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등해야 건강하다 - 불평등은 어떻게 사회를 병들게 하는가
리처드 윌킨슨 지음, 김홍수영 옮김 / 후마니타스 / 2008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많은 사람들이 세상이 불공평하다는 것을 알고도 감내하듯이 '건강불평등'에 대해서도 어쩔수 없다는 듯 혹은 '원래 그렇다'는 듯 받아들이는 듯 싶다. 개인의 경제적 상황은 순전히 개인의 능력에 달렸다고 치부하듯 개인의 건강문제는 개인의 책임으로 돌려버리는 듯한 분위기다. 건강에 대한 관심이야 나날이 늘어가지만 대부분 '건강관련상품'구매로 이어지는 상업적 관심이다. 마치 건강관련상품의 리스트가 건강지표를 나타내기라도 하듯.

건강과 관련된 '사회적 책임'이라고 하면 흔히 산업재해나 대기오염 혹은 빈민촌의 열악한 주거환경 등 즉각적이고 가시적인 문제만 생각한다. '건강불평등'이란 말은 사회에서 소외된 빈민층의 건강을 염려하는 구호로 보이기 쉽다. 이 책의 요지는 하위 20%를 위해 세금을 더 걷자는 얘기가 아니다. 불평등으로 인해 건강이 악화되는 건 사회 구성원 전체에 해당되고 경쟁심화-적대적 사회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는 (즉각적이지만 빈도가 낮은)산업재해보다 훨씬 더 위험하다는 것. 불평등한 경제적 상태 - 열악한 주거환경이나 영양섭취 등 - 도 물론 건강에 영향을 끼치지만 불평등을 양산하는 사회구조와, (불평등한 사회일수록 더욱)적대적인 인간관계가 주는 스트레스 역시 위험하다는 것. 사회 구조가 변하지 않는 이상 ㅡ 즉 하위계층이 계속 존재하고 불평등이 줄어들지 않는 이상 사회전체의 건강은 개선되기 힘들기 때문에 결과를 완화하려는 '무상진료' 혹은 '복지혜택'은 한계를 가질수 밖에 없다는 것 등등.

이전 책 '건강불평등, 사회는 어떻게 죽이는가'에서는 주로 사망률을 기준으로 불평등이 어떻게 사회를 '죽이는지'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이 책은 스트레스, 위계적 사회구조, 구성원들과의 친밀한 관계, 폭력(살인률)등 좀 더 포괄적인 요인들을 중심으로 전개해간다. ('평등하면 건강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보단 '불평등하면 위험하다'는 것을 보여주는것이 더욱 효과적이다) 스트레스가 주는 건강상 위협이야 익히 알려진 것이지만 구체적인 사례 - 관상동맥 질환을 높인다든가, 산모의 스트레스가 아이의 평생건강과 관련된 출생시 몸무게를 결정한다든가 등 -들을 열거하면 더욱 오싹해진다. 서열화되고 소득격차가 큰 사회일수록 구성원들과의 친밀도가 떨어지고 적대감이 높아져 폭력적인 사회가 된다는 것도 상식적으로 가능한 논리지만 정작 건강과 관련해서 논의된적은 드물다. 업무에 대한 자기통제력의 상실이 건강을 더욱 악화시킨다는 지적도 흥미롭다. 이미 국민 대다수가 절대적 빈곤선을 넘어선 나라들에게 '빈곤'이란 사회적 지위의 문제라며 근소한 차이처럼 보이는 소득불평등이 상대적으로는 얼마나 큰 차이를 보이는지 재평가한다.ㅡ 총 소득에서 하위 50%가 차지하는 비율은 미국은 18%, 캐나다는 24%로 6%차이지만, 상위50%에 대한 하위50%의 비율은 각각 22%, 32%이로, 이를 근거로 캐나다 하위 50%는 미국 하위 50%에 비해 45%(32/22)나 잘사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통계는 언제나 쓰는사람 마음이니까.   

