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를 타는 여자
김미진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0년 1월
평점 :
절판


하루만에 읽어버릴 정도로 빨리 읽히는 소설이다. 저번주 전경린에 홀려있었는데...주말을 또 사랑 타령하는 소설에 또 날려버렸다....근데, 재미있는걸 어떡하랴...
사랑에 대한 김미진의 생각을 보자...그 얼마나 전경린과 구별되는지...


<모차르트가 살아있다면>이후 두 번째 접하는 김미진의 장편소설. 모차르트 이후 단편에서 조차 볼 수 없었던 그녀의 작품을 실로 오랜만에 만나 본다. 7년 만인가....그런데, 모차르트 보단 약간 작품의 완성도가 떨어지는 느낌이다. 무엇보다 주제의 진부함이 컸다. 물론 소설은 재미있게 읽었다. 3류 통속소설 보는 느낌이었다고나 할까...

불륜..자전거를 타는 여인이라는 제목에서도 그 상징성을 충분히 엿볼 수 있다...물론 불륜도 사랑의 범주에 포함시킬 수는 있을 것이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내내 오래 전에 끝난 드라마 <푸른 안개>가 생각났다. 사회에서 성공했다라고 평가받는 한 중년의 남자가 한 20대 여자에게 영혼을 울리는 사랑을 느껴 가정과 직장을 모두 팽개치고 그 감정을 간직한다는 이야기...그녀는 떠나버리고 그는 아무것도 없는 거지가 되었다는...그 문제의 드라마 <푸른 안개>...사랑을 모르고 앞만 보고 왔던 한 남자 앞에 나타난 사랑에 그는 무너졌다.  

마찬가지로 사랑을 모르고 오로지 집에서 벗어나기 위해 결혼하고 그럭저럭 살아온 이 소설의 주인공 미목. 어느 날 그녀 앞에 나타난 산 사나이 하훈으로 인해 그녀는 모든 것이 바뀌어 버린다. 몸의 세포 배열까지...모든 것이 푸른 안개의 주인공 이경영과 똑같다. 뒤늦게 결혼을 하고 사랑하는 존재를 만나는 사람들의 비극적 결말....<푸른안개>가 그랬고 영화 <데미지>와 <실락원>이 그랬으며 숱한 불륜의 통속소설들이 그랬다. 모두 사회의 지탄을 받는 화냥년 이었으며 가정을 버리는 철면피 가장 이었다.

불륜....모든 도덕을 무너뜨리고 서로 갈구하는 이 감정도 사랑이라 불리울 수 있는가? 모든 것을 파멸로 이끄는 그 열정을 우리는 당당히 사랑이라 부를 수 있는가? 그 감정이 영원히 지속되리라고 누가 보장하는가? 순간의 사랑이 모든 것을 파멸시켜도 우리는 그것을 사랑이라고 마음에 담을 수 있는가? 이따위 물음들을 던져본다. 드라마 <푸른 안개>가 종결되었을 때 대부분의 여성들이 이경영을 비난했다. 그럴 수는 없다라고....신랄하게 비판했다. 그런데, 이 소설은 바로 그 불륜을 사랑으로 그리고 있다. 그것도 한 단계 승화시키고 있다. 서로의 숭고한 죽음으로....(하훈은 로체의 정상에서 시신조차 없이 하나의 편지만을 달랑 남기고 죽었다)

김미진은 말한다. 

“사랑이 무엇인가요? 심리학자와 병리학자들은 인간의 신비를 낱낱이 해부했고, 인간의 사랑을 맥박 수와 디엔에이와 케미컬 언 밸런스로 도표화했어요. 인간을 알기 위한 노력으로 인간에 대한 신비감, 존엄성 같은 것은 다 깨져 버렸죠. 그러나 극단적 회의주의로 바라볼 필요가 앖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어요. 사랑은 오묘한 섭리예요. 과학이나 통계로 추론할 수 는 있지만 결코 증명할 수 없는 미지의 영역이에요. 볼 수는 없지만 느낄 수 있는 거예요.”(하훈)  

“사랑을 사고 파는 사람들, 사랑이라는 감정에 몇 번 멍들고 아예 사랑한다는 것 자체를 포기한 사람들, 사랑에 불능이 된 사람들, 그들에게 귀띔해 주고 싶어요. 이 세상 어딘가에는 사랑이라는 절대공간이 존재하고 있어요. 기술 문명의 급류 속에서 아직도 인간이 가장 우수한 종족으로 남아 있는 것은 바로 그 사랑 때문이죠. 사랑은 구정물 같은 욕망의 충돌이 아니라, 혈관속을 질주하는 운명이에요. 그 운명 속에 갇혔어요.”(미목)

이 둘의 대화를 통해 김미진은 단언한다. 불륜은 존재하지 않는다고...사랑이 그것을 증명했다고...비극으로 완성되야 더없이 아름다운 사랑이라고....  
과연 그런가? 그러면 그녀와 결혼하고 그녀 만을 바라본 남편 영준은 무엇인가?
나는 불륜도 사랑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지만...미목이 남편 영준을 죽인 거에 이르러서는 이건 잘못된 관계라는 걸 확신했다.

비극으로 완성한 불륜이 더없이 아름답다고? 난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적어도 영준의 입장에서 봤을땐 그건 결코 사랑일 수 없다. 미목과 하훈의 관계는 그야말로 천생연분. 나중에 진정한 짝을 만났다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을 아름답다고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그것은 한쪽을 파멸시키고 당사자도 행복한 시간을 지속하지 못했기에... 

우리는 둘 만의 사랑을 불륜, 불장난 등 여러 경멸 스런 어휘로 부르곤 한다. 어느모로 보나 하훈과 미목의 사랑은 세상이 환영하지 않는 그들만의 주관적인 감정이다. 
 

사랑이 무엇인가? 우리는 무엇을 사랑이라 부르는가? 남녀의 독점적 관계속에서 피어난 독점적인 소유욕을 우리는 사랑이라고 착각하는 거 같다. 소설속 어디에도 단점을 수용하고 배려하는 포용력은 없다. 오직 열정에 끌려 서로의 육체를 탐닉하는 게 전부다. 살인적인 그리움은 있을지언정 용서하는 포용과 헌신 배려와 같은 건 없다.  

열정이 없어진 순간부터가 나는 진정한 사랑의 시작이라 생각한다. 열정은 모든 눈을 가려버리지만 그것은 영원하지 않다. 단언컨대 영원하지 않다. 하훈은 영원할 거라 단언하면서 죽어버렸지만... 

열정과 젊음이 사라진 후의 관계는 무엇인가? 사랑이 죽음으로 완성된다는 건 넌센스다. 사랑은 인간이 실존해 있을때만 누릴 수 있는 인간만의 특권이다. 그리고 그 문제에 대한 해답을 죽을때까지 알아가는 과정이 또한 사랑이다. 불륜으로 맺어진 두 남녀가 죽어 더 아름답다는 망발을 어떻게 소설가가 천연덕스럽게 주장하는지 알다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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