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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일 사냥꾼 - 유쾌한 과일주의자의 달콤한 지식여행
아담 리스 골너 지음, 김선영 옮김 / 살림 / 2010년 7월
평점 :
알라딘에서 보내준 책을 받아들고는 잠시 갸우뚱 했다. 과일사냥꾼? 뭐지?;;
서평단을 하면서 좋은점은, 어떤책을 받아들지 몰라 설렌다는 것. 단점은..역시 내가 고른 책이 아니기 때문에ㅡ 어떤 사전정보 없이 받아든 책이, 소위 "내스타일"이 아닐땐 별로 읽고싶은 생각이 들지 않는다는 것..
과일사냥꾼. 제목도 생소하고. 표지도 그냥 그렇고... 첫 인상은 그닥 좋지 않았다.
윌북, 에서 나온 "헝그리 플래닛"이라는 책이 있다. "세계는 지금 무엇을 먹는가"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은 ㅡ 주제 자체로는 조금 재미없을수도 있겠지만. 거의 매 페이지를 넘길때마다 눈을 사로잡는 사진들이 꽤 쏠쏠하다. (물론, 사진이 많다는 것은 책값이 비싸다는걸 의미하기도 한다. 이 책의 정가는 25000원...하지만 XX공원, 에서 반값행사할때 샀다는...) 각 나라를 돌면서 일주일치 식량과 함께 사진을 찍고, 곁들여 인터뷰에 응해준 사람들의 일상을 찍은 사진도 많고. 그렇게 각 나라의 식생활을 중심으로 얘기를 풀어나가면서 자연스레 사회,경제, 문화적인 면까지 슬그머니 파고드는 재미가 있다. 중간중간 섞인 꽤 깊이있고 비판적인 칼럼들은 책읽는 재미를 북돋는 감칠맛 나는 양념이기도 하고.
"과일사냥꾼"이라는 책을 처음 봤을때, 순간 이 "헝그리 플래닛"이 생각이 났다. 세계의 음식문화를 소개하는 것처럼 세계의 진귀한 과일들을 소개하는 책이겠지? 하지만...스르륵 넘겨본 결과. 사진이라곤 한장도 없는. 그저 글만 가득한 책이라는 사실에 보기도 전에 선입견부터 생겼다. 이건 뭥미... 세계의 온갖 매력적인 과일들에 관한 책이라면, 혀는 즐겁게 해주지 못할망정 휘황찬란한 사진으로 눈이라도 즐겁게 해줘야 하는거 아닌감?
뭐 아님 말고...^^;;
헝그리 플래닛, 을 보며 감탄했던것은. 각 나라의 '어떤'가정에 일주일치 식량을 지원해주며 세계 각국을 돌아다닐수 있을 만한 지원을 받는다는 것. 스폰의 세계는 내가 알지못하는 세계지만 한국에서라면 '세계 각국의 식생활'에 관한 (그닥 상업적이지 않은 목적의)프로젝트들이 많이 지원받을수 있을까 하는 의문들...간간이 크라프트나 네슬레 등 초국적 식품기업들에 의해 획일화 되어가는 소위 '선진국형'식생활에 대한 비판도 나오고. 확실히 기업친화적인 프로젝트는 아니었는데 말이다. <과일사냥꾼>에서도 앞부분에, 단지 어떤 희귀한 과일을 맛보기 위해 항공료, 숙박료, 택시비 등등을 기꺼이 지불하고 떠날수 있는 저자가 슬그머니 부러웠다. 한국에서는...일년에 한두번 휴가철에 비행기 타는것도 어지간한 중산층이 아니면 힘든 일인데 말이지. 특히 숙녀과일, 코코드메르를 향한 저자의 열정은 숨겨진 보물을 찾아 떠나는 모험가를 연상시킨다. 하긴, 그러고보면 저자와 같은 '과일사냥꾼'들에겐 최고의 맛을 느낄수 있는 '적절하게 익은' 과일이야말로 인생의 보물이겠지. 더욱이 쉽게 만날수 없는 희귀 과일이라면.
(잠시 딴길로 새서, 이 대목에서 또한번 사진의 부재가 안타깝다. 생김새도 여성의 아랫배-음부-허벅지와 흡사하고 그 맛도 오묘하다는 이 희귀과일-코코드메르-의 우아한 자태를 사진, 혹은 그림으로나마 엿볼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때론 한장의 사진이 백 문장보다 많은것을 말해주기도 하거늘..)
