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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한스 디터 겔페르트 지음, 허영재 외 옮김 / 새문사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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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타깝게도, 정말 많은 경우 정말 좋은 책이 정말 ‘폼 안나는‘ 외양을 입고 세상에 나온다. 헤밍웨이의 ‘빗속의 고양이‘를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 이 책에서 배웠다. 출간된 지가 20년이나 지났는데 건재하다는 사실에 위안받는다. 책의 가치는 외피에 있지 않고 또 그래서도 안 된다는, 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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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작가에게 보내는 편지
칼럼 매캔 지음, 이은경 옮김 / 엑스북스(xbooks)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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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자들은 의도적으로 규칙을 꺤다. 규칙을 깸으로써 언어를 다시 만든다.

그들은 그렇게 다시 만든 언어를 이전에 아무도 사용한 적이 없었던 것처럼 구사한다. 그리고 그 언어를 거듭 철회하면서 자신만의 규칙을 꺠고 또 깬다. (25p)



소설을 쓰면서 늘 드는 회의는 이것이다.


다른 사람들이 다 써먹었던 소재요, 다 했던 이야기들인데

새삼스럽게 내가 왜 또 쓰고 있는가?


소재를 하나 잡아서 쓰려고 자리를 잡는다.

첫문장 한 줄 쓴다.


혹시, 비슷한 소설이 먼저 나온 게 있나 인터넷 검색을 한다.


있다....


에라이...


문서를 삭제한다.


다시 다른 소재를 하나 잡아서 쓰려고 자리를 잡는다.

첫문장 한 줄 쓴다.


혹시, 비슷한 소설이 먼저 나온 게 있나 인터넷 검색을 한다.


있다...

아예 첫문장마저 비슷하다.

토씨 정도 다르고.


에라이...


의도치않은, 표절이 아닌가.


이 정도 되면 소설 쓰기 싫어지게 마련이다.

스승님께 이메일을 넣었다.


"선생님, 제가 쓰려는 걸 다른 사람들이 다 써먹었어요."


마음 좋은 스승님이 화나시는 거 꾹 누르고 보내주신 답신.


소재는 같으나 그대가 쓰는 방식도 같은가?

첫문장이 같다고 해서 방식조차 같은가?

아닐 것이네.


그대는 아무도 흉내내지 못하네.

아무도 그대를 흉내내지 못하네.

읽지도 않은 소설을 대체 어떻게 흉내낸단 말인가.

우연히 비슷해 보여도 그건 확연히 다른 작품이라네.

그러니 당당하게. 

웃어, 넘기게.


그 말에 용기백배.

새 문서를 열어 첫 문장을 또각또각, 찍어냈다.


한 방울.


내 소설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아마, 어디선가, 분명 또 비슷한 게 있을 거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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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처럼 문학 읽기 - 작가는 굳이 말하지 않고, 독자는 달리 알 길이 없던 문학 속 숨은 의미 찾기
토마스 포스터 지음, 손영민.박영원 옮김 / 이루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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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보물이다. 표면텍스트만 읽어내도. 서브텍스트까지 건져올린다면 더더욱. 소설 쓰는 작업이 ‘노력(work)‘을 요하는 일이라 그 작품을 ‘work‘라고 한다는 본문의 말을 빌리자면 이책 자체가 ‘great work‘. 이대로만 읽고 쓰라. 당신 삶에 기필코 소설이 들어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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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 없는 작가
다와다 요코 지음, 최윤영 옮김 / 을유문화사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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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책은 눈보다 손가락을 더 고되게 한다.


필사(必死)적으로

필사(筆寫)의 노역을 


치르게 하느라. 


열 손가락의 끝은,

뇌의 회백질을 향한다지.




