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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밥상 - 농장에서 식탁까지, 그 길고 잔인한 여정에 대한 논쟁적 탐험
피터 싱어.짐 메이슨 지음, 함규진 옮김 / 산책자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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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유기농에 관심가지게 된 계기는 가공식품에 들어가는 온갖 첨가물들에 대한 정보를 접하면서ㅡ 그저 조금더 '안전한 것'을 먹고 싶다는 지극히 개인적인 욕구였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유기농'이란 단어에서 well-being 혹은 돈 많고 여유로운 사람들의 유난법석을 떠올릴 것이다. (얼마전 백분토론에서 다수의 미국교포들도 20개월 이하의, 상등급 쇠고기만 먹는다는 이선영주부의 말에 "한국 사람들이 요즘 "유기농" 야채 많이들 찾는것도 아시죠?"라고 논점을 흐렸던 분도 있지 않았나.) 사람들이 굳이 비싼 유기농을 찾는 이유는 크케 두가지 이다.ㅡ 집에 아이가 있거나, 건강에 관심이 많아 기꺼이 비용을 치를 의향이 있거나. 그렇다면 유기농 선호는 개인의 취향 내지 식습관 정도로 치부할 수도 있겠다.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바로 그 일반적 인식을 뒤집는 한마디다. "무엇을 먹느냐는 지극히 정치적인 행위다."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책의 특성상 초반부엔 자극적인 묘사가 많다. 싸움 방지를 위해 부리가 잘린채로 좁은 닭장에 갇혀있다가 때가 되면 목이 제대로 잘리지 않은 상태로 끓는물에 던져지는 닭. 태어난지 열흘만에 마취없이 거세당하고 역시 서로 물어뜯을까 꼬리가 잘린 채 좁은 공간에 갇혀있다가 성장촉진제와 항생제로 키워서 도살당하는 돼지. 더 많은 우유생산을 위해 성장호르몬을 맞으며 끊임없이 임신하고 ('젖 분비'라는 본 목적을 위해 어쩔수 없이 생기는 '부산물'인 새끼소는 생후 40분이 지나면 어미에게서 분리되 쓸쓸히 죽는다) 본 수명인 20년을 4~5년만에 압축적으로 살아내는 젖소. 그리고 MB덕에 많은 한국인들이 사육과정을 속속들이 알게된 육류용 소. 마트에서 보던 "신선하고 깔끔한" 온갖 육류들과 이 책이 그려내는 사육장 광경의, 그 아찔한 간격이란. 최상의 마블링은 미식가들의 혀를 자극하지만 ㅡ 그 '아름다운 맛'을 위해 팔자에 없는 곡물사료를 먹어야 하는 소라니. 아니 무슨 몸과 마음을 쥐어짜서 걸작을 탄생시키는 예술가도 아니고. 그나마도 예술작품처럼 온 몸을 다해 맛을 음미하는 것도 아니고 그저 별 감흥없이 매일 먹는 평범한 식재료가 되는 것일 뿐인데. (이부분을 읽다 보면 마치 축산업자들이 인정이라곤 눈곱만큼도 없는 파렴치한으로 보일수도 있지만, 그들이 특별히 나빠서가 아니라 경쟁 - MB가 특히 좋아하는! - 에서 살아남으려면 원가절감을 위해 어쩔수 없다는 설명이다. 저자도 특정 농장주를 비난하기 보다는 전체 사회 시스템을 비판하는 쪽이다.)

솔직히, 이부분까지 읽고는 (평소에 육지동물 고기보다는 바다동물을 선호하기에) "그래, 역시 해산물이 대안이다"라고, 섣부른 결론을 내렸었다. 아니나다를까. 다음은 해산물이다. 더러 "(육지)동물들의 눈을 보면 차마 먹을수가 없다"고 말하는 감수성 예민한 분들이 있는데ㅡ 아직 "물고기나 새우, 게의 고통이 느껴져서" 먹을수가 없다고 말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은 듯 하다. 유유상종이라고 인간과 가까운 동물에게서만 '동질감'을 느끼는건지. 하여 이 부분은 감성적 자극보다 논리적 설득의 측면이 강하다. 생산물보다 (굶주리는 사람을 살리는 데 쓸 수도 있는)더 많은 양의 작은 고기들을 사료로 써야 하는 양식업의 비합리성, 품종 개량한 연어가 양식장을 탈출했을때의 생물학적 교란 가능성, 밀집 사육의 위험성, 무분별한 노획 결과 파괴되는 바다 밑 환경과 멸종위기에 처란 많은 희귀종들 등. 앞장이 어떤 '고통에 대한 감수성'을 자극한다면 이 장 부터는 슬슬 일상의 '먹는 행위'에 대해 돌아보게 만든다. 별 목적의식없이 형성된 나의 식습관 때문에 오늘도 파괴적인 사육/양식/남획이 자행된다면? 내가 꼭 이걸 먹어야 할까?

** 책의 저자는 먹는것을 계속 '윤리적 문제'와 결부시킨다. 다른 생물에게 (겪지 않을수도 있는)고통을 겪게 하는 것이 비 윤리적이라는 전제하에 따로 지면을 내어 수상생물들이 느끼는 '고통'의 정도에 관한 여러 연구결과를 소개하고 있는것이 재미있다.

이 책의 장점은 '양심적 식생활'에 대해 다양한 분야에서 입체적으로 접근하는 것이다. 동물 학대를 (나름대로) 최소화 한 '지속 가능한 사육'농장들 소개도 나오고 육류의 거대 소비자인 맥도날드와 월마트를 상대로 한 투쟁 및 성과도 있다. '유기농 상품'이 새로운 수익의 원천이 되면서 대기업들의 로비로 점점 부실해지는 '유기농 상표'의 허구성에 대해서도 다룬다. 기업형 농업이 되면서 농장 유지 - 온도 조절 등 - 나 상품의 운송에 들어가는 화학연료의 비중도 만만치 않은데 대개는 근교에서 재배한 '제철 토산품'이 훨씬 환경친화적-지속 가능하지만 제철 과일의 빠른 숙성을 위해 들이는 석유의 양이 멀리 떨어진 곳(품목에 따라 농산품 수출을 주요산업으로 삼는 다른 빈국이 될수도 있다)에서 실어오는데 드는 석유보다 많은 경우도 있다. 정치적으로 올바른 혹은 양심적인 소비자가 되고싶다면 이것저것 생각할 것이 많다. 결국 소비자가 스스로 똑똑해져야 하는데 밥벌이에 치여사는 많은 가정들에겐 만만치 않은 부담이다.     