'건강'의 문제를 의료/복지체제에만 국한시키지 않고 사회 전반적인 구조에서부터 접근하기 때문에 사회과학적 요소가 많다. 계층간의 건강 격차는 의료서비스에 대한 접근 정도 보다는(저자가 활동하고 있는 영국은 무상의료체제라 오히려 빈곤층이 부유층보다 의료서비스를 더 많이 이용한다.) "왜 가난할수록 더 많은 질병에 걸리는가"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관점이 신선하다. - 전쟁을 비유로 들면 예컨대 사상자수는 군 의무대의 사후의료서비스에 달린것이 아니라 전쟁 자체의 성격에 기인한 것이다. 신자유주의는 점점 사람들을 '전쟁터'로 내몬다는 점에서 참 적절한 비유 같다. -  비중은 크지 않지만 젠더/인종에 따른 불평등을 다루고 있고 소수자(대표적으로 흑인/죄수)에게 가해지는 폭력사례를 통해 윗 사람에겐 굽실굽실 하면서 아랫사람에겐 더욱 폭력적이 되는 '자전거 타기 반응'으로 악순환되는 '사회적 위계'를 지적한것도 좋다. 흥미로운건 (지위가 낮은)사람에게 폭력적일수록 집단의 피해자 뿐 아니라 가해자의 평균 수명도 낮아진다는 것. - 여성에게 차별적인 사회일수록 남성의 평균수명이 짧다. -  한 사회/국가내의 여러 집단은 집단평균소득에 따라 건강불평등이 나타나지만 같은 소득수준의 사람들이 모여사는 집단은 더욱 친화적이고 평균수명이 길다는 사실도 의미심장하다.

그렇다면 대안은 무엇인가? 저자는 흔히 얘기되는 '기회의 평등'은 해결책이 될 수 없다고 말한다. 사회 구조 전체가 바뀌지 않는 한 결국 다른 누군가에게는 열등한 지위가 돌아갈 수 밖에 없으니까. 기회의 평등을 결과의 평등으로 대체하려는 정치적 시도들도 '불평등의 재생산'에는 눈감고 있다. 저자의 대안은 "경제 민주화"다. 현재 민주주의는 '선거'정도 수준에 머무를 뿐 경제적 활동은 민주주의에 대한 책임을 전혀 느끼지 않는 경제적 권력에 의해 통제되고 있다. 저자는 좀 더 민주적이고 평등하게 운영되는 '시장'을 위해 종업원지주제, 협동조합등을 장려한다. 물론 현재 시행되는 종업원 지주제는 경제적 인센티브제공이 목적이고 민주주의나 평등과는 별 상관 없지만 종업원지주제가 올린 높은 성과로 인해 그 비율이 높아진다면 노동자들이 주식의 51%이상 장악하는 '노동자 소유 기업'도 가능하리라는 얘기다. 노동자 소유 기업이라니! 누가 들으면 입에 게거품 물고 쓰러질 '불온한' 생각이다. 저자의 말을 들어보면

   
  노동과 경제조직을 민주적 책임성 아래에 두게 되면, 이 외에도 다른 중요한 이득을 얻을 수 있다. 그것은 노동자의 지위를 변화시킨다. 노동자들은 더 이상 단순히 타인의 목표를 위한 도구나 수단이 아니다. 노동자들은 자기 삶의 중요한 부분에 대한 통제력을 판 대가로 임금을 받고 자본가의 권력에 종속되는 교환 방식에서 벗어나 정치적으로 동등하고 민주적으로 통제되는 공동체의 한 부분으로서 협력하면서 일하는 사람이 된다. 그렇게 해서, 노동은 선출되지도 않았고 책임의 의무도 없는 고용주에게 종속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목적을 표현하는 것이 될 수 있다. (p.339)   
   

  노동자들이 자신의 노동에 통제권을 가질 수 있을때 건강하다(사망률이 낮다)는 사실은 이미 확인되었고 저자는 현재 노동자가 기업을 100% 인수했을 때, 그것이 노동자에게 미치는 건강상의 혜택이 무엇인지 평가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고 한다. 국내 최대의 기업이 노조설립조차 허용하지 않고 온갖 불법을 동원해서 경영권을 사수하려는 현 한국 상황에선 꿈같은 이야기다. 저자는 시장의 부작용을 줄이기 위해 '의료보험, 교육, 공공교통'을 시장메커니즘에서 분리해야 한다고 말하지만, 한국은 그 세가지를 더욱 시장에 맡기지 못해 안달이니까.

