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한 경제학자의 유쾌한 에세이
폴 크루그먼 지음, 김이수 옮김 / 부키 / 2002년 8월
평점 :
절판


 

경제학 책을  읽는 일은 피곤하다. 매우 집중력을 필요로하기 때문이다.  우리몸이 비타민을 필요로 하듯이 우리의 정신도 경제학의 비타민을 필요로 한다. 비타민을 먹지 않으면 정신적 빈혈을 일으키기에...작년 12월 하순부터 교양경제학 책들을 독파하고 있다. <괴짜경제학>, <경제학 콘서트>, <서른살 경제학>, <누가 케인즈를 죽였나>, <열린 경제학>, <행동경제학>, <정치 경제 에세이> 등등.. 그리고 여기에 폴 크루그먼이라는 요상하게 생긴 기묘한 경제학 책이 추가된다.

 모두 만만치 않은 책들이지만 그래도 <서른살 경제학>이 가장 평이했다. 이론 습득에 유용했고 그런 핵심적인 이론이 현실경제에 어떻게 적용되는지 알 수 있어 유익했다. <경제학 콘서트>와 <누가 케인즈를 죽였나>는 그 보다 좀 어려웠다. 미시와 거시에 대한 이론의 다양한 면을 모색하고 있었기에...물론 3책다 교양 경제학에서 빼어난 책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친절한 해설과 이론을 쉽게 이해시키는 책의 범주에 속한다.

 여기 이 3권을 뛰어넘는 현란한 독설가의 책이 있다. 원제 <The Accidental Theorist>(어설픈 이론가), 우리말 제목으로는 <우울한 경제학자의 유쾌한 에세이>로 부키출판사에서 번역되었다. 주로 경제지에 실렸던 에세이들을 모아 출간한 것이다. 상당히 난해하지만(글을 쓴 전후의 사건의 상황판단을 이해해야 하기에) 그렇게 유쾌하고 통쾌할 수가 없다.

크루그먼은 통념의 경제학을 뒤집는다. 저명한 정부관리, 경제학자, 정치가들이 언설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책에 언급된 지당한 경제이론들의 허점과 급소를 맹렬히 공격하고 있다. 헌데 그 방식이 매우 시니컬하면서도 유머스럽다. 번역본이라 그 유쾌함은 상당히 반감됐지만 꽤 진지하게 2-3번 정독하면 그가 하는 빈정거리는 방식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어 그렇게 즐거울 수 없다.

비판을 해도 크루그먼식으로 하면 좋겠다.(나는 이사람의 비판의 방식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책을 3번 정독해야 했다) 급기야 크루그먼식으로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까지 마구마구 들게 만들었다. 신랄하지만 얼마나 재미있는지. 이론의 핵심을 바로 치고들어가면서 이론의 맹점을 복잡한 수식이 아닌 간단한 모델(이야기)로 논파하는 그의 글쓰기는 가히 경탄할 만 했다. 그가 24세에 MIT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천재임이 이 한권의 책으로도 유감없이 발휘되고 있다.

 크루그먼의 비판의 수위는 상당하다. 주로 관료나 잘나가는 동료 경제학자 그리고 저명한 경제 칼럼리스트를 공격한다. 특히나 공급중시 경제학, 다시말해서 우파(공화당) 정치인들을 집중적으로 공격하고 있다. 그도 그럴것이 괴상한 허점 투성이의 경제이론이 17년을 구가하는 것에 매우 불만인 듯 했다. (크루그먼의 성격 자체가 잘못된 이론에 기반한 권력 누리기를 매우 싫어하는 듯한 인상이다)

일명 래퍼곡선으로 레이건 시대이후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는 바로 그 공급중시 학파의 이론가들을 비판하고 있다. 각종 이론과 문헌을 인용하면서. 그것두 신랄하고도 위트있게, 때로는 뒤통수치는 식으로.

책을 읽어보면 크루그먼이 독설가라는 사실을 확인 할 수 있다. 펠릭스 로허틴을 비판한 부분(p156)에서 잘 드러나 있다. “·······나같은 짜증나는 경제학자가 등장하여 그의 주장에 두어 가지 허점, 대학교과서에 나와 있는 내용을 애써 이해하고자 했던 사람이라면 저지르지 않았을 초보적인 실수를 지적합니다. 그러면 사람들은 이런 반응을 보입니다. 어이쿠~ 또 크루그먼이지. 정말 거만한 친구야~”