저자의 궁극적 목표는 '베건'이 되는 것이다.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길러낸 작물들만 먹는. 베건 숫자가 늘어나면서 (주로 콩을 활용한) '대체 음식 - 콩 베이컨, 콩 소세지 등'상품도 많이 개발되었고, 일반적인 믿음과는 달리 꼭 동물성 단백질을 섭취해야만 건강을 유지하는것은 아니다. (이 주장에 대해서는 부연설명이 필요한데, 충분한 영양 섭취가 어려운 가난한 나라의 국민들에게는, 즉 부족한 영양소를 체크해가며 따로 챙겨 먹을만한 여유가 없는 상황에서는 동물성 단백질섭취가 더 효율적/필수적인 영양공급원이 될 수 있다. 어차피 이 책의 타켓은 '영양 과잉'인 보통 사람들이니까.) 동물의 고통 문제가 아니더라도 사료용 작물을 길러내는데 드는 엄청난 양의 물과 토지, 동물들이 배출하는 배설물(거대규모의 농장이 배출하는 오염물질의 피해는 상상초월이다.)때문에 고통받는 공장주변 사람들을 생각한다면 육류를 먹는것 자체로 이미 타인에게 일정한 부담을 지는 셈이다. 흔히 기업형 대량생산 상품이 싼 이유 중 하나로 '타인을 착취함으로써 그 비용을 전가하는 것'을 드는데 (대규모의)동물 사육이나 (농약/화학비료를 쓰는) 재래식 농업의 경우 사람뿐 아니라 후대에 물려줄 토지(포괄적으로 자연자원)를 착취하고 있는 셈이다. 혹자는 '지속 가능할 농업'의 생산성이 낮아 늘어나는 인구를 감당할 수 없다 말하지만 이건 멜서스 '인구론'을 연상시키는 사실 왜곡이다. 재래식 농업은 지력을 빨리 소모해서 갈수록 생산성이 떨어지지만 지속가능한 농업의 생산성은 유지되는 경향이 있어서 장기적으로는 큰 차이가 없다는 사실. 유기농은 가격이 비싸 일부 사람만 접근할 수 있다는 반론은 상당히 현실적이지만ㅡ 이 책은 한잔에 4.5달러쯤 하는 카페라테나, 아니면 블루마운틴 커피를 마시는 데는 돈을 아끼지 않으면서 일상적 식재료에 돈이 많이 드는 것을 견딜 수 없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고 맞받아친다. '먹는것'에 어느정도 중요성을 두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얘기.   

옮긴이가 후기에 이런 반론을 적었다. 

"극단적인 논리로, 지금 모든 사람이 베건이 된다고 하자. 그러면 수천억 마리에 달하는 가축은 어떻게 될까? 애완동물로 키워질까? 대부분은 야생으로 돌아갔다가 생소한 환경과 먹이의 부족을 견디지 못하고 죽어갈 것이다. 그러면 인간이 이제껏 저지른 중 최대 규모의 동물 학살이 되지 않겠는가? 어차피 그들은 전부 도살될 운명이었고, 축산업을 폐지하지 않는다면 더욱 많은 동물이 고통받고 죽어가게 된다고 할지도 모른다. 그런다면 수백조의 희생을 방지하기 위한 수천억의 희생은 정당하다는 것인가? 그렇다고 하면, 인간과 동물의 생명의 가치에 근본적 차이를 둘 수 없다고 할 때, 인간이 멸종하는 편이 더 윤리적인 것이 아닐까?

이 슬픈 문구를 읽는데 뜬금없이 레닌의 연설이 떠올랐다.

"만약 사회주의가, 모든 사람의 지적 수준이 그것을 용인할 정도로 발전한 후에야 실현될 수 있다면, 우리는 최소한 5백년 동안은 사회주의를 보지 못할 것입니다"

일단, 모든 사람들이 베건이 된다는 논리는 그야말로 '극단적 예'일 뿐이고. 여러가지 현실적 문제 때문에 모든 농업이나 축산업이 지속가능한 것으로 바뀌기도 힘들다. 그리고 '유기농'이 옳다고 해서 현재의 '유기농 산업/상품'이 모두 옳다고 할 수 있는것은 아니기에 소비자 개개인이 유기농 식품을 사먹는다고 해서 당장 모든 상황이 좋아지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일상적인 행위에 담긴 정치적인 의미를 깨닫고ㅡ 바꾸기 위해 노력한다는 것. 작은 것에 의미를 부여하며 자기 삶을 되돌아 볼 수 있는 계기가 된다면, 그런 사람들이 많아진다면, 크고 작은 시행착오야 있겠지만 결국 올바른 쪽으로 선회하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맥도날드가 1밀리미터 만큼 움직이자 나머지 업계가 일제히 뒤를 따랐던" 경우처럼.  

'食'은 세상과 소통하는, 다른 생명을 받아 내 생명을 이어가는 거룩한 행위다. 나는 그리 냉철한 합리주의자는 안되기에 적어도 음식에 관해선 재료가 된 생명들의 -탄수화물/지방/단백질로 환원되지 않는, 생명만이 갖는 -에너지가 전해진다고 믿는, 소박한 신비주의자에 가깝다. 나는 행동가도, 이론가도 아닌, 그저 평범한 소시민에 불과하지만 내가 세상의 일부라면, 나의 변화는 세상이 변하는 일부라고 생각하는, 소박한 낙관주의자이기도 하다. 단지 내 몸의 건강을 위해서가 아니라 정치적 행위라고 생각하니 식재료를 사는 일에 더욱 신중해지고 '비용'에 조금 덜 민감해진것은 사실이다. 혹자는 "그러면 먹을게 없다"느니 "왜 그렇게 세상을 피곤하게 사냐"고 말할 수 도 있겠지만 아무것도 변하지 않을거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는 회피의 다른 말이다. 촛불 들고 거리에 나가는 것이 정치적 입장 표명이듯 무엇을 먹느냐 역시 지극히 정치적인 입장 표명이다.  

