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스토예프스키, 돈을 위해 펜을 들다 - 세계적인 대문호 도스토예프스키의 가장 속물적인 돈 이야기
석영중 지음 / 예담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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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문학작품에 대한 글, 특히 평론가들의 글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사실, 평론가들의 글을 별로 읽어본적도 없다만.) 유명한 소설이나 시 뒤에 붙어있는 평론들은 왜이리 고상하고 어려운건지. 어쩌다 문학평론가가 쓴 책을 읽을라치면 이건 산문이 거의 시 수준이다. 사람은 자기 깜냥만큼만 읽어낼 수 있을 뿐이니, 내가 거기까지 욕심내는건 순전히 '젊음의 치기'일 뿐이다. ^^ 그런데 이 책은 좀 다르다. 물론, '평론가'가 아닌 '번역가'의 책이고, '평론'이 아니라 일종의 '대중서적'이기에 '평론'과 비교하는건 좀 어불성설이다만, 도스토예프스키 소설 '읽어내는게' 짜증나는 사람도, 이 책을 두고 '어렵다'고는 말하지 못할 것이다. 넓은 줄간격과 작은 책사이즈도 한 몫 하긴 하지만 어쨌든 '대중'을 염두에 두고 쓴 책이다.

도스토예프스키. 이름에서부터 벌써 부담스러운 작가다. 이름-부칭-성의 긴 이름도 부족해 종종 애칭으로(게다가, 중요인물은 애칭도 몇개된다지!) 등장하는 러시아 소설의 부담감도 있고, 한 인물이 쏟아붓는, 장장 몇페이지에 달하는 개똥철학을 듣고 있자면 소설을 읽는건지 독해력 테스트인지 분간이 안간다. 아기자기하고 샤방샤방한 소설속 판타지는 딴데가서 알아보라지. 소설속 인물들은 하나같이 비루하고 치졸하며 저마다의 '광기'를 품고있다. 인물마다 '고결함'이나 '고상함'을 지껄여대지만 독자가 맞닥뜨리는건 '너무나 인간적인' 비열함이다. 그런데 이토록 너덜너덜한 인간들이 내뱉는 말들이 심상치 않다. 한번 빠져들기 시작하면 왠간한 사회과학서적 저리가라다. 게다가 기본 수백페이지씩 되는 분량은 어떻고! 읽어본 사람들은 한번 빠져보라며 칭송하지만 선뜻 손이가지 않는다는건 사실이다. 손이 가더라도 얼마나 빠져들게 될지는 미지수고. (나는 대학 1학년때 어떤 의무감으로 '죄와 벌'과 '까라마조프'를 읽었다만 솔직히 별다른 감흥이 없었다. 이번에 다시 읽으면서, 분명 한번 읽었었다는건 기억나는데 도무지 그때의 기분이 감흥이 생각나지 않아 수십번 나의 빈곤한 머리를 탓했다.) But, 이런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한번 맛들인 사람은 결코 헤어나올수 없다는 건 확실하다. 중독성도 이런 중독성이 없다. 소설을 온전히 이해했든 아니든 도무지 놓을수가 없다. 두껍고 빽빽한 책 제본의 불편한쯤은 충분히 상쇄될 수 있다. 그의 주옥같은 장편들이, 왜 몇개일 뿐인지 한탄스러울 정도다.  

제목부터 '돈'을 말할만큼 통속적인 책이다. 아니, 도스토예프스키 작품 자체가 '돈'을 빼놓고는 얘기할 수 없을정도로 통속적이다. 하지만 그의 작품이 반짝 팔렸다 이내 잊혀지는 진정 '통속적'인 작품들과 다른 이유는 인간의 심리를 들여다보는듯한 처절하고 소름끼치는 묘사에 있을 게다. 꼬질꼬질한 인간들의 입에서 튀어나오는, 알고보면 심오한 발언들도 그렇고. 어쨌든 어느 작품이나 '돈'이 풍기는 끈덕진 유혹이 빠지는 법이 없다. 도스토예프스키 전기들은 하나같이 그의 방탕한 소비와 도벽, 그리고 몇푼의 돈이 궁해 할수있는 한 손을 벌리는 궁색함을 다룬다. 풍족한 삶 속에서 고즈넉히 소설을 다듬어낸 톨스토이와 비교하기도 한다. 실제, 평생을 '선불인생'으로 살았던 도스토예프스키는 어느순간엔 유복한 톨스토이를 부러워하기도 했댄다. (나는 톨스토이 장편은 읽어본적이 없다만 도스토예프스키 소설이 '구질구질함'으로 가득차 있다는것은 알겠다.) "도스토예프스키가 좀 더 유복한 삶을 살았다면...."이란 가정은, 마치 "지난 대선에서 이명박 말고 다른이가 당선되었다면..."하는 바람처럼 부질없지만, (가지 않은 길에 대해선 늘 할말이 많은 법이다. 은연중 미화는 물론이고) 책의 저자는 "잘 다듬어진 다이아몬드 반지와 다이아몬드 광산"이라는 비유를 들었다. 뭐 어쨌든 도스토예프스키는 천재라는 소리다. 

이 책에선 5대 장편 - 죄와 벌, 백치, 악령, 미성년, 까라마조프 - 과 처녀작 '가난한 사람들', 그리고 작가의 실제 생활의 반영이자 천생연분 '안나'와의 인연을 맺어준 '도박꾼'에 드러난 '인물과 돈, 그리고 작가'를 다룬다. 챕터마다 간략한 줄거리와 몇몇 구절들을 인용해놓지만, 어쨌든 '읽어 본'독자를 위한 책이다. 아니, 읽어본 사람이 아니면 작품속에서의 '돈'의 역할을 온전히 받아들이기 힘들다. (나는 '미성년'과 '도박꾼'을 제외한 5개를 읽었다. '미성년'은 도스토예프스키 작품에서 가장 질이 떨어진다는 평을 받고 있다고 하고, 이 책의 저자마저 도스토예프스키 작품으로 별로 추천하고 싶지 않다고 하지만 이 책을 읽고나니 어쩐지 읽어보고 싶다. 나같은 초짜에게 '문학성'이 무슨 대수랴! 나는 단지 그의 글이 궁금할 뿐인걸! 집필에 한달도 안걸린 '휘몰아쳐서 쏟아내기'의 절정판 '도박꾼'역시 매력적이다) 문학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내가 이렇게 말할 정도니, 그만큼 '돈'이라는 문제가 중요하든지, 아님 도스토예프스키와 돈을 엮은 저자의 능력이 뛰어나든지, 그것도 아니면 도스토예프스키와 돈의 관계는 정말 초특급 인연이든지!  

인물을 미화하긴 쉽다. 특히 이미 세상에 없는 사람이라면. 아무 생각없이 뱉은 한두마디도 두고두고 곱씹는 자에겐 늘 심오한 진리가 있는 법이니. 그런데 우리 도 아저씨의 궁색한 생활에 대해선 전기작가들도 마냥 신비화하거나 미화하기엔 역량이 모자랐던 모양이다. 그의 병적인 소비벽에서 "모든것을 잃고자 하는 마조히즘"을 읽어낸 정신분석가도 있었으니. 확실히 대책없이 ㅡ 마치 순간이 끝인마냥 모든것을 걸고 잃어버리는 도박습관이나 별 의심없이 모든 빚쟁이들을 떠안는 그의 모습은 '고결'하다기 보단 어딘가 측은하다. 하지만 '눈에 보이는 가치'가 모든것은 아닌법. 아무리 헐벗고 살았을지언정 그와 보낸 날들이 가장 행복했다는 부인(안나)의 회상이나, 또 그가 묘사한 가난하고 억눌린 사람들의 심리를 보며 무릎을 치는 독자들은 끊이지 않으니. 평생 돈문제에 시달린 '불행한 작가'임에는 분명하나 한세기 이상 '매니아'들을 거느리고 있는, '풍부한 영감'의 소유자였으니.. 

