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한 경제학자의 유쾌한 에세이
폴 크루그먼 지음, 김이수 옮김 / 부키 / 2002년 8월
평점 :
절판


 

경제학 책을  읽는 일은 피곤하다. 매우 집중력을 필요로하기 때문이다.  우리몸이 비타민을 필요로 하듯이 우리의 정신도 경제학의 비타민을 필요로 한다. 비타민을 먹지 않으면 정신적 빈혈을 일으키기에...작년 12월 하순부터 교양경제학 책들을 독파하고 있다. <괴짜경제학>, <경제학 콘서트>, <서른살 경제학>, <누가 케인즈를 죽였나>, <열린 경제학>, <행동경제학>, <정치 경제 에세이> 등등.. 그리고 여기에 폴 크루그먼이라는 요상하게 생긴 기묘한 경제학 책이 추가된다.

 모두 만만치 않은 책들이지만 그래도 <서른살 경제학>이 가장 평이했다. 이론 습득에 유용했고 그런 핵심적인 이론이 현실경제에 어떻게 적용되는지 알 수 있어 유익했다. <경제학 콘서트>와 <누가 케인즈를 죽였나>는 그 보다 좀 어려웠다. 미시와 거시에 대한 이론의 다양한 면을 모색하고 있었기에...물론 3책다 교양 경제학에서 빼어난 책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친절한 해설과 이론을 쉽게 이해시키는 책의 범주에 속한다.

 여기 이 3권을 뛰어넘는 현란한 독설가의 책이 있다. 원제 <The Accidental Theorist>(어설픈 이론가), 우리말 제목으로는 <우울한 경제학자의 유쾌한 에세이>로 부키출판사에서 번역되었다. 주로 경제지에 실렸던 에세이들을 모아 출간한 것이다. 상당히 난해하지만(글을 쓴 전후의 사건의 상황판단을 이해해야 하기에) 그렇게 유쾌하고 통쾌할 수가 없다.

크루그먼은 통념의 경제학을 뒤집는다. 저명한 정부관리, 경제학자, 정치가들이 언설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책에 언급된 지당한 경제이론들의 허점과 급소를 맹렬히 공격하고 있다. 헌데 그 방식이 매우 시니컬하면서도 유머스럽다. 번역본이라 그 유쾌함은 상당히 반감됐지만 꽤 진지하게 2-3번 정독하면 그가 하는 빈정거리는 방식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어 그렇게 즐거울 수 없다.

비판을 해도 크루그먼식으로 하면 좋겠다.(나는 이사람의 비판의 방식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책을 3번 정독해야 했다) 급기야 크루그먼식으로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까지 마구마구 들게 만들었다. 신랄하지만 얼마나 재미있는지. 이론의 핵심을 바로 치고들어가면서 이론의 맹점을 복잡한 수식이 아닌 간단한 모델(이야기)로 논파하는 그의 글쓰기는 가히 경탄할 만 했다. 그가 24세에 MIT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천재임이 이 한권의 책으로도 유감없이 발휘되고 있다.

 크루그먼의 비판의 수위는 상당하다. 주로 관료나 잘나가는 동료 경제학자 그리고 저명한 경제 칼럼리스트를 공격한다. 특히나 공급중시 경제학, 다시말해서 우파(공화당) 정치인들을 집중적으로 공격하고 있다. 그도 그럴것이 괴상한 허점 투성이의 경제이론이 17년을 구가하는 것에 매우 불만인 듯 했다. (크루그먼의 성격 자체가 잘못된 이론에 기반한 권력 누리기를 매우 싫어하는 듯한 인상이다)

일명 래퍼곡선으로 레이건 시대이후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는 바로 그 공급중시 학파의 이론가들을 비판하고 있다. 각종 이론과 문헌을 인용하면서. 그것두 신랄하고도 위트있게, 때로는 뒤통수치는 식으로.