뒤의 역자 후기에는 역자(김홍수영)가 번역과정에서 윌킨슨과 (메일로) 묻고 답한 대화가 수록되어 있다. 위계적 서열은 강하지만 평균수명은 높은 일본이나 한국에 대해 기업 내 사람들이 개인적으로도 친밀한 '가족주의풍토' 때문일 것이라 추측한다거나 결혼에 대한 사회적 편견 등 본문에서 다루지 않은 몇가지 쟁점에 대한 윌킨슨의 의견을 엿볼수 있다. 400페이지 가까이 되는 적지않은 분량이지만 인문사회학과 자연과학의 다양한 연구결과를 인용하여 다방면으로 접근해 질리지 않고 읽을 수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동백꽃 - 김유정 단편선 문학과지성사 한국문학전집 14
김유정 지음, 유인순 책임 편집 / 문학과지성사 / 2005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수능 언어영역에 나올만큼 '고전'스러운 소설을 읽은지 참 오래도 되었다. 이미 언어영역 공부할 때 볼만큼 봤다고 생각했던건지. 투박한 사투리와 피폐한 농촌이 그다지 고상하지 못하다 생각해서 인지. 선거 전날 공연히 마음이 설레 잠 못 이루다 새벽 내내 이 책을 붙잡고 있었다. 원체 강원도 사투리가 많아 틈틈이 뒤의 용어해설을 들춰보다 나중엔 거의 지레짐작하며 읽었다. 발음을 흉내내다보면 왠지 정겹고 입에 감긴다. 마치 그들 사이에 천연덕스럽게 앉아있는 양.

총 23편의 단편들이 실렸다. '만부방'이나 '봄봄', '동백꽃'처럼 이미 언어영역 문제집에서 뻔질나게 봐왔던 단편들도 있고 영 생소한 단편들도 있다. 문제집에서 조각조각 보는 소설이랑 이렇게 한편의 이야기로 보는 소설은 확실히 다르다. 무엇보다 출제자의 의도를 파악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없으니까 (하긴, 제버릇 뭐못준다고 '매팔자' 란 단어에서 반어적 표현임을 묻는 문제를 떠올리기도 했다. ㅋㅋ) 지금도 어렵다 어렵다 말은 많지만 정말 이들만큼 힘들게 사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그러고도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아등바등 애쓰는 모습에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작품해설에서 유인순교수는 김유정 소설의 특징으로 "삶의 양가성"을 든다. 살기 위해 제 논의 벼를 훔치는 '만무방'의 응오나 '금'의 덕순, 남편과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남의 남자에게 몸을 파는 숱한 아내들. 유난히 몸을 파는 아낙네들 - '들병이'든, 거짓결혼이든 - 이 많이 등장하는 건 제 몸뚱아리 밖엔 팔 것이 없는 그네들이 '특별한 예외'가 아니라 '전형'이었기 때문이리라. 결혼식을 올리고 옷을 훔쳐 걸인이 된 전남편과 도망치는 '산골아낙네'나  뭇 남자들에게 술값으로 세간을 받아 원래 남편과 유유히 떠나는 '솥'의 들병이 계숙이나. 요즘도 사기 결혼이 많지만 소설속 그네들이 원하는 건 호화로운 금은보화가 아니라 단지 '남편과 그럭저럭 먹고 지내는 것'이다. 그네들이 방탕하거나 윤리를 몰라서가 아니라ㅡ 절박한 생존의 수단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방탕함' - 노름, 술, 들병이, 매춘 - 이 눈에 거슬리지 않는 이유는 그 때문이다. 선악/빈부/열불녀와 효불효 등의 이항대립은 어느새 모호해져 삶의 일부분이 된다. 날것 그대로인 삶을 들여다보면 온갖 모순들이 공존하지만 또 그렇게 살아가는 게다. 양가성의 수용은 그렇게 하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는 '필연적인 것'이 되어버린다.

