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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의 탄생 ㅣ 우석훈 한국경제대안 4
우석훈 지음 / 개마고원 / 2008년 9월
평점 :
품절
구어체의 강연식 책이라 그럴까. 읽는 중간중간 강연회에서 보았던 우석훈씨의 모습이 떠올랐다. 큰 눈에 어딘가 선해보이는 얼굴. 책에서는 거침없는 말을 툭툭 뱉어내지만 인간 우석훈은 '삐딱하다'기 보단 많이 지쳐보였다. 개인적으로는 아무런 연고도 없는 저자지만 이번 책에서 만큼은 "무언가 열심히 애쓰는"듯한 인상을 받았다. 이 책은 "한국경제대안 시리즈" 마지막 권이지만, 서문에 쓰여 있듯이 사실 "대안"이 초점이 아니다. 대안 사회에 대한 아이디어는 늘상 넘쳐났으니까. 시작도 전에 좌절하는 우리의 빈곤한 상상력이 문제일 뿐. 저자의 말을 빌리면 "대안은 이미 존재하고 또 이런것들의 조합이나 상상력을 통한 새로운 정책은 한국에서 수없이 제시되었고, 또 원한다면 수없는 조합으로 그 개수를 늘릴 수가 있"지만 여전히 "이 모양"이다. 아니 왜?
다른 서재지기님의 말을 인용하면 이 책은 요약하고 요약한 '알약'같은 책이다. 경제학적 지식이 부족하더라도 조금만 끈기있게 읽으면 무난히 읽어낼 수 있다. 생소하다 싶은 용어는 친절히 설명해놓은 주석도 있고. 경제학에 '관심'이 있는 독자, 특히 지금 한국사회가 무언가 잘못되었다고 느끼는 젊은층을 위한 책이다. ('촌놈들'을 읽을때만해도 별로 못느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는 확실히 쉽게쓰려, 대중적이게 쓰려 무진장 노력했다는 느낌이 팍팍 전해진다) 나는 이런류의 책을 좋아한다. 무슨말인지 몰라 머리를 쥐어뜯다 스르륵 잠들고 마는 어려운 원론책들보다 훨씬 좋지 않나. 문외한으로서 접근하기도 쉽고. 허나 이런류의 책은 어디까지나 '입문'을 위한, 즉 더 심도있는 공부와 고민을 위한 안내서가 되어야 한다. 더 많은 공부와 치열한 고민이 수반되지 않는다면 뭘 잘 모르면서 쉽게 아는체 하고 싶어하는 나같은 '아마추어'에게는 독이 될수도 있다는 말. "화려한 휴가"를 보고 눈물을 쏟아내며 전두환 욕하던 사람들이 투표장에선 아낌없이 한나라당을 찍는다는 슬픈 유머가 통용되는 사회니까.
표지의 귀여운(?) 괴물의 목을 동강내고 있는 제목 밑에는 웬 적분식이 부제처럼 달려있다. 1998년부터 2008년까지, 서울의 SKY출신 토호들과 조선일보를 소통양식으로 삼는 한나라당의 핵심 지지자들(제곱근!)에 해당하는 지방토호들을 합해서 함수에 넣고 적분한 식, 지난 10년간 2~3%에 해당하는 '엘리트집단'들이 이끌어 온 한국경제에 대한 우석훈식 패러디다. 이 시리즈의 책들은 곳곳에 이런 '우석훈식 유머'들이 깔려있다. 이를테면 다음 문장들.
"학자로서의 삶을 거의 포기할 뻔했던 절망의 순간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의욕을 불타게 해준 이명박 대통령에게도 남다른 감사를 보인다"
"노무현 대통령의 임기가 4년중임이 아니라 5년 단임이라서 완벽하게 한국을 망치기에는 시간이 좀 짧았던 것 아닌가 생각한다. 만약 바로 그 시기에 지금의 이명박이 대통령 자리에 있었다면, 아마 5년만으로도 충분했을 것 같다"
자칭 C급 경제학자라고는 하지만 공부도 많이 하고 관료로서 편하게 지낼수도 있었던 학자가 왜 이런 대중서적을 내고 강연회를 하고 칼럼들을 쓰는걸까 라고 생각한 적이 있다.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책을 내는것은 (책이 잘 팔린다면) 어떤 명성과 부를 얻을수도 있겠지만 이런 불온한 책을 내는것은 출판 자체도 힘들고 출판 후에도 그리 순탄치만은 않을텐데 말이다. 물론, 사람이 항상 경제적/물질적 이익만을 추구하는 것은 아니니까 이유야 얼마든지 찾을 수 있겠지만. 무엇이 이 사람을 끌고 나왔을까? (이렇게 써놓으니 마치 지난 촛불집회를 두고 "무엇이 이들을 거리로 이끌었는가?"하는 질문같다.) 우석훈식 표현을 빌리면 뇌는 뻥 뚫리고 입만 커져버린 "지옥의 시민"과 흡사한 한국 정치인, 기업인, 학부형, 그리고 "부자되세요"라는 저주스런 주문만 중얼대고 있는 우리 사회가 그 범인인 셈이다.