저자인 아담 리스 골너, 는 저널리스트라고 한다. 언론인이라...이 책은 희귀과일들을 찾아나서는 저자의 여행기 이기도 하고, 과일탐정, 과일주의자, 과일수집가 등 과일에 대한 애정(혹은 집착)이 대단한 사람들을 취재한 인터뷰집 이기도 하다. 과일에 탐닉하고 과일을 예찬했던 유명한 역사속 인물들과 관련된 에피소드들도 간간히 등장. 심지어 과일로 욕정을 해소하거나 (저자가 인터넷에서 봤다는ㅡ 멜론, 으로 야릇한 행동을 하려 했던 에피소드, 를 읽다가 빵 터졌다 ㅋㅋ) 환각체험을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까지! 단순히 후식 또는 건강을 위해 챙겨먹는 '먹을거리'로 과일을 대하던 보통사람들에겐 색다른 자극이 되긴 한다. 하지만...'저널리스트'라면 좀 더 비판적인 시각을 보여줘도 되었을텐데 싶은 아쉬움. 착향과일인 '그레이플(포도향 입힌 사과)'과 관련된 부분에선 인공향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에서 시작해서 특정과일이 가진 효능을 과대포장해서 상업적으로 이용하는 폐해에 대한 것까지 상당히 많은 부분을 다루는데. 어쩐지 그저 '관찰자'스러운 느낌이다. 좋게 말하면 독자에게 판단 유보. 나쁘게 말하면 방관. 이 책의 목적이 어떤 머리아픈 고민, 을 유도하는게 아니라. 그저 "이런 세계도 있어요 여러분" 이란 흥미유도라는것이 명백해지는 대목.
읽으면서 가장 화가나고, 또 한번 경제권력의 막강함을 느낀 부분은 10장 <기적의 열매 이야기> miracle fruit, 또는 sweeter라고 불리는 카메룬의 이 열매는 자체로는 그닥 맛이 없지만 이후에 먹는 신 맛 - 이를테면 레몬 - 성분을 황홀하리만큼 달게 느껴지게 해 준다나. miraculin이라고 불리는 단백질에는 당분이 소량 붙어있는데 이 분자는 혀에서 단맛이 가장 민감한 부위 근처에 붙어있다가 신맛이 들어오면 활성화되어 단맛 수용기에 닿아 신경계에 끔찍하리만큼 황홀한 단맛이 들어왔다는 신호를 준다고. 이 성분을 잘 이용하면 감미료를 넣지 않고서도 말이 안나올만한 단맛의 효과를 낼 수 있으니 당뇨병 환자들이나, 건강을 생각해서 설탕을 줄이려는 사람들에겐 그야말로 '꿈의 열매'다. 하지만....세계 제당업계의 위력은 강력했다. 미라큘린 개발자는 생명을 위협하는 알지못할 '추격'을 받고, 사무실은 털리고ㅡ 미국 식품의약국에서 '어떤 형태로든 판매할 수 없다'는 통보를 받았다. 쥐에게 인체 섭취량보다 3,000배를 많이 먹여도 부작용이 없었던 기적의 열매는 금지이고ㅡ 동물실험에서 발암작용이 밝혀진 사카린, 은 2000년에 미 공화당 의회에서 '건강 경고문'규정까지 폐지된 상태라니 뭐.
다행스럽게도(!) 이 기적의 열매는 일본에서는 시판되고 있다고 한다. 당뇨병 환자용 미라큘린 알약도 있고. 기적의 열매 카페까지 있다고. 화악요법 치료 후 음식맛이 거북해진 암환자들에게 사용되기도 하고. 심지어 "남자친구를 꿀처럼 달게 해주는"용도로도 사용된다나. 흠흠.
과일산업, 은 - 농산물이 마지막 남은 면세사업이기 때문에 - 상당히 이윤이 많이 남는 부분이라고 한다. 이 바닥도 부패가 장난아니라, 농부들을 사기쳐서 막대한 이윤을 얻는 도매상들도 많다고. 전달받은 농산물의 등급을 낮게 판정하거나 썩어버렸다고 검사관이 판정만 해주면. 도매상들은 돈을 돌려받고 (실제로는 썩지 않은) 과일들을 팔아서 새로운 이윤을 얻을수도 있다니. 이런 사기가 아니더라도 '과일산업'의 면모는 과일과 달리 그닥 아름답지 못하다. 소비자들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합성착색료로 빛깔을 좋게 만들거나 왁스 같은걸 바르는건 이제 비밀도 아니다. 소비자들이 과일 품종에 대해 많이 알게되면 단일품종의 질낮은 과일을 파는데 지장이 생기니까 '품종에 관한 정보'를 차단하기까지 한다나. 사람들이 생각하거나 비판하지 못하도록 언론을 장악하고 사람들을 바보 만들고 싶어하는 건 기득권자들의 공통된 욕구인건가.
아무튼. 이런저런 아름답지 못한 장면들에서. 그저 fact만 전달하려 애쓰는 글쓰기 방식은. 그닥 맘에 들지 않았다. 저자의 문체 자체가 재미없지는 않았지만. 뭔가 매력적이지는 않은 책이랄까.
자기가 좋아하는 것,에 적당한 시간과 돈, 열정을 들일수 있는것은. 사실 큰 축복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ㅡ 그날그날 삶을 살아가는데 너무 많은 에너지를 써야 하니까. 과학기술은 점점 발전하고 분명 많은 부분에서 인간의 삶은 '편해'졌지만. '삶의 질'이란 부분에선 과연 나아졌다고 말할수 있는건지. 자기가 진짜 좋아하는것이 무엇인지 잘 모르는 경우도 많고ㅡ 안다고 해도 그걸 누릴수 있는 행운은 아무에게나 오지 않으니까. '과일'의 세계가 무궁무진한 경이로움의 연속, 일수도 있다는 걸 일깨워 준 책이었지만. 다른 각도에서의 불편함이 계속 남는다. 이런책으로나마 '대리만족'할수있다는 걸 감사해야 하는건지. 쩝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