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밥상 - 농장에서 식탁까지, 그 길고 잔인한 여정에 대한 논쟁적 탐험
피터 싱어.짐 메이슨 지음, 함규진 옮김 / 산책자 / 2008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처음 유기농에 관심가지게 된 계기는 가공식품에 들어가는 온갖 첨가물들에 대한 정보를 접하면서ㅡ 그저 조금더 '안전한 것'을 먹고 싶다는 지극히 개인적인 욕구였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유기농'이란 단어에서 well-being 혹은 돈 많고 여유로운 사람들의 유난법석을 떠올릴 것이다. (얼마전 백분토론에서 다수의 미국교포들도 20개월 이하의, 상등급 쇠고기만 먹는다는 이선영주부의 말에 "한국 사람들이 요즘 "유기농" 야채 많이들 찾는것도 아시죠?"라고 논점을 흐렸던 분도 있지 않았나.) 사람들이 굳이 비싼 유기농을 찾는 이유는 크케 두가지 이다.ㅡ 집에 아이가 있거나, 건강에 관심이 많아 기꺼이 비용을 치를 의향이 있거나. 그렇다면 유기농 선호는 개인의 취향 내지 식습관 정도로 치부할 수도 있겠다.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바로 그 일반적 인식을 뒤집는 한마디다. "무엇을 먹느냐는 지극히 정치적인 행위다."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책의 특성상 초반부엔 자극적인 묘사가 많다. 싸움 방지를 위해 부리가 잘린채로 좁은 닭장에 갇혀있다가 때가 되면 목이 제대로 잘리지 않은 상태로 끓는물에 던져지는 닭. 태어난지 열흘만에 마취없이 거세당하고 역시 서로 물어뜯을까 꼬리가 잘린 채 좁은 공간에 갇혀있다가 성장촉진제와 항생제로 키워서 도살당하는 돼지. 더 많은 우유생산을 위해 성장호르몬을 맞으며 끊임없이 임신하고 ('젖 분비'라는 본 목적을 위해 어쩔수 없이 생기는 '부산물'인 새끼소는 생후 40분이 지나면 어미에게서 분리되 쓸쓸히 죽는다) 본 수명인 20년을 4~5년만에 압축적으로 살아내는 젖소. 그리고 MB덕에 많은 한국인들이 사육과정을 속속들이 알게된 육류용 소. 마트에서 보던 "신선하고 깔끔한" 온갖 육류들과 이 책이 그려내는 사육장 광경의, 그 아찔한 간격이란. 최상의 마블링은 미식가들의 혀를 자극하지만 ㅡ 그 '아름다운 맛'을 위해 팔자에 없는 곡물사료를 먹어야 하는 소라니. 아니 무슨 몸과 마음을 쥐어짜서 걸작을 탄생시키는 예술가도 아니고. 그나마도 예술작품처럼 온 몸을 다해 맛을 음미하는 것도 아니고 그저 별 감흥없이 매일 먹는 평범한 식재료가 되는 것일 뿐인데. (이부분을 읽다 보면 마치 축산업자들이 인정이라곤 눈곱만큼도 없는 파렴치한으로 보일수도 있지만, 그들이 특별히 나빠서가 아니라 경쟁 - MB가 특히 좋아하는! - 에서 살아남으려면 원가절감을 위해 어쩔수 없다는 설명이다. 저자도 특정 농장주를 비난하기 보다는 전체 사회 시스템을 비판하는 쪽이다.)

솔직히, 이부분까지 읽고는 (평소에 육지동물 고기보다는 바다동물을 선호하기에) "그래, 역시 해산물이 대안이다"라고, 섣부른 결론을 내렸었다. 아니나다를까. 다음은 해산물이다. 더러 "(육지)동물들의 눈을 보면 차마 먹을수가 없다"고 말하는 감수성 예민한 분들이 있는데ㅡ 아직 "물고기나 새우, 게의 고통이 느껴져서" 먹을수가 없다고 말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은 듯 하다. 유유상종이라고 인간과 가까운 동물에게서만 '동질감'을 느끼는건지. 하여 이 부분은 감성적 자극보다 논리적 설득의 측면이 강하다. 생산물보다 (굶주리는 사람을 살리는 데 쓸 수도 있는)더 많은 양의 작은 고기들을 사료로 써야 하는 양식업의 비합리성, 품종 개량한 연어가 양식장을 탈출했을때의 생물학적 교란 가능성, 밀집 사육의 위험성, 무분별한 노획 결과 파괴되는 바다 밑 환경과 멸종위기에 처란 많은 희귀종들 등. 앞장이 어떤 '고통에 대한 감수성'을 자극한다면 이 장 부터는 슬슬 일상의 '먹는 행위'에 대해 돌아보게 만든다. 별 목적의식없이 형성된 나의 식습관 때문에 오늘도 파괴적인 사육/양식/남획이 자행된다면? 내가 꼭 이걸 먹어야 할까?