이 책을 보고 학문적으로 말이 안된다고 토를 달 '일반인'은 별로 없을거다.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이라든지 제시한 대안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충분하겠지만 말이다. (사실 이 책은 "대안"을 위한 책이 아니라 이런저런 가능성을 열어보이는게 목적인만큼 제시한 대안들에 대해 말이 된다 안된다 가열찬 논쟁이라도 붙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썼을것 같다.) 책의 시작은 다른 순수학문들과 마찬가지로 경제학도 '순수이론'쪽은 거의 죽어가고 돈되는 응용경제학쪽만 남았다는 한탄이다. 제대로 된 경제학자가 나오기 어려운 학계의 상황과, 다른 나라로 치면 '극우파'에 해당하는 학자가 '건전한 보수'의 버팀목 역할을 하고 있는 '극우파들의 나라' 한국. 세계 자본주의의 역사 - 국가와 시장, 위기 등 - 을 훝어보고 우석훈이 괴물의 "탄생"시기라고 말하는 '98년 부터 삐그덕대는 한국경제에 대한 분석 등등. 요즘 나온 '사회과학서'라면 빠지지 않고 언급될만한 국내상황들이 쭉 나열되어 있고 '촌놈들'을 잇는 '파시즘'에의 우려 등으로 대강 과거-현재의 상황보고가 끝난다. 그러면 미래는?
사실 미래는 독자가 고민할 몫이다. (아니할 말로 저자가 끝내주는 대안을 제시했다고 해서 머리숙이고 얌전히 따라할것도 아니지 않은가?) 우석훈 역시 자기의 대안은 "여러가지의 가능성 중 하나이며, 먼저 고민했던 사람으로서 펼쳐보이는 것"이라고 되풀이해서 말한다. 우석훈이 제시하는 대안은 "에너지와 자원의 투입은 줄이고, 지식과 문화의 투입은 늘리는 국민경제"다. 지식-문화형 국민경제로 전환하는데 필요한 세가지 과제를 거칠게 요약해보면
1)사교육 해체와 교육문제의 대안
2) 지방자치의 틀 변혁 - 연방제를 도입하면서 중앙화구조를 보완할 수 있는 상/하원 양원제 도입,
3) 제3부분의 발전 - 종교기관을 구심점으로 한 생활협동조합의 활성화, 대기업들의 공적기금 조성, 정부보조금
정도다. 물론, 각 과제마자 한 장(章)씩을 할애해서 구구절절 긴 설명을 덧붙여놓았는데 요점은 이 모든것들이 허황된것이 아니라 "충분히 가능하다"다. "There is no alternative"에 맞서는 "Another world is possible"의 느낌이랄까. 결국 이명박이나 노무현 "까기"가 중요한게 아니라 "가능성"이 중요한 것이다. 공부하고 고민하고 행동해라! 길이 열릴 것이니..
우석훈의 책이 좋은 이유는 읽기에 쉬우면서도 '불후의 고전'이나 '명작'들이 종종 인용된다는 것. (일전에 어느 인터뷰에서 "지식인은 일주일에 최소 2권이상 책을 읽어야 한다"고 했던데 글을 보면 확실히 "책읽은 내공"이 드러난다) 쉽고 재미있는 맥락에서 인용되는 책들은, 그 명성이 주는 압박에도 불구하고 한번쯤 읽어보고싶을만큼 매력적이다. 이 책의 제목으로 마지막까지 "괴물의 탄생"과 "괴물의 해체"가 경합했다는데, '리바이어던'과 '비극의 탄생'은 이 책 덕에 관심도서 목록에 올랐다. . 신자유주의적 경제질서의 원형을 만들었다는 하이에크의 책을 보면 한나라당이 떠드는 "잃어버린 10년"이나 "747경제"등이 얼마나 황당하면서도 잔인한 민족패권론자인지 이해가 좀 갈 거 라는데...기득권자들은 참 편하다. 공부를 안해도 자기들이 하는 말이 곧 논리가 되니 ^^ 그에 맞서려면 공부해서 그 '말도 안되는 논리'를 깨는수밖에... 결론은 또 "공부하라"구나.
결론. 이 책은 일차적으로 10대와 20대들을 위한, '가능성을' 위한 책이다. 10년후 또 다른 '공포경제학'시리즈를 집필하지 않길 바란다는 저자의 '소박'한 희망이 '절박'이 되지 않길 바랄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