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와 책 미래의 힘 - 내일의 교사를 위한 오늘의 독서백편
박인기.우한용 지음 / 솔출판사 / 2008년 4월
평점 :
절판


책에 관한 책을 줄창 읽던 시절이 있었다. 그 종지부는 아마도 다치바나 다카시의 저작들 이었을 거다. 책 읽고 글 쓰는 사람의 끝판왕을 만나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책에 관한 책을 소개한 책들은 더 이상 읽지 않았다. 대부분의 책들이 다카시의 책에 비해 지루하고, 어느 순간 저자들이 소개해 주는 책들이 익숙한 책이 되었기에 그렇다.

 

 

더군다나 우리나라에서 출간된 ‘책에 관한 책들’은 거의가 저자의 ‘독서에세이’나 리뷰집 또는 해제집의 수준을 넘는 게 별로 없어 보이기에. 다 거기서 거긴 것처럼 보인다. 대개가 고전류의 해제집 아니면 리뷰집 성격이 짙은 책들이다. 저자의 쌈박하고 진솔한 독후감을 만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사실.

 

 

내가 갖고 있는 책만 해도 30여 권이 넘는데, 대개가 비슷비슷하다. <동양의 고전을 읽는다>(휴머니스트, 2006), <서양의 고전을 읽는다>, <고전의 향연>(한겨레, 2007) 등은 해제집 성격이 강한 책들이다. 그나마 <책탐>(나무수, 2009), <탐독>(아고라, 2016), <책을 읽을 자유>(현암사, 2010) 등이 그나마 심도 있는 독서편력기 쯤 된다. <한 권으로 읽는 철학의 고전 27>(지와사랑, 2011) 정도면 아주 밀도 있는 리뷰집이랄 수 있다.

 

 

 

 

 

 

헌데 이런 책들의 한 가지 공통점은 아주 유명한 책들 소개나 리뷰가 대다수라는 점이다. 칸트의 <순수이성비판>, 도스토옙스키의 <까라마조프의 형제들>, 니체의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톨스토이의 <안나 까레리나> 등. 고전류가 대부분이다. 물론 <각주와 이크의 책읽기>(한국출판마케팅, 2011)와 같은 책에는 우리나라 작가들과 지명도가 조금 떨어지는 책들이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기는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스무살을 울린 책>(작가정신, 2002)과 같은 유명인의 진솔한 글은 만나 볼 수 없다. 개인적으로 나이젤 워버턴의 <한 권으로 읽는 철학의 고전 27>과 같은 책을 좋아하지만, 좋은 감상문을 모은 책은 나름의 읽는 가치가 있다. 내가 별로라고 생각하는 책들을 어떤 이는 아주 감명 깊게 읽었고, 그 책이 그의 삶 속에 어떤 작용을 했는지 보는 것은 기대 이상의 뭔가를 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책을 다시 꺼내어 읽어 보게 한다.

 

 

 

며칠 전, 책을 소개하는 책을 한 권 읽었다. 사실 이 책은 찾아서 읽은 책이 아니다. 도서관 신간 코너에 하도 자주 눈에 밟혀 빌려 읽게 된 책이다. <교사와 책>(솔, 2009)은 ‘내일의 교사를 위한 오늘의 독서백편’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책 배판도 대학 교재마냥 크고 멋대가리 없는 표지에 읽고 싶은 마음이 그리 드는 책은 아니었다.

 

 

하지만 몇 권(특히나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자게서)에 대한 교수들의 진지한 리뷰를 보면서 읽을 가치가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빌린 다음날 다 해치워버렸다. 이 책은 교사들을 위해 쓴 책 안내서인데, 집필자들이 모두 현직의 교육계에 몸담고 있는 교수들이다. 모두 익히 아는 책들이지만 교육학적 관점에 초점을 맞춰 새롭게 해석해 내는 리뷰들은 소개된 책들을 다시 보게 만드는 힘이 있다.

 

 

사실 여기 소개되어 있는 책 가운데 <딥스>, <만행>,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 <습관의 심리학>, <설득의 심리학> 등은 명저 산책이나 명저 해제집에 좀처럼 보기 드문 책들이다. <딥스>를 제외하고는 전부 자계서 부류에 속하는 책들이기도 하기에. 더군다나 알라딘 회원 중고책 가격으로는 거의 최하가격에 책정된 책들이다. 그냥 눈에 밟히는, 인기는 좀 있었지만 지금은 그저 그런 책들로 전락한 부류.

 

 

 

 

헌데, 교수들의 글을 통해 소개되는 이 밋밋한(?) 책들은 교육적으로 중요한 가치를 내포하고 있었다. ‘이런 책을 이렇게도 읽을 수 있군!’하는 놀라움을 안겨줬다고나 할까. 꿈보다 해몽이 좋다는 말이 있는데, 이 책들에 대한 리뷰를 읽으면서 드는 단 하나의 생각이었다. 특히 <만행>이 백미였다.

