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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찾는 우리역사 - 전면개정판
한영우 지음 / 경세원 / 2004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왜 역사책을 읽어야 할까? 살아가는 데 별 도움도 되지 않는 지루한 사건의 나열들을 읽어야 하는 당위가 어디에 있느냐는 말이다. 이에 대한 걸출한 답이 있다.
“우리들 스스로가 자신의 삶에 의미를, 그것도 때때로 죽음을 초월할 수 있는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는 사실에 자부심을 갖자. 만약 어떤 사람이 운이 아주 좋은 사람이라면, 그는 죽기 전에 최선을 다하여 문명의 유산을 되도록 많이 모아 그것을 자식들에게 물려줄 것이다. 그리고 그는 숨을 거두기 직전에, 이 무궁무진한 유산이 바로 우리를 낳은 자궁이자 우리의 영원한 삶이라는 것을 깨닫고 이것에 대해 감사할 것이다.”
월 듀란트가 <역사의 교훈>에서 마지막에 남긴 말이다.
듀란트의 말을 한 마디로 한다면 ‘자신이 있게 한 역사를 사랑하자’라고 할 수 있겠다. 여기 이 말을 통사로서 대변한 책이 있다. 바로 <다시 찾는 우리역사>(경세원. 2007)이다. 저자는 서문에서 “자신을 사랑하면서 과거를 아름답게 추억할 수 있는 사람이 자신을 사랑할 수 있다”고 했다. 그래서 우리 역사에 대한 애착과 자부심이 넘쳐난다.
저자는 말한다.
“우리 역사와 대화를 하면서 내가 얻은 결론은 ‘숨겨진 보석’을 우리 자신이 너무 모르고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모르는데 남이 알아 주기를 바랄 수 있는가. 솔직하게 고백하자면 나는 역사를 공부하면서 남모르는 행복을 누리고 살아왔다. 더욱이 최근 규장각도서를 관리하면서 나의 행복감은 절정에 달했다. ‘잃어버린 역사’와 ‘숨겨진 보석’을 되찾는다면 우리의 생존 능력은 몇 배로 커질 것이라는 것이 나의 확신이다.”
그래서 책의 제목도 ‘다시 찾는’ 우리역사라고 했다. 앞의 수식어가 이 책의 특징을 가장 잘 대변해 주고 있다. 저자는 지금 이 시대가 한국의 통사를 새롭게 바라봐야 할 시기라고 생각하고 있다.
“ 21세기는 우리 민족의 역사상 큰 획을 긋는 시대가 될 것이다. 안으로 민족통일이 이루어지고, 밖으로는 지난 월드컵에서 보여준 국민적 응집력이 문화선진국으로 약진하는 저력으로 다시 나타날 것이다. 15세기 세종시대와 18세기 영?정조시대에 이어 300년 주기의 중흥의 시대가 올 것이다. 아니 그렇게 되도록 노력하는 것이 우리 시대의 사명이다이요, 꿈이 아니겠는가.”
이 책은 바로 우리의 사명과 꿈을 실현시키기 위해 새롭게 시도된 한국 통사이다. 그래서 기존의 한국 통사 책인 이기백 교수의 <한국사 신론>, 변태섭씨의 <한국사 통론> 그리고 한국역사연구회가 펴낸 <한국역사> 등의 책들과는 서술과 내용면에서 판이하게 다름을 알 수 있다.
우선 한국사의 시대구분이 독특하다. 역사학계에서 한국사의 시대구분이 화두이긴 하지만 이 책은 저자만이 창안한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연맹국가[삼국이전], 귀족국가[삼국과 남북국], 귀족-관료국가[고려], 관료국가[조선], 근대산업국가[개항 이후], 민주국가[해방이후]로 구분하고, 시간적 의미로 고대[고려이전], 중세[고려], 근세[조선], 근대[개항이후], 현대[해방이후]"라는 용어와 구분이 그것이다. 특히 근대산업국가는 일제의 침략으로 좌절되었음을 고려하여 ‘꿈과 좌절’이라는 부제를 달았다. 이런 독창적인 틀로 우리역사를 새롭게 재해석한 것이 바로 이 책의 내용이다.