중학생때였나. 멋모르고 현대단편소설집을 뒤적이다 너무도 피폐한 그들의 삶에 충격을 받아 한장 한장 마음졸이며 읽었던 기억이 난다. '감자'에서 큰 동요없이 왕서방에게 몸을 내어주고 결국엔 돈 몇원의 가치로 죽어버리고 마는 복녀는 여느 '비운의 여주인공' 애절하지도 않고 안타깝지도 않은, 말그대로 '날것 그대로'였다. (지금은 많이 달라졌지만) 나 어릴적만해도 순결/정절 운운하는 목소리들이 꽤 있었는데. 그럼 그 시대 아낙들은 뭐지? 한동안 먹먹했었다. 소설은 어쩔수 없이 개인 중심의 사건전개지만 우리는 개인을 몰고가는 사회를 들여다봐야 한다. 예나 지금이나 착취당하는건 힘없고 약한 사람들이다. 밖에선 힘 한번 못쓰는 남자들이 집에오면 자기 아내를 개패듯 패고, 아내 몸뚱아리로 먹고사는 일이 비일비재한것이 그 시대 남자들이 몰상식해서인가? 양상은 다르지만 우리사회에서도 약자에 대한 착취는 여전하다. 비정규직/청년실업 문제도 그렇고ㅡ 자본주의는 끊임없이 노예를 생산하지 않으면 지탱되지 않는다는 명제가 다시 되풀이 된다. 우리가 고민해야 할 것은 '노예의 처우 개선'이 아니라 '노예 없이 살아가는 법'이다.

표지의 나란히 선 세 시골소녀들이 정겹다. 고개 돌리면 까무잡잡한 얼굴에 얼굴 가득 웃음을 흘릴것 같은 그네들. 이 단편들이 보여주는 삶들은 결코 유쾌하지도 깔끔하지도 않은 비루함 그 자체지만 그 속에서도 웃음을 찾고 사는 방법을 터득해가는 질긴 생명력만큼은 여실히 드러난다. 아마 삶의 비린내가 확 풍길것 같은 이 현실성이 지금도 꾸준히 읽히는 이유일게다.  

* 장장 50페이지에 걸쳐 용어해설이 덧붙여있다. (순전히 편리함 때문에) 후주/미주보단 각주를 선호하는 터라 뒤를 들춰보며 읽는것이 영 불편했다. 마치 '작가의 의도를 남김없이 파악하려'용쓰는 듯이 느껴지기도 해서 나중엔 몇개만 찾아보곤 순전히 감으로 알아넘겼다. 중고등학생들도 읽을 수 있으니 자세히 설명하려 애쓴건 좋으나 '톨스토이, 버스걸, 줄창, 시래기'이런 말들까지 풀어놓은것은 지나친듯 싶다. 단어 수를 줄이고 각주로 처리했으면 좀 더 편하게 읽을수 있을텐데.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08-04-09 23: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4-10 12: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완득이
김려령 지음 / 창비 / 2008년 3월
평점 :
품절


정말, 거짓말 안보태고 쉬지않고 죽 읽었다. 사실 두시간이면 다 읽을 분량인데 남은 쪽수가 아쉬워 지는책은 참 간만이다. 빠른 스토리 전개와 육두문자의 남발, 과잉되지 않은 감정선들이 좋다. 처음부터 끝까지 완득이의 독백과 짧은 대화들의 연속이다. 마치 몇권의 만화책을 연달아 읽은 느낌.

'완득이'라는 촌스러운 이름. 그리고 구질구질한 동네와 꾀죄죄한 사람들 이야기. 장애인/이주노동자 등 다소 동정/감정과잉으로 이어질수도 있는 소재지만 그들의 아픔을 '까발리지'않는다. 가식도 없고, 그렇다고 완전 파헤치지도 않고 딱 적당한 수준까지 그저 보여준다. 없이 사는 사람들의 싸우면서 엉기는 끈끈한 정을 실감나게 그려낸다. 이래야 된다는 당위나 저러면 안된다는 비난도 없다. 그저 그렇게 살아가는 하루하루가 있을뿐이다.