사실 나같은 일반독자에게는, 수백페이지에 달하는 장편들을 한장 한장 정성들여 읽는것 자체가 무리한 요구다. 별로 와닿지 않는 부분은 읽는둥 마는둥 넘어가기도 하고, 또 끈덕지게 달라붙는 부분은 정성들여 밑줄까지 치며 읽기도 하는게 '평균적 독서'다. 소설 분량이 워낙 방대하기도 하고 인물들 하나하나가 개성적인지라 소설이 남긴 인상은 저마다 다를수밖에 없다. 이 책을 읽다보니 이미 읽은 소설도 '돈'이라는 관점에서 다시 읽어보고 싶다는 충동이 든다. 까라마조프에서 3000루블이 191번이 나왔다 한들, 3000루블인지 1500루블인지 별 신경 안쓰고 읽었던 독자에겐 별 의미 없을터. 저자가 제시한 관점에 따라 읽으면 또 다른 독해가 가능할 듯 싶다. '돈'이라는 통속적이고, 보편적이면서 지독히도 매력적인 기준으로, 기존의 독자들에게 '새로 읽음'을 유혹하는 책이다. 아! 어디까지나 도 아저씨의 광기어린, 그러나 사랑할 수 밖에 없는 매력에 빠진 독자들에 한해..   

'지하생활자의 수기'에 자세히 등장하는 "2X2=4"라는 공식(?)은 합리적 이성을 조롱하는 일종의 상징처럼 작품마다 줄기차게 등장한다. 인간 도스토예프스키는 수학 과목에 낙제할정도고 수학이나 경제학에 대해서는 젬병이었지만, '경제적 이해관계' 혹은 '이념'에 대한 심오한 주절거림(?)이 빠지지 않는다. (특히 얼치기 사회주의자들에 대한 신랄한 조롱이 많다. 재수없게 얽혀서 사형집행 직전까지 갔던 개인적 경험도 있겠고...) 당시는 '자본주의'가 아직 '제대로'실현되지는 않은 사회였지만 그는 '자본주의의 법칙', 다시 말해 돈의 법칙에 관해서는 이론 나부랭이는 집어치우고 그 누구보다도 절실하고 실감나게 그려낸 작가다. 그때나 지금이나 '돈'은 모두를 사로잡는 화두요 마력의 여신이요. 누군가에겐 천국의 열쇠이기도 하다. 지금, 아무것도 기대할 것 없는 이들이 마지막 보루로 로또에 매달리듯 당시에는 도박에 매달렸다보다. 모든것을 걸고 (정말, 마지막 남은 생활비까지 박박 긁어서 걸었댄다) 그 승패의 짜릿함을 즐길줄 알았던 도스토예프스키는 한때 '도박에서 승리하는 법'에 대한 이치를 깨달았다고 자부하기도 했지만, 여느 평범한 도박꾼 스토리처럼 중간의 화려한 여정이 어떻은 도박의 결말은 땡전한푼 남지 않은 철저한 파산이었다. 스스로의 분석이나 안나의 말을 빌리면 애초에 '판돈'이 부족한 탓이었으니...그때나 지금이나 대다수는 '판돈'이 부족할 뿐이고, 하여 삶의 질을 담보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 

설명이 길어졌다. 한마디로 평하자면,  도스토예프스키 소설을 읽는것보다 10배는 쉽게 읽히는 책이다. 그것만으로도 이 책은 제 할일을 다 했다고 생각한다. 도 아저씨에 대한 부담을 줄일 수 있다면 무엇을 더 바라겠는가? 이 참에 모두들 지극히 인간적인 도스토예프스키의 매력에 빠져보시길...

* '석영중'이라는 이름탓인지, 저자가 나이 지긋한 중년남성일것이라 생각했는데, 왠걸. 당찬 여교수였다. 도스토예프스키 작품이 어딘가 남성적이라 생각해서였나. 암튼 로쟈님 서재덕에 귀한정보 많이 얻었다. 찾으려고만 나선다면 알라딘서재는 보물단지다. 제가 신문은 꼬박꼬박 안봐도 알라딘 서재는 거의 매일 찾는다구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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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icia 2009-01-01 10: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소개 한겨레 북섹션에도 나왔었는데. :) 열린책들에서 나온 소설들도 석영중교수가 번역한게 꽤 되는걸로 알고 있어요. 도스토예프스키를 읽기전에 이 책을 읽어봐야겠다
^ㅂ^
올해 저는 권수를 줄이고 좀 깊이 있는 책들을 '정독'해야겠어요.
제이드님도 행복한 책읽기 계속 이어가세요. ^^

Jade 2009-01-01 11:26   좋아요 0 | URL
ㅋㅋ 소설보다 정말 잘 읽혀요...그런데 소설을 안읽은 상태에서 읽으면 조금 별로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들어요. 아무래도 그 세세한 묘사와 청산유수같은 궤변들을 읽어보지 않으면 똑같은 얘기 반복하는 것처럼 느껴질수도..

저는 2008년보다는 조금 더 바쁜 2009년이 될 것 같네요. 올해도 '꽂히는' 책들 여럿 만날 수 있겠죠~? ^^ 알리샤님 Happy new year!

순오기 2009-01-10 23: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도 아저씨한테 빠진 Jade님도 사랑스러워요~ ^^
나도 도아저씨한테 다시 빠질 기회가 온다면, 이 책부터 봐야겠군요. 별찜~~

Jade 2009-01-11 16:48   좋아요 0 | URL
헤헤 순오기님 감사합니다 ^ㅡ^

다락방 2009-01-30 10: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Jade님.
저도 엊그제 영화관에서 [그는 당신에게 반하지 않았다] 광고지 봤어요. -->이 문장 쓰는데 처음에 [그는 당신에게 '빠지지' 않았다] 라고 썼어요. ㅎㅎ

Jade 2009-02-01 21:48   좋아요 0 | URL
흐흐 요즘 영화볼때마다 예고편 나오던데, 봐야겠어요! >.<

2009-02-02 09: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2-02 10: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2-02 11: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2-02 12: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서울은 깊다 - 서울의 시공간에 대한 인문학적 탐사
전우용 지음 / 돌베개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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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 책은 우연히 얻게된 책이다. 한참 '돌베개' 책들을 읽다가 책 사이에 끼워온 '독자엽서'가 반가워서, 그렇게 뭔가 직접 써서 보낸다는게 왠지 설레여서 몇자 끄적여서 보낸 답례(?)로 받아버린 거다. 예상치 못한 택배를 받았을때, 그 포장을 뜯을때의 설레임이란! 솔직히 제목을 딱 보는 순간 '서울 명소안내'뭐 이런류인줄 알았다. 그래서 한동안 거들떠도 안보다가 우연히 이 책에 대한 호평(!)을 보고서야 집어들었다. 난 다른사람 리뷰에 너무 약하다니깐. 

최근 '서울'에 관해 읽은 글들은 전부 부정적인 것들 일색이었다. 심하게는 '지방'의 피를 빨아먹고 사는 흡혈귀같은 존재라는 것부터, 외국의 수도들과 비교하면 특색이 없다느니, 혹은 치솟는 수도권 아파트값 등등. 이 책은 서울 예찬도 비난도 아닌 인문학적'비평'이다. 조선왕조부터 시작된 서울의 생태와 문화, 근현대 서울의 일상 등등. 신랄한 비판이나 톡톡쏘는 맛은 덜하지만 제목처럼 뭔가 '깊이'가 있다. 별 생각없이 받아들인 일상의 단어 또는 유적지의 기원을 추적하며 역사의 흔적들을 더듬는 맛이 좋다. 사물 하나하나에 담긴 신비한 비밀이야기를 풀어내는 할아버지의  이야기보따리 같은 느낌.  

