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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줄의 좋은 문장을 만나서 작품 전체를 사고 싶을 때도 있고, 한 줄의 나쁜 문장을 만나서 작품 전체를 없애버리고 싶을 때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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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한창 작업 중인 미시마 유키오의 에세이 중 한 문장입니다.
저야 작가는 아니니 작품 전체를 버리고 싶은 마음은 없지만 좋은 문장 하나로 작품 전체를 사고 싶다는 말에는 너무나 공감합니다.

작업하면서 어떤 문장을 만나면 말 그대로 가슴이 떨릴 때가 있어요.
<시를 쓰는 소년> 작업할 때도 그런 문장을 많이 만났는데 오늘은 <시가데라 고승의 사랑> 속 저를 설레게 한 문장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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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처럼 하얀 손은 새벽빛 속에 남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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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시마 유키오 단편선의 표제작 <시를 쓰는 소년>은 제게 무척 흥미로운 글입니다.

미시마가 스스로 평하기는 “소년 시절 나와 언어(관념)와의 관계, 제멋대로에다 숙명적으로 내 문학적 출발점이 형성된 과정이 담겨 있다”라고 했습니다.
자신의 직접적인 체험을 통해 겪은 감정이 거의 없는 열다섯 살 소년. 그가 자신의 언어로 사물이 아닌 감정을 표현하게 되는 과정이 참 흥미롭습니다. 천재를 부여받은 인간의 슬픔, 어떻게 보면 장애라고도 할 수 있는 재능. 어린 시절에는 깨닫지 못한 그것을 서른의 미시마가 회상하며 쓰는 글인데, 자신의 모습을 냉철하고 객관적으로, 그때의 심리를 하나하나 해부하듯 써내려간 문장이 참 인상적입니다.

미시마의 말과의 관계는 <가면의 고백>에서도 언급되지만 에세이 <태양과 철>에서도 인상적인 문장으로 등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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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이 어린 시절을 돌이켜보면, 내게는 말의 기억이 육체의 기억보다 훨씬 더 먼 과거로 거슬러 올라간다. 세상 사람들에게는 육체가 먼저 찾아오고, 그 다음에 말이 찾아올 것이다. 하지만 내게는 말이 먼저 찾아왔고, 한참 후에, 마지못해 온다는 듯이, 이미 관념적인 형태를 가진 육체가 찾아왔고, 그 육체는 말할 것도 없이 이미 말에 갉아 먹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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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 믿기지 않는 일인데, 그토록 철저하고 치밀하게 말을 대하고 다루어온 미시마라는 작가를 조금은 알 수 있는 글이기도 했어요.

아래 글은 열다섯 살의 미시마가 쓴 시 중 하나입니다. 감정과 마주치기 전의 미시마의 눈이 바라보는 세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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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이 책에 대해 어느 독자님이 질문을 보내주셔서 오랜만에 책장에서 꺼내 읽어보았습니다.



제가 아끼는 작가, 아끼는 문장들을 하나하나 읽는데 마침 가을이 찾아온 요즘 더없이 제 마음을 평온하게 만들어주는 문장들이 많았습니다.
그중에 하나, 바쇼의 하이쿠와 함께한 하기와라의 문장을 여러분께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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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하는 정신이란 영혼이 늘 서로 껴안고 있는 친구를 찾는 것이다. 

손에 든 오이 껍질을 깎으며, 한 방에 모여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은 

각자의 마음속에 저마다의 쓸쓸한 인생을 느끼고 있다.
문학하는 정신이란 우주에 있는 인간의 나약함과 덧없음을 이야기하고, 

서로의 손을 붙잡고 눈물 흘리는 마음이다.


              - <꽃을 묻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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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시마 유키오의 문장 🌱

미시마의 문장은 아름답기도 하지만 무척이나 난해하고 관념적이어서, 번역하고 교정하면서 육체노동도 아닌데 온몸이 녹초가 되곤 합니다.
S에게 미시마 문장이 어떠냐고 물어봤어요. 글을 대단히 어렵게 쓴다, 글을 대단히 잘 쓴다, 외국어를 아주 잘하는 사람일 거다, 라고 합니다. 다 맞는 말입니다. 덧붙이자면, 글이 대단히 논리적이고 치밀하다, 마치 눈앞에서 사물을 보고 있는 듯이 문장이 생생하다, 라고 말하고 싶어요.