책을 읽어보면 크루그먼이 독설가라는 사실을 확인 할 수 있다. 펠릭스 로허틴을 비판한 부분(p156)에서 잘 드러나 있다. “·······나같은 짜증나는 경제학자가 등장하여 그의 주장에 두어 가지 허점, 대학교과서에 나와 있는 내용을 애써 이해하고자 했던 사람이라면 저지르지 않았을 초보적인 실수를 지적합니다. 그러면 사람들은 이런 반응을 보입니다. 어이쿠~ 또 크루그먼이지. 정말 거만한 친구야~”

 좀 더 크루그먼식 독설을 따라가 보자. 연준 부의장으로 거론되는 펠릭스 로허틴을 ‘어리석은 4%론자’로 빈정거리고(p431), ‘어설픈 이론가’라는 부분에서는 롤링스톤 기자 윌리엄 그레이더가 쓴 <하나의 세계로 가는가; 글로벌 자본주의의 조울병적 논리>라는 책의 말도 안돼는 허점을 핫도그와 롤빵생산 이야기로 파헤치면서 어떻게 이런 허무맹랑한 책이 그렇게 유명세를 타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꼬집는다. ‘다운사이징의 다운사이징’에서는 실종사건 이야기(유괴)로 노동부 장관인 로버트 라이시를 신랄하게 비판한다. “얼굴 없는 유괴와 마찬가지로 다운사이징은 실제 문제의 작은 일부분이면서도 얼굴을 파헤치기에 완벽하게 촬영준비가 된 비극이라는 점이다.”(p33)

크루그만의 글쓰기는 이렇듯 그럴듯한 학자의 대단히 인상적이고 현학적인 말들 속에 감춰진 기본적인 이론의 허점을 맹렬하게 공격한다. 빠져나갈 구멍 없이 완벽하게 KO시킨다는 느낌. 그가 하는 말은 교주처럼 다~ 맞아 보인다.(진짜 모두 옳은 사실을 지적한다) 27편의 유쾌한 에세이들은 버릴것이 하나두 없었다. 에세이 제목 하나하나 속에 그의 재기넘치는 독설이 숨어있었다.

 크루그먼이 하는 경제학적 비판은 다음과 같다. 일단 동료학자나 유명한 경제칼럼니스트(대체로 공급중시학파이다)의 어떤 문제작을 읽고 거기에 대한 경제학적 반론을 가한다. 그 비판의 대상으로 선택되는 대상은 매우 잘나가고 집중적인 조명을 받는 텍스트이다. 그리고 그럴듯하게 쓰여지고 과대포장된 잘나가는 책이 엉터리라는 걸 증명한다.

그 증명법 또한 명쾌하길 이를데없다. 언제나 단순하고 재미있는 모델로 이론이 안고 있는 허점을 논파해 낸다. 우스울정도로 단순화된 모델안에는 경제학적 핵심사상이 담겨져있다. 놀라운 통찰력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크루그먼의 지적에 따르면, 이 단순화된 경제에 관한 가상적인 이야기들을 갖고 시운전 해 보는 일이 대부분 잘나가는 경제학자들에게 품위를 떨어뜨리게 해 점잖은 경제학자들이 의도적으로 그런 시도를 회피했다는 것이다. 바로 자명하고 쉬운 그 진리를···

크루그만은 말한다. “진정한 경제 전문가가 행하는 방식은 세계가 어떻게 작동하는가 하는데 관한 이야기를 갖고 시작한다. 그 이야기는 언제나 세계를 단순화시켜 복잡성을 배제하는데 도움을 주는 표상의 형태를 띠는 모델입니다. 일단 모델이 있으면 그것이 사실과 얼마나 부합하는지 물을 수 있습니다. 그것이 합리적으로 잘 들어 맞으면, 그것이 내포하는 중요성은 어떠한 것인지 또 그 반대양상은 어떠한 것인지를 물을 수 있습니다. 그 다음에 정책적 견해가 모델로부터 도출되는 것이며 그 외에 다른 방법은 없습니다.”(p154)

“모델이란 것이 때로는 우리들 자신보다 더 영리하다는 점입니다. 어떤 일관성있는 모델에····훨씬 해박해 집니다. 여러분들이 탁아조합에 관한 나의 이야기를 진정 이해하셨다면 여러분들은 르네상스 위켄드에 참석하는 멤버들의 99%보다 통화정책과 경기순환의 본질에관해  더 많이 알게 되셨기 때문입니다.” (p155)

 포춘지의 서평에서 케인즈 이후로 글을 가장 잘 쓰는 경제학자라고 그랬는데, 진짜 빈말이 아니다. 크루그먼은 진짜 재미있게, 경제이론을 갖고 사람을 웃게 만든다. 희한한 능력이다. 비판의 신랄함과 현상을 뒤집어 보기 그리고 유머스런 면에서는 에코의 글쓰기 방식과 비견될만하다는 것이 주관적인 생각. 