** 책을 읽고 난 후 ㅡ 데릭 젠슨이 쓴 '거짓된 진실'과 비슷한 여운이 남는다. 물론 두 작가의 문체는 상이하고 (데릭 젠슨 쪽이 훨씬 시니컬하다) 내용도 다르지만 글의 구성을 보면 수많은 실존인물들이 등장하고, 그들과의 대화가 상당부분 차지하기에 빨리 읽히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산만하기도 하다. 실존 인물들의 '증언'은 때로 강렬하고 명쾌한 인상을 남긴다. 두 책 다 두껍지만 읽는데 어려운 책은 아니다. 단, 내용이 머리에 와 닿는 충격을 흡수하는 건 매우 힘든 과정일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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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08-06-27 08: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혹해서 사기는 했는데 차분히 읽지는 않아서... 사들이고 방치되는 책이 많다는 사실에 반성하고, 님의 친절한 리뷰로 짐작만 할 뿐...
책 잘 받았어요. 제 서재에 사진도 올렸어요. 감사~~ ^^

Jade 2008-06-27 11:05   좋아요 0 | URL
아 서재에 올리신 글 봤어요! ㅎㅎ 책꽂이 멋지던데요! >.<

Arm 2008-06-29 21: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삼겹살을 너무도 너무도 좋아하는 제 입맛을 진지하게 되돌아보고 싶어서 구입했어요! 미뤄두고 있었는데, 리뷰를 보니 한층 책맛이 땡기네요~ 그런데요 생협을 통해서 구매하는 유기농 농산물은 오히려 더 저렴하다고 들었는데요. 순오기님은 어떻게 실천하고 계신가요? 제게도 노하우를;;♪

Jade 2008-07-01 01:52   좋아요 0 | URL
헉 저는 순오기님이 아닌데요 ㅋㅋ

Arm 2008-07-04 01: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이제야 발견!!죄송해요ㅠㅠ;;;;;;;;;;;;;;;;;;

순오기 2008-07-18 08:08   좋아요 0 | URL
ㅎㅎㅎ 순오기도 이제야 발견~~~~ ^^
저는 생협거래 안해봐서 잘 몰라요. 유기농은 제 가정 경제상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당신으로 알고 산답니다.ㅜㅜ
우린 싸고도 양 많이 주는 푸성귀들만 먹고 살거든요.ㅎㅎㅎ
 
마음의 전략 - 무시, 험담, 따돌림에 맞서는 마인드 북스 6
배르벨 바르데츠키 지음, 조경수 옮김 / 북폴리오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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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폴리오에서 나온 '마인드 북스' 시리즈의 6번째 책이다. 앞선 5권의 책을 다 읽었고 그 전에 번역된 배르벨 바르데츠키 책(따귀 맞은 영혼, 여자의 심리학) 두권을 재미있게 읽어서 약간 기대했던것이 사실이다. '전략'이란말이 풍기는 상업성만큼ㅡ 이 책은 앞선 책들보다 별로 와닿지 않는다. 책 읽는 내내 도통 몰입이 안되 겉읽은 느낌. 물론 상당부분은 내가 직장경험이 없기 때문이겠지만.

앞선 두 책이 보편적 상황에서의 '마음상함'을 다룬다면 이 책은 직장생활에서 생기는 트러블에 대처하는 법을 말한다. '무시, 험담, 따돌림에 맞서는 마음의 전략'이라는 주제에 맞게 직장동료/상사와의 갈등사례들이 제시되어 있다. 대개의 심리학 책들이 그렇듯 작은일에 크게 상처받는 이유는 어릴적 겪은 상처 등 '개인의 급소'를 찔렀기 때문이라 설명하며 감정적으로 대처하지 말고, 회피하지도 말고 적극적/논리적으로 상대와 문제를 해결해 갈것을 지시한다. 그 전 책들이 상처받을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다독여주는 성격이 강했다면 이 책은 어떻게 해결할것인지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 조금 딱딱하다.

왜 항상 피해받았다는 사람만 있고 스스로 가해자라며 괴로워 하는 사람은 없는가? 거의 모든 심리학 서적들이 상처받았다고 여기는 자의 '과잉된 피해의식'을 지적한다. 상대는 전혀 그럴 의도가 아니었는데 스스로 왜곡해서 듣는다든지, 그냥 웃어 넘길수 있는 일에 과민반응하여 크게 다툰다든지 등등. 물론 불필요한 피해의식을 없애고 긍정적으로 사고하는것은 중요하다. 하지만ㅡ '상처'의 의미는 늘 피해자만이 알 수 있는 것이다.

현재의 심리/우울증 치료는 거의 개인의 문제로 국한시킨다. (개인의 문제를 설명하기 위해 가족을 상담의 단위로 삼는 가족치료나, 사회를 비난하는 내러티브치료도 있긴 하지만 아직까진 소수다) 물론 특정 행동을 유발하는 개인적 특성이 없진 않겠지만 '개인 책임론'은 종종 '사회의 책임회피'라는 생각이 들곤 한다. 이 책에서 제시하는 수많은 갈등 사례들이 많은 직장에서 대부분의 사람에 적용될 수 있는 문제라면ㅡ 불필요한 갈등을 조장하는 시스템의 문제가 아닐까? 혹은 점점 더 남을 신뢰하지 않는 전체 사회 분위기의 문제가 아닐까?  

저자가 사는 독일에는 직장 내 코칭/상담/슈퍼비전 등 상담치료가 비교적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모양이다. 갈등의 골이 깊어지다 전문상담가의 도움으로 원만히 해결된 '모범적' 사례들이 여럿 나온다. 우리나라 상황은 어떨까? (노조활동도 탄압받는 마당인데 그다지 좋을것 같진 않다.) 이 책 역시 갈등을 개인적 관계문제로 설정하기 때문에 사회적 차원에서 접근하려는 시도는 보이지 않는다. 물론 상담가가 치료하는건 무수한 개인들이고, 그런 한에서 즉각적인 성과를 거둘 수 있겠지만 '무시, 험담, 따돌림'등이 어떤 보편적인 사회현상이 되고 있다면ㅡ 사회적 차원에서의 분석과 대안모색역시 필요하다고 본다.  