내가 살고있는 서울. 요즘같이 변화가 빠른 시대에는 시간이 '공간'의 동질감을 희석시켜 불과 몇십년 전 서울의 사진들이 낯설기만 하다만. 서울이 이 나라의 '중심'이 된 것은 벌써 600년도 더 된 일이다. 그때부터 서울은 "모든것을 빨아들이는 괴물의 입"이었다. '도시'는 태생적으로 자신의 생존과 확장을 위해 농촌을 수탈해야 한다. "조선시대 내내 서울은 사실상 유일한 도시였고 다른 도시의 발전 가능성을 봉쇄한 채 모든 경제적/사회적 자원을 독점하면서 커 나갔다. 특히 조선 후기 서울의 빠른 변화는 '경향분리'현상 - 더 정확하게는 지방의 배제와 소외 - 과 더불어 진행되었다.(p.28)" 일정한 경계를 잡아 내부는 동일시하고 외부는 배제하는 졸렬한 논리는 시대를 초월하는 고매한 원칙인지 ^^ '격조높은 풍류생활'의 상징처럼 보이나 사실은 '요정문화'나 '호텔 밀실 문화'의 원류인 '정자문화'는 또 어떤가. 꽤나 오랫동안 이 땅의 '얼굴마담'을 맡고있는 서울에 대한 접근은 이렇듯 정치적일수밖에 없다.  

역사학자의 책이라 그런가. 서문부터 역사와 문화가 '상품'이 되어버린 현실에 대한 비판이 등장하고 군데군데 소비문화에 대한 따끔한 지적들이 보이는데, 즉각적으로 튀어나온 날선 비판이라기 보단 오랫동안 뜯어보고 곱씹어 찬찬히 살펴보는듯한 '원숙함'이 담겨있다. 저자의 역사학자적인 통찰력으로, 때로는 저명한 사회학자들의 의미심장한 말들을 동원해서 어떤 현상에 대한 철학적/정치적 함의를 일깨워주는 부분이 많다. 저자는 10년넘게 '서울학 연구소' 상임위원을 맡았고 서울에 관한 책도 몇권 쓸만큼 '베테랑'이다. 연구소에서 여러 분야의 젊은 학자들과 토론하면서 서울에 대한 안목이 달라졌다며 가급적 우리 역사학에서 다루지 않았던 부분을 담고자 했다는 서문의 한 구절이 새삼 눈에 띈다. 학계에서야 어떻든 대중들은 항상 새로운 시각에 목말라 하니까. 

이 책은 연재물들을 추려서 엮은 것이다. '서울'이라는 이름으로 묶인 독립된 스물 여덟개의 단편들이 저마다의 색깔과 음색을 낸다. '파리국', '제중원', '촬영국' 등 이름에서부터 먼지냄새가 풀풀 나는 소재들도 있지만 '등 따습고 배부른 삶', '똥물, 똥개', '땅거지' 등 서울의 특징이라고 하기엔 밋밋한 소재들도 파고 들어가면 단어에 쌓인 '서울의 역사'를 보여주는 훌륭한 예시가 된다. 풍부한 사진자료도 책을 읽는 재미를 더한다. 연재물의 특징상 대부분의 글들이 주제와 별 상관없어 보이는 곁두리 이야기부터 시작해서 점차 파고들며 관련 에피소드나 역사적 사실들을 덧붙이는 형태인데, 다소 산만한 감이 없지 않지만 딱딱하게 자기 할말만 하고 끝나는 '일관된'역사책들에 비하면 가독성은 훨씬 좋다. 대중을 상대로 하는 책인만큼 주제 선정이나 전개 방식이 흥미 위주로 갈 수 밖에 없었겠지만 저자의 내공이 만만치 않은지라 어느 단편을 보든 결코 가볍지 않은 통찰력으로 여러 '함의'들을 끄집어낸다.

리뷰를 쓰려고 목차를 훝다가 '복수의 하나님'이란 글씨를 보고 새삼 놀라 들춰보니 아하, 명동성당 얘기였구나. 명동성당이 경복궁을 겨눈 쇠뇌였다는 사실을 아는지. "이 땅에 처음 세워진 천주교회들은 '복수의 하나님'이 무도한 세속 권력에 희생된 '하나님의 성도'들을 어떻게 위로하는지, 또 그들에게 어떤 미래를 예비해주었는지를 명료하게 보여주는 가시적 증거물이었다. 명동성당은 십자가가 달린 뾰족탑을 경복궁정문, 광화문을 향해 세웠다.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마치 쇠뇌로 경복궁을 겨누는 형국이다. 아마도 구약시대의 하나님이었다면 그의 종들이 폭군의 처소를 향해 쇠뇌를 겨누고 있는 모습을 보시고 무척 흡족해하셨을 것(p.158)" 글 끝자락에는  "아관파천이후 고종이 경복궁을 버리고 새로 경운궁을 정비한데는 명동성당을 보고 싶지 않았던 심리가 작용했을지도 모른다"는 조심스러운 추측이 덧붙여 있다. 익숙한 공간이 머금은 역사의 흔적을 더듬는 일은 늘 새롭다. 정치상황의 변화에 따라 '공간'을 바라보는 시각의 변화를 살피는 것도 재미있다. 

'상품화된 역사'에 대한 거부감 때문일까. 자본주의, 특히 '물신숭배'에 관한 비판이 곳곳에 묻어난다. 이명박 전 서울시장이 하느님께 봉헌하기 전에도 서울은 '신시'였다만. 지금의 서울은 자본주의 시대의 신, 신중의 신 '물신'의 도시다. "서울은 중세적 중앙집권국가에서 유교적 왕신의 도시로 만들어졌지만 왕신이 그 현실적/상징적 권위를 완전히 상실한 뒤에도 새로운 종교의 성지로 변신하는데 성공했다.(p.21)" 천민이나 양반이나 '경관'만은 함께 누릴 수 있었던 서울 사람들의 '시각적 유대'는 사라진지 오래. "자본주의적 가치법칙은 경관의 소비에도 예외가 없어 이제 초고층 건물 초고층에 살지 않는 한, 어느곳에서도 온전히 조망할 수 있는 능선은 없다.(p.159.)" 동네 여느 중국요리집에 붙어있는 관우초상은 시대의 흐름에 맞게 재물을 늘려주는 사업가로 변신. (27. 와룡묘) '초정리 광천수'의 충청남도 초정은 서울사람들을 위해 마구 퍼올린 탓에 개울도 마르고. "서울이 지방으로부터 모든것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된 것은 이미 오래전이지만, 이제는 땅 속에 숨어 흐르는 물까지 빨아들이는 지경에 이르렀다(24. 물장수)" 한때 사라졌던 '물장수'는 이제 다른 모습으로 다시 나타났고 이젠 수돗물도 마법같은 단어 '민영화'와 짝이 되는것을 걱정해야 한다. 서울의 역사를 되짚는 일은, '물신'을 변천을 추적하는 것과 뗄 수가 없다. 

이 책에 대한 리뷰를 훝어보니 '깊다'에 대한 말들이 많다. '깊이'는 공간에 대한 개념이지만 대개는 시간과 결부되어 쓰이니 이 책의 제목으로 잘 골랐다 싶다. 공간이 품고있는 수많은 사연들, 시공간을 들여다보기. '서울'이라는 카리스마를 파헤치는 책이다. '서울의 숨은 명소 안내서' 쯤으로 생각했던 첫인상이 '오해'라는 것이 기분좋을 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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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팀전 2008-12-30 22: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울 4대문 안을 많이 걸어다녔어요.돈없는 대학생들의 가장 좋은 연애 코스는 그렇게 걷는 거지요. 계절마다 바뀌는 도시의 모습이 지루하지 않고, 옅은 미소에 열심히 댓구해주는 애인의 목소리가 단조롭지 않으니...문득 서울을 걷고 싶군요.

올해 바흐와의 조우에 제가 일조한 거지요 .^^ !!