에코의 글쓰기 방식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방대한 지식의 배경과 이탈리아 문화를 이해해야 하듯이 크루그먼이 하는 비판의 논의 구조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거시경제학 이론의 포괄적인 이해가 급선무였다. 크루크먼의 이론 응용력은 매우 뛰어나서 거시경제학이 정부정책에 어떻게 잘못 적용됐는지 논파하는 이론의 맥락을 이해하기가 쉽지 않았다.

물론 단순하고 명확한 모델이 있었지만. 친절하게도 자기가 하는 모델을 이해하면 머리 나쁜 우파 경제학자보다 낫다는 칭찬도 덤으로 해줘 모델을 이해하기 위해 애써야 했다. 오랜 경제학을 공부한 우파 경제학자들보다야 낫다는데, 머리를 싸매고 이해하는 수밖에. 아~~고약한 크루그먼. 그런 고약한 칭찬으루다가 자신의 이론을 흡수하게끔 만들다니..."정말 거만한 친구야~!"라는 말을 안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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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트 상식사전 스페셜 - 비범하고 기발하고 유쾌한 반전, 대한민국 1%를 위한 상식사전
이동준 지음, 이관용 그림 / 보누스 / 200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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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학창 시절을 돌이켜 보면 항상 재미있는 얘기를 해주는 친구들 주위에는 사람들이 끊이질 않았다. 더군다나 모인 그들의 얼굴은 항상 즐거운 표정이었다. 유머감각 있는 친구들은 어디서나 인기다. 천성적으로 썰렁한 나는 그런 그들이 그렇게 부러울 수 없었다. 유머감각으로 사람들을 후리는 그들의 능력에 질투심이 들기도 했으니까...그런데 알고 보니 그들은 열심히 그런 방면의 책을 탐독하고 자기것으로 승화시키기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었다. 음...역쉬 열정과 노력밖에는 없나부다..

인터넷이 발달하니 여기저기 유머가 넘쳐난다. 진짜 재미있는 유머만을 골라 메일로 보내주기도 한다. 이런 유머들을 빨리 캐취하여 그 유머를 모르는 다른 사람에게 써먹는 민첩한 사람들도 있다. 썰렁한 사람을 위한 개그집 비스무리한 책도 널려있다.
난 재미없는 사람이고 보니 가끔 이런 류의 책을 구경해 보곤한다. 읽지는 않고 구경만...나도 그런 능력을 길러볼까하고...언제나 그렇지 못하지만 서도..

이런 종류의 책을 읽으면 우울한 기분을 날려버릴 수 있어 좋다. 하지만 읽고나서도 어디다가 분류를 할지 난감하다. 에세이도 아니고 그렇다고 상식을 키워주는 교양도서도 아니고...그러면 어떤가 읽고 유쾌하면 그만인것을..

이 책은 유머집이 맞기는한데, 옛날에 인기있던 만득이씨리즈나 최불암씨리즈를 모아놓은 유머집과는 성격이 판이하게 다르다. 싸구려 유머가 아니라 품위있는 유머라할까...부제가 밝히고 있듯이 비범하고 기발하며 유쾌한 반전이 돋보이는 그런 책이다.

물론 키득키득 웃을 수 있는 요소도 충분하다. 배를 잡고 웃을 수 있는 애피소드도 있고 은근히 입이 돌아가게 하는 내용도 있다. 애피소드 마지막을 읽어야 전체적인 맥락을 잡을 수 있는 깜직한 글도 마음에 든다.

무엇보다 "그래 맞아!"하면서 무릎은 탁 치게 하는 공감가는 글들에 후한 점수를 주고 싶다. 사랑과 우정, 나라마다 다른 문화, 여행, 일과 컴퓨터, 정치와 역사,나이듦과 추억 등의 주제로 전복적인 사고를 하는 저자의 기발한 상상력에 박수를 쳐준다.