스스로 소심해서 상처 잘 받고, 그래서 '위로'받고 싶다면 이 책보단 '따귀 맞은 영혼'이나 '여자의 심리학'을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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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낮의 우울 - 내면의 어두운 그림자 우울의 모든 것
앤드류 솔로몬 지음, 민승남 옮김 / 민음사 / 200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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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낮의 우울이라니. 원제는 Noonday Demon - 한낮의 악마 - 는 4세기 신비주의자 에바그리우스가 수행자를 괴롭히는 우울증을 칭한 말이다. 대부분의 악마(고뇌)들이 밤의 어둠을 틈타서 찾아들며 그것들을 분명하게 "보는"것만으로 쳐부술 수 있는 것과 대조적으로, 눈부신 햇살아래 당당하게 서 있으며 똑바로 마주해도 끄떡도 하지 않고 우리를 더욱 무력하게 만드는 우울증에 대한 명쾌한 묘사다. 우울증처럼 지독하게 사람을 괴롭히면서ㅡ 좀처럼 잡히지 않는 병이 또 있을까. 

우울증이 천재나 예술가들의 당연한 특성/일종의 특권처럼 여겨지던 때도 있었지만ㅡ 정신의학자나 우울증환자에게 그것은 분명 치유해야 할 "병(그것도 매우 끔찍한!)"이다. '몸'의 병과 달리 '마음'의 병이라 인식되는 경우가 많지만 대개 우울증은 현저한 뇌손상을 수반한다. (초기에는 뇌의 특정 영역이 비활성화되기 시작해서, 장기간 지속되면 그 부분이 점점 수축하는 비가역적 뇌손상이 일어난다.) "우울증에 반대한다"의 저자 피터 크레이머는 여러 항우울제의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중증 우울증환자는 최대한 빨리 치료(대개 항우울제 복용)해서 영구적 뇌손상을 막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책의 저자 역시 여러번에 걸쳐 심각한 우울증삽화를 겪었고 현재도 늘 재발의 위험때문에 몇가지 우울증약에 의존하지만 약들의 부작용보다 우울증 재발이 더욱 끔찍하다며 약 복용을 정당화한다. 마치 고혈압 환자가 혈압약을 꾸준히 복용하는 것처럼 

완전한 신체의 병도 없고, 완전한 마음의 병도 없다. 잠시 기분이 가라앉는건 누구나 경험하는 일이고 딱히 문제될것도 없지만 몇달 혹은 몇년간 저조한 기분이 계속되는 우울증은 거의 몇 가지 신체증상 - 피로, 불면, 메스꺼움, 면역력 저하 - 등을 수반한다. (우울증 상담을 주로 하시는 선생님말씀이, 우울증환자는 특유의 '체취'가 있댄다.) 뇌의 화학물질 변화는 호르몬 분비도 교란시켜 전신이 망가지는데, 거기다 우울증에 적지않게 나타나는 '자해'까지 이루어진다면 그야말로 몸 전체가 '만신창이'다. 하지만 여전히 우울증은 사회적으로 다른 '병'처럼 당당하지 못하다. 심장병이나 암에 걸린 사람이 치료받는것은 당연하다고 여기면서 우울증 치료를 받는것은 무언가 비정상적인것으로 여겨진다. (물론 점점 나아지고는 있지만) 정신과 치료를 받는다는 말이 종종 공포영화에나 나옴직한 싸이코나 광기로 가득한 (속된말로 '미친') 기피대상 1호라는 말처럼 들릴까봐 환자는 더욱 움츠러든다.

저자도 지적하고 있지만 현재 우울증치료는 거의 약물치료위주다. 의사들이 주로 제약회사를 통해 최신 뉴스를 접하기 때문에 (제약회사의 의도대로)신약에 대한 접근성은 매우 높지만 비약물치료에는 취약하다. 다른 만성병 약들과 마찬가지로 항우울제는 한번 먹기시작하면 계속 먹어야하는 경우가 많고 그에 따르는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원칙적으로 모든 '약'은 일종의 '독'이므로 급할때 쓰고 장기적인 치료로는 다른방법 - 상담, 운동, 명상, 영양섭취 등 - 위주로 가야하겠지만, 츄잉껌처럼 모든 사람들이 먹는 약을 만드는것이 목표인 제약회사에게는 별로 반갑지 않은 일이다. (사실 우울증을 두고 마음이 아니라 '뇌'에 문제가 있는것으로 몰고가는것도 약을 팔기위한 제약회사의 전략이다. 이에 대해선 '질병판매학' 참조) 적절한 운동이나 일정시간 빛을 쬐는 것, 균형잡힌 식사를 통해서도 기분변화는 물론 신체불균형도 어느정도 조절할수 있지만 생활습관 개선이라는 '근본적인 치료'는 상품가치가 없기에 약 몇알을 먹는것이 더 '합리적'이라는 인식을 만들어낸다. 이런 방법을 권장하는 의사는 '대체의학'이라며 주류의학계에서 무시당하기 일쑤다.