Jade 2008-12-30 22:57   좋아요 0 | URL
저희집은 서울 변두리인지라 4대문안의 길들은 종로를 빼면 거의 모른답니다 ^^; 꽃피는 봄에 사랑스런 연인이 생기면 저도 4대문 안의 흥취를 즐겨볼게요

그럼요. 제가 음악을 듣게된건 순전히 알라딘 분들 덕분이예요. 드팀전님도 적지않은 영향을 주셨으니, 올해 좋은일 하나 더 하신거예요 ^^

드팀전님 리뷰나 페이퍼 보고도 많이 배워요. 고맙습니다 ^ㅡ^
 
괴물의 탄생 우석훈 한국경제대안 4
우석훈 지음 / 개마고원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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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어체의 강연식 책이라 그럴까. 읽는 중간중간 강연회에서 보았던 우석훈씨의 모습이 떠올랐다. 큰 눈에 어딘가 선해보이는 얼굴. 책에서는 거침없는 말을 툭툭 뱉어내지만 인간 우석훈은 '삐딱하다'기 보단 많이 지쳐보였다. 개인적으로는 아무런 연고도 없는 저자지만 이번 책에서 만큼은 "무언가 열심히 애쓰는"듯한 인상을 받았다. 이 책은 "한국경제대안 시리즈" 마지막 권이지만, 서문에 쓰여 있듯이 사실 "대안"이 초점이 아니다. 대안 사회에 대한 아이디어는 늘상 넘쳐났으니까. 시작도 전에 좌절하는 우리의 빈곤한 상상력이 문제일 뿐. 저자의 말을 빌리면 "대안은 이미 존재하고 또 이런것들의 조합이나 상상력을 통한 새로운 정책은 한국에서 수없이 제시되었고, 또 원한다면 수없는 조합으로 그 개수를 늘릴 수가 있"지만 여전히 "이 모양"이다. 아니 왜? 

다른 서재지기님의 말을 인용하면 이 책은 요약하고 요약한 '알약'같은 책이다. 경제학적 지식이 부족하더라도 조금만 끈기있게 읽으면 무난히 읽어낼 수 있다. 생소하다 싶은 용어는 친절히 설명해놓은 주석도 있고. 경제학에 '관심'이 있는 독자, 특히 지금 한국사회가 무언가 잘못되었다고 느끼는 젊은층을 위한 책이다. ('촌놈들'을 읽을때만해도 별로 못느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는 확실히 쉽게쓰려, 대중적이게 쓰려 무진장 노력했다는 느낌이 팍팍 전해진다) 나는 이런류의 책을 좋아한다. 무슨말인지 몰라 머리를 쥐어뜯다 스르륵 잠들고 마는 어려운 원론책들보다 훨씬 좋지 않나. 문외한으로서 접근하기도 쉽고. 허나 이런류의 책은 어디까지나 '입문'을 위한, 즉 더 심도있는 공부와 고민을 위한 안내서가 되어야 한다. 더 많은 공부와 치열한 고민이 수반되지 않는다면 뭘 잘 모르면서 쉽게 아는체 하고 싶어하는 나같은 '아마추어'에게는 독이 될수도 있다는 말. "화려한 휴가"를 보고 눈물을 쏟아내며 전두환 욕하던 사람들이 투표장에선 아낌없이 한나라당을 찍는다는 슬픈 유머가 통용되는 사회니까. 

표지의 귀여운(?) 괴물의 목을 동강내고 있는 제목 밑에는 웬 적분식이 부제처럼 달려있다. 1998년부터 2008년까지, 서울의 SKY출신 토호들과 조선일보를 소통양식으로 삼는 한나라당의 핵심 지지자들(제곱근!)에 해당하는 지방토호들을 합해서 함수에 넣고 적분한 식, 지난 10년간 2~3%에 해당하는 '엘리트집단'들이 이끌어 온 한국경제에 대한 우석훈식 패러디다. 이 시리즈의 책들은 곳곳에 이런 '우석훈식 유머'들이 깔려있다. 이를테면 다음 문장들. 

"학자로서의 삶을 거의 포기할 뻔했던 절망의 순간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의욕을 불타게 해준 이명박 대통령에게도 남다른 감사를 보인다" 

 "노무현 대통령의 임기가 4년중임이 아니라 5년 단임이라서 완벽하게 한국을 망치기에는 시간이 좀 짧았던 것 아닌가 생각한다. 만약 바로 그 시기에 지금의 이명박이 대통령 자리에 있었다면, 아마 5년만으로도 충분했을 것 같다"  

자칭 C급 경제학자라고는 하지만 공부도 많이 하고 관료로서 편하게 지낼수도 있었던 학자가 왜 이런 대중서적을 내고 강연회를 하고 칼럼들을 쓰는걸까 라고 생각한 적이 있다.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책을 내는것은 (책이 잘 팔린다면) 어떤 명성과 부를 얻을수도 있겠지만 이런 불온한 책을 내는것은 출판 자체도 힘들고 출판 후에도 그리 순탄치만은 않을텐데 말이다. 물론, 사람이 항상 경제적/물질적 이익만을 추구하는 것은 아니니까 이유야 얼마든지 찾을 수 있겠지만. 무엇이 이 사람을 끌고 나왔을까? (이렇게 써놓으니 마치 지난 촛불집회를 두고 "무엇이 이들을 거리로 이끌었는가?"하는 질문같다.) 우석훈식 표현을 빌리면 뇌는 뻥 뚫리고 입만 커져버린 "지옥의 시민"과 흡사한 한국 정치인, 기업인, 학부형, 그리고 "부자되세요"라는 저주스런 주문만 중얼대고 있는 우리 사회가 그 범인인 셈이다.   

 이 책을 보고 학문적으로 말이 안된다고 토를 달 '일반인'은 별로 없을거다.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이라든지 제시한 대안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충분하겠지만 말이다. (사실 이 책은 "대안"을 위한 책이 아니라 이런저런 가능성을 열어보이는게 목적인만큼 제시한 대안들에 대해 말이 된다 안된다 가열찬 논쟁이라도 붙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썼을것 같다.) 책의 시작은 다른 순수학문들과 마찬가지로 경제학도 '순수이론'쪽은 거의 죽어가고 돈되는 응용경제학쪽만 남았다는 한탄이다. 제대로 된 경제학자가 나오기 어려운 학계의 상황과,  다른 나라로 치면 '극우파'에 해당하는 학자가 '건전한 보수'의 버팀목 역할을 하고 있는 '극우파들의 나라' 한국. 세계 자본주의의 역사 - 국가와 시장, 위기 등 - 을 훝어보고 우석훈이 괴물의 "탄생"시기라고 말하는 '98년 부터 삐그덕대는 한국경제에 대한 분석 등등. 요즘 나온 '사회과학서'라면 빠지지 않고 언급될만한 국내상황들이 쭉 나열되어 있고 '촌놈들'을 잇는 '파시즘'에의 우려 등으로 대강 과거-현재의 상황보고가 끝난다. 그러면 미래는?  

사실 미래는 독자가 고민할 몫이다. (아니할 말로 저자가 끝내주는 대안을 제시했다고 해서 머리숙이고 얌전히 따라할것도 아니지 않은가?) 우석훈 역시 자기의 대안은 "여러가지의 가능성 중 하나이며, 먼저 고민했던 사람으로서 펼쳐보이는 것"이라고 되풀이해서 말한다. 우석훈이 제시하는 대안은 "에너지와 자원의 투입은 줄이고, 지식과 문화의 투입은 늘리는 국민경제"다. 지식-문화형 국민경제로 전환하는데 필요한 세가지 과제를 거칠게 요약해보면

1)사교육 해체와 교육문제의 대안
2) 지방자치의 틀 변혁 - 연방제를 도입하면서 중앙화구조를 보완할 수 있는 상/하원 양원제 도입,
3) 제3부분의 발전 - 종교기관을 구심점으로 한 생활협동조합의 활성화, 대기업들의 공적기금 조성, 정부보조금 
정도다. 물론, 각 과제마자 한 장(章)씩을 할애해서 구구절절 긴 설명을 덧붙여놓았는데 요점은 이 모든것들이 허황된것이 아니라 "충분히 가능하다"다. "There is no alternative"에 맞서는 "Another world is possible"의 느낌이랄까. 결국 이명박이나 노무현 "까기"가 중요한게 아니라 "가능성"이 중요한 것이다. 공부하고 고민하고 행동해라! 길이 열릴 것이니.. 