위트상식사전이라고 타이틀이 붙어있지만 상식사전이라 부르기에는 그 유쾌한 반전의 사고가 그분류를 무색하게 할 정도이다. 개인적으로 유머에 관심이 없어서 더 재미있게 읽지 않았나 싶다. 솔직히 아는 유머는 거의 없고 언제나 난 무릎을 치고 있었다..특히 남녀관계를 소재로 쓴 글들이 압권이랄만 했다. 거기서는 언제나 바보같이 무릎을 치고 고개만 끄덕거리는 나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으니까..

책을 읽고 있는데, 이 책을 먼저 읽은 누군가가 그랬다. 저자인 롤프 프래드리히가 그의 동료학자와 그가 가르치는 학생들과 함께 이 책을 집필했다고. 음...웃긴 책을 진지한 학자들이 머리를 맞대고 집필하는 과정을 생각하니 그것도 또한 웃긴다. 웃긴것두 진지하게 연구하나 부다...

유쾌한 저자들의 유쾌한 발상과 내용에 책 읽은 후에도 계속 입가에 웃음이 남아있어 흐믓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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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아 죽을 각오를 하고 쓴 한국 한국인 비판
이케하라 마모루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199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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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이면 어김없이 광복절이 돌아온다. 헌데 올해 광복절은 하 수상하다. 이상한 정치인들이 광복절을 건국절로 바꾸자는 어처구니 없는 발언이 나오는 상황이다.

급기야 몇 주 전에는  일본의 독도 명칭 파문으로 또 한번의 홍역을 치뤘다. 해마다 당하면서 우리나라는 아직까지 정신을 못차리고 있는 듯하다.

지금으로부터 10년전, 치밀하게 준비한 일본에게 주먹구구식으로 끌려다니며 체결한 한일어업협정. 전문성 부재와 졸속행정으로 우리 어민과 우리 해역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혔으면서도 그 때 정책 실무자들은 아무 문잭없이 어디서 무얼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일본이 어업협정에서 노린 것은 독도 영유권이었음을 뻔히 알면서도 당했고, 이후 해마다 잠잠할 때 쯤 되면 독도문제로 한 번 찔러보는 행위에 그때 뿐의 저열한 대응만 하다 흐지부지 하기를 10년째다.

아마 일본은 내년에도 그럴것이다. 싹을 잘라버려야 되는데, 도대체 우리 정부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정신구조는 어떻게 생겨먹었는지 매번 당하면서도, 매번 그 의중을 간파하면서도 항상 임기응변식의 대응만한다. 답답한 노릇이다.

장기적인 대책 플랜을 내놓을만 한데도 무슨 생각인지 전혀 그런 조치를 보여주지 않고 있다. 사건 터지면 일본 대사 소환만 하면 장땡인가?! 국가 차원의 근본적인 문제해결력의 부재가 더 암담하게 다가오는 2008년의 광복절이다.

광복절이나 삼일절만 되면 들춰보는 책이 있다. 바로 아케하라 마모루라는 사람이 쓴 <맞아 죽을 각오를 하고 쓴 한국 비판서>(중앙M&B, 1999)이다. 이 책이 중요한 이유는 일본 지식인들이 꼭 이 사람과 같은 생각을 여전히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교과서 파동이나 독도문제가 불거져 나올 때 마다, 그리고 제일한국인 문제가 들먹여질때마다 일본의 지식인들이 한국에 갖는 이중적 태도(일명 혼네와 다테마네)를 이 책이 가장 잘 대변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가 아닌 일반 지식인적인 시각에서.

지금은 아쉽게도 절판되었지만, 이 책은 99년 출간되어 장기간 베스트셀러였다. 다소 자극적인 제목이 한 몫 하긴 했지만 비판서가 장기간 베스트셀러 목록에 오른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이 책은 일본인 아케하라 마모루의 원색적인 한국 비판서 이다. 물론 스콧 버거슨이 쓴 <대한민국 사용후기>처럼 방자하게 쓴 것은 아니다. 어느 정도 무게를 갖춘 신랄함 이랄까. 하여간 1999년의 일본인은 한국인의 어떤점을 비판하고 있는지, 그들의 눈에 비친 한국이란 나라는 어떤 나라인지 적나라하게 분석한 책이다. 