김려령이란 작가 ㅡ 여성 작가인데 표지 그림은 지극히 남성적이라 처음엔 갸우뚱했었다. 천상 무뚝뚝한 남자일것 같은 '완득이'캐릭터 때문에 '남성적 성장소설'이 아닐까 해서. 육두문자가 남발하고 섬세한 감정묘사의 생략은 분명 '사춘기 소녀취향'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영화 '친구'나 '사랑'스타일은 절대 아니다. 등장인물도 남자가 압도적으로 많다만 - 특정 캐릭터를 가진 여자는 딱 세명 등장한다. 완득이 엄마/정윤하/정윤하 엄마 - 여성 독자들에게도 분명 술술 읽힐것같다. 암튼 능력있는 작가다.

완득이와 윤하의 관계가 흔한 러브스토리로 이어지지 않는것도 좋고, 킥복싱에서 눈물겨운 역전승이 없는 것도 담백하다. 딱 거기까지다. 만약 주변에 이런 아이/친구가 있다면 말없이 응원해주고 싶다. 공선옥 작가의 후기가 실감나게 와닿는다.

* 선물해주신 웬디양님 고마워요 ^^


댓글(6)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웽스북스 2008-04-07 01: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제이드님 짱이다!!

Jade 2008-04-07 01:25   좋아요 0 | URL
ㅋㅋ 올리자마자 발견하신 웬디양님도요 ㅎㅎ

다락방 2008-04-07 08: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옷. Jade 님. 이거 너무 좋지요? 저도 짱 좋았어요!! >.<

Jade 2008-04-07 10:51   좋아요 0 | URL
ㅎㅎ 이렇게 빨리 읽고 리뷰쓴책은 처음이예요 ㅎㅎㅎ

2008-04-07 10: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4-07 11: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삼성왕국의 게릴라들 - 삼성은 무엇으로 한국 사회를 지배하는가
프레시안 엮음, 손문상 그림 / 프레시안북 / 2008년 2월
평점 :
품절


삼성'왕국'의 '게릴라'들이라니. 제목이 참 도발적이다. 삼성이 대한민국을 이끄는 기업이란건 누구나 아는 사실인데, 이 '게릴라'들은 삼성을 무너뜨리려 하는가? 이 책이 주목하는 일곱 게릴라들 역시 '삼성'을 사랑한다. 그들이 허물고 싶은건 '이건희왕국'이다. 김상조교수는 삼성의 비자금이나 분식회계 등 온갖 편법 행위는 경영권승계를 위한 것이라며 문제의 핵심은 '이재용'이라 지적한다. 간간이 등장하는 만화는 거의가 이건희회장 풍자다. 기자들 앞에서 '삼성을 범죄집단으로 몰고가는 여론'을 질타했던 이회장의 당당함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얼마전 '김앤장 저자간담회'에서 장화식씨가 말하길, 삼성이 아무리 권력이 세다고 해도 '삼성이 지난 여름에 한 일을 알고있'는 김앤장 앞에선 함부로 하지 못한단다. 그나마 삼성이 '드러난 권력'이라면 김앤장의 권력은 비가시성이라 더 문제된다나. 암튼 동맹군답게 김앤장의 '회전문인사'는 삼성이라고 예외일리 없다. 삼성 - 김앤장 - 고위관료의 삼각동맹이 한국 경제의 숨겨진 트로이카였나보다. 이명박 캠프에 영입됬던 친삼성인재들의 입김 때문인지 '금산분리완화'가 주요 공약이었는데 이쯤되면 '이명박 신화'는 삼성과 김앤장 그리고 주요언론이 빚어낸 그야말로 "만들어진 신"이라는게 훤히 보인다. 뭐눈엔 뭐만 보인다고 온 국민들이 건설회사 비정규직으로 보이시는건지 꼭 몇건씩 사건을 터뜨려 무지 몽매한 국민들에게 '신성한 훈계'을 내려주시는 행위자시여!

