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등해야 건강하다 - 불평등은 어떻게 사회를 병들게 하는가
리처드 윌킨슨 지음, 김홍수영 옮김 / 후마니타스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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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이 세상이 불공평하다는 것을 알고도 감내하듯이 '건강불평등'에 대해서도 어쩔수 없다는 듯 혹은 '원래 그렇다'는 듯 받아들이는 듯 싶다. 개인의 경제적 상황은 순전히 개인의 능력에 달렸다고 치부하듯 개인의 건강문제는 개인의 책임으로 돌려버리는 듯한 분위기다. 건강에 대한 관심이야 나날이 늘어가지만 대부분 '건강관련상품'구매로 이어지는 상업적 관심이다. 마치 건강관련상품의 리스트가 건강지표를 나타내기라도 하듯.

건강과 관련된 '사회적 책임'이라고 하면 흔히 산업재해나 대기오염 혹은 빈민촌의 열악한 주거환경 등 즉각적이고 가시적인 문제만 생각한다. '건강불평등'이란 말은 사회에서 소외된 빈민층의 건강을 염려하는 구호로 보이기 쉽다. 이 책의 요지는 하위 20%를 위해 세금을 더 걷자는 얘기가 아니다. 불평등으로 인해 건강이 악화되는 건 사회 구성원 전체에 해당되고 경쟁심화-적대적 사회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는 (즉각적이지만 빈도가 낮은)산업재해보다 훨씬 더 위험하다는 것. 불평등한 경제적 상태 - 열악한 주거환경이나 영양섭취 등 - 도 물론 건강에 영향을 끼치지만 불평등을 양산하는 사회구조와, (불평등한 사회일수록 더욱)적대적인 인간관계가 주는 스트레스 역시 위험하다는 것. 사회 구조가 변하지 않는 이상 ㅡ 즉 하위계층이 계속 존재하고 불평등이 줄어들지 않는 이상 사회전체의 건강은 개선되기 힘들기 때문에 결과를 완화하려는 '무상진료' 혹은 '복지혜택'은 한계를 가질수 밖에 없다는 것 등등.

이전 책 '건강불평등, 사회는 어떻게 죽이는가'에서는 주로 사망률을 기준으로 불평등이 어떻게 사회를 '죽이는지'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이 책은 스트레스, 위계적 사회구조, 구성원들과의 친밀한 관계, 폭력(살인률)등 좀 더 포괄적인 요인들을 중심으로 전개해간다. ('평등하면 건강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보단 '불평등하면 위험하다'는 것을 보여주는것이 더욱 효과적이다) 스트레스가 주는 건강상 위협이야 익히 알려진 것이지만 구체적인 사례 - 관상동맥 질환을 높인다든가, 산모의 스트레스가 아이의 평생건강과 관련된 출생시 몸무게를 결정한다든가 등 -들을 열거하면 더욱 오싹해진다. 서열화되고 소득격차가 큰 사회일수록 구성원들과의 친밀도가 떨어지고 적대감이 높아져 폭력적인 사회가 된다는 것도 상식적으로 가능한 논리지만 정작 건강과 관련해서 논의된적은 드물다. 업무에 대한 자기통제력의 상실이 건강을 더욱 악화시킨다는 지적도 흥미롭다. 이미 국민 대다수가 절대적 빈곤선을 넘어선 나라들에게 '빈곤'이란 사회적 지위의 문제라며 근소한 차이처럼 보이는 소득불평등이 상대적으로는 얼마나 큰 차이를 보이는지 재평가한다.ㅡ 총 소득에서 하위 50%가 차지하는 비율은 미국은 18%, 캐나다는 24%로 6%차이지만, 상위50%에 대한 하위50%의 비율은 각각 22%, 32%이로, 이를 근거로 캐나다 하위 50%는 미국 하위 50%에 비해 45%(32/22)나 잘사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통계는 언제나 쓰는사람 마음이니까.   