 

 

“아이로니컬하게도 정작 손님인 나는 이 땅을 너무 사랑하고 있는데, 그들은 이 땅에 너무 익숙해져서 싫증을 내고 폄하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걸핏하면 그들은 ‘한국은 더 이상 안 돼’, ‘한국은 가능성이 없어’ 하는 자기 비하로 이어졌다. 아니 이 한국이란 나라가 얼마나 위대한 나라인데, 그리고 지금껏 그들이 흘려온 피와 땀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데, 그것을 그렇게 한꺼번에 헐값에 도매금으로 평가절하 할 수 있을까.(p58)”

 

 

현각의 <만행>(열림원, 1999)에서 이 책의 리뷰자 박찬구 교수(서울대 윤리교육)가 인용한 부분이다. 그리고 박 교수는 “교육은 진리 추구의 보편성에 헌신하는 일이다. 진리추구 자체가 교육적 속성을 지닌다. 교육을 모색하는 우리는 진리 추구의 역정에 서 있는 것이다. 다만 깨닫지 못할 뿐이다. (p59)"라고 마무리한다.

 

 

사실 <만행>은 출간된 1-2년간 에세이 베스트 목록 10위 안에 드는 인기 있는 책이었다. 하지만 출간된 지 오래 지나자 베스트셀러들의 최후처럼 헌책방에서도 헐값에 거래되고 있다. 이미 수명이 다 했다고 여겨지는 책이다. 읽은 사람들은 다 읽었으니. 하지만 박찬구 교수에 의해 새롭게 소개되는 <만행>은 교육학적으로 읽어 봄직한 책이었다. 고교 <윤리와 사상> 교과서에도 ‘세계 윤리’단원에 현각의 이 책이 인용되어 있다지 않는가. 리뷰어의 역할을 다시금 생각나게 하는 리뷰라 아니할 수 없다.

 

 

<현대의 과학철학>(서광사, 1990) 역시 이 책의 리뷰를 통해서 가치를 새롭게 되새겨 볼 수 있었다. 사실 노석구 교수(경인교육대 과학교육)가 쓴 이 책의 리뷰는 내가 쓰고 싶었던 리뷰였다. 오래 전부터 차머스의 이 책에 대한 리뷰를 쌈박하게 쓰고 싶었다. 왜냐하면 과학철학 분야를 이 책처럼 알기 쉽게, 그것도 전문가가 봐도 손색이 없을 정도의 내용으로 정리하기에는 보통 힘든 게 아니기에.

 

 

노 교수는 이 책의 핵심을 아주 간결하게 잘 정리하면서, 책의 핵심을 아주 정확하게 짚어 주고 있다.

 

 “여기까지만 읽더라도(귀납주의에 대한 설명과 비판) 독자는 아마 현대사회가 맹목적으로 또는 절대적인 권위를 가진 것으로 확정짓는 ‘과학적’이란 도대체 어떤 지식이고 어떤 방법을 의미하는가에 대한 호기심이 밀려오는 것을 느낄 것이다. 이 책의 특징은 바로 여기에 있다. 앨런 차머스는 ‘과학적인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적극적인 탐구를 장려하는 방식으로 이 책을 서술하고 있다. (p152)"

 

 

우리가 인문서나 과학서 또는 칼럼이나 여타 잡다한 글을 읽을 때 ‘과학적’ 또는 ‘과학적 지식’이라는 말을 수없이 접해 왔을 거다. 그런데 이의 정확한 의미가 무엇인지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은 별로 없을 듯하다. 주의 깊은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고민해 봐야 할 개념이다. 차머스의 이 책은 이 고민에 대한 답을 나름대로 제시하고 있다. 그래서 책을 읽고 나면 다른 사람들이 쓰고 있는 ‘과학적’이라는 말의 오용 여부를 가릴 수 있는 식견이 생긴다.

 

 

물론 과학철학이라는 학문 분과가 쉬운 분야는 아니다. 그래서 이런 분야의 책은 읽는 사람만 읽는다. 하지만 “저자는 풍부하고 다양한 사례를 통해 독자가 과학철학의 핵심 개념을 하나씩 정복해 나가도록 이끌어 주며 흥미를 잃지 않도록 격려해 준다. 귀납주의부터 반증주의, 쿤의 패러다임을 거쳐 합리주의와 상대주의, 객관주의, 파이어벤트의 아나키즘적 인식론 그리고 마지막 비대표적 실재론까지를 물 흐르듯이 이어지는 과정으로 설명하고 있다. 충분히 도전해 볼만한 책이다(p153)"

 

 

노 교수의 리뷰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이 책이 교사들을 위한 책이기에 차머스의 서문에서 교육학적 가치를 이끌어 낸다.

