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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권의 책으로 노무현을 말하다
김병준 외 지음 / 오마이북 / 2010년 6월
평점 :
절판


 이미 세상에 없는 사람에 대해 이야기 할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얼마간 너그러워지고ㅡ 조금은 미화하게 된다. 나와 같은 세상에서 숨쉬고 부대끼며 살아가는 이에 대해선 좋은점 못지않게 눈에 띄는게 부족함이나 허물이지만, 더 이상 '소통'할 수 없는 존재에게는 굳이 쓴 소리 하고 싶진 않은 게 인지상정이다. 더욱이 '요절'이나 '억울한' 혹은 '안타까운'이라는 수식어가 붙는 죽음이라면 말이다. 노무현 대통령 서거 이후로 한동안 이어졌던 추모행위들 역시 대부분이 '낭만화' 혹은 '이상화'에 가까웠다. 추모, 란 원래 그런거니까.   

죽음, 의 의미는 남겨진 자들을 위한 것이다. 죽은자는 늘. 말이 없다. 

 

6,2 지방선거도 있었고. 서거 1주년이기도 했고. 노무현 관련 책들이 속속들이 쏟아져 나왔지만. 사실 어느것에도 손이 가지 않았다. 고작 1년이 지났을 뿐이고, 지금처럼 '해도 너무하는' 막무가내 정권 하에서 나오는 책들이라면 할 얘기가 너무 뻔하지 않은가. 사실 이 책도 알라딘 신간평가단, 이 아니었으면 읽지 않았을 것이다. "노무현과 같이 일했던 사람들과, 노무현이 읽던 책에 대해 말한다"....뭐 대통령으로서의 노무현, 정치인으로서의 노무현이 가졌던, 알려지지 않은 고민들을 알게되는 계기는 되겠다만.  

 

 늘 공부하는 대통령이었던 노무현의 뜻을 이어받아 "깨어있는 시민"이 되고자 하는 사람들,이 모여 열었던 강독회였고ㅡ 이 책은 그 흔적이다. <진보의 미래>라는 책을 쓰기 위해 노통이 공부하던 몇 권의 책들. '노무현 대통령님, 당신을 영원히 기억하겠습니다'로 시작하는 오연호 기자의 머리말은, 좋게 말하면 딱딱할 수 있는 책을 감성적인 문구들로 잘 열었고ㅡ 나쁘게 말하면 그저 감상적인 추모글이다. 바꿔 말하면 머리말 하나로 이 책을 꿰뚫는 키워드는 "노무현 추모"임을 여실히 잘 보여준다. 강연회의 강사들도 대부분 참여정부 하에서 노대통령과 함께 일하거나 퇴임 후 책 집필 준비를 도와주던 사람들이라 주제는 달라도 일관된 내용은 "노무현 대통령이 이런 책들을 읽으며 이런이런 고민을 했었다. 참여정부하에서 이러이러한 것들을 해냈고, 이러이러한 것들은 하고싶었으나 여건이 되지 않아 잘 되지 않았다." 등이다. 워낙 재임기간에 언론에게 뭇매를 맞았던 탓인지 늦은 해명처럼 들리는 부분도 몇 있다.    

 

 참여정부의 정책에 대해 아쉬운 점을 말하는 청중에게, 김용익 전 청와대 사회정책수석비서관의 답변 중 이런게 있다.

"제가 대통령의 참모로 일했기 때문에 가급적 비판 같은 건 입 밖에 내려고 하지 않습니다. 설사 제가 대통령에게 불만이 있다손 치더라도 돌아가셨다고 또는 임기가 끝났다고 해서 참모가 이리저리 대통령을 비판하는 것은 도리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읽으면서 약간 갸우뚱이다. 역대 어떤 대통령보다도 권위주위를 깨려고 노력했고, 대등하게 '토론'하길 좋아했던 노대통령과ㅡ 비판하는 것은 '참모의 도리'가 아니라는 말 사이에 느껴지는 이질감. 흠흠.

 

 강연을 듣는 수강생들과 강사들 사이에는 '노무현'이라는 큰 전체 말고도 또 하나의 공유점이 있으니, 현 정권에 대한 비판이다. 로버트 라이시의 <슈퍼 자본주의>를 소개하는 장의 소제목은 아예 "이명박 정부, 슈퍼자본주의와 닮은 꼴"이다. 요즘 주위 사람들과 이야기 하다 보면 이명박, 을 비판하지 않는 사람은 거의 없다. 재임기간의 노무현도 그랬었지. 차이가 있다면ㅡ 노무현은 거의 모든 언론에서 뭇매를 맞았다는 것이고 이명박 정권은 주류 언론의 든든한 후원을 받고 있다는 것. 퇴임후 노무현은 <진보의 미래>라는 책을 구상하며 치열하게 공부했지만, 이명박은 퇴임 후 <보수의 미래>같은 책을 내놓을거라고 상상하기엔 좀 힘들다는 점... 