삼성 - 정확하게는 이건희 회장 일가 - 이라는 거대한 권력에 맞서는 일곱 게릴라들의 외로운 투쟁을 차례로 다룬다. 워낙 많은 사건들에 연루되어 있지만 몇 개의 핵심사건 위주라 중복되는 내용이 많다. 각 장마다 관련된 사건들을 요약하고 뒤에 인터뷰가 실려있다. 첫 부분은 김용철 변호사가 사제단을 찾아가기까지의 말 못한 사연들이 많다. 오죽했으면 사제단 신부들이 "그간 쌓아온 신뢰/명성이 무너질까 고심했을까. X-파일 보도로 고초를 겪은 이상호 기자나 감옥 신세를 졌던 김성환 노조위원장의 사례와 같이 놓고 보면 힘없는 개인에게 가하는 삼성의 압박이 얼마나 치졸하고 사람을 지치게 만드는지 잘 드러난다. 거기다 주류 언론은 얼마나 잘 영합해 주시는지.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꼴이지만, 계속하다보면 바위에 계란썩은내라도 나지 않겠냐며 희망을 잃지않는 김성환 위원장의 말이 인상적이다. '불패신화'라는 무노조 경영에 대한 패배의식, 삼성이 대한민국 위에 있다는 허위의식에 찌든 삼성 노동자들이 이 사태로 인해 즉각적인 행동을 취하진 않을것이라 지적하면서도 "한순간 터지면 걷잡을 수 없을것"이라며 결의를 다진다. '저 놈 또 싸운다'가 아니라 '후손을 위한 삶을 살아가는 구나'라고 인정해달라는 그의 말이 왠지 서글프기도 하고. 삼성 특검이 진행되면서 '삼성'에 대해 고민하는 '삼성맨'들이 조금씩 늘어난다던데. 당장 만족할만큼의 변화는 없을지언정 조금씩 바뀌고는 있나보다. 이런 책이 나온 걸 봐도.

책을 가로지르는 논지 중 하나는 '삼성은 좋은데 이씨 일가의 지배구조는 불합리하다'는 것이다. 물론 불법적인 경영권 승계도 문제지만 ㅡ 그럼 '삼성'이라는 대기업은 마냥 좋은것일까? 국가 경쟁력을 높여주니까? 혹은 '대한민국'의 자부심을 높여주니까? 이왕 불거진 김에 시장/기업위주의 경제/사회 전반에 대해 숙고할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되었으면 좋겠다. '한국 기업을 키워주지 않으면 외국계 자본에게 넘겨주란 소리냐'는 감정적 동조에 휩쓸리지 않도록. '국익'의 허구성에 대해 ㅡ "세상은 원래 그렇다"라는 패배주의 말고 무언가 바꿔나가는 계기가 되도록 ㅡ

'법률사무소 김앤장'과 더불어 지금의 한국 경제를 보여주는 지침서 같은 책이다. 이런 책은 출판되었다는 것 자체로 - 성역을 깨뜨리는, 좀 더 구설수에 오르도록 만들어 주는 계기로서 - 긍정적인 의미가 있지 않나 싶다.

 ** 눈에 띄는 오타 : 심상정 의원 편 p.187에 "김영모 김앤장 합동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라고 나온다. 심상정 의원 인터뷰에서는 "김영무"라고 정확히 나오지만. 단순오타려니 했는데 뒤에 인물색인에도 김영모/김영무가 따로 나온다. 단순 실수일까, 혹은 잘 알려지지 않은 김앤장의 비가시성일까?


댓글(2)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08-04-06 18: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4-06 22: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조선의 영혼을 훔친 노래들 - 고전시가로 만나는 조선의 풍경
김용찬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08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수능 언어영역에서 대부분의 학생들이 어려워하는 것은 시-고전문학이다. 시는 함축적이어서 어렵고 고전문학은 생소한 단어가 어렵고. 그런데 '시조'는? 다행스럽게도 시조는 길이도 짧고 내용도 대충 뻔하다. (혹은, 그런것들 위주로 배운다) 군데군데 섞인 한자도 어렵지 않고 대개 우리말이라. 정말 '교과서'같이 뻔한 시조도 있고 비유가 재미있는 사설시조도 있고 수능문제에서 다루는 시조들은 비교적 한정된 주제라 그나마 '만만한' 고전운문이다.