 책의 저자는 책의 맨 처음에서 이 책을 객관적으로 썼다고 강조하고 있다. 책 말미의 추천인의 추천도 상당히 객관적인 한국 비판서이니, 일독하라는 식으로 적혀 있었다. 아울러 이 이방인이 한국을 끔찍히 생각한다는 것을 밝히면서, 그렇기 때문에 막자 죽을 각오까지 했단다.

 <맞아죽을 각오를 하고 쓴 한국, 한국인 비판>은 상당히 '객관적이다'라는 것이 책의 첫인상이었다. 그리고 읽어나가면서 작자 말대로 상당히 객관적으로 우리의 문제점들을 적나라하게 잘 지적해 주었고, 추천인의 말대로 '그의 우려와 충고는 모두 나름대로의 진실에서 우러 나왔다'는 것에 꽤 공감이 되었다.

그래서 책 제목처럼 '맞아 죽을 각오'를 하고 쓴 그의 용기와 한국에 대한 애정을 확인하는 것 같았다. 내 자신이 평소에 생각하던 우리의 모순된 점들과 부조리한 면들을 직설적인 어휘로 너무도 잘 지적해 주었기 때문이다. 여기에 지적된 그의 비판들은 우리가 선진국으로 가기위해서 반드시 고쳐야만 되는 우리의 현안들 이었다.

 하지만 정확히 189p-200p의 두 에피소드를 읽는 순간 배신의 철퇴를 얻어 맞은 느낌이었다. 독도와 일제침략을 다룬 십여 페이지 사이에서 저자는 돌연 태도를 바꿨다. 100 여 페이지 이상을 객관성에 의해 지지를 확보한 저자는 상당히 주관적인 이 부분에서 조차도 자신의 주장은 정당하며, 자신의 주관화된 기준이 얼마나 신중한 것이었는지에 대해 독자를 설득시키려 하고 있었다. 지금까지의 비판의 논조처럼 한국인도 받아들일건 받아들이라는 당당한 주장이다.

 그의 주장은 이렇다. 일본이 행한 한일합방은 정당한 것이고 합법적이었다는 것과 일본의 한국지배는 한국 근대화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는 것, 다시말해 일본이 한국을 괴롭혔다 하더라도, 일본이 한국 땅에다 건설한 발전소와 다리들을 한국인들이 한국근대화에 사용했으면서 일본을 일방적으로 매도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것이다. 

 마모루씨는 이 보다 한 술 더 뜬 해괴한 주장을 하고 있다. 독도는 분명한 한국 영토로서 일본의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이지만 세계적인 분쟁지역으로 인식되고 있으니 국제재판소의 판단에 맡기는 것이 한국인의 독도권리에 대한 최선책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바로 여기에 일본 지식인들의 의도가 있었다. 이 책에서 보다 싶이 10년 전에도 여전히 이 생각을 고수하고 있었다. 그들은 하나도 바뀌지 않았다. 10년이 흐른 지금도 독도를 분쟁지역으로 몰아가기 위해 그들은 혈안이 돼 있다. 몇 주 전 미국의 반응만 봐도 알 수 있다. 우리가 항의 해서 부시 대통령이 독도 명칭을 원안대로 돌려 놓긴 했지만 독도가 분쟁지역이라고 미국에 인식시키기 위해서 일본이 얼마나 많은 로비를 하는지 추리해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왜 우리땅을 세계인의 판단에 맡겨야 된단 말인가? 저자 말대로, 만에 하나 세계인들이 독도가 일본땅이라고 선언하는 것이 두려워서? 천만에!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 엄연한 자기 재산을 어떤 미친놈이 자기 재산 이라고 떠들고다닌다 하여 그 미친놈에게 그 재산을 다툴 권리를 주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거니와 자기재산을 잃는다는 것은 넌센스중의 넌센스이기 때문이다.

더 기가 막히는 것은 작자 자신의 이런 군국주의적 시각을 한국 민족이 받아들여, '새로운 동반자 관계', '한일 친선'을 운운 한다는 점이다. '친선'이나 '동반자 관계'라는 말은 서로의 부채 관계를 공정히 해결한 이후에나 가능한 것이다.

