 공간이었는데 앞쪽만 구경했어요.
S는 독일어로 번역된 프루스트의 작품집을 샀습니다. 벽돌책에 완전 새 책인데 너무 싸다며 호들갑을 떠네요.



저는 1978년에 나온 호리 다쓰오 작품집을 샀습니다. 일단 장정이 맘에 들고 커버도 있고 완전 새 책 같아서 더 좋았습니다.
그리고 미시마 유키오 관련 흥미로운 책도 샀습니다. <그녀들의 미시마 유키오>라는 책인데 미시마와 그의 작품을 둘러싸고 작가, 배우 등의 회고록, 인터뷰, 산문 등을 엮은 책인데 내용도 흥미롭지만 희귀한 사진이 많아 넘 맘에 듭니다.




아래 사진은 여배우 아오이 유우의 사진입니다. 이 책을 읽고 알았는데 예전에 아오이 유우가 미시마의 희곡 <사드 후작 부인>의 주인공 르네역을 맡은 적이 있어 그때의 사진과 인터뷰가 실렸네요.



사실 시와서가 미시마 유키오의 희곡 대표작 몇 편을 낼 예정이라 이 글을 보고 참 반가웠습니다. 인터뷰 내용도 흥미로웠는데 나중에 책 준비할 때 소개해드릴게요. 이 작품은 전후 일본문학의 걸작이라고 칭해질 만큼 유명한 작품이어서 소개할 이야기가 정말 많습니다.

이 희곡은 세계적으로, 특히 프랑스에서 연극으로 자주 상연되는데 스웨덴의 명장 잉그마르 베르히만 감독이 연극 연출한 버전이 유명합니다.
사실 올해 1월에 도쿄에서 이 연극이 상연되었는데 정말 보고 싶었어요. 정말 독특하게도 이 희곡의 등장인물 6명이 전부 여자인데 이번 연출에는 6명 전부 남자가 등장했거든요. 의상 같은 건 사진으로도 봤지만 발성을 어떻게 했는지 너무 궁금하더라고요.
미시마의 <문장독본>에서도 그렇고 <소설가의 휴가>를 작업할 때도 희곡에 대한 미시마의 깊은 조예와 정열에 무척 감탄해 그의 희곡 작품이 정말 궁금해서 읽어봤는데 완전히 매료되었습니다... 아주 솔직히 저한텐 소설보다 더 매력적이었어요.
올해는 다른 책 출간이 밀려 있어 좀 있다 차차 소개할게요.



이 사진은 매서운 눈빛의 미시마입니다. 

무슨 사진인가 했는데 <사드 후작 부인> 연극 연습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는 사진이에요. 앞의 배우가 사드 후작 부인의 어머니 역 배우예요. 

원작자가 이렇게 쳐다보고 있으면 잘 될 연기도 안 될 것 같은...


어쨌든 이번엔 책방에 많이 못 가서 책을 세 권밖에 못 사와서 좀 아쉽지만 즐거운 책 쇼핑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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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주쿠의 와세다 대학 근처에 있는 소세키산방 기념관에 들렀습니다. 

소세키 서재를 그대로 복원해놓은 것을 꼭 보고 싶었습니다.
이곳도 다자이 기념관쳐럼 사진 촬영이 안 되는 곳이 많아 좀 아쉬웠지만 서재랑 몇몇 곳은 찍을 수 있었어요.

소세키산방은 소세키가 대학 강사를 그만두고 신문사에 입사해 세상을 뜰 때까지 약 9년 동안 작품 활동을 하던 집입니다. 그러니까 소세키의 대부분의 대표작은 거의 10년 정도의 짧은 시간에 여기서 쓰인 것들입니다.




밖에서 바라본 건물입니다. 입구로 들어가면 바로 등신대의 소세키 사진과 소세키산방의 입구 사진이 커다랗게 걸려 있습니다. 지금은 이 입구는 없고 소세키 서재와 일부를 복원해놓았어요.


서재는 사진으로 자주 봤는데 이번에 직접 봐서 참 좋았습니다. 

시와서의 <나쓰메 소세키 인생의 이야기> 표지 그림도 소세키가 그린 자신의 서재예요.


이 표지 만들 때 근대문학관에 직접 연락해서 사용 허락을 받았는데 그때 열심히 책 만들 때가 생각이 납니다. 그림 속 붉은 테이블이 서재 사진 오른쪽에 보이네요.





<꽃을 묻다>에는 아쿠타가와가 스승의 소세키산방을 추억하며 쓴 수필 2편이 실려 있는데 제가 참 좋아하는 글입니다. 이제는 없는 스승을 그리워하는 제자의 마음이 글에서 하나하나 느껴져서 역시 아쿠타가와의 문장은 좋구나 하고 생각했어요.

서재를 보면서 아쿠타가와의 문장을 떠올려봤습니다. 다섯 마리 학이 그려진 붉은 카펫, 서양 서적으로 가득한 책장, 살풍경한 철제 격자문... (아쿠타가와는 선생이 왜 이런 감옥 같은 느낌의 철제문을 달았는지 모르겠다는 말을 해요).



서재 옆쪽에는 소세키의 인형이 의자에 앉아 있고 툇마루였던 부분을 복원해둔 복도가 나옵니다. 그 툇마루에서 찍은 소세키의 사진도 있어요. 1914년이네요.




이층으로 올라가는 길은 동선을 따라 검은 고양이가 안내해줍니다. 올라가면 벽면 가득 소세키의 문장이 적힌 판들이 걸려 있어요. 거의 대부분 <소세키의 말>에 제가 실은 문장들이라 반가워서 하나하나 읽었습니다. <풀베개>의 유명한 첫 문장이 보여 사진 한 장.



이지로 행동하면 모가 난다. 감정에 이끌리면 휩쓸려간다. 고집을 부리면 갑갑해진다. 어쨌든 인간 세상은 살기 어렵다



기념품이랑 책자를 많이 샀는데 미니 가방이랑 북커버도 샀어요. 일본 문고판을 들고 다닐 때가 많아서 샀는데 천이 탄탄하고 맘에 듭니다. 책을 끼워놓으니 더 예쁘네요.

여기 카페에서 양갱을 먹고 싶었는데 아쉽게도 없어졌나 봐요. 내년에는 다바타에 아쿠타가와 기념관이 지어진다니 기회 되면 가보고 싶습니다.





<꽃을 묻다>에 실린 아쿠타가와의 <소세키산방의 가을>의 한 구절입니다. 서재 사진을 보면서 음미해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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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복판에는 작은 자단 책상이 놓여 있고, 그 책상 맞은편에는 방석이 두 장 겹쳐져 있다. 구리 도장이 한 개, 돌 도장이 두세 개, 펜 접시 대신으로 쓰던 찻잎 스푼, 그 안에 만년필, 그리고 옥으로 만든 문진을 올려놓은 원고지 한 묶음. 책상 위에는 그 밖에 노안경이 놓여 있을 때도 종종 있다. 그 바로 위에는 전등이 환하게 빛을 비추고 있다. 옆에는 도자기 화로 위에 쇠 주전자가 벌레 울음소리처럼 보글보글 끓고 있다.
... 그 책상 맞은편, 두 장을 겹쳐 놓은 방석 위에는, 어딘지 모르게 사자를 연상케 하는, 키 작은 반백의 노인이, 때로는 편지 위에 붓을 놀리기도 하고, 때로는 중국의 시집을 뒤적이면서, 단정히 홀로 앉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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