 좀 더 크루그먼식 독설을 따라가 보자. 연준 부의장으로 거론되는 펠릭스 로허틴을 ‘어리석은 4%론자’로 빈정거리고(p431), ‘어설픈 이론가’라는 부분에서는 롤링스톤 기자 윌리엄 그레이더가 쓴 <하나의 세계로 가는가; 글로벌 자본주의의 조울병적 논리>라는 책의 말도 안돼는 허점을 핫도그와 롤빵생산 이야기로 파헤치면서 어떻게 이런 허무맹랑한 책이 그렇게 유명세를 타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꼬집는다. ‘다운사이징의 다운사이징’에서는 실종사건 이야기(유괴)로 노동부 장관인 로버트 라이시를 신랄하게 비판한다. “얼굴 없는 유괴와 마찬가지로 다운사이징은 실제 문제의 작은 일부분이면서도 얼굴을 파헤치기에 완벽하게 촬영준비가 된 비극이라는 점이다.”(p33)

크루그만의 글쓰기는 이렇듯 그럴듯한 학자의 대단히 인상적이고 현학적인 말들 속에 감춰진 기본적인 이론의 허점을 맹렬하게 공격한다. 빠져나갈 구멍 없이 완벽하게 KO시킨다는 느낌. 그가 하는 말은 교주처럼 다~ 맞아 보인다.(진짜 모두 옳은 사실을 지적한다) 27편의 유쾌한 에세이들은 버릴것이 하나두 없었다. 에세이 제목 하나하나 속에 그의 재기넘치는 독설이 숨어있었다.

 크루그먼이 하는 경제학적 비판은 다음과 같다. 일단 동료학자나 유명한 경제칼럼니스트(대체로 공급중시학파이다)의 어떤 문제작을 읽고 거기에 대한 경제학적 반론을 가한다. 그 비판의 대상으로 선택되는 대상은 매우 잘나가고 집중적인 조명을 받는 텍스트이다. 그리고 그럴듯하게 쓰여지고 과대포장된 잘나가는 책이 엉터리라는 걸 증명한다.

그 증명법 또한 명쾌하길 이를데없다. 언제나 단순하고 재미있는 모델로 이론이 안고 있는 허점을 논파해 낸다. 우스울정도로 단순화된 모델안에는 경제학적 핵심사상이 담겨져있다. 놀라운 통찰력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크루그먼의 지적에 따르면, 이 단순화된 경제에 관한 가상적인 이야기들을 갖고 시운전 해 보는 일이 대부분 잘나가는 경제학자들에게 품위를 떨어뜨리게 해 점잖은 경제학자들이 의도적으로 그런 시도를 회피했다는 것이다. 바로 자명하고 쉬운 그 진리를···

크루그만은 말한다. “진정한 경제 전문가가 행하는 방식은 세계가 어떻게 작동하는가 하는데 관한 이야기를 갖고 시작한다. 그 이야기는 언제나 세계를 단순화시켜 복잡성을 배제하는데 도움을 주는 표상의 형태를 띠는 모델입니다. 일단 모델이 있으면 그것이 사실과 얼마나 부합하는지 물을 수 있습니다. 그것이 합리적으로 잘 들어 맞으면, 그것이 내포하는 중요성은 어떠한 것인지 또 그 반대양상은 어떠한 것인지를 물을 수 있습니다. 그 다음에 정책적 견해가 모델로부터 도출되는 것이며 그 외에 다른 방법은 없습니다.”(p154)

“모델이란 것이 때로는 우리들 자신보다 더 영리하다는 점입니다. 어떤 일관성있는 모델에····훨씬 해박해 집니다. 여러분들이 탁아조합에 관한 나의 이야기를 진정 이해하셨다면 여러분들은 르네상스 위켄드에 참석하는 멤버들의 99%보다 통화정책과 경기순환의 본질에관해  더 많이 알게 되셨기 때문입니다.” (p155)

 포춘지의 서평에서 케인즈 이후로 글을 가장 잘 쓰는 경제학자라고 그랬는데, 진짜 빈말이 아니다. 크루그먼은 진짜 재미있게, 경제이론을 갖고 사람을 웃게 만든다. 희한한 능력이다. 비판의 신랄함과 현상을 뒤집어 보기 그리고 유머스런 면에서는 에코의 글쓰기 방식과 비견될만하다는 것이 주관적인 생각. 

에코의 글쓰기 방식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방대한 지식의 배경과 이탈리아 문화를 이해해야 하듯이 크루그먼이 하는 비판의 논의 구조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거시경제학 이론의 포괄적인 이해가 급선무였다. 크루크먼의 이론 응용력은 매우 뛰어나서 거시경제학이 정부정책에 어떻게 잘못 적용됐는지 논파하는 이론의 맥락을 이해하기가 쉽지 않았다.

물론 단순하고 명확한 모델이 있었지만. 친절하게도 자기가 하는 모델을 이해하면 머리 나쁜 우파 경제학자보다 낫다는 칭찬도 덤으로 해줘 모델을 이해하기 위해 애써야 했다. 오랜 경제학을 공부한 우파 경제학자들보다야 낫다는데, 머리를 싸매고 이해하는 수밖에. 아~~고약한 크루그먼. 그런 고약한 칭찬으루다가 자신의 이론을 흡수하게끔 만들다니..."정말 거만한 친구야~!"라는 말을 안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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