 작자는 적어도 이 책이 한국 비판서인 만큼, 한일문제를 다룸에 있어서는 균형된 시각을 보여줬어야 했다. 일제의 만행으로 확인된 정신대문제나 강제징용문제 그리고 문화제약탈등에서 적어도 한번쯤은 용서를 구하거나 잘못된 행동이었음을 시인했어야 했다. 또한 저자가 독도문제를 거론했을 때 진정 객관성을 중시한 사람이었다면 간도문제를 함께 다루었어야 했다. 독도와 간도는 일본제국주의와 직결되는 것으로, 일본측이 지금도 독도를 일본땅이라고 우기는 근거가 바로 일제의 한국병합의 시기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책 어디에도 저자의 사과의 말이나 일본의 만행을 반성한 곳은 없었다. 이런 것을 도외시한 한일 동반자 관계란 일제시대 일본이 외친 '대동아 공영권', '내선일체'와 다를게 없다. 동반자 관계는 이런 것들이 해결된 이후에야 논의될 사항이다. 한일관계에서 모든 문제해결의 열쇠는 일본이 쥐고 있고, 매듭을 풀어야할 장본인도 일본이지 우리가 아닌 것이다.

 이처럼 잘못된 역사의식을 갖고 씌어진 이 책이 어떻게 버젖이 '한국인 비판'이라는 제목을 달고 베스트셀러의 목록에 올라있었는지 그 이유를 모르겠다. 일본이 군국주의 망언을 할 때마다 언론에서 난리를 치면서, 그것을 교묘히 책으로 위장하여 말하면 가만히 있는 우리의 비판의식에 화가난다.

우리의 역사의식에 비추어 보면 적어도 문제의 부분을 포함한 이 책은은 불온서적으로 분류되어야 마땅할 것이다. 간행물 윤리위원회가 문학작품이나 예술작품에 외설스런 부분이 있으면 그 분량이 아무리 적더라도 칼질을 하면서 어떻게 이부분은 그냥 나뒀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비록 이 글이 가벼운 에세이 형식을 띠고 있다고 해도 분명히 한국 비판서임은 자명하다. 비판서가 객관성을 잃어버리는 것은 비판의 가치를 잃어버리는 동시에 그 대상에 대한 성토로 끝나기 쉽다. 특히 한국과 일본의 관계에서 결국 비판의 초점은 역사의식의 객관성과 정당성을 얼마나 잘 확보하느냐에 달려있다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서로가 비판하는 과정에서 결국은 어떤 역사의식을 갖고 있느냐에 따라 비판의 경중과 시비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책 전체에 걸쳐 옳은 말을 하고 단 한 부분에서 거짓말을 한 책이 있다면 우리는 그 책을 정당하고 올바른 책이라 할 수 있을까? 그리고 그 거짓말을 참인 것처럼 위장하여 독자를 설득 시키려 한다면 우리는 그런 책을 어떻게 평가해야 좋을까? 

이 책은 상당한 객관성을 확보하면서 옳은 비판과 충고로 일관하고 있었지만, 단 10 여 페이지에 걸쳐 왜곡된 역사의식에 편승한 거짓말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거짓말을 객관성이라는 후광효과로 교묘히 위장하고 있는 僞書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적어도 내 눈에는 그렇게 비쳤다.

 이 한국 비판서를 들춰 볼 때마다 나는 착잡하고 우울해진다. 일본인의 지식인이라는 작자들은 역사의식에 있어서 일본 문무성 교과서와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1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그들은 변하지 않았다. 이런 왜곡된 역사의식을 갖은 일본인으로부터 한국비판서를 읽는다는 것은 상당히 불쾌한 일이다. 그런데, 그런 일본인이 얄밉게 지적한 우리의 결점들이 여전히 진행형이라는 사실에 더 화가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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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리적인 의사결정 능력을 갖추고 싶으면 이 책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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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르고 과학적인 의사결정의 원칙
나카지마 하지메 지음, 김은주 옮김 / 이코북 / 2007년 3월
10,000원 → 9,000원(10%할인) / 마일리지 50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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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결정 불변의 법칙
데이비드 A. 웰치 지음, 권춘오 옮김 / 청년정신 / 2004년 10월
15,000원 → 13,500원(10%할인) / 마일리지 750원(5% 적립)
2008년 08월 13일에 저장
품절

의사결정의 법칙- KI 신서 425
구니오 고모리야 지음, 나상억 옮김 / 21세기북스 / 2002년 3월
13,000원 → 11,700원(10%할인) / 마일리지 650원(5% 적립)
2008년 08월 13일에 저장
품절