또 다른 장점이 있다면 매우 쉽고 명쾌하다는 것. 저자가 전문가를 위한 통사가 아닌 일반국민을 위한 통사로 다가가기 위해 심혈을 기울여 집필했다는 사실이다. 서문의 “개성이 살아있는 통사, 국민에게 다가가는 통사, 시대의 고민을 담아보려는 통사”로 이해되길 바란다는 말에서도 이를 확인할 수 있다.
그런 이유로 이 책은 중학생 이상이면 무리 없이 읽고 이해할 수 있다. 그러면서도 최근의 학문적 성과를 수용하여, 대학생이나 그 이상의 전문가들에게도 참고가 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한 마디로 쉬우면서도 깊이가 있는 통사라는 사실.
평이하게 서술되었어도 학술서의 품위를 잃지 않은 이 책의 저자인 한영우 교수는 삼봉 정도전을 연구한 국사학계의 원로다. 이 책을 포함해서 2005년까지 20권의 저작을 출간한 대단히 열정적인 학자이다. 이 통사는 저자의 모든 노력의 결정판과 같은 책으로서 저자의 역사의식이 가장 잘 투영된 저작물이라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700페이지가 넘는 책이지만 전혀 지루하지 않다. 매 페이지마다 우리 역사의 새로운 무언가가 기다리고 있다. 그것을 알기 위해 페이지를 넘기는 재미가 그만이다. 무엇보다 매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는 화려한 그림과 진귀한 사진은 보는 즐거움을 넘어, 우리문화가 얼마나 자랑스러운지 스스로 감탄할 수 있게 했다. 기존의 책들과 달리 문화사와 생활사의 비중이 압도적으로 많아 우리 조상들이 어떻게 살았는지 생생하게 볼 수 있다.
위에서 본 것처럼 책이 쉽고 깊으니 소리 소문 없이 스테디셀러로 자리 잡고 있다. 97년2월 초판이 발행된 이후 2003년 17쇄를 달성하고, 2004년 전면 개정판 1쇄가 발행된 이후 2007년 2월까지 12쇄를 찍었다.
학술도서로서, 특히 통사를 다룬 책이 이정도로 많이 팔렸다는 게 놀랍다.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 추천도서’. ‘대학문화신문 추천 대학생 교양필독서’, ‘중앙일보 선정 올해의 좋은 책 100선’. ‘문화관광부 선정 우수학술도서’, ‘교보문고 추천도서’, ‘YES24 강력추천도서’, ‘알라딘 베스트 추천도서’. 책의 날개를 장식하는 화려한 추천 문구들이다.
이런 추천은 과장이 아니다. 책의 서문과 50여 페이지에 이르는 <총설>만 보아도 우리 역사에 대한 애정과 나에 대한 주체성을 단숨에 깨달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이 바로 이런 나라이고 한국을 이루고 있는 개개인들이 어떤 사람들인지를 확연히 알 수 있다는 것.
그렇기 때문에 책을 외국에 알리는 번역 작업이 한창이다. 이미 동경대 요시다 미츠오(吉田光男) 교수에 의해 <한국사회의 역사>라는 제목으로 번역 되어 나왔고, 모스크바대 박미하일 교수에 의해 러시아판이 번역중이다. 영어판은 현재 연세대 함재봉 교수에 의해 번역 중이다.
역사서술은 새로움을 필요로 하는 때가 있다고 한다. 냉전사의 수장이자 대표적인 현대사가인 존 루이스 개디스는 <역사의 풍경>이라는 책에서 역사가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중 하나가 “선별성과 동시성을 가지며, 사건들의 불협화음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구별해 낼 수 있는 일”이라고 했다.
한영우 교수는 바로 이 시대가 필요로 하는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다시 찾아’ 통사로 내놓았다. 새로운 세기를 펼쳐갈 새로운 통사가 탄생한 것이다. 박은식 선생의 <한국통사>가 20세기를 연 우리나라 최초의 통사였다면 <다시 찾는 우리역사>는 21세기에 걸맞은 우리 세대의 <한국통사>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