우석훈의 책이 좋은 이유는 읽기에 쉬우면서도 '불후의 고전'이나 '명작'들이 종종 인용된다는 것. (일전에 어느 인터뷰에서 "지식인은 일주일에 최소 2권이상 책을 읽어야 한다"고 했던데 글을 보면 확실히 "책읽은 내공"이 드러난다) 쉽고 재미있는 맥락에서 인용되는 책들은, 그 명성이 주는 압박에도 불구하고 한번쯤 읽어보고싶을만큼 매력적이다. 이 책의 제목으로  마지막까지 "괴물의 탄생"과 "괴물의 해체"가 경합했다는데,  '리바이어던'과 '비극의 탄생'은 이 책 덕에 관심도서 목록에 올랐다. . 신자유주의적 경제질서의 원형을 만들었다는 하이에크의 책을 보면 한나라당이 떠드는 "잃어버린 10년"이나 "747경제"등이 얼마나 황당하면서도 잔인한 민족패권론자인지 이해가 좀 갈 거 라는데...기득권자들은 참 편하다. 공부를 안해도 자기들이 하는 말이 곧 논리가 되니 ^^ 그에 맞서려면 공부해서 그 '말도 안되는 논리'를 깨는수밖에... 결론은 또 "공부하라"구나. 

결론. 이 책은 일차적으로 10대와 20대들을 위한, '가능성을' 위한 책이다. 10년후 또 다른 '공포경제학'시리즈를 집필하지 않길 바란다는 저자의 '소박'한 희망이 '절박'이 되지 않길 바랄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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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nye95 2009-01-12 14: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나가다 들렀는데... 저도 최근에 이 책 읽었거든요. 저같은 경제 문외한도 읽을 수 있을 만큼 쉽고, 그렇다고 가볍지는 않은 좋은 책인거 같아요. 순수 경제학의 토대 위에서 바라본 한국경제의 현실은 거 참 말이 안된다는...

Jade 2009-01-13 01:51   좋아요 0 | URL
아 네 안녕하세요 ^^ 이런 책들의 장점이죠..

순오기 2009-01-23 22: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대회 수상작이네요~ 순회중이라 다시 읽고 갑니다.^^

Jade 2009-01-25 01:56   좋아요 0 | URL
앗 순오기님. 감사합니다. 님도 다시한번 축하드려요 ^^

다이조부 2009-08-23 10: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이책 싸인본 받았는데.. ㅎㅎㅎ

리뷰 잘 보고 갑니다

Jade 2009-08-24 12:31   좋아요 0 | URL
아 네 안녕하세요 ^^ 부족한 글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사랑과 연애의 달인, 호모 에로스 - 내 몸을 바꾸는 에로스혁명 인문학 인생역전 프로젝트 6
고미숙 지음 / 그린비 / 2008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실연'이란 미명으로 나 자신을 지독히도 학대하던 때, 지푸라기라도 잡고싶은 심정에서 별 웃기지도 않은 책들을 읽은적이 있다. "그 남자에게 전화하지 마라", "똑똑하게 사랑하라", "시크릿" 등등...제목만 봐도 뭔가 불순함이 팍팍 풍기지 않나. 어떤 내용이 담겨있을지 뻔히 알면서도 그 어쩌지 못하는 마음을 달래줄 무언가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책들을 사들이는 나 자신이 웃겨서 스스로에게 냉소를 퍼부었었다. (결국은 대충 읽다 말았다. 그런 류의 책들을 몇 권 읽다 보면 무슨 내용이 이어질지 빤하다. 어쩌면 책의 내용보다 무엇을 '소비'하는것으로 마음의 공허를 채우고 싶었던 건지도 ^^) 그 때 진득이 '사랑의 기술'같은 책들이나 읽었으면 좋았을걸. 하긴 그 당시엔 생각하는것 조차 귀찮았을 게다. '상처받은'내게 필요한건 오직 위로와 동정 뿐이었으니까. 근데 그 '위로'라는것이 받으면 받을수록 공허해지고 나 자신이 점점 더 초라해지는 것이다. 스스로를 가엾게 여기는 자기연민의 고리를 하염없이 맴도는 악순환. 이 책은 딱 잘라 말한다. "대부분의 심리서들이 상처받은 영혼에 대한 위안과 동정으로 가득하지만, 동정과 연민만큼 인간을 나약하고 비참하게 만드는 것도 없다" 공허한 위로는 자신이 위로받는 대상이라는 것을 다시한번 확인시켜줄 뿐이다. 어쨌든, 이 책은 사랑에 대해 알고 싶으나 그나물에 그밥인 '작업의 정석'들에 신물난 사람들을 위한 책이다. 시야를 넓히면 사랑의 환상을 신봉하는 우리 모두에게 강한 펀치한방을 날리는 책. ^^

호모 에로스. '에로'라는 말이 일상에선 참 저급하게 쓰이고 있긴 하지만 멋진 정의다. 사랑하기 위해 태어난 인간. 그런데 이 책은 뭔가 통속적인 '사랑 방정식'해법서가 아니다. '사랑'하는 법에 대해 말하고 있지만 사실은 우리 삶 전체를 갈아엎으라는 지극히 '불온한'책이다. "내 몸을 바꾸는 에로스 혁명"이라는 부제를 유심히 보시라. 방점은 "에로스" 보다는 "혁명"쪽이다(책 내용을 따른다면 사랑의 본질은 가히 혁명적이다. 뒤집으면, 혁명적이지 않은것은 사랑이 아니다.) 혁명,하면 뭔가 불온해서 부르르 치가 떨리는 사람은 이 책을 읽으며 스팀 좀 나올거다. 우리의 통념을 여지없이 깨버리고 비웃고 끊임없이 '탈주'로 유혹한다. 기독교와 자본에 대한 비판이 양념처럼 등장하는 '사랑학 개론'이라니. 코뮌주의자 책 답게 맑스와 코뮌에 대한 언급도 심심찮게 나오고. (뭐 그렇다고 이 책이 '사랑'을 미끼로 사람들을 꾀려는 음험한 책은 아니고 어디까지나 "제대로 사랑하는 법"이 일관된 주제다. 하긴 조선일보식 사고라면 "사특한 목적으로 사람들을 현혹시키는"책이 될지도.)      

자본주의에 맞게 '소유욕'으로 변해버린 사랑에 대한 비판은 (이 책에서도 자주 인용되는)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 혹은 "소유나 존재냐"를 보는것이 더 깊이있는 독서가 될 수도 있겠다. 이 책의 장점은 현재 한국의 상황에 맞는 예시 - 정이현의 소설 인용, 주변인들의 인터뷰, 드라마 사례 등 - 들이 풍부한 것, 구어체로 아주 쉽게 씌였다는 것이다. 특이한 것은 저자가 '고전평론가'고, 현재 '동의보감'을 공부하고 있어서 한의학, 혹은 동양철학에 입각해 상황을 분석해 놓은 부분도 있다는 것. 이건 장점이자 단점인데 딱딱하고 직선적인 서양철학적 설명보다는 무언가 간결하면서도 깊이있는 선사들의 말이 더 와닿을때가 있는가 하면, 동의보감의 정기신 이론으로 몸의 불균형상태를 설명하는 부분은 한의학도인 나도 약간 갸우뚱이다. (참고로 나는 아직 동의보감을 정식으로 공부해본적은 없기때문에 가타부타 할 처지가 아니긴 하지만. '虛熱이 뜬다'든지, '肝腎陰虛'라는 한의학적 개념/설명에는 익숙한데도 뭔가 이상했다. 내용의 맞고 틀림을 떠나서 맥락에 적절한 논거는 아니라는 느낌이 들었다.)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예부터 사랑의 달인들이 해 왔던 말들과 대동소이하다. 늘상 듣는 말이지만 막상 체화하긴 어려운 테제들. 사랑은 '나'의 문제이며 모든 관계가 그렇듯 끊임없이 변한다는 것. 하여 '영원한 사랑'운운하는 환상을 버리고 주체적으로 가꿔 나가야 하는 '유기체'같은 것이라는 것. '사랑하는 법'역시 공부가 필요한 고난도 기술이라는 것 등등 대표적인 구절 몇가락을 들어보자. 