의사결정의 가이드맵
게리 클레인 지음, 은하랑 옮김 / 제우미디어 / 2005년 9월
13,000원 → 11,700원(10%할인) / 마일리지 650원(5% 적립)
2008년 08월 13일에 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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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禁의 세계 - Japanese Eros Manga, Anime, Game
김봉석, 김의찬 지음 / 씨엔씨미디어 / 200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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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금의 세계>, 김봉석&김의찬, CNC


일본 성인 만화, 애니메이션, 게임 등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가? 왜 우리는 성인문화와 포르노를 동일시하는가? 왜 일본 만화는 유난히 성과 폭력에 관대한가? 성인용 애니메이션의 등급분류와 유해논쟁은? 왜 일본 애니메이션은 미국과 유럽에서 큰 인기를 얻는가? 애니메이션과 게임이 벌이는 치열한 공방전, 혹은 협력은?

이와 같은 물음에 대한 답을 알고싶다면 이 책을 슥 한번 훑어 보면 된다. 이 책은 아니메를 위주로, 만화와 게임에서 성인 등급에 해당하는 작품들을 선정 소개 하고, 그것이 왜 성인물이며 왜 왜곡되어 우리나라에 유입되는지를 설명해 주고 있다.

총 5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1장:18禁이란 무엇인가?, 2장:일본의 만화, 영화, 게임의 발전사, 3장:일본만화의 매력, 4장:신나는 일본만화 취재기5장:한국 성인 만화의 가능성 등의 흥미진진한 내용을 담고 있다. 말이 18금이지 일본 만화와 아니메에 대한 총체적인 소개로 보아도 좋을 듯 싶다. 

 이 책은 애니와 게임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2장부터, 만화에 더 매력을 느끼는 사람은 3장과 4장부터 읽기 시작해도 무방하게 구성되어 있어 취향대로 읽거나, 관심있는 부분만 읽어도 되게끔 구성된게 장점이다.

일본 아니메에 관심이 많은가? <카이트>, <바이올린 잭>을 아는가? 만약 일본 아니메에 관심이 많은데 이런 작품들을 모른다면 이 책을 구해서 읽어보는 게 매우 유익할 것이다. 모르는 사람들에게도 추천할 만하다. 일본의 아니메는, 특히 성인 대상 아니메는 그만큼 세계적으로 경쟁력이 있으니까.

 이 책은 일본 만화와 애니 뿐만이 아니라 만화와 애니에 포함된 문화의 중요성을 수용자측에 인식시키려는 노력을 한 흔적이 책 곳곳에 베어있어, 일본 만화나 애니를 주체적으로 수용하는 시각을 일깨우고 있다. 더 나아가 그런 시각을 바탕으로 우리나라 만화 애니의 성인 지향적 작품을 조심스럽게 진단까지 하고 있다.

<클릭! 일본문화>라는 책 이후 두 번째로 호흡을 맞춘 저자들이 이 책에서 강조하는 점은 '난 척'하는 글이 되지 않게 하려고 했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애니 비평책이 전문가의 위치에서 감나와라 대추나와라 하는 식의 기분 나쁜 글이 아닌, 수용자의 시각을 중요시 했다는 점.

그래서 그런지 쉽게 읽히고, 읽고 나면 일본 성인 애이에 대한 나름의 체계를 잡을 수 있는 좋은 책이라 생각된다. 결코 거부감이 들거나 하지 않는다.

 

[덧붙임]
* 개인적으로 이 책을 읽고 새로운 많은 것을 알았습니다. 특히 우리나라에서 번역되어 나온 <캠퍼스 러브스토리>라는 만화가 있는데, 아실분은 아시겠지만 약간 변태적인 내용을 코믹하게 작품입니다. 그런데 이 작품의 원작이 <동경대학 이야기>라는 사실과 원작자 에가와 타츠야가 고교 선생님출신이라는거. 그리고 그의 작품 대부분이 지나칠 정도로 리얼한 성묘사로 일본에서도 정평이 나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출간된 작품은 상당한 양이 짤려서 편집됐다는 군요. 하기야 이 작품을 처음 보시는 분들은 상당한 문화적 충격을 각오해야 하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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