초장부터 왜 '수능'을 들먹이는가. 이 책에서 다루는 시조들은 절반 이상이 '수능 언어영역'을 위해 배웠던 친숙한 작품들인데다 마치 학생들에게 설명하듯 시조의 주제와 (지은이가 있는 경우라면) 당시 시대적 상황들을 자세히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주제별로 묶어놓은 구성도 그렇고. 사실 '시'는 '해설'하려고 읽는건 아니니까 작품 하나하나마다 일정한 주제와 의미를 풀어놓는 이런류의 해설은 수능언어 말고는 접한적이 없다. 쉽게 읽혀서 좋기도 하고 ㅡ 별 새로운 것이 없어 심심하기도 하다. 특정 주제로 묶어놓다보니 입체적 해석 - 당시 배경을 고려한 '속뜻' 해석 말고 - 이 없는것도 아쉽다. 읽으면서 바로 생각했다. '고전운문 어려워하는 학생들한테 읽히면 좋겠다!'

고전 운문들이 그렇듯 '자연'에 관한 시조가 많다. 지금보다 훨씬 자연에 가까웠던 조선 사람들이 오히려 우리보다 더 자연을 그리워한다. 우리가 그리워하는 자연이 공기 좋고 물 맑고 안락한 '휴양지'라면. 그들이 그리워 하는 자연은 사람손이 닿지 않은, 사람이 들어간대도 그저 풍경중 하나로 슬쩍 끼여들 수 밖에 없는 거대한 그 무엇이다. 자연을 내게 맞추지 않고 자연과 소통하며 자연의 일부가 된다. 나의 '대상'이 아니라 동등한 '주체'다. 이런 사람들이 '대운하'를 보면 '새만금'을 보면 뭐라고 할까? 태안에 기름을 부은 '사람'보다 오히려 죽어가는 생물들에게서 동질감을 찾지 않을까?

시의 언어들은 점점 더 응결된 '결정'처럼 웅크러드는데 여기 시조들의 언어는 한자 관용어구를 빼면 일상언어처럼 너무나 구체적이다. 원래는 노래로 부르던 것들이라 하니 차라리 오늘날 '시'보단 '노래'에 비교하는게 낫겠다. '시'와 '노래'의 분리는 ㅡ 일상적인것이 특별한 것으로 바뀌어가는데 있지 않을까. 그때그때 노래/시를 지어 부를수 있던 풍류는 어디로 갔을까. 틈 날때마다 자기를 되짚어보며 '현재'를 사는 여유가 그립다. 늘 오지않은 현재/지나간 현재를 '생각하느라' 지금을 놓치고 사는 우리들이기에.

모두 20개의 주제를 다루고 있고 - 서너개씩은 연관되는 주제다. 사랑과 그리움/벗과 자연, 술, 음악 등 - 각 주제마다 한두개씩의 그림이 실려있다. 김홍도/신윤복의 유명한 그림이 많고 '친절한 조선사'에도 등장한 재미있는 그림 몇편이 있다. 반듯반듯한 글씨로 쓰여진 홍랑의 시조(묏버들 가려꺾어~) 원본과 무너지는 억장을 표현하는 듯 휘갈겨 쓴 '이응태공 부인의 언간' - 사별한 남편의 관에 넣은 편지. 1998년 안동에서 발견되었다. 그 애틋한 마음 때문인지 400년이 지났는데도 글자 한자 상하지 않았다고 한다. - 원본이 인상적이다. 이 두가지를 비롯해서 특별한 사연이 있는 사진/그림은 따로 설명을 붙였어도 좋았을 텐데. 화가 이름/사진 이름만 있고 그 밑엔 본문 내용 중 일부가 쓰여있어 따로노는듯한 느낌이다.

정치적 성격이 강한 시조에 대해선 신랄한 비판도 있을법 한데 대체로 중립적이거나 우호적으로 설명해간다. 뒤에 붙은 작가/작품 색인도 그렇고 여러모로 '청소년 도서' 분위기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