"사랑이란 대상의 문제가 아니라 '나'의 문제다. 즉, 내가 어떻게 관계를 구성하느냐가 사랑의 내용과 형식 모두를 결정한다. 그리고 그것이 내 존재의 궤적을 만든다. 존재의 흐름과 궤적, 그것을 일러 운명이라고 말한다. 내 운명의 주인은? 바로 '나'다. 그러므로 시작에서 종결까지 전적으로 나에게 달려 있다. 따라서 내 안에서 사랑이 어떻게 일어나고 소멸되는지를 철저히 살피겠다는, 다시 말해 사랑이라는 "괴물"과 맞짱을 뜨겠다는 승부욕이 있어야 한다. 딱 그 의욕과 의지만큼 '자기'로부터 떠날 수 있으리니" 

느낌이 오는가? 솔직히 이런 얘기들만 가득차 있다면 이 책 자체가 강한 인상을 주지는 않았을게다. 이런 얘기를 풀어놓는 사랑의 고수들은 예나 지금이나 많지않나. 자칭 "코뮌주의자"의 작품인 만큼 이 책은 태생적으로 삐딱하다. 우리가 열광하는 '국가경쟁력'이 사실은 이팔청춘의 피끓는 성에너지를 쥐어짜낸 작품이라는 것, 상품/쇼핑의 늪에 갇혀버린 자본주의적 연애, 그리고 끊임없이 환상을 생산해내는 드라마들 비판은 기본이고 아예 "화폐권력에 저항하라"는 선동까지! " 우리시대 모든 연인들이 연애와 쇼핑 사이의 이 은밀한 공모관계만 해체해도 신자유주의 체제는 휘청거릴"거라는 생각을 해봤다며 너스레를 떤다. 그렇게 한참을 화폐권력에 길들여진 빤한 연애를 비판하다가는 사랑=공부라는 저자의 신념답게 "사랑하는 순간부터 책을 읽으라"는 모범적인(!) 구호를 외친다. 가장 좋은 공부/연애방법은 함께 책을 읽고 세미나를 하는 것이라나? 이거 평범한 대한민국 청춘이라면 멍~하게 들고서서 "뭐 이런 책이 다 있어?"할 판이다. 사랑이 '느낌'이 아니라 동사라는 것, 끊임없이 배우고 익혀야 할 '공부'라고 말한 이는 여럿 있었지만 책과 세미나를 통해 연애를 하라니...솔직한 심정으로 그런 연애 한번 해 봤으면 좋겠다. ^^

"사랑이 위대한 건 삶을 이전과는 전혀 다른 지평으로 인도해 주기 때문이다. 만약 여러 번의 사랑을 했는데도 삶의 지평이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면, 또 존재의 내공이 커지지 않았다면 그건 좀 의심해 봐야한다. 사랑이 아니라, 습관적 연애중독증일 가능성이 많다. 연애중독증의 가장 큰 특징은 절대 책을 읽지 않는다는 것!"    

이 책이 맘에 드는 이유 하나 더. 몸과 정신을 하나로 보는 동양적 사고에 맞게 사랑을 '심리'의 문제가 아니라 엄청난 '몸적 사건'으로 바라본다는 것. 내가 푹 빠져버린 "빌헬름 라이히"도 여러번 인용된다. 80년대를 겪어온 사람으로서 당시 "사회를 변혁하겠다고 존재를 다 건 운동권들이, 일상과 신체의 가장 핵심적 이슈인 사랑과 성에 대해서는 어떤 학습도 하려고 하지 않았"다는 것을 비판한다. 여기서 인용되는 라이히의 말 "사랑, 노동, 지식은 우리 생활의 원천이며, 이것들이 우리의 생활을 지배해야 한다."  이 책에서 말하는 '사랑'은 오르가즘 능력=생기/생명력이라는 라이히의 이론을 전제로 깐 것이기 때문에 온 존재를 뒤엎을만한 에너지의 원천이요 오롯이 집중해야 할 중대한 사건이자 전 생에에 걸친 학습/실천이다. 몇십년전에 비해 성과 연애가 "자유로워졌다"고는 하지만 섹스는 매춘이나 원나잇스탠드 등 쾌락의 도구로, 연애는 (결코 채워지지 않는) 드라마의 환상속에 갇혀있다는 지적. 고정된 사회적 통념을 깨고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탈주선이 사랑의 본질이라면, 그 사랑은 태생적으로 혁명적이다. (아님, 반동적이거나 ^^)  

간만에 '불온한'책을 읽으니까 신선하다. '혁명'이라는 불온한 단어와 '에로스'가 결합하니 이렇게 유쾌하고 도발적이구나. 하긴 요즘같이 어수선한 시대라면 88만원 세대는 '암울함'의 상징이 아니라 '역동적 폭팔력'으로 승화할 수도 있겠다는 희망이 언뜻 보인다. 2008년 초만해도 아무도 '촛불'을 예상하지 못했듯이.  

사족 : 도스토예프스키가 소설에서 신랄하고 우스꽝스럽게 풍자했던 체르니셰프스키의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연애소설이 이 책에서는 상당히 미화되서 그려진다. "사상"을 주입하려는 문학작품은 목적이 지나치면 웃겨지기 쉬운데 실제 소설이 어떨지 궁금해진다. ^^  내 님이 다른사람과 사랑해서 더 행복하다면 기꺼이 행복하게 보내주겠다는 '달인'의 경지는 나같은 범인들에겐 멀고 먼 이야기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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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호모 쿵푸스 실사판 : 다른 십대의 탄생] 공부는 셀프!
    from 그린비출판사 2011-04-06 17:22 
    ─ 공부의 달인 고미숙에게 다른 십대 김해완이 배운 것 공부의 달인 고미숙 선생님. 몸으로 하는 공부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적절한 계기(혹은 압력?)를 주시곤 한다.공부가 취미이자 특기이고(말이 되나 싶죠잉?), ‘달인’을 호로 쓰시는(공부의 달인, 사랑과 연애의 달인♡, 돈의 달인!) 고미숙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공부해서 남 주자”고. 그리고 또 말씀하셨다.“근대적 지식은 가시적이고 합리적인 세계만을 앎의 영역으로 국한함으로써 가장 ...
 
 
다락방 2008-12-27 17: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마지막에 언급하신 그런 '달인'의 경지는 저같은 범인들에게도 멀고 먼 이야기에요. 아니 솔직히, 개떡같은 이야기지요. 내 님인 주제에 어디 다른 사람과 사랑할 생각을 해요, 하기는!!

저기 저 위에 처음 단락에서 언급하신 실연에 대한 이론서(?)나 자기계발서등을 읽어 보진 않았지만 물론 말씀하신 것 처럼 제목만으로도 충분히 짐작은 가지요. 그런데 저는 『그는 당신에게 반하지 않았다』를 너무 재미있게 읽었어요. 혹시 읽어보셨나요? 완전 재미있어서 계속 키득키득 웃고 밑줄도 박박 긋고 그랬지요.


자자, 이제 Jade님과 제게 남은건 '희망'인 겁니까?
:)

Jade 2008-12-27 18:27   좋아요 0 | URL
그 책은 미처(?) 못 봤는데 제목이 강렬한데요? ㅋㅋ 제목만 봐도 딱 느낌이 와요...ㅎㅎ