뱃사람보다 더 멀리 여행하고 가장 나이 많은 농부보다 도 같은 장소에 더 오래 사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죽은 사람들이다. 그래서 죽은 사람들보다 더 재미난 이야기꾼들은 없다. - P28

죽은 사람들은 그들의 상처를 감추려고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들은 근본적으로 다르게 이야기한다. - P29

어쩌면 입이 아니고 귀가 이야기하는 기관이 맞을 것 같다. 그렇지 않다면 왜 햄릿 아버지의 입이 아니라 귀에 독을 부었을까? 사람들을 세계와 분리시키기 위해서는 우선 자신의 입이 아니라 귀를 포기해야 한다. - P33

때로 모르는 낯선 사람이 창문에서 방 안을 들여다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고 한다. - P39

우리 할머니는 여행이란 낯선 물을 마시는 것이라 생각했다. 다른 고장에는 다른 물이 있다. 낯선 풍경에 대해 사람들은 두려워해야 할 필요가 없지만 낯선 물은 위험할 수 있다. - P45

내가 아직 어린 여자애였을 때 나는 낯선 물이 있다는 것을 믿지 않았다. 왜냐하면 나는 항상 지구는 물공이고 그 위에서 크고 작은 많은 섬들이 헤엄치고 있다고 생각했다. - P46

나는 식당 칸에서 오무르라 불리는 생선을 먹었다.(중략) 그렇게 해서 내가 먹은 오무르는 그날 밤 마치 자기의 여행을 드디어 끝낼 장소를 찾은 것처럼 내 몸 안에서 헤엄쳤다.

- P62

어머니는 자기는 책을 읽는 것 이외에는 아무런 할 일이 없고 그래서 죽을 때까지도 다 못 읽는 긴 소설을 제일 좋아한다고 바로 답했다. - P65

너나 아버지 머릿속에 한 가지 생각밖에 없구나. 모스크바로 간다느 ㄴ생각.

엄마는 왜 모스크바로 안 가는데요?

아버지나 네가 그렇지 않으면 영원히 도착을 하지 못하니까. 내가 여기에 머물러 있기 때문에 너희들이 거기에 도착할 수 있는 거야.

그러면 나도 거기에 안 가고 여기에 계속 있을래요.

너무 늦었어. 너는 이미 길을 떠났다. - P68

나는 기차에서 나를 빼놓고 유일하게 외국인인 프랑스 사람에게 가서 유럽은 모스크바에서 시작하지 않는다고 말해 주었다. 그는 잠깐 웃더니 모스크바는 유럽이 아니라고 말했다. - P70

그 대신 내 눈길을 강하게 끈 것은 유럽 사람들의 몸은 항상 어떤 시선을 찾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얼굴뿐만 아니라 손가락과 심지어는 등짝까지도 항상 어떤 시선을 찾고 있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모두 다른 사람의 몸에 항상 시선을 다시 되돌려 줄 의무가 있었다. - P81

보이고 싶어 하고 보여야 하는 몸은 유럽의 몸이다. 그때 나르시스까지 등장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이러한 욕구의 밑바탕에는 보이지 않는 것은 언제든지 사라질 수도 있다는 걱정이 깔려 있다고 할 수 있다. - P82

나는 유럽을 보기 위하여 일본이라는 안경을 써야 한다. ‘일본식 시각‘이라는 것은 현재에도 없고 과거에도 없었기 때문에-나로서는 전혀 아까울 것도 없는데-이 안경은 지어낸 것이고 늘 다시 만들어야 한다. 내 일본식 시각은 내가 일본에서 태어나고 자랐지만 전혀 믿을 만하지 못하다.
나의 일본식 안경은 쉽게 가게에서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나 또한 기분에 따라 이 안경을 꼈다 벗었다 할 수도 없다. 이 안경은 내 눈의 통증 때문에 생겨났고 살이 안경 속으로 자라 들어간 것처럼 안경은 내 살 안으로 자라 들어갔다. - P86

이제 연필을 일본어 ‘엠피쓰‘가 아니라 독일어 ‘블라이슈티프트‘라고 부른다. ‘블라이슈티프트‘라는 단어는 내가 완전히 새로운 물건을 다룬다는 느낌을 주었다. 연필을 이 새 이름으로 불러야만 했을 때 나는 살짝 부끄러웠다. - P91

지하철에서 책 읽는 사람들은 특이한 습관이 있다. 그들은 책을 얼굴에 바싹 대고 읽는다. 그래서 책은 얼굴을 가리라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을 쉽게 받는다. 책들은 읽는 사람들의 얼굴에 두 번째 이름과 호칭을 주는 마스크라 할 수 있다. - P101