'건강'의 문제를 의료/복지체제에만 국한시키지 않고 사회 전반적인 구조에서부터 접근하기 때문에 사회과학적 요소가 많다. 계층간의 건강 격차는 의료서비스에 대한 접근 정도 보다는(저자가 활동하고 있는 영국은 무상의료체제라 오히려 빈곤층이 부유층보다 의료서비스를 더 많이 이용한다.) "왜 가난할수록 더 많은 질병에 걸리는가"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관점이 신선하다. - 전쟁을 비유로 들면 예컨대 사상자수는 군 의무대의 사후의료서비스에 달린것이 아니라 전쟁 자체의 성격에 기인한 것이다. 신자유주의는 점점 사람들을 '전쟁터'로 내몬다는 점에서 참 적절한 비유 같다. -  비중은 크지 않지만 젠더/인종에 따른 불평등을 다루고 있고 소수자(대표적으로 흑인/죄수)에게 가해지는 폭력사례를 통해 윗 사람에겐 굽실굽실 하면서 아랫사람에겐 더욱 폭력적이 되는 '자전거 타기 반응'으로 악순환되는 '사회적 위계'를 지적한것도 좋다. 흥미로운건 (지위가 낮은)사람에게 폭력적일수록 집단의 피해자 뿐 아니라 가해자의 평균 수명도 낮아진다는 것. - 여성에게 차별적인 사회일수록 남성의 평균수명이 짧다. -  한 사회/국가내의 여러 집단은 집단평균소득에 따라 건강불평등이 나타나지만 같은 소득수준의 사람들이 모여사는 집단은 더욱 친화적이고 평균수명이 길다는 사실도 의미심장하다.

그렇다면 대안은 무엇인가? 저자는 흔히 얘기되는 '기회의 평등'은 해결책이 될 수 없다고 말한다. 사회 구조 전체가 바뀌지 않는 한 결국 다른 누군가에게는 열등한 지위가 돌아갈 수 밖에 없으니까. 기회의 평등을 결과의 평등으로 대체하려는 정치적 시도들도 '불평등의 재생산'에는 눈감고 있다. 저자의 대안은 "경제 민주화"다. 현재 민주주의는 '선거'정도 수준에 머무를 뿐 경제적 활동은 민주주의에 대한 책임을 전혀 느끼지 않는 경제적 권력에 의해 통제되고 있다. 저자는 좀 더 민주적이고 평등하게 운영되는 '시장'을 위해 종업원지주제, 협동조합등을 장려한다. 물론 현재 시행되는 종업원 지주제는 경제적 인센티브제공이 목적이고 민주주의나 평등과는 별 상관 없지만 종업원지주제가 올린 높은 성과로 인해 그 비율이 높아진다면 노동자들이 주식의 51%이상 장악하는 '노동자 소유 기업'도 가능하리라는 얘기다. 노동자 소유 기업이라니! 누가 들으면 입에 게거품 물고 쓰러질 '불온한' 생각이다. 저자의 말을 들어보면

   
  노동과 경제조직을 민주적 책임성 아래에 두게 되면, 이 외에도 다른 중요한 이득을 얻을 수 있다. 그것은 노동자의 지위를 변화시킨다. 노동자들은 더 이상 단순히 타인의 목표를 위한 도구나 수단이 아니다. 노동자들은 자기 삶의 중요한 부분에 대한 통제력을 판 대가로 임금을 받고 자본가의 권력에 종속되는 교환 방식에서 벗어나 정치적으로 동등하고 민주적으로 통제되는 공동체의 한 부분으로서 협력하면서 일하는 사람이 된다. 그렇게 해서, 노동은 선출되지도 않았고 책임의 의무도 없는 고용주에게 종속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목적을 표현하는 것이 될 수 있다. (p.339)   
   

  노동자들이 자신의 노동에 통제권을 가질 수 있을때 건강하다(사망률이 낮다)는 사실은 이미 확인되었고 저자는 현재 노동자가 기업을 100% 인수했을 때, 그것이 노동자에게 미치는 건강상의 혜택이 무엇인지 평가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고 한다. 국내 최대의 기업이 노조설립조차 허용하지 않고 온갖 불법을 동원해서 경영권을 사수하려는 현 한국 상황에선 꿈같은 이야기다. 저자는 시장의 부작용을 줄이기 위해 '의료보험, 교육, 공공교통'을 시장메커니즘에서 분리해야 한다고 말하지만, 한국은 그 세가지를 더욱 시장에 맡기지 못해 안달이니까.

뒤의 역자 후기에는 역자(김홍수영)가 번역과정에서 윌킨슨과 (메일로) 묻고 답한 대화가 수록되어 있다. 위계적 서열은 강하지만 평균수명은 높은 일본이나 한국에 대해 기업 내 사람들이 개인적으로도 친밀한 '가족주의풍토' 때문일 것이라 추측한다거나 결혼에 대한 사회적 편견 등 본문에서 다루지 않은 몇가지 쟁점에 대한 윌킨슨의 의견을 엿볼수 있다. 400페이지 가까이 되는 적지않은 분량이지만 인문사회학과 자연과학의 다양한 연구결과를 인용하여 다방면으로 접근해 질리지 않고 읽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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