이 책에서 저자는 자신이 해보았던 온갖 치료방법들을 소개하고 있다. (대체의학도 많고 심지어 수평아리와 숫양을 제물로 바치는 신앙의식까지 나온다! 얼마나 절박했으면. 그러고 보니 몇년 전 한 신문에서 절반 이상의 한국 여성들이 우울증이라고 느낄때 정신과의사보다는 점집을 찾는다는 보도를 본 적이 있다.) 그 중 EMDR(안구운동 민감소실 및 재처리요법. 부정적인 기억이 주로 우뇌에 맺히기 때문에 한쪽으로 편향된 뇌를 좌우안구의 교차자극을 통해 균형을 맞춰준다는 원리)을 이용한 우울증치료는 외상에 의한 우울증에 탁월한 효과를 발휘한다며 적극 추천한다. 정신분석 등이 외상을 초래한 사건들을 파고들어 마주하게 한다면 EMDR은 특정 사건에 사로잡힌 사람을, 그 기억에 무뎌지도록 '떨어뜨려'주기 때문에 빠르고 직접적인 반응을 촉진시킨다. 얼마전 EMDR에 관한 입문서가 한국에도 번역되었다.(EMDR. 문이당. 2008) 한국의 우울증치료 역시 약물치료 위주고 상담은 대개 형식적인 수준(대학병원에서, 15분 상담에 10만원선인데, 그나마도 7~8분밖에 안한다나)에 그친다. 저명한 정신과의사의 말로는 한국에서 제대로 된 상담치료가 가능한 의사는 10명도 되지 않는다고 한다. 의료 역시 '수익성 높은 상품'이 된지 오래다.

쏟아지는 심리학 서적들을 보면, 부정적인 면에 초점을 두지 말고 사물의 긍정적인 모습을 보라는 조언이 많다. 이것은 반은 유효하고 반은 헛소리다. 어느 누구에게도 좋은일만 일어나진 않는다. 오히려 삶이 슬픔이 존재하는것ㅡ 슬프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것이 현실적이다. 일상에서 작은 즐거움들을 발견하는것은 분명 의미있지만 외면한다고 슬픔이 없어지는것은 아니다. 슬픔/고통에서 벗어날수있는 유일한 방법은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 어떤 슬픔/고통이라도 그 자체로 인간을 죽이지는 못한다. 이 책의 많은 주인공들이 상상 이상의 고통을 겪고도 어찌어찌 빠져나올수 있었던 힘은 희망찬 낙관이나 조작된 희망이 아니다. 그들 대부분은 우울증은 끝이 보이지 않는 어둠속을 지나간다는 것임을 겪어왔고 언젠가 다시 찾아올 수 있다는 것 역시 알고있지만 그 덕택에 인생의 다른 부분을 알게 되었다고 말한다.

이 책의 장점이자 단점은 내용이 풍부하다는 것이다. 참고문헌을 포함해 700페이지가 넘는다. 그만큼 우울증과 관련되는 거의 모든 주제를 다룬다. 저자가 의사는 아니지만 여러번 우울증 삽화를 겪으며 스스로 공부했는지 (꽤 무게있는) 의학적 내용들도 많고 평범한 사람들의 생각, 환자들의 생생한 사례들이 가득해 가히 '우울증에 대한 미니 백과사전'이라 할만하다. 개인적인 경험들이 다수지만 이를 사회구조/정치와 연결시킨 9, 10장이 특히 마음에 든다. 9장은 삶의 고뇌때문에 우울증에 더 취약하고, 역시 경제적 문제로 제대로 된 치료를 받을 수 없는 저소득층의 악순환을 짚고10장은 제때 치료받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한 찾아가는 의료서비스에 관한 정책/관련단체들의 로비/우울증 예방치료정책의 효용성등을 다룬다. 미국이 사회보장제도가 미비하다고는 하지만 그나마도 제대로 되지 않는 한국과 비교되는 부분이다. 경제적 논리를 이유로 우울증 예방에 소극적인 의회를 겨냥해 우울증 예방에 들어가는 예산보다, 우울증으로 인한 사회적 손실이 크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 인상적이다. 때로는 인권존중 운운하는것보다 실질적인 이익/손해로 접근하는것이 더 효과적이니까. 

우울증은, 전염되기도 한다. 이 책을 처음 잡은게 3월 중순께였는데ㅡ 책을 펼칠때마다 마주하는 당혹스러움에 한동안 덮어두고 있었다. 실제로 얼마동안 책의 주인공들처럼 어찌할 수 없는 무력감에 빠지기도 하고ㅡ 이 책이 우울증환자에게 도움이 된다면, 그런 고통을 안고도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는 것에서 위안을 받을것이다. 정신과 의사나 상담가가 쓴 책은 어쩔수 없이 환자를 '관찰'하고 '처방'을 내리지만 이 책은 철저하게 환자중심이다. 우울증을 '보는'것이 아니라 우울증에게 귀를 기울인다. (하여 쉽게 감정이입/전이가 된다.) 물론 이런 중증 우울증환자는 흔하지 않고, 그것을 이겨내는 사람은 더더욱 드물지만ㅡ 주변에 우울한 친구가 있다면 이 책을 추천할 것이다. 더욱 깊은 나락에 빠져서ㅡ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법을 터득하라고.

책 끝머리에서 저자는 말한다. "나는 타인들에게 닿을 수 없는 것이 싫다" 우울증때문에 생의 밑바닥까지 가보았지만 그로 인해 (우울증이 아니었으면 받지 못했을) 엄청난 관심과 사랑을 받았고 다른사람을 사랑하는 법을 터득했다고 말하며 고통받고 있는 다른사람을 돕고자 애쓰는 모습이 아름답지 않은가? 끔찍한 우울증 삽화 뒤에 자기와 비슷한 고통을 겪고있는 사람들을 돕고있는 많은 사람들의 예는 우울증이라는 경험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고통이 인간을 성숙하게 한다면, 고통없는 세상을 바라는 인간의 욕망은 어쩌면 지극히 위험한 것일지도 모른다. 삶의 고통은 상당수가 선택의 범주를 벗어나 있지만 그를 받아들이는 스스로의 반응은 선택할 수 있다. 망가질대로 망가진 현 사회의 모습은 인간의 선택이 빚어낸 참혹한 결과지만 아직 우리에겐 선택의 여지가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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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주나무 2008-04-17 1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사람이 나한테는 안 오더라구요~
글 잘 쓰거나 예쁜 사람한테만 가는 거 아닐까요..
저도 충분히 자격 있다고 생각하는데 ㅋㅋㅋㅋ

우울증 얘기하기에 이 책을 유심히 보고 있었구나.
"완전한 신체의 병도 없고, 완전한 마음의 병도 없다"는 말이 끌리네여
저도 그런 비슷한 느낌을 받은 적이 있는데,
트랙을 혼자 열심히 돌고 있노라면 마음 정리가 되고 기분이 좋아지더라구요.
그래서 신체와 마음은 원래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나봐요~~
찜해두고 읽어볼게요 ㅎㅎ

Jade 2008-04-17 11:18   좋아요 0 | URL
ㅎㅎ 한 40분정도 아무생각없이 걷다보면 뇌에서 도파민이 막 분비되서 기분이 좋아진대요~ 빛 쬐는것도 비슷한 효과가 있고, 빛은 일정시간 이상 쬐기만 해도 살까지 빠진대요 ㅋㅋ 제가 낮엔 집안에 웅크리고만 있어서 우울했나봐요 ㅋㅋ

근데 승주님 이 책 엄청 두껍답니다. ㅋㅋ

jsw2333 2008-04-17 11: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책 소개 감사합니다. 또 살 책이 하나 늘었군요...