때로 책에서 읽는 이야기 이외의 다른 목소리는 아무 것도 듣지 않으려는 듯 오른손 둘째손가락으로 때로 귀의 구멍을 막는 사람들이 있다. 때로 둘째손가락은 귀의 깊숙한 곳에서 오는 기억을 낚아채는 낚싯대가 되기도 한다. - P101

책 읽는 사람 옆에서 잠이 드는 사람은 꿈속에서 책의 주인공을 만난다. 잠을 잔 사람이 어느 날 우연히 그 책을 읽으면 그는 책 주인공이 잘 아는 사람인 것처럼 느껴져 놀란다. - P103

전철에서 읽는 책이 아주 작으면 책 읽는 사람의 두 손의 손가락들은 책의 뒤표지에서 서로 만난다. 책 읽는 사람은 그러면 자기도 모르게 기도하는 사람의 동작을 취하게 된다. - P104

중년의 부인이 돋보기를 쓰고 책을 읽는다. 안경은 두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다. 안경 아래쪽으로는 살아 있는 글자를 읽고 있고 위쪽을 통해서는 죽은 동상처럼 보이는 승객들을 본다. - P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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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학 강의 소소담담의 수필비평/이론 12
신재기 지음 / 소소담담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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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수필은 문학의 테두리를 넘어 비문학 영역에도 걸쳐 있다. 이를 인정해야 한다. 이 비문학적 요소가 수필의 자존심을 떨어뜨리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수필을 순수문학의 울타리 안에 제한하려는 것은 오류이며 일종의 미신이다.


그렇고말고.


수필도 문학이다.


[수필이 문학의 테두리를 넘어 비문학 영역에 걸쳐 있다]고, 수필가 자신이 말하고 있으나

수필은 문학이다. 엄연히.


피천득, 손광성의 수필을 보라.


'문학'의 테두리를 넘어...가 아니라 문학의 테두리 안에 단단히 서 있다.


수필과 소설의 차이는, '허구성'에 있다.


소설에 있는 게 수필에 다 있다.


서사.

수필에도 서사가 있다.


인물.

당연히, 수필에도 인물이 있다.


배경,

두말하면 잔 소리다.


사건

두말하면 입 아프다.


수필과 소설이 다른 점은 딱 하나.


허구성이다.


소설은 허구요,

수필은 비허구다.


그러나 나는 이조차 겹친다고 본다.

담도만 좀 다를 뿐.


수필을 쓰는 이가 수필을 쓸 때, 

'경험'을 쓴다. 

그 경험은 순도 100프로의 '비허구'인가?


70대 노인이 열 살 적 경험에 관해 쓰면

그건 100프로 비허구가 될 수 있을까?


하다못해 바로 어제 일을 쓰다고 해도, 

글 속에서 펼쳐지는 그 경험은 순도 100프로의 비허구가 될 수 있을까?


어쩌지 못하게,

수필도 '재현(representation)'이 개입된다는 소리다.


도끼로 자르듯, '허구'라고는 할 수 없다.

그 경험을 한 것은 '사실'이니까.


그러나 수필가의 기억에서 빠져나와 글로 풀어 헤쳐지는 수필의 '사실'은

순도 100프로의 '비허구'는 아니다.


그래서, 수필과 소설의 '차이'는 단언키 힘들다. 


없는 사실을 있었다고 치고 말하는 게 소설이고

있는 사실을 이렇게 기억한다(혹은 보았다)고 말하는 게 수필일 지도 모른다면


굉장히 달라 보이지만


소설에서 말하는 '없는' 사실이란 게 사실은,

'나'가 보지 못하는 어디선가는 또 일어났고, 일어나고,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서...


지금도 멕시코 만류 어디에선가

쪽배 하나에 의지해 

상어와 사투를 벌이기 위해 

또 다른 산티아고가 

그 쪽배를 밀고 바다로 나가는 중인지도 모르니까.


노인과 바다


수필은 문학이다.

소설과 같으면서 또 다른.


그 자체로.


최근, 읽으면서 눈물을 흘렸던 '문학'은 바로, 수필이었다.

손광성의 '누나의 붓꽃'.


수필이다.


하늘잠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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