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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내가 돌아오면
전경린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05년 12월
평점 :
품절
6번째 만나는 전경린의 작품. 역시 우울했지만 이전 작품들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다. 지금까지 읽었던 그녀의 작품들은 '환과 멸'로 집약될 수 있었기에.(순전히 개인적인 생각) 그래서 읽는 내내 우울하고 책을 덥으면 허무하기 까지 했다. 그것은 그녀 작품속의 각 주인공들이 내면의 상처를 감싸안으면서, 이 땅에서 '독립된 여자'로 살아간다는 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심각하게 되묻기 때문이다. 실존의 문제이기에..그래서 우울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초기 작품과는 달리 근래들어 그녀가 보여주는 삶의 방식에 변화를 감지하게 된다. <황진이>에서 황진이가 사랑을 위해 자신의 길을 찾아 훌쩍 떠나버리더니 <언젠가 내가 돌아오면>에서는 생의 끝까지 갔다가 삶의 건강한 의지를 갖고 다시 돌아오는 혜규의 모습을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
사랑때문에 절망하다가(내 생애 하루뿐이 특별한 날), 사랑때문에 자살하고(유리로 만든 배) 사랑을 위해 모든 것을 버리고 자신의 길을 간 <황진이>도 있었기에 이 소설의 주인공 혜규는 어떻게 할 지 정말 궁금했다. 결론은 생의 끝까지 갔다가(자살 시도) 다시 돌아와 새인생을 사는 것으로 되어있다. 일종의 사랑의 거듭남 이랄까..
줄거리는 이렇다. 이 작품의 주인공 혜규는 1남3녀의 세째. 혜진 혜도 혜규 혜미로 이어지는 혜규 가족의 애증과 갈등이 한 축이고 혜도의 친구 인채 혜규의 사촌언니 예경 그리고 혜규의 남자 형주의 관계가 또 다른 축이다. 어렸을때부터 자기보다 연상인 미모의 예경을 좋아했던 인채, 박식하고 따뜻한 인채를 마음에 둔 혜규. 장성해서 고향인 작은 읍에 국어 선생으로 발령받은 인채와 문화원에서 근무하던 혜규는 학회에서 오랜만에 재회하여 서로를 사랑하게 된다. 결혼을 약속하는 사이로 발전하지만 결혼식 바로 전날 인채가 사랑했던 예경을 우연히 택시 안에서 만나 예경의 유혹에 넘어간 인채는 결혼을 무기한 연기하고 그 충격에 혜규는 손목의 동맥을 끊는다. 간신히 살아난 혜규는 오빠 혜도의 도움으로 도시의 모 출판사에 근무하게 되고 거기서 운명적인 사랑 형주를 만나게 된다. 둘은 격정적으로 사랑하지만 그것은 불륜. 서로를 사랑하지만 혜규는 그것이 잘못된 사랑이라는 걸로 괴로워하다가 그와의 사랑을 가슴에 묻고 다시 고향으로 내려온다. 고향에 온 혜규는 병든 어머니를 간호하면서 오빠가 운영했던 카페 '세상끝의 입맞춤'을 인수면서 점점 생의 의지를 갖게된다.
전경린은 작가의 말에서 이 작품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삶의 궁극인 영원이란 지금 이곳에, 모든 나가 동시에 모여든 일치의 순간을 말하는 것인지 모른다. 우리는 누구나 그런 절정을 향해 살아간다. 그것은 내가 내게로 온전히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일이기도 하다. 이 소설은 이렇게 자기로부터 떠나가고 돌아오는 사람들의 이야기 이다"
그녀 말처럼 이 소설속의 각 인물들은 모두 사랑으로 인해 자기를 떠났다가 다시 돌아오는 과정으로 그려지고 있다. 혜도-순이 커플은 그들대로 각자 자신의 것을 찾아 떠났고(떠남과 동시에 그들의 시작이었다), 혜진은 자신의 마지막 보루인 사랑으로, 혜미는 그녀 남편의 외도를 용서로(용서는 사랑이라고 그녀 엄마는 말한다), 인채는 죽음으로, 예경은 그녀의 아픔의 완결인 아들 선우로 인해 모든 갈등과 증오와 번민들을 털어낸다.
사랑으로 인해 아파하고 자기를 부정하고 좌절하면서 각자 생의 끝까지 갔다가 그들 나름의 출발점으로 돌아간다. 각 인물들의 사랑의 회귀..이것이 이 소설의 내용이자 주제라고 할 수 있겠다.
책을 덮으니 다시 의문이 꼬리를 문다. 애정은 없지만 가족이라는 제도를 지키기 위해서, 순전히 개인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서, 그리고 사회로 부터 손가락질을 받지 않기위해서 '가족의 존속'을 원하는 혜진의 태도는 사랑인가? 남편과 남편의 내연여가 당당히 혜진으로부터 이혼을 요구하는 그 상황속에서 가족을 지키기위해 이혼을 거부하는 혜진의 태도가 과연 사랑이 아니라고 할 수 있을까? 혜미의 남편과 놀아난 21살의 그 여자. 혜진에게 이혼을 요구했던 그여자. 그러니까 '부인도 아니고 창녀도 아닌 독립된 여성으로서 사랑입네 하는 여자'로 대표되는 혜규의 사랑은 과연 사랑이라고 할 수 있는가? 세컨드로서 정부에게 당당히 이혼을 요구할 수 있는 걸 우리는 사랑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이따위 물음을 던져본다.
하지만 이 소설의 관점에서보면 역시 이런 것들도 사랑 일 수 밖에 없다. 왜냐하면 우리는 부부로 같이 산다하더라도 '사랑을 찾는 저마다 혼자인 이교도들'이기 때문이며 아무도 '그들이 사랑한 것을 모욕할 수 없기'때문이다.
읽으면서 이번 작품은 어떤 우울로 사랑을 그릴지 내심 기대했지만 전경린은 더 이상 우울한 사랑을 그리지 않았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럴거 같다. 기대가 약간 벗어나 당황스러웠지만(결말이 전혀 전경린 답지 않아서) 그의 스타일이 아직도 소설 곳곳에 건재함을 확인한 것만으로도 이 작품에 후회는 없다.
책에서 전경린이 도발적으로 던지는 "사랑하는 두 사람이 헤어지면, 사랑은 어디로 사라지나..."라는 물음을 되씹어보면서, 나도 사랑에 대해 새로운 물음을 던져 본다. 사랑은 열정의 습관인가 아니면 인간실존 문제에 대한 해답인가..
덧붙임>>
"사랑하는 두 사람이 헤어지면, 사랑은 어디로 사라지나..." 내가 생각하기에 결코 사라지지 않는거 같다. 각 개인 내면에 깊게 새겨져 무의식속으로 가라 앉을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