사실 이 책에서 소개하는 여러 책들, 보다는 강연자들의 말 속에서 살짝씩 드러나는 노통의 평소 모습들이 더 인상적이다. 조기숙 전 청와대 홍보수석의 표현에 따르면 노통은 "정치를 하기보다는 종교지도자가 됐으면 성공할 수 있었을 정도로 거래를 거의 하지 않은 특이한 분"이었다"한다. (이명박 정권 하에서는 '종교지도자'의 의미를 좀 다르게 해석해야 하는지도 모르겠다만) 강연자들의 말을 종합해보면 노통은 자신은 실패한 대통령이지만 민중은 실패하지 않을거라 굳게 믿었고, 우회할 줄 모르는 강직한 지도자였으며, 재임기간내에 개인적 업적을 이루겠다는 욕심보다는 좀더 멀리 보고 엄청나게 책을 많이 읽고 공부를 많이 했던 대통령이었다. 애초에 "노무현"이라는 전제조건이 없었으면 성립되지 않았을 강연회였으니ㅡ "노무현 추모"는 이 책의 목적이자, 일종의 한계다.

  

어쨌든. 다시 책 내용으로 돌아오면. 자기가 하고싶은 말을 하면서 은근슬쩍 좋은 책들을 맛깔나게 소개하는 책들이나, 관련 분야의 책들로 친절히 가지를 뻗고 나름의 기준으로 장단점 평가까지 해주는 이런류의 책들은, 많이 많이 더많이 출간되어야 한다. 비록 솟구치는 구매욕에 허리가 휠 망정. 어차피 어떤식으로든 해소되어야 할 소비욕이라면, 책을 향한 욕심은 귀엽게 봐줄수도 있다는 것이 내 지론이다. 책을 읽는다건 타인의 생각을 휘젓고 다니며 슬쩍 간(!)도보고 내 머릿속에도 담았다가 맘에 안들면 미련없이 out 시킬수 있는 가장 손쉬운 길이 아니던가. 이 책 역시 곳곳에 유혹의 손길들이 숨어있다. <유러피언 드림>,의 경우 노 전 대통령도 몇번이고 "좋은책"이라고 강조했다니, 애초에 '노무현'이라는 대전제하에 펼쳐지는 책 안에서ㅡ 그보다 더 매력적인 유혹이 있을까?  

이 책 덕분에 <폴 크루그먼 미래를 말하다>, <유러피언 드림>, <빈곤의 종말>. 세 권이 우리 집으로 영입되었다...관련 책 세권을 사게하는 정도라면. 이 책으로서의 할 일은 다 하지 않았나? ^^ 

 

 국가의 역할, 폴 크루그먼 미래를 말하다, 유러피언 드림, 빈곤의 종말 챕터를 찬찬히 읽다보면 노무현이 품었던 '국가의 역할'의 이상이 보이는 듯도 싶다. '국가의 역할' 운운 하면 게거품 물고 빨갱이 운운할 모 신문이 떠오르지만ㅡ 사실 논쟁의 핵심은 국가가 개입할것이냐, 개입하지 않을것이냐가 아니라 '어떻게' 개입할것이냐다. ('개입'하지 않는 '국가'라는것이 존재하는가?) 폴 크루그먼의 표현에 따르면 '진보의 시대'에는 아무리 보수정부라도 진보적 정책을 수행할 수 밖에 없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참여정부는 진보정부였는가(이말을 집권 당시 했다면 또 한차례 좌파진영의 야유를 받았겠지). 보수의 시대에 참여정부는 무엇을 할 수 있었는가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등등 임기 후 곳곳에 퇴임 후 노통의 고민이 묻어난다. 이젠 아버지형 국가가 아니라 어머니형 국가가 필요하다든지, '삶이 질이 높은 진보의 나라'를 소망한다든지, 양극화를 줄이기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 등등. 참여정부 시절 언론들이 쏟아내던 공격과 야유를 생각하면, 어라 참여정부가 이런 고민도 했어? 새삼 놀라는 부분도 많다. 물론 강연자들이 대개 노통 참모들이라 '성과'중심으로 말한 때문이기도 하겠지만ㅡ 이명박 정부 2년 반 동안의 학습효과 탓인지 덕인지. 새삼 참여정부가 "급진적 좌파 정부"처럼 보이는 착시효과도 있다.   

 

 떠난 이는 말이 없다. 모든 말과 행동은, 뒤에 남은 자들의 몫이다. 노통 서거 1주년.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책의 일관된 논지는 "깨어있는 시민이 되자"다.  노통의 정신을 본받아(!) 안일했던 삶을 반성하고 우리도 치열하게 현실에 맞서자, 뭐 이런 감상적인 레토릭을 적절히 섞어 곳곳에 배치한다.  6/2 선거 직전에 천안함 사건만 아니었음 노풍이 제대로 불었을텐데, 하고 아쉬워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만. 그건 "죽은 노무현이 산 이명박을 죽이는" 드라마틱한 감동의 도가니, 라기 보단. 노통의 카리스마를 팔아 자신들의 정치적 입지를 세워보려는 옹졸한 정치적 술수에 지나지 않는다. 다시, 피상적인 표현이지만 "깨어있는 시민"이 되는 것이야 말로 가장 예의를 갖춰 그를 추모하는 것일 게다. 그런의미에서, 단순 추모집이 아닌 "정치적 각성"을 촉구/압박하는 이런류의 책이 출간된 것은 좋은 일이다. 이 책을 계기로 누군가 사회에 대해 조금 더 고민하게 되고, 조금 더 자기 생각을 정리할 수 있다면ㅡ 이 책으로서의 역할은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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