Jade 2008-04-17 11:19   좋아요 0 | URL
우울증 다룬 얇은 심리학서적들보단 이책이 정보도 많고 훨씬 구체적이여요 ㅎㅎ 두껍다는게 흠이지만..ㅋㅋ

가시장미 2008-04-17 11: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굉장히 멋진 리뷰군요 ^^ 너무 친절하세요~ 책을 읽은 것 같은 느낌이에요. 으흐
근데 -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법 - 너무 어려운 것 같아요.
저도 주위에 우울증을 앓고 있는 친구들이 있어서, 가끔 어떤 말을 해주야 할지 고민스러워요

Jade 2008-04-17 22:51   좋아요 0 | URL
어머 과찬이세요 ㅎㅎ 가시장미님 반가워요. 가끔 님 서재에서 글 보기만 했었는데^^;;

우울증 앓고계신 친구분께 위로의 말 대신 손한번 꼭 잡아주셔요. 어떤행동을 하더라도 곁에 있어줄거란 믿음으로. 아마도 친구분들은 위로의 말을 건네줄 사람보다 자기 말을 들어줄 사람이 필요할지도 몰라요 ^^

2008-04-17 14: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4-17 22: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순오기 2008-04-17 18: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끔 글을 읽기는 했어도 댓글은 처음인지도 몰라요.
다른 분들의 서재에서 낯익은 이름이라 환영해주실줄 믿고 남겨요.^^
저는 가끔 살맛 안날때는 있지만, 우울증에 빠질만큼은 아니에요. 주변에 우울한 사람은 다 내게 오라, 내가 너를 기쁘게 하리라! 막 이러면서 살아요. 우울증이 전염된다면 삶의 활력도 전염될거라 생각하고... 내 즐거움에 알라딘이 한 몫 하니까 님께도 감사^^

Jade 2008-04-17 23:08   좋아요 0 | URL
지난번 박노자의 만감일기에 수능본 따님이랑 같이 읽으려 하신다고 남겨주셨어요 ^^

"우울증이 전염된다면 삶의 활력도 전염된다" 정말 멋진데요 ㅎㅎ 그건 남자들은 모르는 여자들만의 전염일지도 몰라요 큭큭

저도 순오기님 글 가끔 찾아읽는답니다. 따님이 쏙 빼닮으셨던데 ㅎㅎ 따님 이름이 "선민주"가 된 사연 읽었어요. 사실 글의 요지와 상관없이, 제가 마음에 둔 사람도 宣씨여서 완전 동질감 느낀거 있죠! 선씨 정말 흔하지 않은 성인데 ㅎㅎ

아 덧붙이자면 제 이름도 "옥이"예요 ㅋㅋ

순오기 2008-05-05 01:41   좋아요 0 | URL
'옥이'라고 댓글 달았다 해서 다시 찾아 읽어요.^^
만감일기에 그런 댓글을 달았었군요.ㅎㅎ

다락방 2008-04-30 22: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것도, 이것도 보관함!!

Jade 2008-05-01 00:21   좋아요 0 | URL
오호 역시 '우울증'은 다수의 관심사인듯 싶어요 ㅎㅎ

근데 다락방님 이책 좀 두꺼워요 ^^; 제가 500페이지 넘어가는 책들은 잘 안읽는데 어쩌다가 ㅋㅋ
 
평등해야 건강하다 - 불평등은 어떻게 사회를 병들게 하는가
리처드 윌킨슨 지음, 김홍수영 옮김 / 후마니타스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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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이 세상이 불공평하다는 것을 알고도 감내하듯이 '건강불평등'에 대해서도 어쩔수 없다는 듯 혹은 '원래 그렇다'는 듯 받아들이는 듯 싶다. 개인의 경제적 상황은 순전히 개인의 능력에 달렸다고 치부하듯 개인의 건강문제는 개인의 책임으로 돌려버리는 듯한 분위기다. 건강에 대한 관심이야 나날이 늘어가지만 대부분 '건강관련상품'구매로 이어지는 상업적 관심이다. 마치 건강관련상품의 리스트가 건강지표를 나타내기라도 하듯.

건강과 관련된 '사회적 책임'이라고 하면 흔히 산업재해나 대기오염 혹은 빈민촌의 열악한 주거환경 등 즉각적이고 가시적인 문제만 생각한다. '건강불평등'이란 말은 사회에서 소외된 빈민층의 건강을 염려하는 구호로 보이기 쉽다. 이 책의 요지는 하위 20%를 위해 세금을 더 걷자는 얘기가 아니다. 불평등으로 인해 건강이 악화되는 건 사회 구성원 전체에 해당되고 경쟁심화-적대적 사회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는 (즉각적이지만 빈도가 낮은)산업재해보다 훨씬 더 위험하다는 것. 불평등한 경제적 상태 - 열악한 주거환경이나 영양섭취 등 - 도 물론 건강에 영향을 끼치지만 불평등을 양산하는 사회구조와, (불평등한 사회일수록 더욱)적대적인 인간관계가 주는 스트레스 역시 위험하다는 것. 사회 구조가 변하지 않는 이상 ㅡ 즉 하위계층이 계속 존재하고 불평등이 줄어들지 않는 이상 사회전체의 건강은 개선되기 힘들기 때문에 결과를 완화하려는 '무상진료' 혹은 '복지혜택'은 한계를 가질수 밖에 없다는 것 등등.