다락방님, 희망은 '남는'게 아니라 '만들어가는' 거예요! ㅋㅋ
 
악령 - 상 도스토예프스키 전집 12
도스또예프스끼 지음, 김연경 옮김 / 열린책들 / 2007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보통 소설은 머리를 식히기 위해, 혹은 기분전환을 위해 가볍게 읽는 경우가 많지만 도스토예프스키 소설은 왠만한 사회과학 서적보다 읽기 힘들다. 일단 양이 장난이 아니고 ^^ 러시아 이름들은 어찌나 길고 어려운지. 하긴 이건 모든 러시아 소설 ㅡ 또 인물들 이름이 긴 다른 외국 소설에도 해당되는 사안이니 넘어가고. 등장인물 한명한명이 하나같이 비범한 인물들이기 때문이다. 등장인물의 대화를 가만 보고 있으면 도무지 무슨말인지 알아먹기가 힘들다. 대화가 아니라 각자의 만담에 가까운. 인물들이 대개 상궤를 벗어난, 금방이라도 튀어나올것 같은 개성의 소유자라는게 소설을 읽는 가장 큰 장애물이자 가장 큰 매력이다. 인물들의 대화며 행동들은 나같은 빈곤한 상상력의 소유자에겐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이다. 하여 애초에 '몰입' 혹은 '분석'따위는 꿈도 꾸지 않고 그저 읽어나갈 뿐이었다. 그로테스크한 유머를 즐기면서.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이 특별한 이유 중 하나는 지독히도 그를 괴롭혔던 간질이다. 간질발작의 의학적 정의는 "대뇌 신경세포에서 유래하는 비정상적이고, 갑작스럽고, 과도하면서 빠른 전기적 신호의 방출에서 유래하는 의식, 행동, 감정, 운동 기능이나 감각의 간헐적이고 상동적인 이상발작"이다. 스스로가 간질 환자였기 때문에 그의 작품에는 간질발작의 묘사가 종종 등장한다. ("세계와 인간의 모든 비밀이 찰나적인 섬광처럼 환하게 밝혀지는 5초"에 대한 묘사는 [백치]에 아주 상세하게 그려진다.) 의식과 무의식, 이성과 비이성의 경계를 넘나드는 경험, <우주적인 조화의 순간>에 대한 인식이 그의 독특한 인물들을 만들어내는데 상당부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이 책에서는 무신론을 증명하기 위해 자살하는 끼릴로프의 인신사상과 직결된다. 그에게는 모든것이 그 5,6초에 의해 해명되고 결정되므로 시계로서 측정되는 시간은 아무 의미가 없다. 그의 시계는 오래전부터 고정되어 있고 그는 종종 밤새도록 사색에 잠긴다. 샤또프가 갑자기 들이닥친 만삭의 아내를 위해 물건들을 빌리러 찾아가자, 자지 않고 있던 그는 뜬금없이 출산이 무슨 의미가 있겠냐며 (곧 나올 아이 때문에 눈이 뒤집힌 샤또프에게) 씨알도 안먹힐 연설을 늘어놓는다.

"...몇 초의 순간이죠. 그것들은 다 합쳐도 고작해야 5초 내지 6초밖에 안 되지만, 당신은 갑자기 완전히 성취된 영원한 조화의 존재를 느낍니다. 이건 지상의 것이 아닙니다. 내 말은 그것이 천상의 것이란 얘기가 아니라, 인간이 지상의 모습으로는 견뎌 낼 수 없는 어떤 것이란 얘기입니다. 물리적으로 변화를 하든지, 아니면 죽어야 합니다. 이건 선명하고도 논란의 여지가 없는 감각입니다.....무엇보다고 끔찍한 것은 이러한 기쁨이 너무도, 끔찍할 정도로 선명하다는 점입니다. 만약 5초 이상 지속된다면, 그러면 영혼은 더 이상 참지 못해서 사라져 버릴 것이 분명합니다. 이 5초간 나는 삶을 사는것이고 이 5초를 위해서라면 내 삶 전체를 내줄 겁니다. 왜냐하면 그만한 가치가 있기 때문입니다.10초를 참아내기 위해선 물리적으로 변화해야 합니다. 난 인간이 출산을 멈춰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목표가 성취되엇다면 아이가 무슨 소용입니까, 발전이 무슨 소용입니까? 복음서에는 부활때에는 출산을 하지 않고 신의 천사처럼 될 것이라고 씌어져 있습니다. 암시죠. 당신의 아내가 출산을 하고 있다고요?(p.913)"

이 소설은 '1869년 네차예프의 동료살해사건'에서 모티프를 얻어 쓰여진 것이다.처음에는 죽은 동료 이바노프는 샤또프로, 네차예프는 표드르 베르호벤스키로 구상되었으나 일순간 도스토예프스키를 사로잡은 캐릭터 스따브로긴에 밀려 표드르는 약간 우스꽝스럽기까지 한 얼치기 혁명가 또는 망나니정도에 그치고 만다. 스따브로긴은 누구인가?  허무주의의 극단이자 순수한 악에 가까운, 어머니마저 섬뜩하게 만드는, 감히 범접할 수 없는 가면 같은자. 좀처럼 자신의 작품에 대해 개작은 물론 퇴고조차도 하지 않던 도스토예프스키에게 처음부터 [악령]을 다시쓰게 만든 살아있는 캐릭터. 이에 대한 베르자예프의 평을 들어보자. 

"도스토예프스키는 자신의 주인공에게 낭만적으로 홀딱 빠졌으며 그에게 사로잡혔고 매혹당했다. 그는 그 누구에게도 이토록 홀딱 빠진 적이 없었으며, 그 누구도 이렇게 낭만적으로 묘사한 적이 없었다. 니꼴라이 스따브로긴, 그는 도스또예프스끼의 맹점이요, 매혹이요, 원죄인 것이다.(p.1113. 역자해설 중)"

이 소설에 등장하는 많은 인물들이 '악령-허무주의'에 사로잡혀 "자신을 집어삼킨 관념"들과 함께 자살하거나 살해당한다. 처음 그들을 홀린 장본인이 바로 스따브로긴인데, 그는 아무것에도 홀려있지 않은 듯 모두의 상상밖에 있으나 돌연히 본인의 의지대로 자살한다. 역자 해설에 보면 스따브로긴이야 말로 "실상은 누구보다도 심각하게 홀린 자이며 '부정성'의 극단을 가장 잘 구현하고 있는ㅡ 하여 결국 파멸할 수 밖에 없는 골수 허무주의자의 수장"이라는 설명이 나온다. 우리 주인공은 끝까지 그에게 홀리지 않았던 다리야에게, 자신은 스위스 우리(Uri)주의 시민으로 등록했다며 자신과 같이 살자고 편지를 쓰고선, 돌연히 자살하며 소설의 결말을 장식한다. 마지막 대사와 화자의 설명을 보자.

"우리(Uri) 주의 시민이 바로 그 곳, 문 뒤에 매달려 있었던 것이다. 조그만 탁자 위에는 연필로 몇 마디를 적어 놓은 종이 쪽찌가 놓여있었다.  "아무도 탓하지 말라. 나 스스로 한 일이다" 바로 그 곳, 조그만 탁자 위에는 망치며, 비누 조각이며, 필경 예비로 미리 마련해 둔 듯 싶은 커다란 못이 놓여있었다. 니꼴라이 프세볼로도비치가 자신의 목을 매다는 데 사용한 아주 튼튼한 비단 끄나풀은 필경 미리 잘 골라서 마련해 둔 것인 듯싶엇는데, 비누가 아주 잔뜩 문질러져 있었다. 이 모든것이, 미리 계획했던 일이라는 것과 최후의 순간까지도 의식이 있었음을 말해주었다. 우리 의료진은 시체를 해부한 뒤, 광기의 가능성을 전적으로, 완강하게 부인했다."

* 이 책은 별 하는일 없는 인물의 관찰자의 시점으로 서술되어 있는데, 다른 인물을 설명할때는 종종 '전지적 작가 시점'처럼 자세한 심리묘사가 덧붙여지나 스따브로긴에 대해서는 줄곧 '범접할 수 없는 대상'의 카리스마 때문인지 별 설명이 없다. [악령]전체 내용으로는 각 인물들이 스따브로긴에게 얽혀 들어가지만 정작 그의 행동이나 심리에 대한 묘사는 아주 적은 부분뿐이다. 초판본에는 편집장의 강요로 상당수 삭제되었다던 "찌혼의 암자에서"가 말미에 덧붙여있다. 이 부분은 스따브로긴의 고백록으로, 본문에서는 나오지 않았던 여러 정황들이 밝혀지면서 냉혈한 스따브로긴이 조금은 희화화 되기도 한다.

등장인물들의 개똥철학들, 아무렇지 않게 혁명 운운하는 대화를 듣고 있으면 그 당시 러시아의 어수선한 정황이 그려진다. 최근 이백여년동안의 세계사를 되짚어보면 러시아만큼 골때리는 곳이 또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변화가 극심했던 곳이 아니던가. 급변하는 정세, 홍수처럼 마구 유입되는 유럽의 최신 철학사상들. 너나할 것 없이 모두 '혁명'을 말하고 '종교' 또는 '삶'의 본질을 논하던 사회. 1900년대 일제치하 조선의 상황과 비슷하지 않았을까. 뭔가 한다 하는 사람이라면 너나할 것 없이 독립군 행세를 하던. 얼마전 상영했던 영화 '모던보이'처럼ㅡ 별 생각없이 어쩌다 보니 독립군이 되어버린 그들. 표드르가 만들고 파멸시킨 5인조. 러시아 전역에 거미줄처럼 퍼져서 외국 수뇌부의 지령을 받아 과업을 수행하는ㅡ 과업을 위해서라면 목숨도 기꺼이 바칠 수 있는 고귀한 단체! 허나 다섯명의 고귀한 믿음을 저버리고 끝끝내 "유일했던"단체...

