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득한 절벽 아래로, 신비스러울 만큼 고요한 물기슭이 보였다. 그것을 물기슭이라 부를 수 있을까. 울퉁불퉁한 바위에 부딪혀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와, 푸른 바다가 더한층 짙은 색으로 끓어오르는 절벽 아래쪽이, 저 멀리 펼쳐진 평온하고 희미한 바다 수면보다 더 고요해 보이는 것은, 조금 전에 경험한 것과 똑같이, 소리가 완전히 사라져버렸기 때문이리라. 세밀하고 또렷하게 찍힌 작은 사진처럼, 그 풍경은 너무도 작아서 별세계의 그림처럼 보였다.
- <시를 쓰는 소년> 중 <곶 이야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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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미시마의 문장을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는 묘사 하나하나가, 그것이 사물이든 사람의 감정이든 눈앞에 펼쳐지듯 선명하고 생생하게 그려진다는 것입니다. 무척 아끼는 단편 중 하나인 <곶 이야기>를 번역하면서 마치 제가 소년의 눈이 되어 아득한 바다를 보고 현기증을 일으키기도 하고, 소녀가 백합을 내밀 때는 꽃향기가 페이지 속에서 흘러나오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어요.
번역을 하면서도 이런 감정이 드는 저 자신이 놀랍기도 하고... 어쨌든 문장을 읽으면서 느낄 수 있는 소중한 체험을 많이 했습니다. 문학을 번역하면서 종종 느끼는 감정이지만 이번 작품들에서는 더더욱 많이 느꼈던 것 같아요.
(가끔은 너무 정교하고 논리적이라 담백한 나의 사랑 소세키의 문장이 그리워지기도 해요🤭)
오늘 어느 독자님이 이 책을 읽고 미시마의 표현력에 감탄하시면서 “바다를 묘사하면 그곳의 햇살과 공기마저 스며드는 듯하다”라는 멋진 감상을 써주셔서 저도 미시마의 문장에 대한 생각을 한번 써봤습니다.
언젠가 미시마의 문장에 대한 글을 올리면서, 논리적이고 치밀하고 철저한 문장이고, 생생하고 선명한 묘사가 특징이라고 했어요.
이런 글을 쓰려면 일단 글의 소재와 주제에 대해 머릿속으로만 생각한 것으로는 절대 쓸 수 없다는 겁니다. 에세이 <소설가의 휴가>에서 미시마는 예술가의 명민함은 세 가지로 이루어진다고 했는데, 그중 첫 번째가 “소재(주제)에 대해 구석구석까지 음미하고 잘 아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금각사를 쓸 때는 교토로 날아갔고, 풍요의 바다 시리즈를 쓸 때는 인도로 날아가서 철저히 보고 느끼고 구상하고... 또 그걸 묵혔다가 다시 생각하고... 작가는 그런 과정을 거쳤어요.
문장의 힘이 참 대단한 게 시각적, 청각적 요소 없이 우리의 눈과 귀와 입이 감각할 수 있는 최상의 것을 상상하게 한다는 것 같습니다. 그런 문장을 쓰기가 말처럼 쉽지 않겠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