이전 책 '건강불평등, 사회는 어떻게 죽이는가'에서는 주로 사망률을 기준으로 불평등이 어떻게 사회를 '죽이는지'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이 책은 스트레스, 위계적 사회구조, 구성원들과의 친밀한 관계, 폭력(살인률)등 좀 더 포괄적인 요인들을 중심으로 전개해간다. ('평등하면 건강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보단 '불평등하면 위험하다'는 것을 보여주는것이 더욱 효과적이다) 스트레스가 주는 건강상 위협이야 익히 알려진 것이지만 구체적인 사례 - 관상동맥 질환을 높인다든가, 산모의 스트레스가 아이의 평생건강과 관련된 출생시 몸무게를 결정한다든가 등 -들을 열거하면 더욱 오싹해진다. 서열화되고 소득격차가 큰 사회일수록 구성원들과의 친밀도가 떨어지고 적대감이 높아져 폭력적인 사회가 된다는 것도 상식적으로 가능한 논리지만 정작 건강과 관련해서 논의된적은 드물다. 업무에 대한 자기통제력의 상실이 건강을 더욱 악화시킨다는 지적도 흥미롭다. 이미 국민 대다수가 절대적 빈곤선을 넘어선 나라들에게 '빈곤'이란 사회적 지위의 문제라며 근소한 차이처럼 보이는 소득불평등이 상대적으로는 얼마나 큰 차이를 보이는지 재평가한다.ㅡ 총 소득에서 하위 50%가 차지하는 비율은 미국은 18%, 캐나다는 24%로 6%차이지만, 상위50%에 대한 하위50%의 비율은 각각 22%, 32%이로, 이를 근거로 캐나다 하위 50%는 미국 하위 50%에 비해 45%(32/22)나 잘사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통계는 언제나 쓰는사람 마음이니까.   

'건강'의 문제를 의료/복지체제에만 국한시키지 않고 사회 전반적인 구조에서부터 접근하기 때문에 사회과학적 요소가 많다. 계층간의 건강 격차는 의료서비스에 대한 접근 정도 보다는(저자가 활동하고 있는 영국은 무상의료체제라 오히려 빈곤층이 부유층보다 의료서비스를 더 많이 이용한다.) "왜 가난할수록 더 많은 질병에 걸리는가"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관점이 신선하다. - 전쟁을 비유로 들면 예컨대 사상자수는 군 의무대의 사후의료서비스에 달린것이 아니라 전쟁 자체의 성격에 기인한 것이다. 신자유주의는 점점 사람들을 '전쟁터'로 내몬다는 점에서 참 적절한 비유 같다. -  비중은 크지 않지만 젠더/인종에 따른 불평등을 다루고 있고 소수자(대표적으로 흑인/죄수)에게 가해지는 폭력사례를 통해 윗 사람에겐 굽실굽실 하면서 아랫사람에겐 더욱 폭력적이 되는 '자전거 타기 반응'으로 악순환되는 '사회적 위계'를 지적한것도 좋다. 흥미로운건 (지위가 낮은)사람에게 폭력적일수록 집단의 피해자 뿐 아니라 가해자의 평균 수명도 낮아진다는 것. - 여성에게 차별적인 사회일수록 남성의 평균수명이 짧다. -  한 사회/국가내의 여러 집단은 집단평균소득에 따라 건강불평등이 나타나지만 같은 소득수준의 사람들이 모여사는 집단은 더욱 친화적이고 평균수명이 길다는 사실도 의미심장하다.

그렇다면 대안은 무엇인가? 저자는 흔히 얘기되는 '기회의 평등'은 해결책이 될 수 없다고 말한다. 사회 구조 전체가 바뀌지 않는 한 결국 다른 누군가에게는 열등한 지위가 돌아갈 수 밖에 없으니까. 기회의 평등을 결과의 평등으로 대체하려는 정치적 시도들도 '불평등의 재생산'에는 눈감고 있다. 저자의 대안은 "경제 민주화"다. 현재 민주주의는 '선거'정도 수준에 머무를 뿐 경제적 활동은 민주주의에 대한 책임을 전혀 느끼지 않는 경제적 권력에 의해 통제되고 있다. 저자는 좀 더 민주적이고 평등하게 운영되는 '시장'을 위해 종업원지주제, 협동조합등을 장려한다. 물론 현재 시행되는 종업원 지주제는 경제적 인센티브제공이 목적이고 민주주의나 평등과는 별 상관 없지만 종업원지주제가 올린 높은 성과로 인해 그 비율이 높아진다면 노동자들이 주식의 51%이상 장악하는 '노동자 소유 기업'도 가능하리라는 얘기다. 노동자 소유 기업이라니! 누가 들으면 입에 게거품 물고 쓰러질 '불온한' 생각이다. 저자의 말을 들어보면

   
  노동과 경제조직을 민주적 책임성 아래에 두게 되면, 이 외에도 다른 중요한 이득을 얻을 수 있다. 그것은 노동자의 지위를 변화시킨다. 노동자들은 더 이상 단순히 타인의 목표를 위한 도구나 수단이 아니다. 노동자들은 자기 삶의 중요한 부분에 대한 통제력을 판 대가로 임금을 받고 자본가의 권력에 종속되는 교환 방식에서 벗어나 정치적으로 동등하고 민주적으로 통제되는 공동체의 한 부분으로서 협력하면서 일하는 사람이 된다. 그렇게 해서, 노동은 선출되지도 않았고 책임의 의무도 없는 고용주에게 종속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목적을 표현하는 것이 될 수 있다. (p.339)   
   

  노동자들이 자신의 노동에 통제권을 가질 수 있을때 건강하다(사망률이 낮다)는 사실은 이미 확인되었고 저자는 현재 노동자가 기업을 100% 인수했을 때, 그것이 노동자에게 미치는 건강상의 혜택이 무엇인지 평가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고 한다. 국내 최대의 기업이 노조설립조차 허용하지 않고 온갖 불법을 동원해서 경영권을 사수하려는 현 한국 상황에선 꿈같은 이야기다. 저자는 시장의 부작용을 줄이기 위해 '의료보험, 교육, 공공교통'을 시장메커니즘에서 분리해야 한다고 말하지만, 한국은 그 세가지를 더욱 시장에 맡기지 못해 안달이니까.

