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코드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06년 2월
절판


힘을 가진 자들은 냉소적이지 않다. 자신들의 사상을 집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압제의 희생자들도 냉소적이지 않다. 그들은 증오로 가득 차 있으며 증오란 것은 다른 강한 열정들과 마찬가지로 부수적인 일련의 믿음들을 수반하기 때문이다. - 버트런트 러셀-22쪽

위선에 아무리 많은 문제가 있다 해도 위선은 위선이 표방하는 가치들을 옹호해 주는 장점이 있다. - 마키아벨리-26쪽

크고 강한 것, 최초와 최고에 대한 집착은 언뜻 보면 우월의식인 것 같지만 기실 열등감의 현현에 지나지 않는다. - 윤평중-80쪽

반만 년의 역사/전통/우리 고유의 것이라는 등의 말을 즐겨 쓰는 것 자체가 어떤 과거에 대한 것, 권위적인 것에 대하여 무조건 굴종하는 것을 무의식적으로 나타낸 표현이다. - 윤태림-93쪽

한 명제의 객관적 진실과 논자 및 논쟁을 듣는 이들이 인정하는 타당성은 별개의 것이다 - 쇼펜하우어-104쪽

한국인들은 법에 의해 적발돼 공개된, 큰 부정부패에 대해서만 분노할 뿐 부정부패 그 자체에 대해 분노하는 건 아니다. 한국에서 부정부패에 대한 분노는 내 처지에 비추어 본 상대적 박탈감에서 비롯되는 것일 뿐이다.-120쪽

백 가지 천 가지 이유에 앞서 젓가락은 모든 음식을 한입에 들어갈 수 있도록 요리를 만든 사람의 마음속에서 비롯된 것이다. - 이어령-130쪽

민주정치와 파시즘의 경계는 그리 견고하지 않다. 둘 다 민중의 함성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전자는 개인의 자유와 선택을 보장하지만 개인성을 집단화하고 익명화하는 계기가 주어지면 순간적으로 파시즘으로 변한다. 우리에게는....증오와 질투와 파괴의 죽음 충동이 있기 때문이다....따라서 후기 산업사회를 지배하는 인터넷도 잘못 쓰이면 파시즘을 낳을 수 있다. 집단성과 익명성은 개인의 의식과 선택을 마비시킨다. - 권택영-164쪽

"만일 숭례문이 '자격 미달'로 국보 1호의 자리를 가령 훈민정음(국보 70호)에 내준다면 여태껏 우리는 훈민정음을 70등짜리 문화재로 알고 있었단 말인가" - 최정호-176쪽

우리말 가운데 '엇비슷하다'는 말은 세계 어느 나라 말로도 바굴 수 없습니다. 굳이 설명하면 '엇비슷'은 어긋났는데 비슷하다거나 닮았지만 닮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세상에 이런 말이 어디 있습니까? 이 말에 기독교와 불교를 엇비슷하게 보는 한국인의 의식이 그대로 녹아 있습니다. 어긋나고 비슷한 것이 하나의 단어가 된 것은 바로 한국인 특유의 포용의식의 상장이죠. 우리 문화에는 21세기 다원주의를 흡수할 수 있는 여러 가치가 공존합니다. 엇비슷하다는 말은 아시아적 화이부동(和而不同) 철학을 담고 있습니다. - 이어령-273쪽

어떤 역사적 상황에서의 정치경제적인 이유와 조건 때문에 생겼음직한 문화적 현상에 대해 그 배경을 무시하고 그게 바로 한국의 문화요 한국인의 특성이라고 해버린다면 우리는 순환논리의 함정에 빠지게 된다.-279쪽

한국인들의 경제적 보수성은 한국 경제의 본질이다. 해외의존도가 70%가 넘고 늘 위태롭다. 사회복지는 박약하고 자녀교육은 살벌한 계급전쟁이다. 경제적 보수성은 생존권 차원의 문제다. 김대중/노무현 열성 지지자들조차 보수신문을 열심히 구독하는것도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다....노정권은 한국인 상당수가 갖고 있는 "정치적 진보성, 경제적 보수성'의 실체를 간파하지 못했다. 아니 감히 '보수성'이라고 말하기도 어렵다. 날이 갈수록 심해지는 빈부 양극화 체제에서 '경제'를 외치는 건 생존의 문제인지라 그걸 가리켜 '보수성'이라고 부르는 건 기본적인 생계유지에 별 지장이 없는 지식계급의 편견의 소산일 수도 있다.-292쪽

우리는 언제부턴가 국민에게 무얼 요청하기보다는 늘 국민을 위해 무얼 보여주겠다는 정치 담론의 홍수 속에 파묻혀 살게 되었다. 즉, 국민의 기대수준을 턱 없이 높여놓는 경쟁이 정치의 알파이자 오메가인 양 인식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놓고선 나중에 감당을 하지 못해 비틀거리는 리더십을 보여줌으로써 정치에 대한 염증만을 더 키우는 일을 범국민운동 비슷하게 하고 있는게 아니냐는 거다. -294쪽

사실을 말하자면 '민중예찬'은 일부 좌파의 전유물이 아니라 보수신문의 지면에서 더 자주 나타나고 있다. 이른바 '민중 상업화'다 우파가 주로 돈벌이 용도로 '민중 상업화'를 써먹는다면, 좌파는 주로 헤게모니 투쟁의 용도로 '민중 상업화'를 동원한다.....특히 일부 개혁/진보파의 '민중 예찬'은 편의주의에 경도돼 있다. 그들은 이른바 '박정희 신드롬'이나 '이건희 신드롬'을 정직하게, 아니 총체적으로 대응하지 않는다. 무지몽매이ㅡ 비극으로 보면서 그것마저도 보수언론 탓으로 돌린다. 그러다가도 그 무지몽매한 대중이 선거판에서 뭘 좀 보여주면 헷가닥 '민중예찬론'으로 돌아선다. 두 개의 전혀 다른 사건에 대한 상호 연관성은 규명되지 않는다. -296쪽

원론과 상식은 반박이 불가능하다. 그래서 늘 승리한다. 그러나 그건 실속없는 승리다.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 세계는 원론과 상식만으로 대처하기엔 너무도 복잡하기 때문이다. 상식이 잘 통용되지 않는 사회에서 상식을 무기 삼아 싸우는 건 필요한 일이거니와 바람직한 일이다. 그러나 매사에 상식을 전방위적 무기로 사용하면 비극이발생할 수도 있다.아무리 상식이 잘 통용되지 않는 사회라도 상식마능론 파악할 수 없는 복잡한 일들이 있는 법인데, 그것마저 해오던 습관대로 상식의 칼로 단순명쾌하게 재단하려 한다면 그건 폭력으로 변질될 수 있기 때문이다. -29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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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조부 2010-08-28 10: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읽었는지 안 읽었는지 가물가물가네요~


인용한 이야기 중에는 윤평중씨가 한 발언에 공감이 갑니다.

한참 지났지만, 윤평중과 강준만의 논쟁이 생각나네요.

윤평중선생은 그 논쟁의 결과물을 논쟁과 담론 이라는 책으로 출판했던게 기억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