** 책의 저자는 먹는것을 계속 '윤리적 문제'와 결부시킨다. 다른 생물에게 (겪지 않을수도 있는)고통을 겪게 하는 것이 비 윤리적이라는 전제하에 따로 지면을 내어 수상생물들이 느끼는 '고통'의 정도에 관한 여러 연구결과를 소개하고 있는것이 재미있다.

이 책의 장점은 '양심적 식생활'에 대해 다양한 분야에서 입체적으로 접근하는 것이다. 동물 학대를 (나름대로) 최소화 한 '지속 가능한 사육'농장들 소개도 나오고 육류의 거대 소비자인 맥도날드와 월마트를 상대로 한 투쟁 및 성과도 있다. '유기농 상품'이 새로운 수익의 원천이 되면서 대기업들의 로비로 점점 부실해지는 '유기농 상표'의 허구성에 대해서도 다룬다. 기업형 농업이 되면서 농장 유지 - 온도 조절 등 - 나 상품의 운송에 들어가는 화학연료의 비중도 만만치 않은데 대개는 근교에서 재배한 '제철 토산품'이 훨씬 환경친화적-지속 가능하지만 제철 과일의 빠른 숙성을 위해 들이는 석유의 양이 멀리 떨어진 곳(품목에 따라 농산품 수출을 주요산업으로 삼는 다른 빈국이 될수도 있다)에서 실어오는데 드는 석유보다 많은 경우도 있다. 정치적으로 올바른 혹은 양심적인 소비자가 되고싶다면 이것저것 생각할 것이 많다. 결국 소비자가 스스로 똑똑해져야 하는데 밥벌이에 치여사는 많은 가정들에겐 만만치 않은 부담이다.     

저자의 궁극적 목표는 '베건'이 되는 것이다.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길러낸 작물들만 먹는. 베건 숫자가 늘어나면서 (주로 콩을 활용한) '대체 음식 - 콩 베이컨, 콩 소세지 등'상품도 많이 개발되었고, 일반적인 믿음과는 달리 꼭 동물성 단백질을 섭취해야만 건강을 유지하는것은 아니다. (이 주장에 대해서는 부연설명이 필요한데, 충분한 영양 섭취가 어려운 가난한 나라의 국민들에게는, 즉 부족한 영양소를 체크해가며 따로 챙겨 먹을만한 여유가 없는 상황에서는 동물성 단백질섭취가 더 효율적/필수적인 영양공급원이 될 수 있다. 어차피 이 책의 타켓은 '영양 과잉'인 보통 사람들이니까.) 동물의 고통 문제가 아니더라도 사료용 작물을 길러내는데 드는 엄청난 양의 물과 토지, 동물들이 배출하는 배설물(거대규모의 농장이 배출하는 오염물질의 피해는 상상초월이다.)때문에 고통받는 공장주변 사람들을 생각한다면 육류를 먹는것 자체로 이미 타인에게 일정한 부담을 지는 셈이다. 흔히 기업형 대량생산 상품이 싼 이유 중 하나로 '타인을 착취함으로써 그 비용을 전가하는 것'을 드는데 (대규모의)동물 사육이나 (농약/화학비료를 쓰는) 재래식 농업의 경우 사람뿐 아니라 후대에 물려줄 토지(포괄적으로 자연자원)를 착취하고 있는 셈이다. 혹자는 '지속 가능할 농업'의 생산성이 낮아 늘어나는 인구를 감당할 수 없다 말하지만 이건 멜서스 '인구론'을 연상시키는 사실 왜곡이다. 재래식 농업은 지력을 빨리 소모해서 갈수록 생산성이 떨어지지만 지속가능한 농업의 생산성은 유지되는 경향이 있어서 장기적으로는 큰 차이가 없다는 사실. 유기농은 가격이 비싸 일부 사람만 접근할 수 있다는 반론은 상당히 현실적이지만ㅡ 이 책은 한잔에 4.5달러쯤 하는 카페라테나, 아니면 블루마운틴 커피를 마시는 데는 돈을 아끼지 않으면서 일상적 식재료에 돈이 많이 드는 것을 견딜 수 없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고 맞받아친다. '먹는것'에 어느정도 중요성을 두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얘기.   

옮긴이가 후기에 이런 반론을 적었다. 

"극단적인 논리로, 지금 모든 사람이 베건이 된다고 하자. 그러면 수천억 마리에 달하는 가축은 어떻게 될까? 애완동물로 키워질까? 대부분은 야생으로 돌아갔다가 생소한 환경과 먹이의 부족을 견디지 못하고 죽어갈 것이다. 그러면 인간이 이제껏 저지른 중 최대 규모의 동물 학살이 되지 않겠는가? 어차피 그들은 전부 도살될 운명이었고, 축산업을 폐지하지 않는다면 더욱 많은 동물이 고통받고 죽어가게 된다고 할지도 모른다. 그런다면 수백조의 희생을 방지하기 위한 수천억의 희생은 정당하다는 것인가? 그렇다고 하면, 인간과 동물의 생명의 가치에 근본적 차이를 둘 수 없다고 할 때, 인간이 멸종하는 편이 더 윤리적인 것이 아닐까?