 

“차머스는 이 책의 목적이 ‘교육적인 것에 있다’고 서문에서 분명히 밝히고 있다. (중략) 그렇다면 이 책을 읽는 교사들은 이 책을 통해 어떤 교육적 전망을 가질 수 있을까. 특정 과학지식을 전달하거나 무비판적으로 확산시키는 대열에 편승하기 보다는 끊임없는 의심과 탐구의 자세를 심어주는 교육을 지향해야 할 것이다. 이 책은 미래의 교육 리더들이 학생들이 과학탐구를 지도함에 있어 학생들로 하여금 ‘혼란에서 출발하여 고양된 혼란’에 이르는 길을 안내하고 격려하는 데에 소중한 지침이 될 것이다. (p153)"

 

 

물론 노 교수의 결론 부분이 원론적인 느낌이 들게하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이 책을 교육학적 가치를 지닌 책으로 소개하는 글은 노 교수의 이 리뷰에서 처음 본다. 나는 이 시도가 참으로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책의 독자는 넓어질수록 좋으니까. 과학철학 입문서를 교육학도가 읽고 거기서 교육적 가치를 이끌어 내는 것은 후학들이 몫일 것이다. 그 단초를 잘 제공해 주는 것이 책 읽는 기성세대들의 일이 아닐까.

 

 

이 책에 수록된 <파인만씨 농담도 잘 하시네>(사이언스북스, 2000), <습관의 심리학>(갤리온, 2007), <설득의 심리학>(21세기북스, 2005), <창의성의 즐거움>(북로드, 2003) 등은 명저의 반열에 드는 책이 아니다. 베스트셀러류에 가깝다. 하지만 교수들이 여기서 건져 올리는 교육학적 가치는 경청할만하다. 리뷰로써 교육학도에게까지 가치 있는 책으로 탈바꿈시키는 것은 순전히 리뷰어의 역량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물론 이 책에는 명저라고 회자되는 유명 책들도 많이 소개돼 있다. 스티븐 호킹의 <시간의 역사>, 박은식의 <한국통사>, 스티븐 핑커의 <언어본능>, 토마스 쿤의 <과학혁명의 구조>, 에드워드 윌슨의 <통섭>, 하이젠베르크의 <부분과 전체>, 한스 요아킴 슈퇴르니히의 <세계철학사> 등. 이 책을 읽는 가치는 이들 명저 리뷰에서도 잘 드러난다. 전혀 교육학과 관련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이들 책에서도 리뷰어들은 교육적 가치를 훌륭하게 잘 건져 올리고 있으니까.

 

 

여러 교수들이 전공별로 자신만의 책을 추천해서인지 리뷰가 간결하면서도 밀도 있는 편이다. 한 책의 리뷰 당 분량이 4쪽에서 5쪽 정도이지만 책의 핵심을 잘 짚고, 이로부터 교육학적 가치를 잘 도출해 내고 있다. 쉽고 명료한 진술도 빼놓을 수 없다. 내가 읽은 리뷰집 중 리뷰어의 가치가 가장 잘 드러난 책이다. 천편일률적인 책 소개나 리뷰집에 싫증이 났던 분이라면 일독할 것을 추천드린다. 물론 ‘책에 관한 책’을 좋아하는 분이라면 금상첨화랄 수 있겠다.

 

 

 

 

[덧]

1. 경청할만한 교육학적 가치가 다루는 모든 책에서 훌륭하게 도출되는 것은 아니다. 리뷰자에 따라서 다소 억지스러운 논리도 보이고 원론적인 내용도 보인다. 여러 필진들이 모여 집필된 책이기에 개인차가 많이 나는 것이 이런 류의 책들이 가진 맹점이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상당히 괜찮은 편이고, 교육학적 목적에서 책의 가치를 재평가하는 시도 자체가 참신하여, 좋은 리뷰를 쓰고 싶은 사람이라면 반드시 일독했으면 하는 책이다.

2. 교수들의 내공을 느껴볼 수 있는 리뷰가 꽤 많다. 주례사 리뷰가 거의 없어 리뷰 읽는 맛이 그만이다~ (몇 편이 있긴 한데, 뭐 그냥 넘어갈 수 있는 수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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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7-06-11 21: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리뷰를 오늘의 당선작으로 적극 밀겠습니다..

yamoo 2017-06-11 22:46   좋아요 0 | URL
곰발 님이 밀면 안된다믄서요~~~ㅋㅋ

어쨌거나 감사합니다요~~~ㅎ

cyrus 2017-06-12 17: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저 그런 책을 색다른 관점으로 소개한 리뷰를 좋아합니다. 저도 그런 리뷰를 쓰고 싶습니다. ^^

yamoo 2017-06-13 20:14   좋아요 0 | URL
저도 그렇습니다~!^^