소설 맨 앞장은 성서 구절로 시작한다.  

"마침 그곳 산기슭에는 놓아 기르는 돼지 떼가 우글거리고 있었는데 마귀(악령)들은 자기들을 그 돼지들 속으로나 들어가게 해 달라고 간청하였다. 예수께서 허락하시자 마귀(악령)들은 그 사람에게서 나와 돼지들 속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돼지 떼는 비탈을 내리 달려 모두 호수에 빠져 죽고 말았다. 돼지 치던 사람들이 이 일을 보고 읍내와 촌락으로 도망쳐 가서 사람들에게 알려 주었다. 사람들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보러 나왔다가 예수께서 계신 곳에 이르러 마귀(악령)들렸던 사람이 옷을 입고 멀쩡한 정신으로 예수 앞에 앉아 있는 것을 보고는 그만 겁이 났다. 이 일을 처음부터 지켜본 사람들이 마귀(악령)들렸던 사람이 낫게 된 경위를 알려 주었다.....(루가의 복음서 8장 32~36절)"

보통 사람들의 평범한 기대와 달리, 이 책에선 아무도 구원받지 못한다. 유난히 무신론에 집착하는 사람들도 나오고, 죽어가는 순간에 성서를 읇조리며 마음의 평안을 얻는 구세대 지식인 스쩨판 뜨로피모비치도 있다. (참고로 그의 삶과 죽음은 비극보다는 희극에 가깝다.) 가장 강력히 무신론을 주장하고 인간이 곧 신이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죽음의 공포를 극복하고 자살을 택하는 끼릴로프도, 그의 죽음은 단지 망나니 뾰드르에게 정치적으로 이용당할 뿐이고, 그마저도 우아하지 못한 기이한 소극을 연출하며 어리버리 죽는다.. 그럼 신이 있다는 건가? 글쎄 소설의 전개는 그렇게 순탄하지 않다. 어리버리한 사람들은 스따브로긴에 얽혀 어찌어찌 죽고, 남은 사람들도 거의 파탄에 이른다. 다른 이들을 파멸로 몰아넣은 비열한 뾰드르 - 가장 저열하고 더러운 악령에 홀린 - 가 거의 유일하고도 뻔뻔한 생존자다. 고귀함이니, 러시아의 본질이니,  순수한 열정을 떠들어 대는 인간들이 보여주는 행동은 천박함, 비열함, 혹은 우스꽝스러움의 연속이다. 줄거리만 보면 뭐 하나 아름다운게 없다. 이런 부조리함 속에서 작가가 보여주려는 것은 결국 인간, 인간다움이다. 우리의 이성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우리는 왜 소설을 읽는가? 작가의 목적이 다 다르듯 독자의 목적도 모두 다르다. 삶의 지혜를 얻는 이도 있고, 감동 또는 지극한 공감을 얻는 이도 있다. 일상으로부터의 탈출, 또는 판타지적 재미 또는 내면의 성찰...모든것이 목적이 될 수 있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은...? 모르겠다. 현재로서는 그저 감탄할 뿐이다. 그가 만들어 낸 인물들의 매력에 푹 빠지기에도 아직은 내공이 모자란 탓에..

나보다 도 선생에 일찍 빠져든 어느 서재지기님이, 도 선생의 다른 작품들이 "제주 패키지 여행"이라면, [악령]은 '제주올레'라는 비유를 드셨다. 제주올레를 걸어보지 못한 나는 이해할 수 없는 비유다만...이 작품, 특히 '스따브로긴'이라는 캐릭터가 뿜어내는 매력은 충분히 그럴 가치가 있다고 본다. 단, '악'이 주는 매력에 빠질 용의가 있다면.... 나는 굉장히 재미없고 고지식한, 한마디로 "착한척 하고 싶은" 인간이다만, 스따브로긴 만큼은 빠져들 수 밖에 없다. (똑같이 악한 이미지라도 표드르는 어찌나 우스꽝스러운지! 하긴 그게 그 캐릭터의 매력이자 운명이겠다만.) [백치]의 미쉬낀 공작이 주는 - 너무 순진하고 가식없는, 날것 그대로인 -  매력과는 다른. 악하기 때문에 더욱 매력적인 캐릭터.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을 하나씩 읽어가고 있고, 별 일 없는 한 전집을 다 읽을 계획인데, 까라마조프만은 대단원을 장식하려 꾹꾹 참고 남겨두고 있다. 대심문관의 이야기는....어쩐지 경건한 마음으로 읽어야 할 것 같아서. 인간의 심리를 공부하려는 내게, 도스토예프스키는 필수 코스가 되어버렸다. 충분히 홀릴만한 가치가 있는, 아니, 홀려버리고 싶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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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08-12-09 00: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홋~ 악령, 나는 아직 넘지 못한 산이에요.
초등독서회에서 방학이면 '고전읽기'에 몰입해서 4년전 '까라마조프씨네 형제들(열린책들)'을 읽고 어찌나 스스로 대견스러웠던지~~ 대심문관 부분은 다시 또 읽으며 감동 먹었죠.

순오기 2008-12-09 00:11   좋아요 0 | URL
아래글을 읽어보니 패키지와 제주올레로 정의하신 분이 '승주나무'님이군요.^^
죄와 벌은 거의 30년 전에 교회 고등부 학생들과 독서모임할 때 토론했던 기억이 스멀거리네요.ㅋㅋ

Jade 2008-12-09 11:01   좋아요 0 | URL
ㅋㅋ 네 승주님도 도 아저씨에게 빠지셨더라구요~

전 대학 1학년때 까라마조프 읽긴 했는데 기억나는게 없어서....-_-;;
이번엔 경건한 마음으로! ㅎㅎ

승주나무 2008-12-09 18: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예전에 읽었던 느낌들이 확 살아나는 느낌. 낯이 붉어지네요~
이런 제이드의 재현술이 극에 달했도다. 뾰뜨르의 '콩 뿌리듯' 말하는 모습이 엉뚱하게 떠오르네요.

제주올레와 패키지가 갑자기 튀어나와서 깜짝 놀랐지만,
악령을 쓰면서 도 선생은 아마 이런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싶네요.
'C8, 그냥 끝까지 가불자..."

Jade 2008-12-10 01:36   좋아요 0 | URL
ㅋㅋ 한번에 필 꽂혀서 좌르륵 쏟아냈을 도 아저씨의 광기(!)에 그저 감탄할뿐..

Alicia 2008-12-10 19: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도스토예프스키에 빠져있어요? ^^
전 부끄럽게도 아직 도스토예프스키는 못읽어봤어요. 전작주의로 나간건 몇명안되구요. 중3하고 고등학교때 삘받아서 톨스토이하고 투르게네프,헤세의 장편들을 몰아서 많이 읽었고.(그래서 그동안 삶이 가볍지 않고 너무 무거웠나봐요.)
문학전공하고 싶었는데 용기가 없었서 다른전공 택했고.. ^^
근데 요즘은 책고르는데 들이는 시간이 아까워서 검증된 책을 찾게 돼요 저 너무 게으르죠~~ ^^

제이드님 요즘 편안해보여요. :)

Jade 2008-12-10 21:29   좋아요 0 | URL
헉 중고등학생때 알리샤님 문학소녀셨군요! 전 생각없는 중고딩이었는데...ㅋㅋ

저도 대학와서 가끔 수능 다시봐서 인문대 갈까 생각 했었어요. 나이 들어서 여유가 좀 생기면 학교 다시 다니고 싶기도 하고...^^

알리샤님 요즘 바쁘신가봐요.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하실정도면..저는 이것저것 꽂히는대로 읽어요. 요즘은 할일이 너무 없어서요..ㅋㅋ

집착을 내려놓으니 편해요 ^^

2008-12-10 22: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12-10 23: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12-13 07: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12-13 08:15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