이 슬픈 문구를 읽는데 뜬금없이 레닌의 연설이 떠올랐다.

"만약 사회주의가, 모든 사람의 지적 수준이 그것을 용인할 정도로 발전한 후에야 실현될 수 있다면, 우리는 최소한 5백년 동안은 사회주의를 보지 못할 것입니다"

일단, 모든 사람들이 베건이 된다는 논리는 그야말로 '극단적 예'일 뿐이고. 여러가지 현실적 문제 때문에 모든 농업이나 축산업이 지속가능한 것으로 바뀌기도 힘들다. 그리고 '유기농'이 옳다고 해서 현재의 '유기농 산업/상품'이 모두 옳다고 할 수 있는것은 아니기에 소비자 개개인이 유기농 식품을 사먹는다고 해서 당장 모든 상황이 좋아지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일상적인 행위에 담긴 정치적인 의미를 깨닫고ㅡ 바꾸기 위해 노력한다는 것. 작은 것에 의미를 부여하며 자기 삶을 되돌아 볼 수 있는 계기가 된다면, 그런 사람들이 많아진다면, 크고 작은 시행착오야 있겠지만 결국 올바른 쪽으로 선회하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맥도날드가 1밀리미터 만큼 움직이자 나머지 업계가 일제히 뒤를 따랐던" 경우처럼.  

'食'은 세상과 소통하는, 다른 생명을 받아 내 생명을 이어가는 거룩한 행위다. 나는 그리 냉철한 합리주의자는 안되기에 적어도 음식에 관해선 재료가 된 생명들의 -탄수화물/지방/단백질로 환원되지 않는, 생명만이 갖는 -에너지가 전해진다고 믿는, 소박한 신비주의자에 가깝다. 나는 행동가도, 이론가도 아닌, 그저 평범한 소시민에 불과하지만 내가 세상의 일부라면, 나의 변화는 세상이 변하는 일부라고 생각하는, 소박한 낙관주의자이기도 하다. 단지 내 몸의 건강을 위해서가 아니라 정치적 행위라고 생각하니 식재료를 사는 일에 더욱 신중해지고 '비용'에 조금 덜 민감해진것은 사실이다. 혹자는 "그러면 먹을게 없다"느니 "왜 그렇게 세상을 피곤하게 사냐"고 말할 수 도 있겠지만 아무것도 변하지 않을거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는 회피의 다른 말이다. 촛불 들고 거리에 나가는 것이 정치적 입장 표명이듯 무엇을 먹느냐 역시 지극히 정치적인 입장 표명이다.  

** 책을 읽고 난 후 ㅡ 데릭 젠슨이 쓴 '거짓된 진실'과 비슷한 여운이 남는다. 물론 두 작가의 문체는 상이하고 (데릭 젠슨 쪽이 훨씬 시니컬하다) 내용도 다르지만 글의 구성을 보면 수많은 실존인물들이 등장하고, 그들과의 대화가 상당부분 차지하기에 빨리 읽히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산만하기도 하다. 실존 인물들의 '증언'은 때로 강렬하고 명쾌한 인상을 남긴다. 두 책 다 두껍지만 읽는데 어려운 책은 아니다. 단, 내용이 머리에 와 닿는 충격을 흡수하는 건 매우 힘든 과정일수도.


댓글(6)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순오기 2008-06-27 08: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혹해서 사기는 했는데 차분히 읽지는 않아서... 사들이고 방치되는 책이 많다는 사실에 반성하고, 님의 친절한 리뷰로 짐작만 할 뿐...
책 잘 받았어요. 제 서재에 사진도 올렸어요. 감사~~ ^^

Jade 2008-06-27 11:05   좋아요 0 | URL
아 서재에 올리신 글 봤어요! ㅎㅎ 책꽂이 멋지던데요! >.<

Arm 2008-06-29 21: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삼겹살을 너무도 너무도 좋아하는 제 입맛을 진지하게 되돌아보고 싶어서 구입했어요! 미뤄두고 있었는데, 리뷰를 보니 한층 책맛이 땡기네요~ 그런데요 생협을 통해서 구매하는 유기농 농산물은 오히려 더 저렴하다고 들었는데요. 순오기님은 어떻게 실천하고 계신가요? 제게도 노하우를;;♪

Jade 2008-07-01 01:52   좋아요 0 | URL
헉 저는 순오기님이 아닌데요 ㅋㅋ

Arm 2008-07-04 01: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이제야 발견!!죄송해요ㅠㅠ;;;;;;;;;;;;;;;;;;

순오기 2008-07-18 08:08   좋아요 0 | URL
ㅎㅎㅎ 순오기도 이제야 발견~~~~ ^^
저는 생협거래 안해봐서 잘 몰라요. 유기농은 제 가정 경제상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당신으로 알고 산답니다.ㅜㅜ
우린 싸고도 양 많이 주는 푸성귀들만 먹고 살거든요.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