미시마의 소설을 번역한 어느 프랑스 번역가가, 미시마를 번역하는 작업은 마치 모자이크를 맞춰가는 것 같다고 했어요. 서양 언어 번역가인데도 정말 똑같은 생각을 하는구나 했습니다.
보통의 번역 작업이 돌담을 쌓아가는 작업이라고 하면 미시마의 문장은 모자이크나 직소 퍼즐을 맞추는 듯한 느낌입니다. 모서리가 딱딱 들어맞지 않는 돌을 쌓아올리려면 번역가가 어떤 식으로든 군데군데 틈을 메워나가야 합니다. 그런데 미시마의 문장은 그럴 필요가 없어요. 그만큼 논리적이고 철저하고 치밀한데, 그런 의미에서 번역가에게는 더없이 이상적인 작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만 그 문장의 의미를 이해하고 해독하는 범위는 저마다의 역량에 따라 다르기는 하지만요.

미시마의 문장에는 굉장히 어려운 어휘나 잘 쓰지 않는 한자어가 많습니다. 소세키야 메이지 작가니까 그렇다 쳐도, 미시마 같은 전후 작가의 경우에는 보기 드물어요. 인쇄소에 없는 한자가 많아 인쇄소로 3번 정도 원고를 주고받고 하면서 새로 활자를 만들 때까지 기다렸다고 해요.
이렇게 문장에 철저한 미시마였지만, 서양에서 발표된 기사나 인터뷰를 읽어보면 정작 자신의 작품 번역서에는 아주 관대했다고 합니다. (어처구니없는 오역이 있었는데, 그렇게 읽을 수도 있군요 하며 호탕하게 웃어 넘겼다고 해요)
하지만 아마도 그건 서양 언어로 된 번역을 염두에 둔 거라 그랬을 거라 생각합니다. 사실 서양의 언어로 일본어를 의미 전달을 넘어서 문장의 맛까지 살려 번역하기는 거의 불가능할 거예요. 소세키가 생전에 <풀베개> 번역을 허락하지 않은 것도 아마 그 때문일 거라 생각하는데, <풀베개> 같은 시적인 문장으로 쓰인 소설을 문장의 맛까지 살려 번역하긴 불가능해요. 하지만 전 우리말 번역은 좀 다르다고 생각해요. 서양 언어에 비하면, 의미 전달만이 아닌 작가 고유의 문장과 어휘의 맛을 어느 정도까지는 음미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미시마가 생전에 미국에서 인터뷰한 기사에서 흥미로운 내용이 있었어요. 굳이 쓰지 않아도 되는 어려운 한자를 왜 쓰냐고 물었더니, ‘장미’를 한자로 쓰면서 이 글자를 보라고, 글자 자체에서 화려하게 피어난 장미가 느껴지지 않냐고, 그래서 이 한자를 쓴다고 했어요.



요즘은 일본에서도 ‘장미’를 쓸 때는 간단히 히라가나로 쓰지만, 말의 소리, 글자의 모양 하나하나까지 철저했던 미시마라는 작가를 조금은 알 수 있는 에피소드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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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쓰는 소년> 속 <나팔꽃> 이야기 🌸
<나팔꽃>은 미시마의 여동생 미쓰코를 소재로 한 단편입니다. 짧은 소품이지만 아련하고 따뜻한 느낌이라 제가 좋아하는 글이에요.

미쓰코는 미시마가 스무 살일 때 17살의 나이로 병사합니다. 종전 후 석 달이 지났을 때인데, 여동생을 끔찍이 아낀 미시마에게 이 사건은 아주 큰 충격을 주었어요. 그때의 일이 <나팔꽃> 첫 부분에 등장하는데 그 부분은 실제 있었던 일입니다.
여동생에 대한 이야기는 <가면의 고백>과 이번 단편선 <히나의 집>에도 짧게 언급이 됩니다.
“나는 여동생을 깊이 사랑했다”라고 말한 미시마에게 여동생의 죽음은 그야말로 엄청난 충격이었는데 미쓰코는 미시마에게 단지 여동생이 아닌 ‘영원의 여성상’, ‘이상의 여성상’의 존재가 아니었을까 해요. 그 후 미시마가 만난 여성들은 미쓰코를 닮은 데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얼마 후 첫사랑의 여성이 다른 남자와 결혼합니다. (<히나의 집>에 잠깐 언급됨) 여동생의 죽음, 패전 후 어지러운 주변 환경 등으로 미시마는 그녀와의 결혼을 망설였고, 결국 그녀는 미시마를 버려요.
이 두 여성은 스무 살의 감수성 예민한 문학청년에게 깊은 영향을 끼칩니다.
그 무렵의 심정에 대해 후에 미시마가 남긴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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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동생의 죽음과 이 여성의 결혼, 이 두 사건이 그 후 나의 문학적 열정을 추진하는 힘이 되었던 것 같다. 이런저런 사정으로, 나는 내 인생을 포기했다. 그 후 몇 년간의 내 삶은 황량한 공백 그 자체였고, 지금 생각해도 오싹해진다. 가장 발랄해야 했던 그 나이에 나는 죽음과 가장 가까운 곳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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