뒤의 역자 후기에는 역자(김홍수영)가 번역과정에서 윌킨슨과 (메일로) 묻고 답한 대화가 수록되어 있다. 위계적 서열은 강하지만 평균수명은 높은 일본이나 한국에 대해 기업 내 사람들이 개인적으로도 친밀한 '가족주의풍토' 때문일 것이라 추측한다거나 결혼에 대한 사회적 편견 등 본문에서 다루지 않은 몇가지 쟁점에 대한 윌킨슨의 의견을 엿볼수 있다. 400페이지 가까이 되는 적지않은 분량이지만 인문사회학과 자연과학의 다양한 연구결과를 인용하여 다방면으로 접근해 질리지 않고 읽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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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의 심리학
이경수.김진세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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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마흔.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는 '불혹'의 나이. 20대 초반의 나에게, '마흔'은 아직 멀기만 한. 이름처럼 흔들리지 않을것만 같은. 상상속 이미지일 뿐이다. 그런데 '부록'이라니! 언어유희라고 하기엔 너무 씁쓸한 느낌이지 않은가. '88만원 세대' 못지 않게 조기 퇴직이라는 불안감과 중년에 접어든다는 허탈함 정도가 '마흔살 남자'에 대해 가지고 있던 생각의 전부였기에 표지에 쓰인 '부록'이라는 말이 너무 잔인하게만 느껴지던. 이 책의 첫인상이었다.

정신과 의사는 환자와 개인적 관계를 맺지 않는것이 원칙이지만. 이 책은 철저히 술자리에서만 이루어진 열번의 상담을 다룬다. (이런 경우는, 굉장히 드문 케이스일거다.  대학병원 정신과교수는 한번에 15분 상담하고, 매 회당 10만원 정도씩 받는걸로 알고있는데 - 그나마도 7,8분에 끝내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  이 케이스 처럼 매 회 두세시간씩 상담한다면.....-_-;;) '정신과에 다닌다'는게 두려워 개인적인 자리를 고집했던 환자가. 처음보는 의사와 금방 허울없이 대화할 수 있었던 건 술의 힘도 있겠지만 진지하게 고민을 듣고 공감하는 의사의 진정성 때문이리라. 사실 모든 상담은, 환자와 의사의 '소통'이다. 환자는 의사에게 이야기하면서, 또 의사는 환자의 말을 들으면서, 오가는 말 속에 서로가 치유되는 것이다.  일상의 많은 부분을 대화가 차지함에도 불구하고 정신과를 찾는건.말하기 위해 듣는것이 아니라 듣기 위해 말하는 '진정한 대화'가 이루어 지지 못하기 때문이리라. 진정성을 수반한 대화는. 그 자체로 위대한 사회적 행위이자. 치유행위이다.

마흔의 남자는. 고독하다. 아니 적어도 이 책의 경수씨는 그랬다. 가까운 가족들에겐 걱정할까 말 못하고, 친구들에게도 한껏 술이 취해 서로가 기억하지 못할 상태에서나 조금씩 푸념하고. 매일 눈뜨면 어제와 똑같은 오늘, 내일, 모레...하루하루를 살아내는 것이 힘들만큼 지독한 마흔앓이를 겪었고,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저마다 다른 모습의 '마흔앓이'를 앓는단다. 왠지 남의 일 같지 않아 마음 한구석이 찌르르 저려온다. 물론 20대 초반 여자인 내가 마흔살 남자의 심경을 반에 반이라도 이해하겠냐만. '마흔앓이'를 겪듯이 누군가는 '서른앓이' 혹은 '쉰 앓이' 혹은 '꺾이는 20대 앓이' 중 일것 같아서. '자기앓이'를 만드는 건 '마흔'이라는 구체적 나이가 아니라. 자기를 잃어간다는 혹은 쫓기듯 살아간다는 자기상실감이 아닌가 싶다.   

책에서는 마흔살 남자의 지극히 평범한 일상을 놓고 이런저런 화두로 말을 풀어나간다. 자신에 대한 정체성, 어머니 아내 친구 등의 인간관계, 섹스 불륜 자녀교육 비자금 등 이런저런 고민들... 실제 경수씨와 비슷한 고민을 하고 계신 마흔 언저리 분들이라면 모를까. 솔직히 나같은 사람에게 썩 좋은 책은 아니다. 심하게 말하면 50페이지면 할 말을 억지로 300페이지로 늘려놓은 느낌. 대부분 의 문제들이 대개 다른 심리학 책에서도 다루어지는 것들이라 참신한 느낌은 없다. 이 책의 목적은, 마음을 꽁꽁 닫고 움츠러 든 평범한 40대 남자가 어떻게 자신의 우울증을 다루어 내는지 찬찬히 보여주는데 있는 것 같다. 감성적 접근으로 비슷한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어 놓기 위해.

책을 덮고 나서. 가만가만 주변 사람들을 떠올려 본다. 겉으로는 강해 보이지만 속으론 침잠해가는 사람들이 있진 않았을까. 늘 내가 의지하던 사람들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네주지 않았던 건 아닐까. 나도 누군가의 고민을 진심으로 들어줄 수 있지는 않을까..

앞으로 평생을 함께할 사람에게. 언제든 고민을 들어 줄 수 있는 반려자가 되고싶다. 따뜻한 배려와 공감의 눈빛으로 경청할 수 있는. 물론 말처럼 쉽진 않겠지.

마흔살이 보는 30대는. 팔팔하게 젊은. 호시절이겠지만. 막상 20대에서 30대로 넘어가는 그 굽이는. 겪는 사람에겐 매우 큰 일이라 한다. 문득 '서른앓이'를 하던 그 사람이 떠오르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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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10-26 23: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은 20대 불혹이 트렌드입니다 ㅋㅋ

Jade 2007-10-26 23:57   좋아요 0 | URL
ㅎㅎ 테츠님이 20대 불혹이신거죠?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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