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의 심리학
이경수.김진세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07년 9월
평점 :
품절


마흔.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는 '불혹'의 나이. 20대 초반의 나에게, '마흔'은 아직 멀기만 한. 이름처럼 흔들리지 않을것만 같은. 상상속 이미지일 뿐이다. 그런데 '부록'이라니! 언어유희라고 하기엔 너무 씁쓸한 느낌이지 않은가. '88만원 세대' 못지 않게 조기 퇴직이라는 불안감과 중년에 접어든다는 허탈함 정도가 '마흔살 남자'에 대해 가지고 있던 생각의 전부였기에 표지에 쓰인 '부록'이라는 말이 너무 잔인하게만 느껴지던. 이 책의 첫인상이었다.

정신과 의사는 환자와 개인적 관계를 맺지 않는것이 원칙이지만. 이 책은 철저히 술자리에서만 이루어진 열번의 상담을 다룬다. (이런 경우는, 굉장히 드문 케이스일거다.  대학병원 정신과교수는 한번에 15분 상담하고, 매 회당 10만원 정도씩 받는걸로 알고있는데 - 그나마도 7,8분에 끝내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  이 케이스 처럼 매 회 두세시간씩 상담한다면.....-_-;;) '정신과에 다닌다'는게 두려워 개인적인 자리를 고집했던 환자가. 처음보는 의사와 금방 허울없이 대화할 수 있었던 건 술의 힘도 있겠지만 진지하게 고민을 듣고 공감하는 의사의 진정성 때문이리라. 사실 모든 상담은, 환자와 의사의 '소통'이다. 환자는 의사에게 이야기하면서, 또 의사는 환자의 말을 들으면서, 오가는 말 속에 서로가 치유되는 것이다.  일상의 많은 부분을 대화가 차지함에도 불구하고 정신과를 찾는건.말하기 위해 듣는것이 아니라 듣기 위해 말하는 '진정한 대화'가 이루어 지지 못하기 때문이리라. 진정성을 수반한 대화는. 그 자체로 위대한 사회적 행위이자. 치유행위이다.

마흔의 남자는. 고독하다. 아니 적어도 이 책의 경수씨는 그랬다. 가까운 가족들에겐 걱정할까 말 못하고, 친구들에게도 한껏 술이 취해 서로가 기억하지 못할 상태에서나 조금씩 푸념하고. 매일 눈뜨면 어제와 똑같은 오늘, 내일, 모레...하루하루를 살아내는 것이 힘들만큼 지독한 마흔앓이를 겪었고,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저마다 다른 모습의 '마흔앓이'를 앓는단다. 왠지 남의 일 같지 않아 마음 한구석이 찌르르 저려온다. 물론 20대 초반 여자인 내가 마흔살 남자의 심경을 반에 반이라도 이해하겠냐만. '마흔앓이'를 겪듯이 누군가는 '서른앓이' 혹은 '쉰 앓이' 혹은 '꺾이는 20대 앓이' 중 일것 같아서. '자기앓이'를 만드는 건 '마흔'이라는 구체적 나이가 아니라. 자기를 잃어간다는 혹은 쫓기듯 살아간다는 자기상실감이 아닌가 싶다.   

책에서는 마흔살 남자의 지극히 평범한 일상을 놓고 이런저런 화두로 말을 풀어나간다. 자신에 대한 정체성, 어머니 아내 친구 등의 인간관계, 섹스 불륜 자녀교육 비자금 등 이런저런 고민들... 실제 경수씨와 비슷한 고민을 하고 계신 마흔 언저리 분들이라면 모를까. 솔직히 나같은 사람에게 썩 좋은 책은 아니다. 심하게 말하면 50페이지면 할 말을 억지로 300페이지로 늘려놓은 느낌. 대부분 의 문제들이 대개 다른 심리학 책에서도 다루어지는 것들이라 참신한 느낌은 없다. 이 책의 목적은, 마음을 꽁꽁 닫고 움츠러 든 평범한 40대 남자가 어떻게 자신의 우울증을 다루어 내는지 찬찬히 보여주는데 있는 것 같다. 감성적 접근으로 비슷한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어 놓기 위해.

책을 덮고 나서. 가만가만 주변 사람들을 떠올려 본다. 겉으로는 강해 보이지만 속으론 침잠해가는 사람들이 있진 않았을까. 늘 내가 의지하던 사람들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네주지 않았던 건 아닐까. 나도 누군가의 고민을 진심으로 들어줄 수 있지는 않을까..

앞으로 평생을 함께할 사람에게. 언제든 고민을 들어 줄 수 있는 반려자가 되고싶다. 따뜻한 배려와 공감의 눈빛으로 경청할 수 있는. 물론 말처럼 쉽진 않겠지.

마흔살이 보는 30대는. 팔팔하게 젊은. 호시절이겠지만. 막상 20대에서 30대로 넘어가는 그 굽이는. 겪는 사람에겐 매우 큰 일이라 한다. 문득 '서른앓이'를 하던 그 사람이 떠오르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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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10-26 23: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은 20대 불혹이 트렌드입니다 ㅋㅋ

Jade 2007-10-26 23:57   좋아요 0 | URL
ㅎㅎ 테츠님이 20대 불혹이신거죠?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